무지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혐오를 낳고, 혐오는 배제를 낳고
이반시티 상담 게시판에 종종 HIV/AIDS에 관한 글이 올라온다. ‘썸남이 감염인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원나잇을 한 사람의 집에서 항바이러스제를 발견하였다, 어떤 감염인이 어느 찜방에 있더라’등의 글이다. 약방의 감초처럼 댓글이 달린다. ‘감염인이 어떻게 섹스를 할 수 있나, 자기만 죽지 다른 사람도 죽일 일 있나, 양심도 없나, 섹스하면 안되는 거 아냐?’ 등의 혐오와 무식이 결합한 댓글들이 무수히 달린다.
이런 게시글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마도 이들은 감염인과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 HIV에 감염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누가 감염되었는지를 알고 싶어하고, 감염인들은 가급적 섹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외모나 평판 등을 통해 감염인을 색출한다. 그 중에는 정의감(?)에 불타서 꾸준히 감염인에 대한 정보를 올리고 어디에 가니 감염인이 있더라는 경고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가진 믿음은 비감염인과의 섹스는 안전하고 감염인과의 섹스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말이야 맞는 말 같다. 당연히 비감염인과 섹스하면 HIV에 감염되지 않을 것이고, 감염인과 섹스를 하면 HIV에 감염될 수도 있을 것이다(무조건 감염되지는 않는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도 감염확률이 높지는 않다). 이 믿음에 따라 이들은 꾸준히 감염인을 피해다니며 비감염인과 만나서 섹스를 하려고 한다. 나름대로의 감별법을 가지고.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자. ‘비감염인과 섹스하면 HIV에 걸리지 않고 감염인과 섹스하면 HIV에 걸릴 수도 있다’는 진술이 현실 경험에서도 객관적 사실일까? 각자 나름대로의 감별법으로 누가 감염인이고 아니고를 따져서 섹스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방식이 객관적인 대처일까? 그렇지 않다.
생각해 보자. 감염인들의 대부분은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섹스를 통해 감염되었을 것이다. 그 때 상대방을 감염인이라고 여겼을까, 아니면 비감염인이라고 여겼을까? 당연히 비감염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감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섹스를 하지 않거나 아니면 안전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이들의 주관적 경험에서 나와 섹스를 하는 타인은 당연히 비감염인이다. 그리고 바로 그 관계를 통해 감염되었다. 대부분의 감염인들은 '주관적 경험 안에서 비감염인'들과의 섹스를 통해 '감염'되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주관적 경험에 따라 감염인을 피하고, 역시 주관적 경험에 따라 비감염인과 섹스를 하는 것이 거꾸로 가장 위험하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감염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감염인과의 섹스가 가장 안전하다. 당신이 감염인과 섹스를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만 생각해도 답이 나온다.
HIV/AIDS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은 명확하다. 감염인이 항바이러스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미검출 상태가 되어 타인을 감염시킬 수 없다는 것, 감염인과 성관계시 콘돔을 사용하면 충분한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 때에만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무지는 공포를 낳고, 공포는 혐오를 낳고, 혐오는 차별과 배제, 추방을 낳는다. 당신의 공포와 불안, 그로 인한 혐오와 배제는 당신이 얼마나 무식한가를 드러낼 뿐이다. 불안을 혐오로 극복하지 않는 것, 이것이 당신이 즐겨 이야기하는 최소한의 상식이자 도덕이다.
성소수자에이즈예방센터 iSHAP 검진상담실장 / 홍민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