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윤광호>라는 단편소설입니다. 이광수의 초기 소설인데요.
윤광호라는 인물과 P라는 인물을 설정해서 윤광호가 P를 사랑하고 결국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윤광호가 자살을 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언어로 쓰여있어서 그렇지 현대어로만 바꾸어서 읽으면 당장 어제 썼다고해도 믿어질 정도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요.
이광수는 어릴적에 부모님을 잃고 일본으로 혈혈단신으로 유학가 고생을 많이 하면서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소설 속 주인공인 '광호'도 그렇게 설정되어 있는 걸로 봐서 자전적 소설이라는 평이 많은가 봅니다.
윤광호는 외로운 유학생입니다. 그래서 늘 사람이 붐비는 전차를 타고는 일부러 소년소녀와 몸을 맞닿습니다.
어느날 P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집니다.
그때부터 광호는 구두도 사고 옷도 사고 미안수와 클럽백분을 몰래 보관하면서 바르고 다닙니다(ㅋㅋㅋ클럽백분은 뭘까욬ㅋ)
매일 우연을 가장하여 P와 눈이 마주치고 P의 눈길에서 오만가지를 읽으며 P도 자기를 사랑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다가 광호는 용기를 내어 P에게 고백하지만 차입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는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혈서를 씁니다.(ㅋㅋㅋㅋ이때도 막장은 있었네요)
그랬더니 P로부터 돌아오는 답장이 가관. 사람이 연애를 하려면 세가지가 있어야 되는데 돈과 외모와 지성이다. 그런데 당신은 지성만 있고 돈과 외모가 없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게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외모를 보고 돈을 보나봅니다) 그래서 결국 광호는 자신을 탓하다가 자살을 합니다.
이광수는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고 P라고 설정해서 소설을 전개하다가 마지막 문장에 'P는 남자러라.'라고 끝맺는게 당시 사람들에게는 식스센스의 반전 저리가라였겠네요ㅋㅋㅋㅋ
저는 간략하게 좀 공감되고 웃긴 내용 위주로 요약을 했지만 실제 작품을 읽어보시면 더 세세하게 감정이나 상황이 잘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관심있으신분들은 읽어보세요. http://ko.wikisource.org/wiki/%EC%9C%A4%EA%B4%91%ED%98%B8
그리고 제목이 주인공 이름인게 또 특이합니다. <마담 보바리>나 <안나 카레리나>처럼 주인공 이름이 작품명인 경우가 있지만 그만큼 주인공이 작품 전체를 장악하고 끌고가야해서 흔하지 않죠. 또 거의다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특이하게 남자 이름입니다. 어쩌면 여자이름인 걸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게이 파워..
어쨋든 국문과 시험공부할 때마다 게이코드의 작품들을 알게되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ㅋㅋ.
작품에서 발췌한 내용을 올립니다.
<윤광호> 이광수
윤광호(尹光浩)는 동경 K대학 경제과 2학년급의 학생이라. 금년 9월에 학교에서 주는 특대장(特待狀)을 받아가지고 춤을 추다시피 기뻐하였다. 각 신문에 그의 사진이 나고 그의 약력과 찬사도 났다. 유학생간에서도 그가 유학생의 명예(名譽)를 높게 하였다 하여 진정으로 그를 칭찬하고 사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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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광호의 심중에는 무슨 결함이 있다. 보충하기 어려울 듯한 크고 깊은 공동(空洞)이 있다. 광호는 자기의 눈으로 공동을 보고 이것을 볼 때마다 일종 형언할 수 없는 비애와 적막을 감(感)한다. 이 공동은 광호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전충(塡充)하기 불능하다. 여하한 인(人)일지는 모르거니와 이 공동을 전충할 자는 광호 이외의인인 것은 사실이라.
광호는 집에 혼자 앉았을 때에 혹은 찬 자리에 혼자 누웠을 때에 또 혹은 혼자20여분이나 걸리는 학교에 가는 길에 형언치 못할 적막과 비애를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친구와 노상의 행인까지라도 유심하게 보며 더구나 전차 속에서 맞은편에 앉은 당홍치마 입은 여학생들을 볼 때에나 혹 13, 4세 되는 혈색 좋고 얌전한 소년을 대할 때에는 자연히 심정이 도연(陶然)히 취하는 듯하여 일종의 쾌미감(快美感)을 깨달아 정신없이 그네의 얼굴과 몸과 의복을 본다. 혹 이렇게 황홀하였다가 두어 정류장을 지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깜짝 놀라서 전차에서 뛰어내린다. 그러면 즐거운 꿈을 꾸다가 갑자기 깬 모양으로 더욱 정신의 공동이 분명히 보이고 적막과 비애가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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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광호는 P라는 한 사람을 보았다. 광호의 전정신은 불식부지간에 P에게로 옮았다. P의 얼굴과 그 위에 눈과 코와 눈썹과 P의 몸과 옷과 P의 어성과 P의 걸음걸이와... 모든 P에 관한 것은 하나도 광호의 열렬한 사랑을 끌지 아니하는 바가없었다. 광호는 힘있는 대로 P를 볼 기회를 짓고 힘있는 대로 P와 말할 기회를 지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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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는 광호의 하숙에서 2, 30분이나 걸리는 곳에 있었다. 광호는 행여나 P를 만날까 하고 7시 반에 학교로 가던 것을 6시 반이 못하여 집을 떠나서 P의 집 곁으로 빙빙 돌다가 P가 책보를 끼고 학교에 가는 것을 보면 자기는 가장 필요한일이 있는 듯이 P와 반대방향으로 속보로 걸어가서 P가 지나가거든 잠깐 뒤를 돌아보고는 일종 쾌감과 수치한 생각이 섞어져 나오면서 학교로 간다. 아침마다 이러하므로 P도 이따금 광호를 잠깐 쳐다보기도 하고 혹 웃기도 한다. P는 아주 무심하게 하는 것이언마는 광호는 종일 그 '쳐다봄'과 '웃음'의 의미를 해석하노라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는 매양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그 의미를 설명하여 'P도 나를 사랑하나보구나'하고는 혼자 기뻐한다. 그러나 그 기쁨에는 의심이 반 이상이나 넘었다.
그로부터 광호는 새로 외투를 맞추고 새로 깃도 구두를 맞추고 새로 모직 책보를 사고 새로 상등석검(上等石?)을 사고 아침마다 향유를 발라 머리를 가르고 그의 쇠 잠그는 책상서랍에는 신문지로 꼭꼭 싼 것이 있다. 광호는 밤에 아무도 없을 때에 그신문에 싼 것을 끄집어내어 그래도 누가 보지나 않는가 하여사방을 살펴보면서 그 신문에 싼 것을 낸다. 그리고 휘하고 한숨을 쉬면서 거울에대하여 그 신문에 쌌던 것을 바르고 얼굴도 여러 가지 모양을 하여 보아 아무쪼록얼굴이 어여뻐 보이도록 하였다. 그 신문에 싼 것은 미안수(美顔水)와 클럽백분(白粉)인 줄은 광호밖에 아는 사람이 없다.
.....
광호는 실망도 되고 부끄럽기도 하여 감기가 들었노라 하고 이불을 쓰고 누웠다. 종일을 번민하고 누웠다 벌떡 일어나서 면도로 좌수(左手) 무명지를 베어 술잔에 선혈을 받아가지고 P에게 편지를 썼다. 선혈로 쓴 글씨는 참 전율할 만큼 무서웠다. 그 뜻은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자기가 P에게 전심신을 바치는 것과 P에게서 사랑을 구한다 함이라. 이 편지를 부치고 광호는 한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이 편지의 회답 여하로 자기의 생명은 결정되는 것인 듯하였다. P에게 대한 사랑이 자기의 생명의 전내용이거니 하였다. 그리고 P의 사진에 입을 맞추고 또 이것을 밤낮 품에 품으며 이따금 못 견디게 P가 그리울 적에는 그 사진을 앞에 놓고 눈물을 흘려가며 진정을 한다.
하숙의 하녀도 근일에는 광호의 고민하는 눈치를 알고 한번은 농담 삼아,
"상사(相思)하는 이가 있어요?"
하였다.
익일에 편지 답장이 왔다. 그 속에는 광호가 자기를 사랑하여 줌을 지극히 감사하노라 하여 훨씬 광호의 비위를 돋군 뒤에 이러한 구절을 넣었다.
"대저 남에게 사랑을 구하는 데는 세 가지 필요한 자격이 있나니, 차(此) 삼자를 구비한 자는 최상이요, 삼자 중 이자를 구비한 자는 하요, 삼자 중 일자만 유한 자는다수의 경우에는 사랑을 얻을 자격이 무하나이다. 그런데 귀하는 불행하시나마 전자에 속하지 못하고 후자에 속하나이다."
하고 한 줄을 떼어놓고,
"그런데 그 삼자격이라 함은 황금과 용모와 재지(才智)로소이다. 차 삼자 중에귀하는 오직 최후의 일자를 유할 뿐이니 귀하는 마땅히 생존경쟁에 열패(劣敗)할 자격이 충분하여이다. 극히 미안하나마 귀하의 사랑을 사양하나이다."
하고 혈서도 반송하였다. 광호는,
"옳다, 나는 황금과 미모가 없다."
하고 울었다. 울다가 행리(行李) 속에서 특대장과 우등졸업증서를 내어 쪽쪽 찢었다.
....
두 사람은 잠잠하게 광호를 생각하였다. 광호의 시체는 경찰의(警察醫)의 검사를 받은 후에 청산묘지의 일우(一隅)에 묻혔다. 그는 일생에 오직 하나 '특대생의 기쁨'을 맛볼 뿐이요, 빙세계의 생활을 보내다가 우연히 적도의 난류를만나서 그만 융해되고 말았다. 만인의 조소 중에도 그의 묘전(墓前)에 열루(熱淚)를 뿌린 자 수인이 있더라. 준원도 무론 그중에 하나이었다.
겨울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살을 베는 찬바람이 청산 연병장의 먼지를 몰아다가 올올한 묘비를 때릴 제 마포연대 병영에서는 석반(夕飯) 나팔이 운다.
혼자 십여 년 사귀어오던 광호의 묘전에 섰던 준원은,
"에그 춥다."
하고 몸을 떨었다. 광호의 목패(木牌)에는,
'빙세계에 나서 빙세계에 살다가 빙세계에 죽은 尹光浩之墓.'
라고 준원이 손수 쓰고 그 곁에,
'눈이 뿌리고
바람이 차구나
발가벗은 너를
안아줄 이 없어
안아줄 이를 찾아
영원히 침묵에 들도다.'
하였다. P는 남자러라.
사람 많은 전차에서 부비부비라니... 짠하고도 므흣하네요 *^.^*
미안수와 클럽 백분이라면 지금의 에센스랑 비비 크림쯤 될까요?
앞으로도 재미나는 작품 많이 소개해주세요~!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