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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정치' #2] 우리 시대, 퀴어정치는 가능할까 - ‘관용’의 대상이 아닌 ‘정치’주체로서의 퀴어
2016-03-17 오전 01: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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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 

[커버스토리 '정치' #2]

우리 시대, 퀴어정치는 가능할까 - ‘관용’의 대상이 아닌 ‘정치’주체로서의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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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터울(친구사이 소식지팀)

 

 

 

한국에서 퀴어란, 퀴어정치란 무엇일까? 대개 성숙한 시민이라고 간주되는 사람들은 퀴어를 ‘관용’적으로 대한다. 그러나 최근 대전시의회가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조항을 삭제한 채 ‘성평등기본조례개정안’을 통과시켰듯이 여전히 사회 일반의 ‘시민권’을 정식으로 획득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 간극, 퀴어에 대한 관용에도 불구하고 이 간극은 왜 발생하는가? 그리고 과연 퀴어가 그저 관용의 대상인가?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퀴어는 관용의 대상이 아니다. 근대와 통치성에 대해 고민했던 웬디 브라운은 오늘날 관용이 국가 통치술의 일종이라고 지적한다. 즉 소수자들을 ‘하위민족’으로 수용하고, 시민권을 부여하되, 더 이상의 정치와 연대는 자동적으로 소멸하게 되는 논리구조, 그것이 곧 관용의 정치적 효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퀴어는 시민사회에서 관용의 대상이 될 새로운 하위민족이 아니라, 바로 그 사회를 지탱할 다양한 가치의 필수불가결한 대등한 요소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 퀴어정치의 힘을 지난 겨울, 확인한 바 있다.

 

 

두 개의 사건 - 서울시민 인권헌장 무산사태

 

 

2014년 12월, 서울 시청에서는 여러 의미로 드라마틱한 순간이 돌출했다. 애초 혐오발화세력들의 공격으로 참여민주주의의 파탄이 주된 내용이었던 이 드라마는 자칫 막장극으로 끝날 뻔했다. 그러나 성소수자들과 다양한 시민사회의 연대체들이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민주주의를 지켜내고자 함으로써 한국시민사회에, 그리고 퀴어정치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순간으로 남게 되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무산사태는 크게 두 개의 사건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참여민주주의가 행정력에 의해 압살 혹은 파괴되었던 사건이다. 본래 이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대표성을 지닌 150명의 서울 시민위원과 40명의 전문위원들이 127일간 직접 토론과 회의, 표결을 거쳐 완성했다. 그러나 특정 세력들이 한 두 개의 조항을 혐오발화의 대상으로 공격했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수행자여야 했을 행정력이 이를 묵인하고, 혐오발화세력들의 주장을 수용함으로써 시민에 의한 참여민주주의는 철저히 훼손되었다. 당시 서울시의 주장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의한 표결보다는 화백회의식의 만장일치제가 시민사회의 의견을 더 수렴하기 좋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시민들의 127일을 한순간에 무위로 돌린 이유치곤 옹색했다.


두 번째는 시민들의 권리가 깨어진 바로 그 순간, 성소수자들이 혐오발화세력들의 공격에 대응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12월 6일부터 5박 6일간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농성을 진행했던 일이다. 그러나 얼핏 정체성 정치에 근거하는 듯했던 이 시작은 그간 한국의 퀴어운동이 연대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던 적금을 타는 자리로 변모했다. 성적지향과 성정체성 이 두 문구는 단순히 정체성의 옹호가 아닌 민주주의와 인권이 수호할 개인의 필수적 권리로서 간주되었고, 이를 위해 노동자, 장애인, 환경운동가, 여성, 청소년 등 제 분야의 운동가들이 함께 인권과 민주주의 수호를 다짐했다. 즉 이 땅에서 퀴어가 걸어온 길이 바로 시민사회와의 유대와 연대를 통해서였고, 퀴어의 앞날이 공동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한국 퀴어정치의 함의가 바로 그 순간을 통해 두 눈으로 확인되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를 현존하게 하는 실천으로서의 퀴어

 

그러나 당시 기존 진보를 자임했던 이들, 특히 소위 ‘지식인’이라고 자칭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위기와 탄생의 순간은 하나도 감지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우선, 그들이 참여민주주의가 훼손된 의미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좌와 우의 대립구도에만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비슷하게 ‘파쇼’에 저항했던 많은 생존자들은 근대국가와 행정력이 사소한 혐오를 ‘빌미’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국가의 행정과 관료들이 혐오세력들에게 곁을 내주는 것은, 그저 관망의 대상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무서운 병리적 징후였다. 그러나 이를 알아챈 이는 드물었다.
 

둘째, 그들은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문자 그대로 개인의 차원으로 이해했고, 혐오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사실 성소수자 혐오발화세력들의 기원은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과정, 그리고 2009년 이후 학생인권조례 입안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흔히 일반인들에게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갈등 정도로 이해되는 이 양자의 사건에서 초기 적대자들은 혐오발화세력들이 아니었다. 차별금지법 초안의 주 갈등요소는 노동자 차별금지 조항이었고, 학생인권조례의 갈등 배경에는 사학법 개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핵심은 섹슈얼리티를 혐오의 빌미로 이용하는 이들에 의해 가려졌다. 이것이 섹슈얼리티를 개인의 차원으로 한정하고, ‘관용’의 대상으로 손쉽게 처리한 결과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 맹점의 위치를 바로잡을 자리에 바로 퀴어정치가 있다.
 

한국에서 퀴어란, 그리고 퀴어정치란 이미 개인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전체주의적 적들을 감시하고, 혐오발화세력의 입을 통해 드러난 전체주의적 발상들과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과거 혹은 미래에 그 역할은 타자의 것이었을지라도, 지금 현재 그 역사적 소명의 한 지분은 퀴어에게 있다. 물론 퀴어는 유동적이다. 따라서 퀴어정치도 유동적이다. 그것은 생산적일 수도 파괴적일 수도 있고, 집단 혹은 개인, 어떤 차원으로도 외화될 수 있다. 그러나 단 하나, 존재 자체로 사고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퀴어를 구성하는 불변의 정의이다. 그렇기에 퀴어는 불편하지만, 관용의 대상은 아니다. 그것은 연대를 도모하고, 끊임없이 이해하고자 하는 대등한 주체로 간주되어야 한다. 과거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별을 수놓았던 나치와 평범한 독일인들 간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사고하지 않는 개인에게 악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따름이다.

 

 

* 이 글은 <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322호 정치&학술 기획: 퀴어의 현재>에 실은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원문 보기: http://gspres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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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 한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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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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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쿠샤 2016-03-20 오전 03:59

다른 곳에 실렸던 이런 좋은 글이 소식지에도 소개되어서 좋네요
글을 읽으면서 'I am what I am'이 머릿속에 울려퍼지네요^^
(마지막엔 'fighter'가ㅋ) 난 나일뿐 관용의 대상이 아니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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