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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간 사이의 터울 #8 : 성과학과 우생학 - 제2의 성과 제3의 성
2016-03-17 오전 0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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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 
시간 사이의 터울 #8 : 성과학과 우생학 - 제2의 성과 제3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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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열린 제2회 국제우생학대회의 로고. 
당시 우생학은 요즘 말로 하면 각 학제 간의 "융합", "통섭"의 상징이었다. 
 
 
 
0. "성과학연구협회"
 
2014년 8월, "한국성과학연구협회"라는 단체가 발족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애혐오 "연구" 단체로 활약 중입니다. "성윤리 후퇴"와, "동성애 옹호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을 위해 모였다는 이 단체의 이름에 "성과학"이란 문구가 들어간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글에서는, 근대 이후 '성'을 '과학'적으로 보고자했던 시도와, 그 중에도 특히 20세기 초 '성과학'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잡았던 '우생학'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제2의 성, 제3의 성으로 취급되었던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역사를 훑어보고, 작금의 "성과학연구협회"에서 드러나는 혐오적 시선의 오래된 계보를 추적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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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성과학연구협회 로고.
 
 
 
 
1. 우생학과 단종법(斷種法)
 
 
1) 우생학의 등장
 
성과학은, 중세의 사회윤리(기독교, 유교 등)를 통해 몸을 보던 시각에서 탈피해, 몸을 '과학'적으로 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온 학문입니다. 이를 통해 그전까지는 금지되었거나 부분적으로만 허용됐던, '몸'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관찰과 탐구가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1)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적용된 '과학'적 시선은, 뒤에서 보겠지만 그다지 공명정대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즉 중세를 뚫고 비로소 '몸'이 발견되었으되, 그 몸은 금세 '근대'에게 잡아먹힌 형국이었습니다.
 
근대란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를 꼽자면 - 자신들이 생각하는 '과학'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믿을 수 없으리만치 집요하게 밀어붙인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우생학'입니다. 우생학이란, 한마디로 인간의 '종족'에서 좋은 '씨'는 남기고 나쁜 '씨'는 없애서 인간을 더 나은 '종족'으로 업그레이드 시키자는 발상에서 나온 학문입니다. 가축에 적용될법한 '품종 개량'의 시각을 다름아닌 인간에게 적용한 것이지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바야흐로 제국주의와 국민국가의 시대였습니다. 각국의 열강들은 자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 국민들의 '품종'이 우월해지길 소망하게 됩니다. 참으로 농담같은 얘기지만, 20세기 초 이러한 욕망은 세계적인 규모로 시도됩니다. 우생학이 처음 정식화된 영국에서는 1904년 우생학연구소가, 1905년 우생교육협회가 설립되고, 프랑스에서는 1913년 프랑스우생협회가 창립되며, 미국에서는 1926년 미국우생교육협회가 신설됩니다.2) 일본에서는 1926년 일본우생학협회가, 1930년 일본민족위생협회가 만들어지고,3) 식민지배를 받던 조선에서도 1933년 조선우생협회가 발족됩니다. 이 학회에는 당대 조선의 명사들이 대거 발기인으로 참여합니다.4) 
 
이러한 우생학의 유행은, 현재에도 적용되고 있는 공공의료, 국민보건 등의 개념이 자리잡는 데 큰 계기가 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정부에 의한 위로부터의 압력과 함께, 대중운동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적용 노력도 동시에 진행됩니다. 가령 산모에 대한 태교의 중요성이나, 취미로 즐기는 체육활동 등도 이 시기에 대중적으로 수용되지요. 더불어 '우생'이란 말은 당시 '위생'이나, '후생' 정도의 말과 적당히 혼용되기도 했습니다.5)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우생학은 좋은 '씨'의 장려와 나쁜 '씨'의 '축출'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 나쁜 '씨'를 솎아낸다는 발상 아래, 20세기의 수많은 죄악이 발생했습니다. 자국 '인종'이 더 우월하다고 선전하면서 다른 민족과 인종에 대한 차별이 자행되는 데에, 이 우생학이 근거로 사용된 것이지요.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 '인종' 학살이었음은, 굳이 거듭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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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생학자 이갑수 내외. : 「같은 길을 가는 부부 (6) 의학 이갑수 유성순 부부」, 『동아일보』 1957.4.8., 3면.
 
 
 
2) 단종법의 실상
 
이렇게 과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인종주의적 만행은 제1·2차 세계대전기에만 국한되었을까요? 슬프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전후에도 우생학을 통해 자국민을 '좋은 종족'으로 만들려는 '국민화'의 과정은 계속되었으며, 그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유전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강제 불임수술을 집행하는 '단종법'의 실시였습니다. 
 
이른바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강제불임수술을 처음 집행한 나라는 다름아닌 미국입니다. 1927년, 9세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판정된 20세의 캐리 벅(Carrie Buck)이 단종수술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미국 대법원은 "그 종을 존속하는 것이 부적합함이 명백한 자들은 사회에서 태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온 세계를 위해 바람직"하다며 "저능은 삼대로 족하다"는 의견으로 합헌 판정을 내립니다.6) 이후 나치 독일은 "T4작전"이란 명목으로 신체·정신장애인 20만명을 안락사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제국 일본에서는 1940년 국민우생법이 제정되어 단종 수술이 실시되었고, 이는 전후에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가해 1952-61년 동안 (본인 동의가 없어도 되는 '의사의 신청'에 한해)1만여 건의 수술이 시행되었습니다. 이 우생보호법은 일본에서 무려 1996년까지 폐지되지 않고 존속됐습니다.7)
 
한편 한국의 경우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러한 직접적인 강제 불임수술이 당장에 법제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제 시기 창립되었던 조선우생협회와 유사한 형태로 해방 후 '한국민족우생협회'가 발족하고, 1947년 설치된 '국민우생결혼상의소'를 통해 좋은 '씨'의 배우자를 고르게끔 하는 작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8) 또한 1950년대 중반 들어 예산의 부족, "민족정기"의 보전 등을 이유로, "우생학"적 견지에서 "정신위생", "정신보건" 운동을 벌이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9)
 
'우생'의 기본 전제는 '정상적인' 남녀의 '정상적인' 결혼을 통한 '정상적인' 수태, 이로 인해 보전될 '우수한 종족 형질의 승계'였으므로, 결혼과 출산은 이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와 더불어 중요했던 것은 바로, 낙태, 임신중절수술의 문제였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낙태수술이 음성적으로 광범위하게 행해졌는데, 이를 입법을 통해 양성화시키자는 논의가 1960년대 들어 있게 됩니다. 이 때 참고가 되었던 것이 바로 일본의 우생보호법입니다.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면서, 허용할 법적 기준에 "정신이상자, 나병환자" 항목을 끼워넣자는 것이 주장의 골자였습니다.10) 이에 대해 일본의 우생보호법이 반인륜적이라는 일각의 지적도 있었지만,11) "민족보건"을 위해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12)
 
이러한 계획은 1960년대에 진행된 가족계획과 산아제한 정책을 거치면서, 1972년 10월 유신 선포 후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을 통해 비로소 현실화되게 됩니다. 아래의 인용은, 유신 시기 소수자와 장애인의 인권이 어떠한 취급을 받았는지 드러내주는 증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후 1998년 김홍신 의원으로부터 1983-98년간 66명의 "정신지체장애인"이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그 실태가 부분적으로 폭로되기도 했습니다.13)
 
 

 

유전성 정신박약자나 간질증 환자를 보건사회부가 모자보건법에 다라 강제 불임 시술 명령을 내릴 움직임을 보이자 각계에서는 찬성보다 반대 여론이 빗발치고 있는데. 이 문제를 주관하고 있는 보사부의 최익한 모자보건관리관은 11일 "반대론자들이 그토록 인도주의를 앞세운다면 그들에게 정신박약아나 간질환자를 1년씩만 맡아 양육하도록 의뢰해보라"면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데 우수한 우리 민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악성 유전질환자에 대한 강제 불임시술은 당연한 조치"라고 강조해 귀추가 주목.
- 「우수민족 위해 불임수술 불가피」, 『경향신문』 1975.3.1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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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과 강제 불임수술 피해자의 모습. : 『한겨레』 1999.8.23., 15면.
 
 
 
 
2. 제2의 성, 여성
 
 
처음으로 돌아가서, 앞서 '몸'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 또한 중세의 사회윤리를 벗어나 그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해명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몸'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 또한 중세를 뚫고 스스로가 발견되자마자, 또다시 근대의 잇속에 반쯤 잡아먹히게 되고 맙니다.
 
20세기 초반에 '성'을 말하는 것은, 곧 '여성'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느냐면, 이전까지 어떤 주체를 놓았을 때 그것은 당연히 '남성'으로 상정된 채였기 때문입니다. 남성이라 함은, 그 때까지는 별 분할될 필요도 없었던 '제 1의 성'의 위치였던 것이지요. 그러던 것이 '성'의 '과학'적 접근이 있게 된 후부터, 주체는 '남녀'의 성차가 있을 수 있음이 인식되기 시작하고, 이윽고 사람들은 그 차이에 골몰하기 시작합니다. 이 성과학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와, 성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성'의 재조명이 일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서 본 우생학이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새로 발견된 '성차'들 중 상당수는 여성을 '제2의 성'으로 놓고, 여성이 어째서 남성에 비해 특수한 생물학적 위치를 갖는지, 이에 따라 여성의 성은 왜 '차별적'으로 대우돼야 하는지로 흐르게 됩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성과학이 주목을 끌기 시작하면서, 성교육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헌데 이 성교육은 주로 남성들보다는 ('제2의 성'으로서)여성들에게 특히 필요한 것이라 주장됩니다. 왜냐하면 임신과 출산 등으로 여성의 "생활이 더 많이 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14) 그리고 이렇게 생물학적으로 '특수'한 여성은 남성과 본질적으로 다른 주체가 되는데, 그 다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차이'라기보단 '차별'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즉 여성은 선천적으로 "다정"하고 "모방적"이라 "내적 사무"에 적합하고, 남성은 "이지적"이므로 "정치", "사회"로 나아가야 하며, "창조적"이고 "과학적"인 면에서 여성보다 낫다는 것입니다.15) 이러한 구분은 심지어 남성동성애와 여성동성애 사이의 구분으로도 확장되고는 합니다. 여성은 "원시적으로" 성적 수치심이 많아, 그 행동이 "비상한 편협성"을 갖게 되며, 여성의 성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식"되지 않는 수준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남자들도 동성의 연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은, 직접으로 성욕쾌감이 아니면 그처럼 동성의 연애에 심곡(心曲)한 행동이 나타나지 아니하지만은, 여자는 남자와 달라서 원시적으로 성적 수치심이 많으므로 그 행동이 지극히 심곡할 뿐 아니라 비상한 편협성을 갖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남자와 달라서, 성욕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성욕의 원동 즉 원인만 있을 뿐이요 의식은 없는 것입니다.

- 현루영, 「여학생과 동성연애문제」, 『신여성』 1924.12., 22면, 이명선, 「식민지 근대의 '성과학' 담론과 여성의 성」, 『여성건강』 2(2), 2001, 110쪽에서 재인용.

 

 
 
이렇게 여성성을 생물학적 특징 안에 가두는 시도들은, 당대 성과학의 미명하에 심히 괴랄한 수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가령 여성의 "정조"는 "민족"적 차원에서 보전돼야 마땅한데, 만약 한 여성이 그 "정조"를 잃고 남편 이외의 남자와 성교하게 되면, 굳이 임신이 되지 않더라도 그 남성의 "정충"이 여성의 몸에 들어와 "혼혈"의 아이를 낳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런 경위로 섞인 여성의 피는 "처녀감별법"을 통해, 처녀의 깨끗한 "피"가 아닌 것을 구별해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16) 당시에 이런 주장들이 유사 '성과학'의 이름으로 유포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여성의 몸을 과학적으로 보는 척하면서 여성을 '제2의 성'으로 대상화하고 남성에 비해 차등적인 위치로 두는 발상은, 1장에서 본 낙태와 불임수술의 문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여성의 지고의 가치는 무엇보다 아이를, 그것도 '우량한' 아이를 낳는 출산의 능력으로 한정되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과거 여성의 낙태, 혹은 산아제한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구도는 지금의 그것과 같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구도가 여성 스스로의 성적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경합 등에 놓여있다면, 1960년대 당시는 흡사 '아이 낳는 기계'로서 여성의 역할을 이미 상정하고, 그 위에서 가난한 부모의 태아나 (앞서 보았듯)유전병이 있는 태아는 낳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과, "모체"의 보호 및 "성도덕"의 붕괴를 막기 위해 피임을 통한 산아제한은 돼도 낙태는 절대 안된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지금도 물론 여성성의 인식과 관련해 개선되어야 할 많은 부분이 있지만,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인식이 어떤 가시밭을 건너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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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가족계획 포스터.
 
 

 

모름지기 가족계획의 원칙은 부유층보다는 빈곤층에서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빈곤과 과중한 노동으로 영양실조가 되어 단신으로도 감당키 어려운 모체가 임신을 거듭한다는 것은(부당하므로) [....] 이들에게 건전한 피임상식 체득의 방향으로 계몽하는 것이 산아제한운동의 본령일 것이다.
[...] 이른바 문란을 극한 성의 개방과 비정상적인 남녀관계로 인하여 생기는 악의 '씨'의 무책임한 처리 [...] 음성적으로 행해지는 낙태행위가 끼치는 생명상의 위해는 실로 큰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성도덕은 여지없이 붕궤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정한 낙태행위에 대하여는 가차없는 법의 제재가 있어야 할 것이다.

- 김사달, 「산아제한에 대한 시비」, 『동아일보』 1959.12.6., 4면.

 

 
 

 

경제상태가 좋지 않은 집은 남성에게 강제수술을 하자. 자녀 셋 이상의 가정에는 가족세를 부담시키자. 결혼연령을 올리자 등등 얼마나 현실적으로 타당성있는 말인가!

- 「산아제한」, 『동아일보』 1963.7.15., 3면.

 

 
 

 

김 검사는 "태아가 低격자로서 일생 친족과 사회의 큰 부담이 될 때라든가, 강간의 피해자인 부녀가 그 소생을 위하여 치욕과 사회의 냉소 속에 일생을 희생하게 될 때, 또는 경제적 곤란으로 동물적 생활이나 자살을 면하지 못할 경우의 낙태는 형벌을 주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하고 반문한다.

- 「낙태시비 부득이한 경우 허용해도 좋은가」, 『동아일보』 1964.9.17., 6면.

 

 
 
 
 
3. 제3의 성, 동성애 : 성도착증, 정신분열증
 
'제2의 성'에 대한 처우가 이러했을진대, 동성애를 비롯한 '제3의 성'에 대한 처우는 더욱 심각했을 것입니다. 동성애의 경우 지금도 종종 '전환치료'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1970년대 이전의 동성애는 과학의 이름으로 규정된 명실상부한 '정신병'이었습니다. 다음에서는 이 정신분열증으로 규정된 당시 동성애의 실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성별 이분법, 이성애규범성
 
앞에서 보았듯, 과학의 이름으로 규정된 생물학적 본질론과, 그를 통해 구별된 성차는, '제2의 성'인 여성은 물론, '제3의 성'인 성소수자에게도 억압으로 작용했습니다.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성이 고정되었다는 것은 곧, '남녀'의 결합이 모든 연애의 정상적인 형태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고, 이를 통해 자연스레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규범성이 유포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짐짓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다는 대의가 따라붙었고, 따라서 이런 '전형'을 지키지 않는 "변태성욕자"들은 한층 몹쓸 존재들로 여겨질 거라는 점이 암시되었습니다.
 
우선 올바른 남성상/여성상에 대한 강조와 우려는 도처에서 나타나는데, 그 중 한두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제 시기 조선에서는 "남녀동등의 세상"이 오기에 "남자가 일어선 채 소변을 보니 여자도 일어선 채로 소변을 보"고, "남자가 수염을 기르니 여자도 수염을 기르"자며 비아냥거리고는, 고전적인 남녀간의 차이가 소멸되는 듯한 풍조에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17) 또한 1960년대 들어오면 목소리 톤이 낮은 여성 가수의 노래를 들어, "가수는 분명히 여자인데 목소리는 남자"라며, 이런 목소리가 좋다면 그것은 "성도착 취미"일 것이니 정부는 이런 노래들을 엄격히 심의하라고 촉구하기도 합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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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정신의학』 1(1), 1962, 표지.
 
 
 
 
2) 정신분열증으로서 동성애
 
그럼 본격적으로 '정신병'의 차원에서 다뤄진 동성애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1962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의해 창간된 학술지 『신경정신의학』에는, 1960-70년대 학계에 보고된 정신병으로서의 남성 동성애 사례들이 몇 건 소개되고 있습니다. 열거되는 사례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동성애자와 MTF 트랜스젠더, 간성이 뒤섞인 형태인데, 이는 각각의 LGBTI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기 이전의 사정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례"들은 주로 어렸을 적 동성애와 같은 "정신분열증"이 생기게 되었던 가족 환경을 상세히 기술한 다음, "증상"의 구체적인 발현에 대해 세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간성을 제외하고는 MTF 트랜스젠더에게 원칙적으로 성전환수술이 금지되었던 당시의 정황도 우회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19) 이러한 일련의 의학적 서술들은, 동성애를 '정말로' 정신병으로 다루었던 시절의 "과학적" 시각을 보여줄 뿐 아니라, 당시 성소수자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중간중간 읽을 수 있어 참고가 됩니다. 길지만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남 태생인 25세의 일등병 남자환자는 군복무 1개월만에 1964년 5월 초순경 가성소다를 먹고 자살을 기도함으로써 전방 사단에서 후송전원되었다. [...] 환자의 모친은 남성적인 성격으로서 항상 가정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하였으며 여가장으로서 자녀에 대해서 지배적이고 환자에게도 종종 매질을 하였다. 또한 부친이 출어중이면 몹시 불안해하고 불길한 예감에서 남편에 대해서 몹시 걱정하였으며 항상 남편의 직업에 불만이었고 환자에게 절대로 어부가 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 환자는 점차 여자와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되어 동리 청년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으며 Kissing과 petting을 하기도 하고 masturbation을 도와주는 등의 동성애 행위가 15-16세 경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 그 후 유흥가에서 손님을 유치(pemping)하는 일을 하여오던 어느 날 저녁 나이 든 남자 손님에게 마음이 끌려 그의 하숙방으로 가다가 청량리 근방 숲속에서 처음으로 Anal intercourse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이때 입은 상처로 얼마간 고생을 했지만 그 후부터는 대상을 바꾸면서 동성애행위를 하였다고 한다. [...] 언행과 몸짓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수집음을 나타내는 소녀와 같았으며 눈섭을 그리고 분을 바르는 등 여자와 같은 화장을 하였다. 

- 주종구·김승팔·이죽내, 「동성애자의 2예」, 『신경정신의학』 6(1), 1967, 84-85쪽.

 

 
 

 

김○태, 25세, 군인, 미혼, 남자. [...] 환자는 선천성 요도하열을 가진 자로써 어릴 때부터 이 때문에 열등감, 수치감을 심하게 느끼며 친구 없는 외톨로 자라왔으며, [...] 어릴 때부터 [...] 모친이 삼각팬티만 걸친 발가벗은 알몸으로 환자와 같이 생활하는 게 보통인 정도의 환경에서 어린 시절부터 과부인 모친의 무의식적인 성적 유혹 속에서 성장해온 역사를 갖고 있었다. [...] 목소리나 몸짓 태도 등이 아주 여성적이었다 하며, [...] 10여세 경에 벌써 동성인 남성 및 남근에 대해 성적 흥분을 느꼈으며, [...] 17세 때 Show단에 show-girl로 취직, 22세 때는 대구 모 술집에 접대부로 취직하여 남자 손님을 접대하는 데 즐거움을 느끼며 생활하다가 군에 입대됨. [...] 그러나 남자들과의 명백한 성교 역사는 없었다 한다.
 
환자는 어릴 때부터 선천성 요도하열이 있는 자신의 음경에 대한 혐오감, 열등감이 심하였고, 자신의 음경이 마치 독사뱀같이 징그럽고 무섭게 보여져, 거기서 오는 불안감과 공포감을 도저히 이기지 못하여, 음경 절단을 원하고 있던 중 19세 때 먹물 문신으로 음경이 없어진다는 소문을 듣고 이미와 음경에 기괴한 모양의 문신을 자기 손으로 직접 넣은 결과, 음경에 세균감염을 받아 선천성 요도하열부분이 더 넓게 뚫리어 인공적인 fistula가 형성됨. 

- 오석배·장기용·권영신·김승팔, 「망상형 정신분열증으로 진전된 성도착증자의 1예」, 『신경정신의학』 10(1), 1971, 58-59쪽.

 

 
 

 

임○종, 23세, 남자. [...] 외래에 왔을 때의 모습은 골격이나 외모나 겉옷의 모양으로 보아 분명히 남자임에 틀림이 없었으나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빨간 넥카치프를 느린 모습이나 현란한 색깔의 샤쓰를 입은 모습이나 머리를 이마 위에 내리덮은 모습, 여성적인 교태와 수줍은 표정 등으로 미루어 성확립의 장애(gender identity disturbance)가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 이 환자는 [...] 약 1년 전부터는 제3의 동성애반려자와 동서생활을 지속해오고 있다. 환자의 진술에 의하면 현재의 동성애반려자를 포함한 (과거에 만난)모든 세 사람과의 육체적인 성교섭에 있어서도 만족을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 [...] 환자는 어려서부터 형제 중 제일 예쁘장한 편이었다고 하며 어머니가 아들이 많아 늘 딸 낳기를 바랐기 때문에 환자를 여자처럼 길렀다 한다. [...]
 
입원기간 내내 환자는 '나를 여자로 만들어달라', '여자 되어 시집을 가서 시부모를 모시고 싶다', '여자로 되지 않으면 파멸이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등의 노골적인 거세적 원망(castrative wish)을 표출시키고 피학난적 만족(masochistic gratification)을 희구하고자 하였다. 이 점에 대해 환자에게 누누히 타일렀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동성애 자체가 잘 용납이 안된다고 설명하여도 막무가내로 수술을 요구하였다. [...]
 
먼저 밝혀둘 것은 성전환수술을 받고자 원하는 환자를 정신과에 입원시킨 이유는 거세의 희망이 두드러진 동성애성도착증에 대한 연구관찰에 있었다. 물론 수술까지 시행하리라고는 저자들이 기대하지 않았으면서도 입원시킨 사실은 무리이었으나 [...] 연구목적으로 별도로 책정된 연구비에 의한 무료입원환자(academic free case)로서 입원시켰음을 밝혀둔다. [...]
본 증예는 만성적으로 gender identity나 idenfication이 그릇처져 있었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그의 생활양상을 근본적으로 면모시켜, 피학난적으로 거세적 원망을 충족시키고 동성애성도착증에 병적 순응을 도모한 것이다. [...] 이 보고는 동성애에 관한 한국사회의 용인을 요청한 성전환수술의 문제점을 환기시키는 증예였다고 생각한다. 

- 한상엽·박태수·오민응, 「동성애의 1예」, 『신경정신의학』 11(3), 1972, 64-66쪽.

 

 
 

 

(지정성별 남성 4명이 음경을 스스로 자해할 때 사용한-인용자)절단 기구들은 여러가지로, 면도칼이나 가위가 주로 사용되며 증례 1은 줄톱을 사용하였고 증례 4는 고무줄로 묶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상처의 내용은 4명 중 3명이 음경에 대한 자해였고 2명은 음낭과 고환에 대한 자해였다. 증례 4를 제외하고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완전 절단 내지는 제거되었으며 이들은 외과적으로 처치를 받았으나 음경의 복원은 되지 못하였다. [...]
(4명)모두에서 성적 인식의 혼돈을 보였고 조기 부모 격리와 모성 동일시의 정신병리가 가장 많은 빈도를 나타낸다. 이외에도 동성애적 욕구를 보이는 경우가 4명 중 3명이 되며 또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 신체상의 장애, 피학적 욕구 및 자살의 상념 등이 이들에서 보이는 정신병리들이었다. [...]
 
[증례 2] 환자는 자살 목적으로 자신의 음낭을 가위로 절제하고 고환을 제거해버린 상태에서 내원했다. 자신도 모르게 부부관계가 싫어졌다고 하면서 "내가 거세를 했기 때문에 부인이 다른 남자에게 재가해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술회했다. 전혀 후회나 불만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부담스러운 짐을 덜어 버림으로서 홀가분해진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
[증례 3] 자신의 음경을 1cm 가량 남기고 면도칼로 완전 절단한 상태로 응급실에 와서 지혈을 요구했다. "내가 다시 붙이려면 뭣하러 잘랐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옆에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여유까지도 보였다. [...] 딱 한번 여자를 짝사랑했는데 거절당한 뒤로는 여자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 간혹 자위행위를 했으나 오히려 죄책감만 갖게 되고 어떤 때는 성기를 제거하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고 한다. 치료에 비협조적인 환자는 "이 일로 과거의 모든 잘못이 속죄되었으며 신학대학에 들어가 목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토로하기도 했다. 

- 석재호·손봉기, 「남성의 성기자해에 대한 정신의학적 고찰」, 『신경정신의학』 19(2), 1980, 98-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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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케치 : "한국인의 성도착·환각제 복용 거의 없다", 서울의대 한동세 교수 논문」, 『동아일보』 1971.6.28., 5면.
 
 
 
 
그렇다면 이러한 정신병으로서의 동성애, 혹은 성도착과 관련해, 특히 한국의 경우에 있어 당시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어떤 "과학적 분석"을 하고 있었을까요? 같은 학술지에 실린 서울대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한동세 교수의 「한국인의 성도착증」은 이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됩니다. 아래의 긴 인용을 요약하면, 주장의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글쓴이는 당시에 화제가 되었던, 킨제이 보고서에 나오는 서양인의 동성애와는 달리, 한국인의 동성애는 그 수가 현저히 적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로 글쓴이는 문화적인 요인과, 생물학적인 요인 양자 모두를 드는데, 먼저 문화적인 요인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한국은 결혼과 가족구성에 있어 "생식지상주의"가 있어, 결혼을 반드시 해서 자식을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기에 동성애가 억제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한국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므로 여성의 성욕은 금기였는데, 이렇게 남녀의 구별이 명확하므로 "성의 혼동"을 통해 성도착이 야기되는 서양의 사정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셋째, 동성애의 원인으로 당시에 설명되었던 것이 "역-외디푸스" 관계이고, 이는 부모간의 사랑을 자식이 질투하는 구도에서 출발한 것인데, 한국은 남편의 경우 "외도"와 "축첩", 아내는 자식에 대한 애착을 통해 그와 같은 부모간의 친교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동성애의 원인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은 친척간·선후배간에 서열을 따지는 문화가 많은데, 이 역시 자칫 동성애로 기울 수 있는 친교 형성을 막는다고 글쓴이는 주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서양인은 "정력이 넘쳐흘러" "변태"가 많은 반면, 한국인은 "초식"을 위주로 하고 "기생충"이 많아 "정력이 남아돌"지 않으므로 "변태"가 적다는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한국의 성은 "음양"이 분명한 점을 자랑스런 전통("태극")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남존여비 사상과 결혼/생식에 대한 압력, 여성의 성을 말하지 못하는 풍조, 남성의 축첩 등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해놓고는, 그것 일체가 한국에 동성애를 뿌리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던 자랑스런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앞장에서 보았던 성차와 성소수성이, 즉 젠더 질서 아래에서 이른바 '제2의 성'과 '제3의 성'이 어떻게 서로 사이좋게 억압받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대목입니다. 또한 생물학적으로 "정력"이 적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변태"가 적다고 설명하는 것은, 과거 백인종을 우월하다고 놓았던 우생학이, 한국 안에서 어떻게 "민족"의 자긍심을 희한한 방식으로 고취시키려는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전도되고 적용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의 이러한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설명이 이제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는지는, 이를 읽는 독자분들의 판단에 맡기고자 합니다.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 도착이 한국에는 적은데 비하여 서양에서는 얼마나 많으며, 큰 사회적 법적인 문제인가를 알 수 있다. [...] 왜 한국에는 이다지도 동성애를 비롯한 성도착증이 적은지 그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 우리의 다음 과제이겠다. 
 
동성애는 생물적인 요소와 문화적인 요소의 상호작용을 잘 나타내고 있는 사실이다. [...] 한국인의 옛부터 내려오는 생활 원리의 하나는 생식 지상주의였다. [...] "어떤 신이든지 자식 점지하는 권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가장 큰 지성을 받고 석주 혹은 목○이 생식력의 표상으로 1호 1동 1향마다 세워졌다." [...] 결혼을 못할 수는 있어도 안할 수는 없는 한국 같은 결혼에의 압력이 강한 사회에서는 명백한 동성애는 대단히 보기 드물게 될 것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 사상에 젖어 살아온 전통적 한국 가족의 인간관계는 특히 그 남존여비로 특색지워지며 [...] 생식지상주의적이고 남존여비인 한국 사회에선 남자들의 양기만을 문제삼고 그것만이 관심사이지, 여자들의 음기는 강력히 억제되어 있는 것이다. 즉, 여자의 성욕은 금기이다. 한국에 양기를 돕는다는 음식과 약은 한없이 많아도 음기를 돕는 것은 거의 또는 하나도 없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 그러므로 양기 또는 정력 문제가 한국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증상을 이루고 있다 해서 그것을 성의 혼동에서 비롯하는 서양의 외견상 우리와 비슷한 문제와 동일시해서는 안될 줄로 안다. [....]
 
정신분석학에서는 동성애의 근원을 역-에디퍼스 관계로 설명(reversed oedipal formulation)하고 있다. [...] 동성애의 원인(은) [...] 친절한 아버지의 결여보다도 핵가족의 파탄이라고 결론지었다. [...] 그러나 한국의 가족은 다르다. 어머니는 어린이를 특히 머슴애를 분만하면 그 때부터 그녀의 역할은 어머니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정당한 것이 되며 아내로서의 역할은 부차적이 되거나 없어질 수도 있게 된다. 아버지는 외도를 할 수도 있고, 축첩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정의 삼각관계는 성립되지 않고 Oedipus complex도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Oedipus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같은 삼각관계의 산물인 역-에디퍼스 관계도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즉, 정신분석학의 통설인 동성애의 원인적인 가족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동성애의 빈도는 동성애에 대한 금기 그 자체에 의해서 줄어들기도 하겠지만, 같은 성의 사람들에게는 성관계가 허용될 수 없는 호칭을 사용하는 문화적 사실로도 줄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의 문화는 [...] 형수를 촌수가 하나 위인 백모나 숙모와 같이 "아주머니"로 부르게 하고 있다. [...] 한국인이 어떠한 사교적인 모임에선 선후의 서례가 확정되기까지는 모두 불안하게 여기며 또 선후배를 따지는 관성도 [...] 동성애를 방지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문화는 성의 억압과 억제를 잘 하여 이 땅에 동성애나 근친상간이 드물게 하였다. 점잖은 한국인은 성을 입밖에 내지 않았으며, 또 집 밖에 내지도 않았다. 성은 언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행동하는 것도 가족 중심, 생식지상의 테두리 안에 제한되어 왔던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도, 기름지게 먹고 정력이 왕성하여 그 넘쳐 흐르는 정력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여 걱정하고 많은 변태를 가져온 서양인에 비하여, 한국인은 주로 초식을 많이 했고, 기생충도 많아 혈중 Hb도 낮아, 정력이 남아돌아가는 일이 많지 않고 변태도 많지 않았다. 한국의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여성의 성은 무시되었으며 잉태와의 관계에서만 문제가 되었다. [...]
 
성도착증은 문화적인 요인에 따라 크게 그 빈도가 좌우됨을 그리고 생물학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있음을 위에서 밝혔다. 
한국에서는 성을 음양으로 분명히 갈라놓고 그 둘이 혼연일체가 되어 큰 하나의 원을 이루는 태극으로 표현한다.
- 한동세, 「한국인의 성도착증」, 『신경정신의학』 9(1), 1970, 30-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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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의 혐오세력 퍼포먼스 @서울시청광장, 2015.6.28.
 
 
 
 
4. 인간다운 세상을 위하여
 
 
1) 민족과 인종의 거리
 
물론, 제국 열강의 '우생학'과,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나라의 '우생학'을 1:1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또한 한국의 '민족' 개념과 민족주의를 위에 언급한 부정적인 사례들로 간추리는 것 또한 위험한 요약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제 시기부터 종족적인 요소 이상으로 문화적인 계발에 대한 강조가 있어왔고, 역사 속에서 그 특유의 힘이 좋은 방향으로 분출되었던 적도 많았습니다.20) 그러나 적어도 앞에서 보았던, '민족'의 개념을 통과하여 여성과 성소수자에게 자행된 저 엄연한 현실들 또한, 그것이 아무리 '일부의 양상'이거나 '부조적(浮彫的)'인 형태라 하더라도, '민족'의 '증상'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되새겨질 필요가 있습니다. 
 
2015년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최된 퀴어문화축제에서 "민족복음화운동본부"를 비롯한 동성애혐오세력들이 등장하여, 그들 중 일부가 차용한 "부채춤", "전통북" 등 짐짓 '민족'적인 상징들을 떠올려보면, 과거 '민족'의 레벨에서 실행된 우생학적 실천들에 대한 회고와 반성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 앞서의 혐오세력들 스스로 언급한, "민족"을 "복음화"하기 위해 동성애자들을 솎아내고 그들을 "구원"시키자는 발상은, 과거 우생학과 성과학을 통해 동성애자들을 정신병자 취급했던 배제의 역사에 비추어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국민, 민족, 혹은 "과학"의 이름으로 준별된 성, 혹은 장애 이전에, '인간'의 권리와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가 새삼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의학에서는 인간 신체의 정상 상태란 인간이 그것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상태이다. 그러나 (만약)의사가 정상상태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치료는 (의사가)정상이라고 말하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환자가 생각하는 정상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 치료해야 하는가? 나는 두 번째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인간은 그 자체가 병리적이기 때문이다. [...] 우리가 완전한 건강을 이상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생물이란 질병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 (정상이란)생물학적 정상을 가치개념으로, 통계적 수치개념으로 만들기 위한 의료적 판단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다."

- Georges Canquilhem, "Le normal et le pathologique"(Paris, 1966), pp.77-78,81(조르주 캉길렘, 『정상과 병리』, 한길사, 1996), 박지현, 「양차대전의 생명담론과 프랑스 우생학」, 『서양사론』 100, 2009, 92쪽에서 재인용.

 

 
 
 
2) 성과학과 인권의 거리
 
지금도 동성애자들은 흔히 이런 말을 듣습니다. 과연 동성애는 유전적인가, 혹은 환경결정적인가 라는 질문 말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그것이 유전적이든 환경결정적이든, 저런 질문은 그 자체가 어떤 사람을 차등적인 지위로 격하시키고 그를 연구(혹은 교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처사입니다. 그것도 당사자들 앞에서 말이지요. 저런 질문에 대한 현명한 대답 중 하나가, "그럼 이성애는 유전적인가요, 환경결정적인가요?"라는 반문이 되는 까닭이 이와 같습니다. 
 
또한, 성과학 속 '성'에 대한 설명이 과거에 불충분했듯이, 마찬가지로 현재의 우리는 성에 대해 아직 채 다 알지 못하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특정 시점에서 연구된 동성애의 기전에 대해, 당사자인 동성애자가 그것의 가부를 통해 자신을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현재까지 일부가 밝혀졌을 뿐인)동성애의 기전이 어떤지가 당장에 무슨 사회적인 영향력이 있을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일부가 밝혀졌을 뿐인)그 기전으로 사회와 성별을 조작하려 했던 시도들이, 과거에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위에 이미 언급한 사례들을 되짚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
 
2015년 한해, 동성애 혐오세력들은 다양한 서적들을 발간했는데, 거기에는 어김없이 '동성애자'로 살았다가 너무나도 고통을 받은 나머지 '동성애'를 탈출했다는 이야기가 전시되듯 실립니다.21) 그 이야기가 놓인 맥락과 증언자의 정치적 스탠스와 별개로, 그들이 이야기하는 고통의 경험만큼은 가슴을 파고드는 면이 있습니다. 확실히, 이 땅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아직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혐오세력들은 바로 이 부분, 동성애로 사는 삶이 '쉽지만은 않'고, 혹은 '고통스럽다'는 그 부분을 물고 늘어지며 자신의 주장을 펴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묻고 싶습니다. 동성애자인 당신은 다시 태어나도 동성애자로 살고 싶으신가요? 혹은, 당신이 (입양 등 어떤 경위로든)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이 동성애자였으면 좋겠습니까?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대답을 머뭇하거나 부정적으로 답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사실, 게이로 사는 건 아직은 힘들고, 누구에게 권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게이이기 때문에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게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아직은 그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긍정적으로 돌려놓기 위해 사회가,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이 되겠지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현재의 '인간'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지분을 주장해야 합니다. 사랑, 섹스, 문화, 뿐만 아니라 가족, 입양 등을 통한 사회구성원의 재생산, 노동, 교육, 건강, 복지, 존엄하게 살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 그 모두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빼앗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 당장 미비돼있다는 점을 혐오세력들이 집요히 파고든다면, 의연히 미비된 그것을 채워가면 될 일입니다. 나의 불행을 남이 말하게 만들지 말고, 부당한 내 불행을 뒷받침하는 조각난 사회의 잔해를 다시 쌓아올리고, 부당히 독점된 것들을 빼앗으면 될 일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한때는 '우수 민족', 한때는 '남성'에게만 부여되었던, 그 모든 인간답게 살 권리들을 말입니다.
 
 
 
 
 
1) 이 성과학은, "성과학연구협회"와 같은 노골적인 혐오적 색채가 아니고라도, 일정한 분과 체계로서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습니다. 김종흡, 『성과학의 이해』, 월드사이언스, 2009 참조.
2) 박지현, 「양차대전의 생명담론과 프랑스 우생학」, 『서양사론』 100, 2009, 66-70쪽.
3) 강태웅, 「우생학과 일본인의 표상 - 1920-40년대 일본 우생학의 전개와 특성」, 『일본학연구』 38, 2013, 32-33쪽.
4) 신영전, 「식민지 조선에서 우생운동의 전개와 성격 : 1930년대 『우생(優生)』을 중심으로」, 『의사학』 29, 2006 참조.
5) 박지현, 앞의 글, 74-75쪽 ; 김예림, 「전시기 오락정책과 '문화'로서의 우생학」, 『역사비평』 73, 2005, 337-344쪽.
6) Buck v. Bell 274 U.S. 200(1927), 박진빈, 「끝나지 않은 이야기 : 미국의 우생학 연구」, 『서양사론』 90, 2006, 188-189쪽에서 재인용.
7) 강태웅, 앞의 글, 30,37쪽.
8) 「국민우생결혼 상의소를 설치」, 『경향신문』 1947.6.7., 2면.
9) 「같은 길을 가는 부부 (6) 의학 이갑수 유성순 부부」, 『동아일보』 1957.4.8., 3면 ; 최신해, 「한국정신병문제 (하) 정신보건운동의 필요성」, 『동아일보』 1959.4.4., 4면.
10) 「인구증가를 완화」, 『동아일보』 1964.3.4., 2면.
11) 유영도, 「산아제한과 가족계획 (7)」, 『경향신문』 1961.10.13., 2면.
12) 김사달, 「산아제한에 대한 시비」, 『동아일보』 1959.12.6., 4면.
13) 「정신장애인 강제불임 수술」, 『한겨레』 1999.8.20., 1면 ; 「보건소직원 나와 손발묶고 불임수술」, 『동아일보』 1999.8.23., 23면 ; 「장애인 불임수술 관이 주도」, 『경향신문』 1999.8.23., 23면.
14) 정석태, 「결혼과 건강증명」, 『중앙』 2(5), 1934.5., 김연숙,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과 성과학 담론 - 임신·출산 논의를 중심으로」, 『성평등연구』 11, 2007, 54쪽에서 재인용.
15) 김태훈, 「남녀성징의 결정」, 『별건곤』 1930.3., 152-158쪽, 이명선, 「식민지 근대의 '성과학' 담론과 여성의 성」, 『여성건강』 2(2), 2001, 103쪽에서 재인용.
16) LS생, 「남성이 여성에게 정조를 강요하는 이유」, 『별건곤』 1929.2., 76쪽, 신필호, 「세계 진기 이혼 소송 - 처녀 비처녀의 감별 문제」, 『별건곤』 1929.2., 75쪽, 김연숙,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과 성과학 담론 - 임신·출산 논의를 중심으로」, 『성평등연구』 11, 2007, 54쪽에서 재인용.
17) 삼각정인, 「풍자해학, 신유행예상기 - 기괴천만·중성남녀의 떼」, 『별건곤』 11, 1928.2., 차민정, 「1920-30년대 '성과학' 담론과 '이성애 규범성'의 탄생」, 『역사와 문화』 22, 2011, 45쪽에서 재인용.
18) 「일색 짙은 '잊어버린 꿈'」, 『경향신문』 1968.2.24, 5면.
19) 1950-60년대 언론에 재현된 한국의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은 터울, 「50-60년대 언론에 소개된 동성애」」, 『친구사이 소식지』 57, 2015.3.31. ; 터울, 「50-60년대 언론에 소개된 트랜스젠더, 간성, 남장여자/여장남자」, 『친구사이 소식지』 59, 2015.5.29. 참조.
20) 박찬승, 『민족주의의 시대』, 경인문화사, 2007 ; 김용섭교수정년기념한국사학논총 간행위원회, 『한국 근현대의 민족문제와 신국가건설』, 지식산업사, 1997 참조.
21) 백상현, 『동성애 is』, 미래사, 2015 참조.
 
 
 
* '시간 사이의 터울'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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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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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2016-03-17 오전 02:58

오랜기간 소중한 칼럼 쓰느라 수고 많았어요.!!
멀지 않은 때 다른 글들을 만날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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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빈카 2016-03-17 오후 18:50

헐 마지막 글이라니 ㅠㅠ 형 고생 많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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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6-03-18 오전 02:35

고생했어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는데
신기해 글 쓰는 사람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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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 2021-05-06 오전 05:1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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