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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호][커버스토리 "친구사이X3670 GV" #1] <3670>, 타협이 아닌 선택지를 만들기
2025-10-01 오후 18:36:49
2031
기간 9월 

 

[커버스토리 "친구사이X3670 GV" #1]

<3670>, 타협이 아닌 선택지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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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씬에서 인기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젊음을 쏟아냈던 이 커뮤니티에 애증이 정말 크다. <3670>을 보고 밀려드는 그 수많은 추억들 때문에 영화 끝나고도 여흥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술이 너무 마시고 싶었다. 혼자서가 아니라 여럿이서.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다.

 

그리고 게이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에 충분히 공감하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다. 왜냐면 <3670>이 새터민, 게이가 살아가는 소수자 커뮤니티를 아주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음에도, 신기하리만큼 사람들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할 때가 있었는데, 회원들과 항상 나누던 얘기가 “좋은 성소수자가 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나를 소수자로 구분 짓게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라 사회의 차별과 혐오다. 차별과 혐오는 어떤 집단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납작하게 규정해버린다. 게이는 감염을 옮기는 더럽고 비위생적인 존재들이고, 트랜스젠더는 거짓말쟁이 사기꾼이고, 성소수자들의 인생은 불행하다. 그런데 그런 부당한 낙인에 항의하는 것은 하는 것이고, 그 납작한 규정에서 벗어나 내가 나를 탐색하고 만들어가는 일 역시 필요하다. 성소수자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향한 스테레오타입을 적당히 이용해 편리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 대화가 향하는 지점엔 그 누구도 아닌 나와 너, 우리에 대한 발견이 자리잡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새롭게 진입할 때는 이 특정한 커뮤니티에 적응하는 일에만 몰입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잘 맞든 안 맞든 이 커뮤니티가 주류적으로 가진 정서와 규범에 나를 끼워넣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서 진정한 나(란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지...)를 발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줏대를 잃고 방황하게 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삶에 대한 교차적인 이해가 중요하다. 단일한 기준에만 매몰되어 몰입하기보다는, 삶이 가진 다양한 맥락과 풍성한 사연들을 비교하고 교차하면서 이해할 때 오히려 나의 좌표가 더 명확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게이 커뮤니티와 새터민 커뮤니티를 교차하며 그려냈던 것이 탁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한 위치에만 머무르면 그 위치가 어떤 위치인조차 알 수 없다. 새터민 커뮤니티와의 교차 속에서 이 영화는 게이 커뮤니티를 일반적인 이해가 가능한 수준으로 이끌어낸다. 여태까지 적지 않은 한국 퀴어 영화들이 퀴어만의 특수성을 조명하기 위해 애썼고 나름의 성공들을 쟁취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해 재현에 있어 ‘타협’을 선택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았다. <3670>은 그 타협을 선택하지 않았고, 한국 역사가 가진 특이성을 게이 커뮤니티에 교차시키면서 사회적인 보편성을 획득했다. 재현에 있어서 타협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지점들을 대체로 타협하지 않았고, 한국적인 맥락들이 곳곳에 은연히 교차하는 와중에 사실적으로 재현된 게이 커뮤니티는 생각보다 너무나 한국적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드라마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든, 대학 입시든, 게이 97모임이든 “너를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팔리는” 상황에서 철준의 시선이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과 주위 관계망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영화 흐름에 큰 안정성을 준다. 자신이 받는 사랑을 끝없이 의심하고 사회를 향한 자기어필에도 우당탕탕 실패하는 영준의 불안정성에 대해 철준이 너무나 우직하고 순수하게 응대해주면서, <3670>은 리얼한 사회 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로도 흘러갈 수 있던 분기점을 넘어 청춘멜로를 좋아한다면 꼭 봐야 할 영화 TOP 10이 되어 마무리된다. 배우들의 연기와 배역에 대한 해석은 그 모든 영화의 장점을 지탱하고 꽃 피웠다.

 

영화 속에 수위 높은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쏟아지거나 캐릭터들이 그에 싸우는 그런 장면은 없지만, 이 영화의 개봉은 그 자체만으로 여러 방면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종로3가 영화관 어디에서도 상영되지 않는다는 소식은 너무 큰 아쉬움이 될 뻔했는데, 이종걸 사무국장님의 빠른 판단으로 친구사이가 종로3가 피카디리1958 CGV 상영관을 대관해 상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피카디리가 <3670> 상영을 결정하게 돼서 종로3가에서 <3670>을 볼 수 있게 됐다. 종로3가 방문이 어려운 사람들도 많겠지만, 혹시 가능하다면 피카디리에서 영화를 보고 여흥을 풀며 종로3가 거리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것(혹은 술을 마시는 것...)도 정말 좋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앞선 평가와 같은 맥락에서, 종로3가가 아닌 그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이 영화는 좋은 선택이 되어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길 기원한다.

 

PS. 차이를 존중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약속장소는 3번출구나 5번출구가 맞지 않는지.

PS2. 주인공이 끼순이 바텀이었다면, ‘젠더’라는 축도 등장하면서 더 복잡해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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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상근활동가 / 심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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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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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mawis 2025-10-03 오후 12:12

한 편의 영화가 개인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집단적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는 점이 참 감동적이다. 하지만 생각해 볼 점은 왜 소수자 공동체, 예를 들어 LGBT나 탈북민을 재현하는 작품들이 그 공동체 밖의 관객들에게도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킬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주변부로 밀려난 경험이 진솔하게 이야기될 때, 그것은 인정과 연결에 대한 보편적 갈망을 비춰 주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제작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진정성을 구현하는 일은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올바른 방향을 유지하게 해 주는 https://drift-boss.pro drift boss적 가치를 제공하며, 공감의 울타리를 공동체 밖으로까지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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