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0월 |
---|
[활동스케치 #3]
2022 제4회 제주퀴어문화축제
'모다들엉 퀴어의 섬, 모두를 환영해!' 참여 후기
“우리 한라산 정상 가서 백록담 보고 오자”
10년지기 애인과의 일상 대화에서 툭 튀어나온, 애인의 제안에 나는 별 생각없이 ‘어 그러자’ 하고 대답해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제주도 여정은 한라산만 생각하며 비행기 및 숙소 예약과 함께 시작됐는데, 친구사이에서 마.침. 제주퀴어문화축제 참여 회원을 모집한다는 거 아닌가. 그것도 우리가 가는 날짜와 딱! 겹치게! 이거야말로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는 기회다!
그렇게 우리는 부푼 기대를 안고 제주행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10월 22일 토요일로 예정된 퀴어문화축제 전날, 한라산 등반이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왕복12시간, 다리가 후들후들, 몸이 성치 않았다. 전혀 예상 못한 시츄에이션에 당황. 다음날도 온몸이 쑤시고 마음도 천근만근. 과연, 퀴어퍼레이드에서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
그렇게 찌뿌둥한 기분으로 맞이한 당일, 그러나 곧 기쁨과 환희가 찾아왔다. 운 좋게도 축제 장소인 신산공원이 예약한 호텔에서 엄청 가까운(도보 10분!) 곳에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버스 타고 갔다가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담한 공원 한켠에 마련된 광장 같은 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처음 참여하는 제주퀴어문화축제는 그렇게, 소박함과 아늑함으로 다가왔다.
조직위원회, 운영부스 대표들의 인사와 축하공연, 장퀴자랑(장기+퀴어자랑?)까지 재밌게 구경하고, 나눠받은 무지개떡을 먹으며 분필 퍼포먼스도 참여했다. 삼삼오오 차려진 부스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따스한 무언가가 마음에 일렁였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고, 이곳 제주에도 다양한 퀴어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뭔가 잔잔한 물결을 흔드는 돌멩이처럼 울림으로 느껴진 것이다. 2013년, 친구사이에 처음 나와 참여했던 서울퀴어문화축제도 문득 생각났다. 모든 것이 새롭고 살아 숨 쉬던 그 순간들.
이어진 행진도 그 울림이 이어져 욱신거리는 다리를 이끌면서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없으면 섭섭할 혐오 세력들의 반대 외침이 여기 제주에도 여전했지만, ‘우리가 여기 있다, 퀴어가 여기 있다’ 등의 구호와 함께 정해진 길을 따라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우리는 그렇게, 미모와 끼를 뿜어냈다. 오가는 시민들 대다수는 저게 무슨 광경인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는데, 일부 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응원과 공감을 한껏 보내주기도 했다.
무사히 행진까지 마치고 다시 광장으로 오면서도 계속 마음에 스며든 감정은 ‘평화로움’이었다. 일 년에 하루, 축제라는 형식으로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함께 살자는 바람을 외치며 모인 사람들이, 그들이 만들어낸 풍경이 너무나 평화롭게 느껴졌고, 그러한 울림이 쌓여 나중에는 울컥거림으로 다가왔다. 부디 이번 축제가 하루로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도 우리 모두 퀴어로 살아가는 소소한 기쁨이 계속되기를 두손 모아 바라본다.
친구사이 회원 / 크리스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