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보이스의 시간 - 십 년의 사랑
지보이스는 작년에도 그랬듯, 올해도 열심히 정기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하고, 일요일을 거의 하루 종일 할애해서 열심히 연습에 박차를 가합니다. 조금씩 공연날짜가 다가오니 이제 정말 공연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해요. 때로는 그것이 기분좋은 설레임으로 다가 오기도 하고요.
하지만 연습 시간은 점점 늘어나 피로하고, 내 노래 실력은 별로 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기가 어렵고, 무리하고 있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단원들에게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순간 싸워야 하는 것 일지도 몰라요. 올해도 공연을 앞두고 몇 명의 단원이 연습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단원들에게 지보이스의 공연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끔 연습을 하다 너무 지칠 때면 내가 무얼 위해 이걸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연을 한다는 건, 게이들이 모여 노래를 하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일이 전부가 아닙니다. 처음 지보이스가 단순히 취미 모임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이제는 그것에만 머무를 수는 없어요. 아마추어의 서툰 실력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무대에 오르는 순간 수백명의 사람에게 '게이인' 내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등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은 많습니다.
어느새 십 년이 지났고, 어떤 문제들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합니다. 지보이스 단원들은 이제 간혹, 아직 커밍아웃 하지 않은 친구나 가족을 공연에 부릅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친구를 데려와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 공연을 보기도 해요. 그래서 지보이스가 무대에 올라가 얼굴을 보여주는 것,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단순히 '보여주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모두에게 각자의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이죠.

지보이스는 지난 9월 7일 광통교 위에서 열린 '당연한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축하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의 가장 중요한 순간, 드디어 지보이스는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이제껏 경험했던 어떤 무대보다 카메라가 많았어요. 결혼 서약을 하고, 대학생 지지단이 성혼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낭독을 마치면 지보이스가 축가를 부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그 순간이죠. 그런데 그 순간, 무대 아래로 부터 검고 붉은 누군가가 뛰어오릅니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단원들이 입고 있던 하얗고 깨끗한 셔츠는 이제 더이상 흰색이 아니었어요.
멀리서는 그저 무대 위의 해프닝이고, 한 줄짜리 뉴스에 불과하겠지만, 혐오를 눈 앞에서 목격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물을 뒤집어 쓰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에서 멈추지 않아요. 내 몸이 더러워지고, 악취가 나고. 우리를 향한 적의가 얼마나 타협불가능 한 것인지 그 끝이 보이지 않음을 확인했고, 추상적으로 존재하던 그들의 혐오는 마침내 그 순간, 내 몸에 직접 닿았으니까요. 이 좋은 날에 왜? 하필이면 우리에게 왜? 라는 질문이 자꾸만 맴돌고, 머리는 멍합니다. 노래를 마친 후에 무대에서 내려오니 급기야는 눈물이 흐르고 맙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에 가거나 출근을 합니다. 점심을 먹고, 수다도 떨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거나 친구들을 만나 술을 한 잔 하기도 합니다. 술에 취하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욕도 아주 잘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은 그날, 지보이스에서 노래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어디까지 단련시켜야 하는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축가를 부르던 그 때, 한 단원이 부들부들 떨며 노래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얼굴은 웃고 있었죠. 그 단원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마음에 생채기가 남았을까요. 아니면 조금은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을까요. 어쩌면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작아지고 희석될 기억이겠죠. 하지만 이 혐오의 경험을 통해, 지보이스에서 노래하고 싶은 욕구가 어디에서 오는지 힌트를 얻었을 누군가도 있을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지보이스는 더이상 정기공연 무대에 오르는 것에서 커밍아웃의 불안을 크게 느끼지는 않습니다. 공연 홍보 포스터에 얼굴을 싣는 것에도 스무명이 넘는 단원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어요. 촬영 일정을 맞추지 못해 부득이 그 모두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많은 시간을 지나 오면서 어떤 문제는 조금씩 그 돌파구가 보이는 반면, 새로운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보이스는 지난 십 년간, 서툴지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계속해서 지치고 힘들 것이고, 내가 이걸 대체 왜 하는가.하는 질문도 계속해서 반복될 것입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도 그렇듯, 모두가 다를테죠. 노래하다가 어느 순간에, 또 다른 혐오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결국 혐오에 도달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느껴보았기 때문에 진짜 진실을 알죠.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보이스가 지나간 십 년의 경험을 통해 조금씩 변화해왔듯, 앞으로도 지보이스는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를 감지해 나갈 것입니다.
* 아니 그런데, 지난 십 년간의 변화가 대체 뭐냐고요? 글쎄요. 이번 지보이스 창단 10주년 기념공연 <열,애>에 차곡차곡 정리 되어있을 거라는 소문이!! 예매를 서두르십셔.
사진 : 박하미현(2010년 정기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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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의 사진, 혹시 대표님 결혼식 때 찍으신 건가요?
(그게 아니더리도) 꼭 잡은 손이 너무나 많은 걸 말해주네요...
게다가 글은 더더욱 가슴을 때리구요.
전문 합창단도 아닌데 시간도 힘도 많이 들고,
개별 단원의 경우에는 심리적 부담감도 없지 않아서
간간이 볼멘 소리도 나고 눈물 바람도 부는 지보이스...
하지만 성소수자로서 나를 긍정하고 드러내고 표현하는 데서 시작해
이제는 우리로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세상 속에 서고
다른 많은 이웃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힘까지 북돋워주게 됐죠.
노래로 자기 소리를 내고,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살아 숨쉰다는 걸 알리면서요.
여러분도, 저도 앞으로 더욱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지길 빌어요.
그리고 모두 사랑합니다~! ㅠㅁㅠ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