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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칼럼] 호모과장(진) EP3 : 폭탄조끼
2019-09-30 오후 15: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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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 

 

호모과장(진) EP3 :

폭탄조끼

 

 

‘부장님, 동기들끼리 장난치는 사진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거래처에 회의 장소 약도를 보내준다는 것이, 실수로 이쪽 행사에서 사용될 ‘당신은 게이인가요?’라는 질문이 담긴 캡처 화면을 보내버렸다. 은밀한 사생활이 전송된 지, 5분. 이 사태를 수습할 골든타임에 본능적으로 떠오른 보호색을 찾아 나를 가렸다. 떨리는 마음에 다시 한번 읽어볼 틈도 없이 전송을 눌렀다. 그리고 화면 너머의 그의 반응을 숨죽이며 기다렸다. 그사이 혹시 모를 해결책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리 해도 보낸 내용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폭탄을 안은 셈이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첫 번째 폭탄은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만들어졌다. 친구에게 자료CD를 준다는 것이 그만, 야한 동영상이 담긴 CD를 준 것이었다. 야오녀인 사촌 누나 짓이라 둘러대었지만, 1주의 빵심부름을 해주다 다툼을 끝으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 폭탄은 수능 4일 전에 터졌다. 성적에서 순위를 다투던 악의의 경쟁상대였던 한 녀석이 수능 4일 전에 그 CD에 대해 캐물었고 그날 초록색 물이 내 몸에서 나오는 것을 보며 응급실에 실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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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 훌쩍 지난 사이에 많이 변했다.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한 지 오 년이 채 되지 않았던 그때는 정작 커밍아웃한 그는 TV에서 사라지고 우리는 BL 속에만 존재했다. 지금은 다행히 사라진 홍 씨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여 분주히 활동하고 있고, 그분의 후예는 유튜브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게이/퀴어/동성애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청문회 단골 ‘십자가 밟기’가 되는 등 심각한 혐오 속에서 살고 있다. 

 

나도 역시 변했다. 빵셔틀을 끝낼 결심을 한 그 일주일 동안, 나는 부모님이 받을 상처 등 정작 중요한 나는 챙기지 못한 채 다른 것만 고민하다 일을 저질렀다면, 지금은 제일 중요한 건, ‘나’ 하나뿐이며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 몇 분 만에 복귀했다.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건 없지만, 마음 졸일 일도 없게 된 것이다.

 

아직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첫 번째 폭발 당시,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일상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착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폭탄을 마주한 지금, 이 폭탄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생각 중이다. 뾰족한 수는 없겠지만, 나의 업무평가/근태 자료를 남긴다든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적금을 늘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방어태세를 쌓는 중이다. 물론 이런 폭탄이 터지지 않게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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