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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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문학상상, 문학 한 숟갈
: 이 사랑은 비참한 사랑일까 풍요로운 사랑일까
1. 「단순한 열정」
때는 바야흐로 냉전시대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프랑스 주재 동구권 외교관 남성 A(유부남)를 사랑한다. ‘나’는 A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나’의 일상은 A로 가득 차있다. 매일 A를 생각하고, 어디선가 A의 국가 얘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하고, A와 만날 때 색다른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평소 새로운 옷, 액세서리를 시도해 본다. A로부터 만날 수 있다는 연락이 오는 날에는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자신의 집에서 A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그렇게 ‘나’는 평소 A에게 깊게 빠져 오매불망 A를 만나는 날을 기다린다.
‘나’는 A와 사랑을 나눌 때면 A가 자기에게 남긴 정액을 하루라도 더 품고 싶어 다음 날에 샤워를 한다(p.17). A가 유부남이고 자주 볼 수 없는 사이지만 ‘나’는 괜찮다. 비록 A로부터 꽃이나 책을 선물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쓰였지만, ‘그 사람은 욕망이라는 값진 선물을 하고 있잖아’라고 생각하면 그런 마음조차도 떨쳐진다(p.29). A가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큰 상실감에 빠지다가 에이즈 검사를 해보기로 결심한다. ‘그 사람이 내게 그거라도 남겨놓았는지 모르잖아.’라고 생각하며(p.46).
2. 비참한 사랑 vs 풍요로운 사랑
위 내용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 「단순한 열정」의 스토리 일부이다. 아니 에르노는 냉전시대에 동구권 출신이자 유부남인 A를 끔찍이 사랑했다. 이어질 수 없는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상당히 맹목적이었던 나머지 그녀의 열정은 A만을 생각하는 ‘단순한’ 사랑의 모습을 보였다. A가 본국으로 돌아가고 그녀는 큰 상실감을 느끼다가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회복한다.
나는 이 소설이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망부석 설화를 뺨치는 느낌이었다. 오매불망 상대방을 기다리는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나 혼자만 하는 사랑, 성적인 욕구는 간헐적으로 충족될 수 있어도 로맨스적 욕구는 충족되지 못하는 사랑, 내가 상대방에게 더 맞추어 줘야 하는 사랑······. 책을 읽으며 아니 에르노의 감정이 감정적으로 구구절절 와닿았지만 이성적으로는 아니 에르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사랑을 해야 하는 걸까?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듯한 사랑,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사랑을 해야 하는 걸까······.
문학상상 모임에서 나의 견해를 말했을 때, 몇몇 분들께서는 부분적으로 공감하시며 동시에 이 조차도 풍요로운 사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셔서 나는 무척 놀랐다. 모임원분들은 비록 사랑이 일방적이어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즐거울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충만해진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물질로도 대체할 수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내가 해야겠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감정이기에 그 자체로 특별하다’, ‘나도 이런 비슷한 사랑을 해본 적 있다’ 등 다양한 말씀을 나누어주셨다. 나는 모임원분들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만 언뜻 내면화하기는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3. 현대 사회의 사랑
나는 왜 「단순한 열정」의 사랑이 비참하게만 느껴지는 걸까? 모임을 마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나의 청소년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나의 일상은 깨어지고 무너졌다. 나의 루틴 – 공부, 학원, 숙제, 게임 – 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친구로 가득 찼다. 심지어 친구는 사랑으로 이어질 수도 없는 이성애자였다. 일상이 친구로 채워질수록 내 마음은 폐허가 되었고, 결국 나는 친구를 멀리하는 등 적극적으로 감정을 죽이는 행동을 했다. 그 감정은 이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적으로나 학교 내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이었다. 그렇게 나는 청소년 시기에 감정을 죽이는 방식을 연습했다. 때문에 나는 평소 짝사랑을 비참한 사랑이라고만 생각한 것일까? (이 또한 일종의 소수자 스트레스였던 것일까?)
또한,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가 사랑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 「사랑은 왜 아픈가」가 떠올랐다. (비록 그 책이 너무 어려워서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으나) 에바 일루즈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과거의 가치관(기독교, 유교)이 해체되고 개인이 강조되면서 낭만적 사랑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고 한다. 과거 부모님 세대나 조부모님 세대는 낭만적 사랑보다는 과거의 가치관에 따라 가정을 꾸리고 관습적인 성규범에 입각해 살아갔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의 가치관이 해체되고 있고 개인들은 연애라는 행동 속에서 낭만적 사랑, 자존감, 가치를 서로 인정받고자 한다고 한다. 에바 일루즈의 주장처럼, 나 또한 현대인으로서 상호 호혜적 사랑을 하고 싶지, 나 혼자 퍼다 줘야 하는 일방적인 사랑은 비참하다고 사회화된 것은 아닐까? 보수적인 가치관에 입각해 누군가를 만나면 운명이다, 팔자다 생각하며 쭉 잘 지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더 잘 맞는 누군가를 찾아 나서면 된다고 사회화되었기에 일방적인 사랑을 더 비참하게 느끼는 걸까? 나도 무의식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연인은 기간제 베프로서 늘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재로 간주하고 있는 걸까?
나는 아직도 「단순한 열정」 속 사랑이 다소 비참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내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인 걸까? 혹은 내가 현대 사회 속 비인간적인 시류에 너무 잘 물든 걸까? 이 글을 쓰면서 「단순한 열정」 속 주인공에 감정이입하고 비록 일방적인 사랑이어도 풍요롭다고 느꼈던 모임원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들이야말로 용기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내가 이래서 오랜 기간 동안 솔로인 걸까? 사랑은 늘 어렵게만 느껴진다. 삭발하고 절에 가고 싶다. 비참한 듯 풍요로운 듯 아니 에르노의 이어질 수 없었던 구구절절한 사랑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책 「단순한 열정」을 추천한다.
* 출처 :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2022년 10월 2판 12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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