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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가족의 탄생 #3]

별처럼 반짝이는 인연을 맺다 – 게이 부부 '플플달 제이&크리스' 이야기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족이 될 수 있어.’

2006년 5월 개봉한 영화 <가족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로부터 10년 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가족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2006년 가족구성권연구모임부터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결혼식에 이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의 출범, 그리고 최근 동성혼 불복 소송에 따른 심리까지 험난하지만 다부지게 계속돼 왔죠.

 

그럼에도 ‘종북게이’, ‘골수 페미니스트’ 등의 용어가 난무하며 혐오가 판치는 게 현실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요원하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은 좌초됐으며, 한 지자체의 성평등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은 삭제됐습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가시화를 통한 존재 드러내기와 당연한 권리 주장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에 친구사이에서는 성소수자 가족공동체를 위한 제도적, 사회적 변화요구에 앞장서는 가구넷과 함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당사자 연재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 세번째로, 게이로서 얼마 전 결혼식을 올리고 어엿한 한쌍이 된 '플플달 제이&크리스'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혼인만큼 뜻깊은 관계는 없다. 혼인은 사랑, 충실, 헌신, 희생과 가족이라는 최고의 이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을 통해 결합함으로써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된다. 상고인들의 일부가 보여주듯, 결혼은 심지어 죽음을 이겨내는 사랑을 담고 있다. 이들 남성과 여성이 결혼의 이상을 무시한다는 주장은 오해에 불과하다. 상고인들은 자신들이 결혼의 이상을 존중하고, 그토록 결혼의 이상을 깊이 존중하기에 결혼의 이상 속에서 충족을 구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로부터 배제된 채 외로운 삶으로 추방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다.

  연방제6순회항소법원의 판결을 파기한다.

이와 같이 판결한다.

 

- 2015년 6월, 미국 내 동성결혼 금지법률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위헌판결문 중 발췌(게이법조회 번역)

 

 

1년여 전의 ‘사건’을 기억한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서울 한복판인 시청광장에서 퀴어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을 즈음이었다. 청교도 정신에 입각하여 세워진 미국이라는 나라의 전 지역에서 동성결혼을 금지할 수 없다는 판결에 수많은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들이 환호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대한민국은 무엇이 바뀌었나?

 

2013년 공개 결혼식 후 혼인신고서 불수리 통보에 대한 불복 소송을 제기한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결국 지난 5월 법원으로부터 각하 판결을 받았다. 6월, 퀴어의 달을 뜨겁게 달군 퀴어퍼레이드에도 어김없이 혐오세력은 전날까지 ‘대한민국 살리기 예수 축제’를 펼쳤다. 심지어 4월에 있었던 총선에서는 기독자유당이 ‘동성애 반대’ 등의 공약을 내걸어 노골적으로 차별을 선동했는데, 2.64%를 득표해 원내진입은 실패하였으나 거액의 정당보조금을 지급받게 됐다.

 

이렇게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이 여전히 들끓고 있는 마당에서, 결혼을 통해 동성 부부의 존재를 알린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제이 송, 이하 ‘플플달 제이’)와 크리스 슈나이더(이하 ‘크리스’) 커플의 소식은 가뭄에 단비 같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 6월, 크리스의 조국 스위스에서 동성 파트너십 등록을 마친 후 7월 초 한국에서도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 복작한 서울이지만 두 사람만의 소박한 보금자리에서 우리는, 신혼을 만끽하고 있는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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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초, 서울에서 결혼을 한 두 사람의 모습 (출처: 플플달 제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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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이라는 또 하나의 결실을 맺게 된 두 사람. 과연 실감이 날까?

 

 

뭔가 달라졌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하지만 미래의 어느 순간에서는 우리가 결혼했다는 것을 떠올리며 분명히 변화가 있고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겠죠. 예를 들어 직장에서 일할 때 문서에 ‘기혼’이라고 기입한다거나, 우리가 장기간에 걸쳐 미래 계획을 세울 때 결혼한 관계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또 택시 운전기사나 다른 한국 사람들이 수시로 “결혼했어요?”라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네.”라는 대답과 함께 어떤 결혼을 했는지 말할 수 있게 된 점이 좋아요. | 크리스

 

 

저도 크리스와 마찬가지로 일상이 바뀐 건 아닌데,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뜻 깊죠. 그만큼 저희가 확신이 있고, 결혼했다는 게 약간은 자랑스러운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우리의 관계를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법적인 것도 물론 도움이 많이 돼죠. 스위스에서는 법적으로 동성 파트너 등록을 했잖아요. 그래서 이제 마일리지를 서로 공유할 수 있게 됐어요. [웃음] | 플플달 제이

 

 

바로 대한항공에 전화해 결혼했다고 알리며 항공사 마일리지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니, 현실적으로 막 부러움이 밀려오면서 피부로 혜택이 느껴진다. 서로가 함께 결합(Union)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제도권과 서비스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이 사회에 ‘결혼’이라는 개념이 기본적인 권리 부여의 강력한 통로임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한국 사회, 특히 예전 세대 사람들에게는 ‘결혼’이라는 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단계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요. 결혼을 긍정적이고 따뜻한 관계를 맺는 핵심적인 절차라 생각해서 그런지, 저희가 결혼한 것을 두고 동성 부부임에도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들기도 했어요. | 크리스

 

 

이처럼 각자 별개인 하나의 존재에서 두 사람으로서 인연을 맺기까지, 우여곡절이 과연 없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되짚어보기로 한다.

 

 

2005년 말쯤에 온라인을 통해 만났어요. 크리스는 뉴질랜드에 교환학생으로, 저는 어렸을 때 이민 간 뉴질랜드에서 다른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스마트폰이 있기 전이라 데이팅 싸이트에서 메시지 주고받으며 만났죠. 2015년에 발매한 첫 앨범 이름이 <보랍 앤 테소로>인데, 실은 당시 제 ID가 ‘보랍’이었고 크리스 ID가 ‘테소로’였어요. 저는 ‘보랍’이라는 노래에서 따온 건데, 크리스는 스위스에 있는 산의 이름을 따서 지은 줄 알고 먼저 연락을 했거든요. ‘테소로’는 이탈리아어로 달링, 보물이라는 뜻이라는데 처음 들었고요. [웃음] | 플플달 제이

 

 

영화 <접속>을 떠올리게 하는 이 로맨틱한 만남으로 두 사람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 그들에게 다른 인종, 다른 나라 출신이나 언어 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플플달 제이는 이민자로, 크리스는 외국인으로 살면서 소수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연결해주었고, 그로 인해 더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됐다며 추억을 고백한다.
 

 

솔직히 그 땐 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또 주변 사람들은 거의 여행 같은 것도 안 하고 일상에 머물러 있었거든요. 여기 오면 뭔가 새로운 세상이고 다를 줄 알았는데. [웃음] 그래서 우리는 같이 여행도 많이 하고 취미생활도 즐겼죠. | 크리스

 

 

지역 내에 이민자의 자녀로서 겪은 특별한 경험을 맘 놓고 꺼내놓지 못해서 답답한 게 있었거든요. 사실 한 사람이 그 나라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걸 그 나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보면 저희끼리만 통하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한 군데에서 계속 자란 사람들은 외국 문물을 덜 접해서 그런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느낌이 있어요. 반면에 저랑 크리스는 항상 뭔가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차로 여기저기 다녔죠. | 플플달 제이

 

 

그 후 잠시 헤어지기도 하고, 방콕이나 시드니 같은 다른 도시에서 다시 만나 관계를 이어온 두 사람. 결국엔 지루한 일상과 우중충한 날씨에 항상 우울한 기운이 돌던 곳에서, 일찍 결혼해 이성애 부부로서의 삶이 전형화 된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도시에서, 사이다 같은 존재로 서로에게 다가오며 새로움을 안겨준 것이야말로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비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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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두 사람의 데이트하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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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2012년 말, 한국에 들어와 살게 된 두 사람의 색다른 경험은 이어졌다. 어렸을 적 이민을 가 본격적인 한국생활은 처음이었던 플플달 제이, 그리고 대사관에서 일하며 한국 문화를 겪은 크리스에게는 지난 4년 간의 시간도 길지만 쏜살같이 흘러갔다고 하는데. 그들이 몸소 체험한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4년 동안 많은 게 바뀐 것 같아요. 사람이나 동네도 많이 바뀌고. 근데 저도 크리스랑 비슷한 게, 좀 더 작은 도시로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에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실 올 생각은 크게 없었는데 크리스 따라서 온 거라 ‘니가 벌린 일이니 니가 책임져’라고 했죠. [웃음] | 플플달 제이

 

 

여기에서의 생활에 만족해요.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살다가 방콕이나 서울 같은 큰 도시에 오니까 재밌고요. 대신 서울에서 일하며 지내는 건 아주 힘들어요. [웃음] 미팅 하나 가는데만 해도 1시간 이상 걸리고, 택시든 지하철이든 사람도 너무 많구요. 물론 저는 한국 사람들을 너무 사랑하지만요. | 크리스

 

 

근대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을 거쳐 급격하게 발전을 이룬 우리나라 역사의 어두운 점이 아닌지 생각한다는 크리스의 의견에 일견 동의하면서, 여유가 부족한 채 급급하게 살아가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한편으론 성소수자이면서 한편으로는 외국인으로서의 입장에서도 한국을 바라보는 게 자연스러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조금은 힘겨웠던 초반 적응을 이겨낸 후, 본인이 원하는 분야인 음악 쪽으로 자리를 잡으며 음반을 내고 어엿한 가수가 된 플플달 제이는 올해 초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상’까지 수상했다. 당시 그의 수상소감이 큰 화제였는데,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 후 연인 크리스에게 감사를 전하며 “이 기회에 어린 퀴어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여러분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이상한 사람도 아니다. 여러분은 아름답다.”는 소감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 감동적인 순간에 자신을 드러낸 그 마음이 궁금했다.

 

 

 

2016년,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수상 후 소감을 말하는 플플달 제이의 모습

 

 

 

거기서 상을 받을지 얘기를 안 해주기 때문에 실은 그날 낮까지 소감 준비를 안 했거든요. [웃음] 생각해보니까 혹시나 수상하게 된다면 그래도 말하고 싶은 건 해야겠다 싶어서 준비해갔어요. 앨범이나 곡들이 제 개인적인 얘기고, 제 성 정체성에 대한 얘기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게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서… 그걸 그냥 낭비하기가 너무 아까웠어요.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산다는 건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활동가’가 되는 것 같아요. | 플플달 제이

 

 

생각해보면 존재만으로도 차별과 혐오의 표적이 되는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행동으로 옮긴 그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혼자가 아닌 두 사람으로서의 관계를 오픈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상황을 감안하면, 직장과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커밍아웃하며 지내는 크리스도 연인의 수상소감이 엄청 자랑스러웠을 것 같다.

 

 

근데 그게 용기라기보다, 그냥 저희가 싫으면 그 사람들은 안 보면 된다는 생각이 좀 있죠. 저희가 되게 운이 좋은 자리에 있어서 그런 거에 대해 덜 두려워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크리스도 직장에서 법적으로 보호를 해주고, 저도 직장을 다니는 게 아니라 음악활동을 하기 때문에 선택할 수가 있거든요. | 플플달 제이

 

 

예전에 홍석천 씨가 공인으로서 커밍아웃 후 오랜 기간 힘든 경험을 한 걸 떠올리면, 한국 사회도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해본다. 실제로 2014년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동성 커플에게 결혼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35%가 찬성을 나타냈는데, 이는 2001년의 17%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또한 20대에서는 66%, 30대는 50%가 결혼 평등을 지지한 것을 보면 미래의 변화가 감지되기도 한다. 2013년 Pew Research Center에서 실시한 각국의 동성애 인식 조사에서, "사회가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큰 증가를 보인 나라가 한국(2007년 18%→2013년 39%, +21%p)이었다는 점 또한 고무적이다.

 

두 사람의 가족 또한 두 팔 벌려 부부의 탄생을 환영했다고 한다. 예전부터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한 크리스는 스위스에서 가족들과 친척들, 친구들의 지지 속에 따뜻한 결혼식을 올렸고, 한국에서도 플플달 제이의 어머니와 사촌들, 친구들의 환호가 있었다. 15살 넘어 독립을 하게 된 시기 즈음에 아들의 고백을 듣게 된 플플달 제이 어머니의 반응은 “응 그래, 니 인생 니가 사는 거지 뭐.”였다고. 크리스의 가족들 반응도 그랬을까?
 

 

18살 즈음에 처음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는데, 처음엔 별로 좋아하시지 않았어요. 하지만 별 수 없잖아요. 아들이 그렇다는데. [웃음] 별로 신경 쓰지 않았죠. 그렇게 그냥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자연스레 받아들이시더라구요. 아마 처음엔 부정적으로 보셨다가, 나중 되니 긍정적으로 바뀌신 것 같아요. 그때는 인터넷도 없어서 그냥 매주 클럽이나 모임 나가서 친구들 사귀고 그랬죠. | 크리스

 

 

저는 만약 부모님이 부정적으로 보신다면 그냥 제가 알아서 살 각오를 해서 그런지 막 두렵게 커밍아웃을 하진 않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사는 게 적응이 됐거든요. 아빠랑도 9살 때부터 같이 안 살고, 엄마랑도 16살 때부터인가 떨어져 살아서요. 좋게 반응하셔서 다행이죠. | 플플달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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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는 별에서 운명처럼 만나 사랑을 꽃피우게 된 두 사람이지만, 먼저 스스로 성 정체성/성적 지향을 자각하고 게이로서의 정체화를 겪어나가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혼란스럽고 견디기 힘든 경험일지라도, 자신에 대한 긍정과 존재에 대한 확신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발걸음이 켜켜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으리라.

 

 

14살 때쯤 제가 제 자신에게 커밍아웃하기 전의 어릴 적 감정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반 안에 있는 아이들 중 제가 좋아하는 친구는 항상 남자였거든요. 그 뒤 제 성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게 12살, 13살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고민을 해보다가 어느 날 그냥 ‘나는 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니까 그 동안 고민했던 것들이 바로 이해가 되더라구요. 몇 년 후에는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다 얘기하고,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요. | 플플달 제이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여자친구들이 좀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여자에 대한 흥미가 싹 사라진 걸 알게 된 게, 이탈리아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저를 좋아하던 여자애보다 어떤 멋진 남학생에게 더 끌리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게이가 뭔지 잘 모르던 때라, 그냥 다른 감정이라고만 느끼다가 게이 모임 안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닫게 됐죠. 결국 고등학교 졸업식 때 반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했는데 다들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어요. [웃음] 그때 가장 두려웠던 건 ‘게이가 아닌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어쩌지?’였던 것 같아요. | 크리스

 

 

본인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고민만 할 때보다,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당당히 존재를 알리며 나아갔을 때 어려운 마음이 녹아내렸다는 말에서 커밍아웃의 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문화 차이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한국에 있을 땐 웬만하면 애정표현을 잘 안 하거든요. 하루는 이태원 거리에서 손을 잡고 갔는데 어떤 여자 두 분이 저희를 쓱 훑어보며 가는 거예요. [웃음] 그런 게 조금 불편하게 만드니까 좋진 않죠. 뉴질랜드나 호주에 있을 땐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아무 생각없이 저희 관계를 바로 얘기했고, 스위스에서는 결혼 후에 길거리에서 사진촬영을 하러 돌아다녔을 땐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얘기도 해줬어요. 그런 자연스러운 일상을 여기에서는 얘기하기 전에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죠. | 플플달 제이

 

 

두 사람이 함께 결혼예복으로 한복을 맞추러 갔을 때도 그냥 친구 사이라고 말했다는데, 그 심정이 어땠을까. 다른 사람들이야 편하게 그냥 친구라고 말하고 맞추면 되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 있지만, 동성 부부의 입장에서는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님이 자명하다. 살면서 우리는 자주 관계를 속여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호텔에서는 혹시라도 들킬까봐 더블침대가 아닌 트윈으로 예약하는 경우도 있고, 함께 집을 구할 때도 부동산에서 둘 간의 관계를 물어보면 친구 아니면 형제가 나오기 일쑤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애초부터 결혼을 꿈꿔온 걸까. 누군가는 말한다. 결혼을 꼭 해야 하느냐고. 결혼이라는 게 이성애 가족 중심의 결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면, 꼭 그런 예식을 따라서 할 필요가 있냐고 말이다. 특히나 보수 기독교의 시선이 따가운 우리나라에서는 관계를 드러낼 필요 없이 잘 살 수도 있는데, 왜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끌어안아서 조용히 지내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느냐는 비판도 더러 있다. 또한 결혼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거부가 어쩌면 성소수자/비성소수자 간의 선 긋기를 부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 또한 모두가 선택하여 누릴 수 있는 권리의 하나라고 본다면, 마땅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현재를 바꾸고 실질적인 부부 관계의 존재를 드러내는 유용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두 부부도 스위스에서 2005년도부터 실시 중인 파트너십 제도를 활용해 등록을 하고 왔지만, 동성 부부만이 파트너 신고를 할 수 있는 점은 또 다른 논쟁을 야기하기 충분하다. 그것은 곧 결혼 제도에 비판적인 이성애자 부부나, 동성이 아닌 다른 성소수자 부부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므로 또 하나의 차별을 낳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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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결혼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법적인 결혼제도든, 파트너십이든 간에 본인들이 원하는 선택을 하고 함께 한 약속을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스위스에서 향후 동성결혼이 법제화되면 저희는 법적 결혼을 할 생각인데, 결혼이라는 건 서로의 관계를 확신하고 사람들에게 그걸 당당히 보여준다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주위 사람들의 축복도 받을 수 있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시선도 좋아진다는 말이잖아요. | 플플달 제이

 

 

만약에 결혼을 했는데도 서류(혼인증명서) 한 장이 없으면 우리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전쟁이 나서 스위스 사람들을 대피시킨다고 한다면, 두 사람이 파트너십 같은 제도를 통해 배우자가 스위스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파트너 신고를 한 거예요. | 크리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와 동반자와의 관계를 드러내야 하는 사회에서, 동성 부부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측면에서도 결혼은 성소수자 인권운동으로서 가치가 있다. 한 인터뷰에서 “크리스랑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게이로 살아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플플달 제이에게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연인과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최고의 인권운동인 것이다. 그의 배우자인 크리스의 의도 또한 그것과 맞닿아 있었다.

 

 

성소수자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사회가 빨리 바뀌어서 이런 모습이 되게 자유롭고 편하면 좋은데 아직 그게 아닌데다가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지잖아요. 가족이나 직장, 친구 간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요. 게다가 언론에서 성소수자와 관련된 소식은 이런 결혼이나 인권 관련 내용에는 관심 없고 약간 희화화시켜 얘기한다거나 자극적으로 접근하기도 하죠. | 크리스

 

 

언론에서 다루는 게이들은 되게 특별한 캐릭터이거나 일상적인 모습이 아니잖아요. 게이에 대해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저 이태원 클럽 같은 데 가서 노는 것만 떠올리는 것 같구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결혼하기 전에 저희가 만난 지 10년 됐다고 했는데, “게이 커플 치고는 되게 오래 만나셨네요.”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이쪽은 짧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는 그런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게이 분들도 저희를 보면서 이런 가능성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 주변 커플 중에 저희가 제일 오래된 커플이거든요. [웃음] | 플플달 제이

 

 

더 나아가 두 사람의 모습이 가장 이상적이거나 이성 커플의 그것대로 사는 게 아닌, 그저 서로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으며 다양한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두 부부로 인해 게이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관계이든 정답은 없듯이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자체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다양성’이야말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화두일 것이다.

 

 

퀴어퍼레이드에서의 노출도 누구는 음란하다고 하는데, 음란한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다양성을 존중하면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까요. | 플플달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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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초, 스위스에서 파트너십 등록을 한 두 사람의 모습 (출처: 플플달 제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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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결혼 준비부터 결혼 후 아직 남은 감사 인사까지, 쏜살같이 지나간 결혼식의 풍경을 주인공들로부터 잠시 들어보자.

 

 

스위스에서 결혼 마치고 좀 있다가 한국에 결혼 2주 전에 도착해서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스위스에서 했을 때는 감정이 북받치기도 했는데, 두 번째라 그런지 한국에서는 그냥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웨딩홀이 아니어서 좋다는 의견도 있었고, 사진도 별로 안 찍어서 짧게 진행했죠. | 플플달 제이

 

 

결혼식은 짧았는데 더 감동적이었다고 하더라구요. 몇몇 분들은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구요. 저희는 한 번 하고 난 후 또 하는 거여서. [웃음] | 크리스

 

 

이처럼 으레 감당해야 할 몫들을 잘 소화해내고 있는 두 사람의 앞날에는 또 어떤 무지갯빛 일들이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아마 내년에는 스위스로 갈 것 같아요. 직장을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가게 되겠죠. | 크리스

 

 

저도 꼭 한국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어서요. 그 전에 두 번째 음반은 꼭 내고 가고 싶어요. 거의 준비가 다 됐거든요. 가게 되면 음악 공부도 더 하고, 독일어 공부도 좀 하려구요. 앞으로 활동을 해도 계속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최근 전자음악 강의를 시작했는데, 그런 분야로 넘어가야 할 필요성도 느껴요. 음악을 만드는 걸로 제 커리어를 만들기는 어렵고, 같이 병행하면 좋겠죠. | 플플달 제이

 

 

이미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그의 두 번째 앨범은 어떤 모습일지 살짝 물어보았다. 2015년에 발행된 첫 번째 음반 <보랍 앤 테소로>가 본인의 10대 시절 성소수자로서 겪은 자전적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면, 새로 나올 작품에서는 좀 더 신나고 가벼운 느낌일 거라고 하는데.

 

 

두 번째는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긴 하는데, 거기에 가상의 스토리를 만들어서 컨셉이 약간 공상과학 쪽이고 판타스틱한 분위기일 것 같아요. 첫 앨범이 약간 되게 깊잖아요. | 플플달 제이

 

 

제이가 음악하는 거 보면 엄청 자랑스러워요. 자기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고, 노래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게 참 대단해 보여요. 한국대중음악상 받았을 때도 자기 소감을 진솔하게 말하는 거 보면서 존경심이 느껴졌어요. | 크리스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 일하고 있는 곳, 표현할 수 있는 위치에서 끊임없이 성소수자임을 자각하며 산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한 노래하고 말하며 보여준다면, 다가올 미래는 밝을 것임을 두 사람은 확신한다.

 

 

한국 사회는 곧 성소수자의 모습이 일상처럼 될 것 같아요. 커밍아웃이란 것 자체도 없어지고. 미래의 언젠가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10년쯤 뒤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많이많이 바뀌지 않을까요. 제가 죽기 전에는 한국에서 동성결혼 제도가 생길 것 같은데. [웃음] | 플플달 제이

 

 

점점 더 나아지겠죠. 어떤 <매드 맥스> 같은 세계로 돌아가지 않는 한. [웃음] | 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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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많은 커플들이 사랑을 그리고 관계를 꿈꾼다. 그리고 수많은 인연 속에서 언젠가는 한평생 같이 할 동반자를 만나기를 바랄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고귀한 일은 없다고들 하지만,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으려 하는 이들로 득실거리는 이 사회에서 우리들의 사랑은, 결혼은, 어쩌면 투쟁에 가까운 산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부부로서, 새로운 가족을 꿈꾸는 성소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저희가 뭐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웃음] 동성 관계를 이어가는 데 사회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둘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행복하려고 살잖아요. 언젠가는 좋은 변화가 있을 거예요. | 플플달 제이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그거야말로 삶이 더 즐거워지고 풍요로워지는 방법 아닐까요.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 얼마나 재밌겠어요. 같은 나이, 같은 고향, 같은 성격, 같은 학교 출신보다는 다른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 크리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별처럼 반짝이는 인연을 맺는 신비로움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새삼 느끼면서, 부부가 꼭 잡은 두 손 놓지 않고 즐거운 현재와 더불어 두근거리는 미래를 언제나 꿈꾸기를 바라본다.

 

 

<新 가족의 탄생> 연재 순서

#01 사랑에 차별이 있나요 – 레즈비언 부부 '낮잠과 유다' 이야기

#02 무지갯빛 마음이 모여 사는 곳 – '무지개집' 사람들 이야기

 

 

 

사진  / 낙타(친구사이 상근자, 가구넷)

글,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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