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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클럽’ #2] 이태원 게이클럽의 어제와 오늘 - 클럽 Le Queen/Looking-Star 사장 임찬혁님 인터뷰
2016-07-18 오후 20: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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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7월 

[커버스토리 ‘클럽’ #2]

이태원 게이클럽의 어제와 오늘

- 클럽 Le Queen/Looking-Star 사장 임찬혁님 인터뷰

 

1. 이태원 첫경험
2. 대학생활과 게이클럽
3. 외국 게이클럽문화의 경험
4. 서킷 파티
5. Bar# + MouM + 소온테이블 = Triangle
6. Le Queen
7. Looking-Star
8. I:M

9. JL Cultures, 게이 파티 기획사
10. 이태원 주변 상가들과의 관계
11. UNICON(UNIque-music CONcert)
12. <LIFEPULSE : 서울-올랜도 연대 촛불문화제> 참석
13. 서킷 파티의 미래
14. 일상으로 성큼 들어선 놀이 문화, 그럼에도 남는 삶의 과제
15. 홍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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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Le Queen의 임찬혁(Justin Lim) 님 (2015.11.21.)

 

 


터울 : 반갑습니다. 

 

임찬혁 : 반갑습니다. (웃음)

 

터울 : 오늘 인터뷰는 '이태원 게이클럽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진행해볼 거고요, Justin님, 임찬혁 님을 모셨습니다. 

 

 

 


1. 이태원 첫경험

 

 

터울 : 10대 때 청소년 동성애자 모임 '아쿠아'에서 활동하셨던 걸로 들었어요. 10대 때부터 화려하게, (웃음) 지내셨다고 들었는데, 그 때 이태원에 처음 나오셨다고 들었는데, 이태원에 나오게 된 경위나, 그 때 이태원의 풍경에 대해 듣고 싶어요.

 

임찬혁 : 그 때 아쿠아의 정식 모임원으로 활동한 건 아니고, 가입만 돼있다가 첫 정모 때랑 두번째 정모까지 나오고 참여는 안했었어요. 왜 그랬냐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아쿠아는 전부터 계속 정모를 하고 있었고, 우리가 한번 이태원을 가보자 해서 거길 처음 간 게 지금의 (현재 클럽 Le Queen의 공동 사장)세빈이랑 저였어요. 이태원역도 생긴지 얼마 안돼서, 이태원에서 몇번 출구에서 모인다 그래서,

 

터울 : 2001년이네요?

 

임찬혁 : 네, 엄청 오래 전이죠, 그 때 고2였으니까. 처음에 둘이 딱 왔는데 그 모임원들이 하는 얘기가, 뉴페래 뉴페, 그러면서 왔다가, 별로다 그러고 다 가버린 거예요. (웃음) 그러고서 그 모임이 끝날 때까지, 자장면 집 갔는데 우리 둘은 거들떠도 안보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너무 괘씸해서 둘이, (웃음) 나름 인천에선 둘이 예쁘다고 자신감을 갖고 왔는데, 아무도 쳐다도 안보고, 참여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이태원역 와서 그날 행사가 어떻게 됐냐면,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클럽 ZIPPER라고, 옛날에 해밀턴호텔 뒤에 클럽이 있었는데, 그 클럽에서 웰치스를 나눠주더라고요. 들어가서 웰치스 하나씩 먹고, 그 시간이 원래 클럽이 운영하는 시간이 아닌데, 청소년 이반들을 위해서 오픈을 해줬었던 것 같아요.

 

터울 : 아 진짜로요?

 

임찬혁 : 네, 그래서 들어가서 웰치스 먹으면서 둘이, 되게 신기하다 그러고서 좀 놀았던 기억이 있고. 그러고 나와서 자장면 먹으러 갑시다 그래서 근처에 자장면 집에서 자장면 먹고, 그러고 돌아갔던 기억이 나요. 아쿠아 활동은 그게 다였어요. (웃음) 막 이렇게 뭔가 인권 쪽으로나 운동을 한 것도 없었고, 
 
터울 : 초창기 친구사이 소식지에도 예전에 그런 게 나와요. 어떤 사람이 일부러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당해서 섭섭했다는, (웃음)

 

임찬혁 : 진짜 그랬어요. 우리 너무 그래갖고, 너무… 좀 재미도 없고, 민망하고.

 

터울 : 그러면 어쨌든 그 때 이후로 이태원에 오시게 된 거잖아요.

 

임찬혁 : 그렇죠, 그 때. 

 

터울 : 그 때 이후로 그럼 계속 이태원에서 활동을 하셨었나요?

 

임찬혁 : 그 때 고등학생이니까 아무래도, 고2 때 처음 이태원에 와본 거고, 그러고서 세빈이같은 경우는 주야장천 나와서 주말에도 막 놀고 그랬어요. (웃음) 저는 뭐 학생이었으니까 못 나왔고, 고3때는 아예 이제 그런 이쪽 사람들도 아예 안 만나고, 핸드폰도 없애버리고 아예 끊어버렸었죠. 그건 되게 좀 대단한 나의 각오와 함께 했었던 거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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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이태원 게이클럽 ZIPPER의 광고.
"이태원역 개통 기념행사"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6호선 이태원역은 2001년 3월 9일에 완공됐다.
(『BUDDY』 19, 2001.5.9., 107쪽.)

 

 

 

터울 : 그 기갈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웃음)

 

임찬혁 : 그냥 뭔가 연락도 끊고, 밤에 나오는 것도 그렇고, 엄마 말 잘 듣고, 고3 때만 그랬어요. 고1, 고2 때는 매일 나와 놀고 그러다가. 그러고서 대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이태원에 나오기 시작했죠. 그 때 사실 클럽문화는, 홍대의 클럽 m2라는 클럽이 있었거든요. 거길 너무 좋아했어요. 

 

터울 : 스무살에 대학 들어오셔서?

 

임찬혁 : 네, 대학 들어와서 대학교의 클럽 문화가 너무 재밌고 그래가지고. 

 

터울 : 그렇죠, 그 때 홍대가 정말 아름다웠죠.

 

임찬혁 : 네, 그래서 NB도 있고 m2도 있고 둘다 다 떴었는데, 저는  m2를 너무 좋아해가지고, 

 

터울 : 일렉트로니카 기반의, 

 

임찬혁 : 제일 좋아했던 곡이, 아직도 기억나는 게 Bob Sinclar라는 DJ 가수가 있는데, 그 장르를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그 가수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맨날 걔 음악 들으려고, 한창 나왔던 게 <Love Generation>이란 곡이거든요. 그 노래 맨날 들으려고 했었고. 
 
그러다가 이태원 클럽을 알게 돼서, 대학교 1학년, 스무살 가을 즈음엔가 그 때부터는 이태원 G-Spot이 처음이었어요. G-Spot에 처음 나와서 놀고. 그렇게 놀다보니 TRANCE도 가게 되고 QUEEN도 가게 되고, 이제 그쪽에 항상 그 골목에서만 놀았었죠. 

 

터울 : 게이힐, 

 

임찬혁 : 네. 그렇게 항상, 진짜 매주 나왔던 것 같아요. 그 때부턴 신기해갖고. 너무 신기하고 재밌기도 하고, 가면 그 때 당시에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게 화랑(이반시티의 전신), 이반시티 아니면, 어플도 없고 아무 것도 없었잖아요. 그나마 싸이월드로 조금 교류하는 정도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지금 뭐 페이스북처럼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아는 일촌의 일촌이라든지, 한번 교류가 있던 사람들만 아는 거라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 때 당시에는 클럽이.

 

터울 : 그 때쯤의 클럽이, 지금과 비교하면 뭐가 제일 달랐을까요? 저는 사실 그 때를 몰라서, 

 

임찬혁 : 오히려 클럽쪽에서는 메이저였던 것 같아요, 이태원 G-Spot이. 그러니까 일반들한테도, 일반들 연예인들도 많이 오고 그 당시에는. 왜냐하면 클럽 문화가 생소했기 때문에, 강남에도 클럽이 없었고 그 때는, 홍대에도 클럽이 별로 없었고, m2가 되게 핫한 클럽이었는데 m2 사장분이 G빠(G-Spot)에 놀러올 정도로, 사장들간의 교류도 많고, DJ도 익스체인지도 했었고 그랬던 걸로 기억이 나요. 클럽이란 문화 자체가 되게 힙했던 때였죠.

 

터울 : 지금은 클럽이 널려있는데, 

 

임찬혁 : 그렇죠, 너무 많죠. 그리고 이게 진짜 클럽인지… 사실 한국에 어떤 문화가 들어오면, 한국에 정착할 때는 조금 한국화돼서 정착하잖아요. 약간 지금 옥타곤(뉴힐탑호텔 지하 클럽)이나 엘루이(엘루이호텔 지하 클럽) 이런 데들 보면, 클럽이지만 약간 나이트클럽같기도 하고, 약간 그런 것들이 어쩔 수 없는 한국의 정서와 녹아드는 것 같아요. 

 

터울 :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그렇게 되는 게 있었군요. 그 때는 완전 어센틱한 클럽이 많았고.

 

임찬혁 : 그렇죠. 오히려 클럽이라고 하면… 모르겠어요, 나는 아직도 클럽이라는 그 개념이 좀 모호한데, 무도장일 수도 있는 거고, 무도장이라 치면 그냥 춤추는 데고, 그런데 라운지바라고 하면 또 춤도 추면서 음악을 듣는 데고, 그럼 클럽과 경계가 막 모호하니까. 

 

터울 : 홍대에서 처음 클럽 시작할 때도 그냥 바에서 춤추다가 시작했다고 들었거든요. 

 

임찬혁 : 그렇죠. 그런데 그게 클럽이라고 하기도 또 약간 애매한, 

 

터울 : 그래서 초창기 업소들 보면 게이바인데 알고 보면 게이클럽이고, 이를테면 파슈같은 데도 보면 그냥 게이바로 분류돼있더라고요. 
 
임찬혁 : 그래서 저도 정확하게 클럽이 뭐다-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외국에서 클럽이라고 하면, 진짜 미국이나 이런 데서 클럽이라고 하면 제대로 시설 갖춰놓고, 쿵쾅거리는 사운드에다, 약간 그런 데를 클럽이라고 많이 하니까, 

 

터울 : 제대로된 음향시설과, 플로어가 딱 있고,

 

임찬혁 : 네, 그런 것들이 한국같이 작은 나라에 정착하다보니까, 클럽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놓은 거 아닌가, 약간 그런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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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게이 전용 "까페&단란주점 YOU"의 광고. 
"매일밤 11:30-12:00 봉고 대기"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1998년 8월 1일 심야영업 제한이 해제되기 이전에는,
이렇게 문을 닫아놓고 영업하는 곳이 많았다.
(『친구사이 소식지』 7, 1994.12., 8쪽.)

 

 

 


2. 대학생활과 게이클럽

 

 

터울 : 그러면 두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서요. 미대를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학교가 어디셨어요?

 

임찬혁 : 홍익대학교요. 그런데 저는 세종캠퍼스 나왔어요. 그래도 세요, 미대는. (웃음) 

 

터울 : 나름 학교 다니시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거든요, 게이클럽이라든가. 자세히는 잘 몰라서, 혹시 대학 다니시면서 게이클럽과 같이 일해보셨다든지, 아니면 나와서 노셨다든지, 이런 일화들을 좀 여쭤보고 싶어요. 

 

임찬혁 : 그러니까 이게, 그렇게 되려니까 되나봐요. 대학교 다니면서 그렇게 주야장천 주말마다 클럽을 다녔는데, 클럽 사장 형들도 그렇고 매니저 형들도 그렇고 내가 너무 와서 열심히 잘 노니까 눈에 들어와서, 그냥 그렇게 놀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 때 당시 G빠, ReBall, 밑에 Heaven이라고 클럽이 또 생겼었어요. 바로 밑에, 지하 2층에. 그 때는 그래서 두 개의 층을 다 클럽으로 운영했었거든요. 그래서 왔다갔다도 하고 막 그랬었어요.

 

터울 : 같은 건물에 두 클럽이 있었군요.

 

임찬혁 : 네, 둘다 게이 클럽이고. 그래서 그 사장 형들하고도 알고, 또 거기에 그 당시에 사장으로 들어와있던 모델 형이 있었어요. 그 형하고 또 친해지고 그러면서, 거기서 파티 같은 걸 해보겠다고, 아직도 난 왜 이렇게 그런 게 생생하지? (웃음) ZIPPER NIGHT이라고, 옛날 클럽 ZIPPER 음악도 틀고 파티하고 싶다고, 

 

터울 : 90년대 음악인 거죠?

 

임찬혁 : 네, 그걸 하고 싶다고 포스터 제작 좀 해줄 수 있니? 그래서, 대학교 때 과제도 제쳐두고 그런 포스터도 만들어줬던 기억도 있고. 

 

터울 : Heaven에서 한 거죠?

 

임찬혁 : 그렇죠, Heaven에서 했었고. 그리고 심지어는 대학교 2학년 때인가, G빠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랑 뉴이어 때 고고보이도 했었어요. 제가 직접. (웃음)

 

터울 : 고고보이를 했었다고요? 대단하다, (웃음)

 

임찬혁 : 겁도 없이. (웃음) 그런 것도 했었고, 난년이었죠 한마디로. 너무 열심히 놀아서, 솔직히 클럽 다니는 형들 사이에서는 어릴 때부터 눈에 띄기는 했어요. 쟤는 학교도 열심히 다니는데 놀기도 잘 논다, 약간 이런 식으로. 

 

터울 : 전 대학교 때 진짜 부러워했어요, 그런 사람들. 게이 클럽은 안 갔지만 홍대에 가면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임찬혁 : 그렇죠. 노는 걸 너무 좋아했던, 음악도 좋아했고, 춤추는 것도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재밌고 그랬었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러다가 그러면 군대를 언제 가신 거죠?

 

임찬혁 : 군대를 되게 늦게 갔어요. 21살까지 대학교 2학년 마치고, 22살 때는 원래 카츄사를 갈려고 그러다가 떨어져가지고, 그래도 또 공익을 가고 싶어서 생쇼를 하다가, 23살, (2006년)10월에 갔어요. 그러니까 1년 반 공백기가 있었죠. 그 때동안 놀았어요. (웃음)

 

터울 : 그치, 그 때 아니면 언제 놀아, (웃음) 그 때 아니면 놀 때가 없어요. 그 다음엔 평생 일하는 거지 뭐. (웃음)

 

임찬혁 : 진짜. (웃음) 그 때 엄청 놀았던 것 같아요. 이태원에 그 때 당시에 세빈이네 집이, 세빈이가 트랜스젠더 클럽 여보여보를 다니기 시작했거든요, 20~21살 때부터. 이태원에 집이 있으니까, 맨날 세빈이네 집에 가서 집에도 안 들어가고, (웃음) 주말 되면 동대문 가서 옷 사입고 클럽 나가고 그랬어요. 매주 나가고 그랬어요. 

 

터울 : 그러면 군대 갔다 오신 게 25살이신 거죠?

 

임찬혁 : 그렇죠. 23에 가서 25에.

 

터울 : 그럼 전역하시고 난 다음엔 이태원이 좀 변해있던가요?

 

임찬혁 : 변했죠. 왜냐하면 그 사이에, 정확히는 연도가 기억 안나는데 그 사이에 해밀턴호텔 지하에 게이클럽 Del Disco가 생겼다가, 그러다 제가 전역하고 나오니까 클럽 G-Spot에서 ReBall이 됐고.  (두 클럽 모두 2006년에 개업 - 편집자 주)

 

터울 : G-Spot에서 ReBall로 바뀐 거군요. 이 역사를 참 누가 정리를 해야 되는데. (웃음) 

 

임찬혁 : 그래서 원래 G-Spot 사장들이,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그 때 막 여러 사건이 터지고 하면서 다 뿔뿔이 흩어져가지고, 거기서 사장 한 명이 나와서 Del Disco를 차리고, 그리고 거기 원래 있던 사장 또 한 명이 ReBall을 그대로 하고 있고 그렇게 된 거예요. 그 때 ReBall은 새로운 클럽 사장들 인맥이 들어온 거예요.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던, 그 때 당시에 동대문이 엄청 돈을 잘 벌 때였거든요. 그래서 패셔너블하고 돈많은 동대문 형들이 차린 클럽이었어요.

 

터울 : 그럼 그 전에는 (이태원 게이)클럽 사장분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어요?

 

임찬혁 : 이태원에 주로 있었던,

 

터울 : 이태원 토박이들,

 

임찬혁 : 예, 옛날부터 whynot? 클럽하고, 엄청 오래 전부터 클럽 조그맣게 하시던 분들,

 

터울 : 저도 2000년대 초반대에 동대문 형들이, 언니들이 날렸다는 얘기는 얼핏 들었는데요. (웃음)

 

임찬혁 : 그 분들이 ReBall 때부터 유입이 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 때 사장들이 거의 동대문 사장들이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경쟁하고 뭐하고 하다가 Del Disco가 사라지고, ReBall이 있다가, Del Disco의 사장이 나와서 지금 이태원 다모토리 자리에 클럽 Pulse를 오픈하게 됐죠. 

 

터울 : 그 때 Pulse가 생긴 거군요. 

 

임찬혁 : 조그맣게. 그래서 지금 Le Queen 같이 시작했어요.

 

터울 : 그 때가 몇년도였어요?

 

임찬혁 :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는데, Pulse가 벌써 8주년이 됐으니까 8년 전이겠죠. 2007~2008년? 

 

터울 : 그 다음에 저희가 알고 있는 클럽들이 생기고, 

 

임찬혁 : 클럽은 계속 있었어요. 그 이후에 EF도 있었고, 또 저기 문나이트 자리에도 뭐 하나 생겼었고. 클럽은 계속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했는데,

 

터울 : 의외로 너무 많더라고요. 

 

임찬혁 : 되게 많아요. 

 

터울 : 세어보면 한 40개쯤 되는 것 같은데,

 

임찬혁 : 그런데 1년을 넘게 생존한 클럽이 많이 없죠. 제가 클럽을 해보니까, Le Queen은 유지될 수 있었던 게, 저도 초석을 닦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작으니까 이게 경쟁력이 되더라고요. 없으면 없는대로 허리띠 졸라매고 이게 되는데, 큰 클럽들은 1·2달 정도만 로스가 나면 닫을 수밖에 없어요. 임대료랑 직원들 인건비를 감당을 할 수가 없어요. 

 

터울 : 그렇죠, 홍대 클럽도 옛날에 작은 클럽들이 더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임찬혁 : 더 내실을 다지기가 좋아요. 시도를 하기도 좋고, 변화에 따라서, 사실 클럽이라는 게 트렌디한 곳이잖아요. 음악도 그렇지만, 패셔너블하고, 그래서 오래갈 수 없는 것 같아요. 트렌디하게 하려면 끊임없이 투자해야 되고 끊임없이 바꿔야 되는데, 사실상 그러기가, 특히 큰 클럽은… 진짜 클럽은 남는 장사는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그래서 Pulse가 진짜 대단한 거예요, 거기는. 물론 사업운때도 맞았고 여러 가지가 다양하게, 형들이 워낙 노력도 하셨고 했지만, 진짜 그렇게 클럽이 8년이라는 장수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대단한 거예요, 진짜. 

 

터울 : 알겠습니다. 

 

임찬혁 : 너무 지금 삼천포로 빠지는 거 아닌가요? (웃음)

 

터울 : 아녜요, 전혀 아니에요. 너무 좋아요. (웃음)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태원에 나온 지가 정말 얼마 안됐어요. 2013년부터 나왔으니까, 완전 뉴비, 뉴페, 늙은 뉴페, (웃음) 그래서 이런 얘기 듣는 게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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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게이업소 정보지 『보릿자루』에서 조사한 이태원 이반업소 현황.
가라오케와 까페가 많고, 클럽(Club, Dance)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보릿자루』 16, 2000.3.15, 95쪽.)

 

 

 


3. 외국 게이클럽문화의 경험

 

 

터울 : 외국에는 클럽 문화가 사실 더 많이 발달해있잖아요. 그런 걸 보실 기회가 20대 때 있으셨는지,

 

임찬혁 :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게 계기가 된 것 같긴 해요. 그게 계기예요, 제가 클럽을 하고 파티를 만들게 된 게. 군대에서 엄청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왜냐하면 친척 형이 게이인데, 그 형이 홍콩으로 '취집'을 갔거든요. (웃음) 

 

터울 : 아 '취직'이 아니라 '취집'? (웃음) 

 

임찬혁 : 홍콩으로 장가를 갔어요. (웃음) 그 전에는 그 형이랑 맨날 클럽에서 놀다가, 그 형이 제가 군대를 간 사이에 심심해하다가, 어떻게 남자를 잘 만나서 홍콩으로 가버린 거예요. 그래서 너 전역하면 홍콩 놀러와라 해갖고, 그래, 내가 홍콩으로 이제 글로벌로 뛰어야지 싶어서, 군대 있을 동안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고, 전역하자마자 한달 동안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홍콩을 갔어요, 25살에 전역했을 때. 그리고 홍콩에서 처음 해외 파티하고 클럽을 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홍콩에 한달동안 머물렀는데, 머무는 동안이 연말이었거든요, 12월달. 그래서 또 방콕에서 연말 파티를 한다고 해서 처음으로 방콕 연말 파티를 경험했죠. 그러고서 전 그 때 너무 신기하고 너무 재미있고, 진짜 신세계를 경험했어요. 그 때 그렇게 놀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진짜 한국 사람들 되게 불쌍하다, 한국 게이들이 왜 이렇게 얘네들처럼 자유롭고 재밌게 못 놀까, 내가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이런 걸 한번 만들어야겠다, 그 때 그걸 다짐했었죠.

 

터울 : 구체적으로 뭐가 크게 차이가 났을까요? 한국에서는 이랬는데 거기서는 이랬다든가, 지금 입장에서는 되게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임찬혁 : 그렇죠, 지금은 한국 게이들도 너무 잘 놀고 되게 자유분방하고 오히려, 그런데 거기에 제일 큰 역할을 한 게 페이스북인 건 저는 확실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태국이란 나라 자체가 게이라든가 트랜스젠더에 대해 많이 열려있잖아요. 외국인도 많이 오고 그러다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거기 온 사람들이 되게 자유분방한 게 좋았어요. 시선 하나도 신경 안쓰고.

 

심지어 메인 파티 장소가 Siam Center 앞의 Paragon에서 하는 거였는데, 그런 규모에서 게이 파티를 한다는 것 자체도 나한텐 좀 신기하고 파격적이었고. 그리고 맨날 나는 이태원에서 지하에 있는 클럽들만 들어갔다가, 거기는 막 지상으로 올라가고 야외에 있고 이러니까 너무 신기한 거죠. 사람도 많고, 잘생긴 애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웃음) 그게 제일 신기했어요.

 

터울 : 그 때 당시 이태원에 다니던 게이 클러버들은 좀,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은 느낌이었나요?

 

임찬혁 : 자유로웠는데, 인원도 적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비교해보면 규모도 엄청 작았고, 나오는 사람들만 나오다보니까.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로는 분위기가 조금 어두웠던 것 같아요. 놀러는 나왔지만, 지금 제가 이쪽 생활을 하고 여기에만 너무 전념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 때 당시에 저는 주말에 그 시간대에 그만큼만 그냥 게이라이프였고, 나머지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약간 그런 거여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는데, 

 

터울 : 게이라이프가 일상이랑 분리돼있으니까, 

 

임찬혁 : 네, 그래서 좀 뭔가 어둡다고도 생각했고, 좀 너무 뭐랄까, 그냥 재밌게 못 노는 게 싫었어요. 그 때 당시는 그냥 DJ랑 뭐, 특별한 게 없다? 난 좀 그런 걸 생각했죠, 걔네처럼 웅장하고 즐겁게 파티도 하고 자유롭게 즐기고, 약간 그런 게 좀 없지 않나, 

 

터울 : 그 때도 이태원 게이클럽에 DJ는 다 있었죠?

 

임찬혁 : 다 있었죠. 그런데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었던 건, DJ를 내세우지 않았었어요. 

 

터울 : 아, 어떤 DJ가 튼다고 얘기를 안했던 건가요?

 

임찬혁 : 네, 그건 심지어, 한국 게이클럽에서 DJ를 내세우기 시작한 게 얼마 안됐어요. 클럽 CIRCUIT이 생기고 나서부터 그렇게 되기 시작했다고, 나는 그렇게 믿어요. (웃음) 왜냐하면 그 전에는 DJ 부스가 그 큰 클럽에 저 구석에 있었거든요. 사람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누가 음악 트는지도 모를 정도로 구석에 있었고, 누가 음악을 튼다는 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당시 일반 클럽씬에서는 DJ가 되게 중요하게 각광을 받았는데, 게이클럽씬에서는 DJ가 각광을 받지 않았어요.

 

터울 : 오, 처음 알았어요. 

 

임찬혁 : 그래서 전 파티를 할 때 항상 DJ의 네임 밸류를 올려주고, 그리고 자꾸 노출을 하려고 신경써서,

 

터울 : 그게 사실 정상적인 건데,

 

임찬혁 : 네, 물론 서킷 파티를 할 때는,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Velocity를 할 때는 DJ를 내세우긴 했는데, 클럽들은 DJ를 내세우지 않았었어요. 감춰져 있었어요. 그러다 CIRCUIT을 하면서 DJ 부스를 이따만하게 만들었었죠. 

 

터울 : 그렇구나, 그럼 클럽인데 누가 트는지 모르는 음악을, 

 

임찬혁 : 심지어 그냥 CD 트는 줄 아는 애들도 많았어요. 진짜로. 그냥 CD 틀어놓는 거 아냐?-그러고. 저도 그랬고, 저도 나와서 20대 초반에 나와서 놀 때는 DJ가 누군지도 모르고, 음악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고 그냥 신나니까 노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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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킷 파티 VELOCITY 2013 "THE WHITE BOAT" 포스터 (2013.11.2.)

 

 

 

 

4. 서킷 파티

 

 

터울 : 이제 서킷 파티(게이들이 대규모로 모여 며칠간 펼쳐지는 댄스 파티 이벤트) 얘기로 넘어갈 텐데요. 이쪽사람들 측에서 한국에 게이 서킷 파티가 2007년에 처음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임찬혁 : 2007년 Blue Party, 맞아요, 있었어요.

 

터울 : 그 때 그럼 행사 기획에 참여하신 건지,

 

임찬혁 : 아니에요, 저는 형들을 알기는 했는데, 그 파티가 엄청 망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마이너스가 3천이 넘게 났다고. 그런데 왜 그랬냐면 그걸 만든 형들이 동대문 형들이었는데, 파티 되게 잘 다니고 했던 형들이 만든 거거든요. 그런데 저는 물론 참석은 안해봤지만 엄청 장소도 좋은 곳에서 했었고, 청담동 Tribeca이랑 남산의 naos nova랑 이런 데서 했는데, 

 

가장 중요한 게 그 때 당시에는 이걸 스프레드할, 홍보할 인프라가 사실 클럽 안의 사람이 전부였고, 그렇지 않으면 싸이월드나 주변 인맥, 물어물어가 다였는데, 그 때 당시에 파티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어디에 그걸 찾아서 돈내고 찾아갈 만한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냥 기존에 있는 클럽에서 했으면, 그 형들이 외국인들도 초청을 했거든요. 기존의 클럽에서 했으면 나오는 커뮤니티랑 겹쳐서 더 시너지가 났을 텐데, 좀 뭔가를 해보려고 시도를, 욕심을 냈었던 거죠.

 

터울 : 그건 기존 클럽에서 안하고 다른 곳에서 했었군요. 

 

임찬혁 : 네, 강남이나 이쪽으로. 그래서 오히려 일반들이 더 많았다고 그러더라고요. 

 

터울 : 그래서 보다보니 2011년 즈음에 브랜드 게이 파티가 생기더라고요. 서킷 파티 브랜드 VELOCITY가 처음 생긴 것도 2011년이었죠? 

 

임찬혁 : 네, 맞아요. 그 때가 기점인데, 사실상 따지고 보면 VELOCITY보다 이전에 제가 시도를 먼저 했던 파티가 있고, 그 시기가 좀 겹쳐요. 2011년 8월 이태원 IP 부티크 호텔 지하 클럽 Rococo에서 VELOCITY 첫회 파티가 열렸는데, 바로 한달 전인 7월에 제가 같은 장소에서 서킷 파티를 했어요, G Fant-Asia라고. 

 

그리고 이거보다 더 앞서서는, 그해 6월에 Pulse의 3주년 파티 White Party를 제가 해줬죠. 그 계기가 된 게, Pulse는 매년 파티를 했는데, 그 때 어떻게 하다가 Pulse 사장 형들하고 식사 자리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에 파티 해야 되는데 어쩌고 얘기하길래 제가 그랬죠. 형, 맨날 마사지샵 같은 애들 세워서 고고보이라고 올려놓고 파티라고 하지 말고, 이번에 한번 진짜로 파티처럼 해봐요-제안을 해갖고, 그럼 네가 해볼래? 해가지고 그 때 저한테 던져준 거거든요. 그게 제가 처음 만든 서킷 파티였죠.

 

터울 : Pulse 3주년 파티가 처음 기획하신 거군요. 

 

임찬혁 : 네. 그러니까 그럴싸하게 파티라는 구색을 갖춘, 화이트로 드레스코드를 갖추고, 그리고 데코레이션도 하고, 

 

터울 : 데코레이션이 어떤 거죠? 

 

임찬혁 : 막 제가 천들 다 떼다가 친구들 다 모아서 하얀 천으로 다 장식하고, 그리고 CD 제작해서 기념품을 나눠주기 시작하고, 그러니까 뭔가 온 사람들이, 저는 클럽하고 파티하고 다른 게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와서 느끼고 가는 거랑, 진짜 말 그대로 페스티벌이 되어야 되는데, 클럽은 사실 나와서 음악 즐기고 hook up하는 장소인 게 더 크고, 파티는 좀더 즐길 거리가 있는 장소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만들었죠. 

 

터울 : 그러면 그 전의 이태원 게이 파티들은 보통 어땠나요? 

 

임찬혁 : 그건 다 작은 것들, 그러니까 이렇게 서킷의 규모라고 할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고, 작게작게 하는 거였고 그랬죠. 그러다 서킷은 그 때 당시에 Pulse에서의 파티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거 하고 G Fant-Asia 하고, 그 다음에 VELOCITY가 생겼는데, 그런데 어떻게 보면 투자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규모면이나, 또 이반시티를 안고 있어서 사람들도 많이 몰렸었고, 제일 서킷 파티다운 서킷의 시작은 VELOCITY였지 않았나 싶어요. 

 

터울 : 그럼 G Fant-Asia는 어디서 하셨어요? 

 

임찬혁 : 같은 장소요. IP 부티크 호텔 지하. 옛날에 클럽 이름이 Rococo였어요. 지금은 '밤과 음악 사이'가 됐는데, (웃음) 

 

터울 : 그럼 지금은 클럽이 아니네요?

 

임찬혁 : 지금은 아니에요. 그런데 거기가 시설이 너무 좋았어요. 시설도 엄청 좋고, 걔네한테는 좀, 우리가 운때도 좀 맞았던 게, 그 좋은 클럽에서 제가 Pulse에서 3주년 파티를 한 걸 보고 어디서 연락처를 받아가지고, 저한테 한번 해보자고 먼저 연락이 왔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거기에다 기획을 해서 했었는데, 그 때 제 기억에 120명밖에 안왔어요. (웃음) 

 

터울 : G Fant-Asia가요? 적자 안 보셨어요? 

 

임찬혁 : 그런데 뭐 제가 솔직히 투자하고 들어간 게 아니라 그 클럽에서 저한테 오퍼를 해 맡긴 거라, 저는 그냥 심적인 좌절감만 좀 맛봤죠. 

 

터울 : 그러면 VELOCITY부터는 관여하는 수준이 달라지신 거겠네요. 

 

임찬혁 : VELOCITY 1까지는 관조자였고, VELOCITY Episode 2를 만들 때 이반시티 사장분인 박사이먼 형하고, 같이 만든 콩형이 둘이 저한테 같이 해보지 않겠니, 제안이 들어와서, 그 때 제가 파티 디렉터로 들어간 거죠. 그래서 VELOCITY 2를, 그 당시에 문 닫겨있던 클럽 G-Spot 자리, 거기가 역사적인 자리이니 여기서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해서, 

 

터울 : G-Spot, ReBall 이후에 클럽이 없는 상태였어요?

 

임찬혁 : 그렇죠. 있긴 있었는데 일반 클럽하다 망하고 다 그런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그 때 당시에도 ATOM이란 클럽이 들어왔다가 망한 상태였어요. 그 가게에서 파티를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또 거기에 G-Spot을 만든 사장 형을 모델로 해서 포스터를 만들어가지고 홍보를 했고, 그렇게 해서 VELOCITY Episode 2가 대박이 났다. 그 이후부터는 계속 제가 VELOCITY에 파티 디렉터로 참여했었고요.

 

터울 : 클럽서에 놀기는 놀지만 클럽 실무는 잘 모르는 경우들이 많을 텐데요. 이걸 읽을 독자들도 그렇고 저도 그런데, 파티 디렉터가 정확히 무얼 하는 사람들인지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임찬혁 : 그러니까 파티의 스토리를 잡는 거죠. 이 파티를 어떤 목적에서 어떻게 재밌게 만들 거냐는 스토리를 꾸며야 되잖아요. 기획자인 거죠, 어떻게 보면. 컨셉 잡고 테마 잡고, 고고보이라든가 DJ 섭외 같은 것도 하고. 원래 더 큰 파티가 되면 역할이 더 세분화되는데, 우리나라의 실정상 그 역할들을 묶어 한 사람이 할 수밖에 없어서, 제가 디자이너와 홍보, 디렉터를 겸했었죠. 그런데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는 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사실 여태까지 큰 파티들 하면서 수익이 300만원 이상 난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몰라요, 되게 많이 번 줄 아는데, 심지어는 지난 2015년 I:M 파티도 그렇게 수익이 많이 남지 않았어요. 오히려 마이너스였는데, 그래도 그게 투자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어차피 파티를 만든 이유 자체도 돈 번다기보다 재밌게 놀게 하려고 만든 거라.

 

터울 : 1인 다역을 하시면서 계속 끌어오신 거군요.

 

임찬혁 : 예, 그랬죠. 자랑이 아니라 진짜 그랬어요. (웃음) 진짜, 안그러면 못해요. 왜냐하면 딴 데서, 그건 어떻게 보면 경쟁력이기도 한 것 같아요. 다른 데서 이만큼의 파티를 못 만드는 건, 그렇지 않으면 이 역할을 다 돈을 주고 써야 되는데, 그렇게 하면 예산이 안 나올 거예요. 

 

터울 : 장기적으로는 분업이 되어야 될 텐데, 그런데 지금도 그렇고 VELOCITY 때도 그랬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VELOCITY는 2013년 Episode 6까지 진행되었더라고요. 

 

임찬혁 : 진짜 그게 많이 공부가 되고 초석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계속 꾸준하게. 왜냐하면 그 때 형들을 잘 만났죠.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그만한 파티를 만들 기획 능력이나 크리에이티브는 있는데, 그런 예산이라든가 인맥이라든가, 그런 건 제한이 있잖아요. 그런데 좋은 형들을 만나서 그런 굵직한 걸 하면서 잘 되게 된 것 같아요. 그게 인연이 되어 클럽 CIRCUIT을 같이 오픈하게 됐고요. 그게 시작이었죠.

 

터울 : 클럽 CIRCUIT은 VELOCITY 기획자 분들이 운영하셨던 건가요?

 

임찬혁 : VELOCITY를 하셨던 이반시티 사장 박사이먼 형이 하셨죠.

 

터울 : 그렇구나. 이분도 따로 한번 인터뷰를 해야 겠네요. 

 

임찬혁 : 그렇죠. 박사이먼 형은 진짜 일을 많이 했고, 제가 되게 존경하는 형들 중 한 분이에요. 

 

터울 : CIRCUIT이 언제 열었죠?

 

임찬혁 : 2012년에 열었어요. 제가 29살 때.

 

터울 : 제가 CIRCUIT엔 가본 기억이 있거든요. 

 

임찬혁 : 그 때 '응답하라' 파티를 처음 만들어서 대박이 났죠. 한국 가요 파티.

 

터울 : 궁금한 게, 가요가 메인으로 나왔던 게, 예전에 1990년대 후반에 ZIPPER나 이런 데서,

 

임찬혁 : BANANA랑 다, 

 

터울 : 그렇게 나왔고, 그러다가 이제 DJ가 들어서면서, 사실 DJ와 KPOP 나오는 게 불화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DJ는 자기 음악 틀고 싶어하고, 

 

임찬혁 : 맞아요. 

 

터울 : KPOP은 그냥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원래는 DJ가 음악 틀다가 가끔씩 KPOP이 이벤트처럼 나오게 된 거죠? 2000년대 즈음에는. 

 

임찬혁 : 그렇죠. 그런데, 좀 이게 모순적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Le Queen을 오픈하고 2주년 됐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클럽에서 가요가 나오는 걸 용납하지 않았어요. 

 

터울 : DJ분들 입장에선 그러실 것 같아요.

 

임찬혁 : 저도 그랬어요. 저 자체가, 그 때 당시에 Pulse에 '끼타임'이라고 해서 KPOP을 틀기 시작했고, 그게 Pulse 인기의 주력이 됐는데, 저는 그게 너무 이해가 안 갔고, 사람들이 왜 클럽에 나와서 KPOP을 듣는지 이해가 안되고, 저는 너무 싫었어요, KPOP이. 혼자 듣는 건 좋아도 클럽에 나오는 건 싫어했는데, 

 

어느 순간 영업을 하다 주변을 돌아보고 하다보니까, 이게 트렌드가 되었더라고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클럽이 트렌디해야 되는데, 이게 트렌드가 된 거예요. 사람들이 갑자기 모임을 결정해서 춤을 배우기 시작하고, 페이스북에다 자기 끼춤을 올리기 시작하고, 이걸 보니까 이게 한두명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이게 트렌드고, 이걸 가지고 장사를 하면 되겠다 싶었죠.

 

터울 : 알겠습니다. KPOP에 대해서는 잠시 후 클럽 Looking-Star를 다룰 때 더 얘기나누도록 하고요. 그럼 그때는 KPOP을 가끔씩 그런 컨셉의 파티에서만 틀었던 거죠?

 

임찬혁 : 그렇죠.

 

터울 : 그러다가 Pulse에서 KPOP 타임을 만들고,

 

임찬혁 : Pulse가 그걸 잘했죠. 끼타임을 만들어서 KPOP을 항상 틀어줬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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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Bar# 내부 전경 (2015.4.5.)

 

 

 


5. Bar# + MouM + 소온테이블 = Triangle

 

 

터울 : Bar#, MouM, 소온테이블로 구성된 공간 Triangle에 대해 여쭤볼게요. 오픈을 언제 하신 걸까요?

 

임찬혁 : 올해 12월이 되면 2주년이거든요. 2014년 12월 19일에 ITW호텔 지하와 1층에 각각 오픈했어요. 제 생일에 오픈해서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요.

 

터울 : 이 날이 생일이시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웃음) 저는 이 공간이 너무 기억에 남는 게, 지금은 호텔포차가 되어있고 지금도 물론 좋지만, 그 전에 Bar#(지하, 바+샵), MouM(지하, 공연장), 소온테이블(1층, 레스토랑)이 합쳐진 형태였는데, 그런 공간 배치가 신박하고 느꼈거든요. 되게 실험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걸 만드셨을 때 공간 설계에 대한 레퍼런스라든지, 공간의 기획의도에 대해 궁금했어요.

 

임찬혁 : 저한테는 애증의 공간이에요. 왜냐하면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사실 1년 동안 Le Queen에서 벌었던 돈을 거기에 다 갖다 박았으니까요. 한 몇개월째 집세 밀리고 핸드폰 끊기고 막 그럴 정도였어요.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너무 고생을 많이 한 가게라 사실 너무 힘들었고. 그래도 그 취지는, 제가 그 공간을 만들려고 한 건, Le Queen을 하다가 또 좋은 자리가 났다고 소개가 들어와서 해보자 해서, 원래는 (건물주가)거기도 클럽을 만들려고 했었어요, 호텔 지하라서. 그렇지 않으면 바를 하려고 했었는데, 제가 그런 거 할 거면 난 안할 거라고 그랬거든요. 

 

왜냐하면 그 때 당시가 Le Queen 1주년 지나고 한 2주년 됐을 땐데, 좀 밤업소 사장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가 조금 있었어요, 제 스스로가. 왜냐하면 그걸 하는 건 나쁘지 않은데, 너무 그 생활에 젖어있는 것도 싫었고, 그리고 사교장이다 보니까 밤에 와서 솔직히 클럽에서 대화를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요. 그냥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그러고 마니까, 그냥 인간에 대한 애정도 많이 없어지는 것 같고. 그리고 너무 내 시간도 없는 것 같고 해서, 거기를 그런 컨셉으로 잡으려고 한 건 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였어요. 

 

식사를 하러 오든, 그렇지 않으면 거기 샵을 오든, 그걸 하면서 실제로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클럽에서 아는 인맥들 외의 사람들하고 교류가 돼서, 원하는 취지대로는 잘 됐는데, 처음에는 고생을 너무 많이 했죠. 

 

터울 : 지금도 Bar# by Triangle 페이스북 페이지가 남아있는데, 보다보면 되게 신박해요. 여기가 이태원인지 어디 외국인지 알 수가 없는. (웃음)

 

임찬혁 : 그래서 가장 큰 건, 레스토랑이야 문화공간적 성격보다도 그냥 음식 먹으러 갈 때 요즘엔 워낙 다들 편하게 음식 먹으러 가잖아요. 그게 제가 잘못 생각한, 사업적으로 판단 미스였고. 우리끼리만 밥먹으러 가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게. 밥이란 건 따로 먹어도 되고, 술이나 이런 건 우리들만 모이는 게 편한데, 밥은 솔직히 일반들끼리 섞여서 먹어도 되고. 또 너무 맛있고 싼 식당이 많고 그들과 같이 경쟁해야 되니까, 그건 판단 미스였던 것 같고.

 

그리고 Bar# 같은 경우는 좋은 경험이긴 했는데, (웃음) 좀 서운하기도 했던 건 뭐였냐면, 그 공간의 취지가 우리들이 만든 제품을 우리들이 소비하고, 약간 그런 개념이었거든요. 

 

터울 : 그러니까요. 뭔가 성미산에서 볼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임찬혁 : 그런데 그것도 저의 판단 미스였던 게, 이미 예쁘고 싸고 좋은 제품들 살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은데, 굳이 사람들이 이걸 사러 올까, 그리고 사실상 그 컨셉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제가 좀더 투자를 해서 제품도 더 갖다놓고, 그리고 바도 좀더 제대로 시스템을 갖추고, 시설도 좀더 마음에 들게 했어야 했는데, 그 때 돈이 없어서, 그러니까 모든 게 그래요. 괜히 준비없이 장사를 하면 100% 망한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그렇게 했었고,

 

터울 : 그 때 Bar#의 내부 조명이 기억나요. 바다같은 느낌으로 꾸며놓았던, 그 때 찍었던 사진을 아직도 갖고 있어요. 

 

임찬혁 : 예쁘죠. (웃음) 그래도 그 공간은 진짜 좀 애착이 있어요. 뭔가 공간 자체도 재밌는 구조고, 딱 보자마자 여긴 공연장 할 거야, 여긴 바 할 거야, 여긴 레스토랑 할 거야, 이 계획은 세웠거든요. 

 

터울 : 이태원이든 어디든 한국에서 게이들을 대상으로 그런 공간을 꾸렸던 전례가 없지 않나요.

 

임찬혁 : 전 모르겠어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업장에서 시도들은 많이 하신 것 같은데, 아예 처음부터 해야지 계획을 잡고 구조를 그렇게 잡은 건 없긴 없었던 것 같죠. 그래도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요? 어디 있는 것 같기도 하던데, 요즘에 많이 하던데.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운때는 맞은 것 같아요. 페이스북이라는 SNS의 영향이 저하고 제 사업전략하고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형들 세대나, 저보다 그런 걸 먼저 해보고 싶었던 분들은 분명히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소소한 모임을 만들었던 분들도 많이 있고 한데, 그게 노출되고 더 시너지가 된 건 제가 SNS를 워낙 잘 하다보니까, 그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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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낙원 Week 02 파티 포스터 (2013.7.27).


 

 

6. Le Queen

 

 

터울 : 그럼 클럽 Le Queen 얘기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볼 게요. Le Queen은 언제 개업하셨어요?

 

임찬혁 : Le Queen이 2013년 7월에 개업했어요.

 

터울 : 그 때 클럽 CIRCUIT도 남아있을 때였나요?

 

임찬혁 : 그렇죠, 남아있었어요. CIRCUIT에서 3개월 하다 거기에 있던 일반 사장 형하고 좀 안맞아서, 

 

터울 : 아, 거기에 일반이 있었어요? 

 

임찬혁 : 네, 그 원래 ATOM 클럽하던 사장 형이 있었고, 거기에 이제 우리가 VELOCITY를 한 게 연이 돼서, 여기 게이클럽 합시다, 그래가지고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같이 하게 됐고, 

 

터울 : 일반도 게이클럽 사장을 하셨군요. 대부분 게이 아닌가요?

 

임찬혁 : 그렇긴 한데, Pulse같은 경우도 한 분은 일반이시고. 그런데 워낙 그 누나는 게이프렌들리하고, 워낙 가족같은 분이에요.

 

터울 : Le Queen은 어떤 경위로 여시게 되셨어요?

 

임찬혁 : 그러니까 이게 좀 드라마틱하긴 해요. 저는 CIRCUIT을 할 때, 지긋지긋했어요. 게이클럽이고 뭐고, 내가 생각하는 것대로 안따라와지고 그러다보니까, 

 

터울 : 어떤 게 주로, 

 

임찬혁 : 그냥 뭐… 뭐라 그럴까, 지금 팀들은 제가 생각하는 대로 잘 따라준다고 하는 건 뭐냐면, 시설투자 면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여기다 투자하자 하면 그대로 따라주고 하는데, 아무래도 같이 동업했던 그 전의 형들같은 경우는 실질적인 투자자니까, 좀 위험부담도 있고 막 이러다보니까 많이 안 따라와주셨죠. 그리고 저 자체도 파워가 없었고. 

 

이태원에서든 어디든 장사를 하려고 하면, 좀 신고 들어오고 하는 것도 좀 어느 정도 유도리있게 막을 줄도 알고, 그렇지 않으면 홍보력도 있고 이래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좀 부족했었고. 

 

그래서 Le Queen은 아마 얘기드리면 웃기실지 모르겠지만, 처음 오픈할 때 일반 클럽으로 오픈했어요. 

 

터울 : 아 진짜요? (웃음)

 

임찬혁 : 그것도 오직 여성을 위한, 남성이 서빙하는 바로 오픈했어요. 신기하죠? (웃음)

 

터울 : 이건 모르는 사람이 되게 많겠네요.

 

임찬혁 : 그걸로 오픈했는데, 우리 이거 오픈합니다, 그러면서 인테리어 다 해놓고, 일단 오픈하니까 식사하러 오라고 형들하고 지인들하고 다 불렀죠. 그랬더니 '야, 너네 여기 그냥 게이클럽해, 너무 좋은데 왜 안하냐'고 그러는데, '형 저 이제 지긋지긋해서 일반 장사할 거예요' 그랬거든요. (웃음) 그렇게 딱 한 두 달 고생하고, 손님 세 명 놓고 공연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공연팀이, 그 때부터 운때가 맞은 것 같아요. 공연팀에 세빈이가 들어오면서, 세빈이가 그 때 당시 뮤지컬을 했거든요. '드랙퀸'이라고.

 

터울 : 처음부터 세빈씨가 공연팀으로 들어왔던 건 아니었군요. 

 

임찬혁 : 아니에요, 처음부터 들어오긴 했는데, 세빈이는 마담으로 들어왔었어요. 왜냐하면 여자 손님을 대하는 게 우리보단 네가 낫지 않겠냐 그래서 세빈이를 불렀었고. 그래서 저희 그 때도 엄청 고생했어요. 한 3개월 동안 맨날 쫄쫄 굶고, 진짜 맨날 빚만 쌓여가고. 

 

터울 : 지금 Le Queen의 사장님이 세 분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때도 그랬었어요?

 

임찬혁 : 그렇죠, 처음부터.

 

터울 : 그러다가 3개월이 지나서 LGBT클럽으로, 

 

임찬혁 : 그렇죠, 11월부터 Le Queen의 드랙퀸 공연팀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뮤지컬. 그래서 특집으로 뮤지컬 공연팀이 들어온다고 홍보해서, 그 때 당시에 뮤지컬 팀이 들어와서 처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사람이 차기 시작하더니, 특이하게 백설공주 컨셉으로 드랙퀸 쇼를 뮤지컬화해서 공연했는데 그게 초대박이 난 거죠. 그래서 갑자기 Le Queen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어요. 

 

터울 : Le Queen의 쇼가 고전적인 드랙퀸쇼나 트랜스쇼랑 되게 많이 다르잖아요. 그게 뮤지컬 때문에 그랬던 거군요.

 

임찬혁 : 그렇죠, 베이스가 뮤지컬이었죠. 그것도 프로페셔널한 뮤지컬 배우들이, 그것도 기획자랑 이런 사람들이 다 들어와서 한 거라, 심지어 매니저부터 다 라인이 다 뮤지컬팀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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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Queen의 1시 쇼 中 (2015.11.21.)

 

 

터울 : 2013년 11월부터, 그러면 그 전의 쇼들은,

 

임찬혁 : 그 전에는 초청으로만, 우리가 예산이 없어서 정식으로 놓을 수가 없으니까, 초청으로만 9월부터 한두번씩 와서 해주세요, 해주세요 하다가, 아예 그러면 이렇게 해서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해서, 아예 들어와서 해버린 거죠. 그게 대박이 난 거죠. 그래서 저는 그 뮤지컬팀한테 고마워요. 그 기획자 형님이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허풍선이 과학쇼'라는 어린이 뮤지컬을 기획하고 있어요. 잘 되셨어요, 그 형도.

 

터울 : 이게 이런 계보가 있구나. 저는 진짜 신기하더라고요, Le Queen 쇼가. 보통 고전적인 드랙퀸쇼는 분장이나 실연을 과장된 형태로 표현하는데, 그와 다른 느낌의 뿌리가 뮤지컬에서 온 거군요.

 

임찬혁 : 그리고 그게 요즘 어린 친구들한테는 트렌디하게 먹혔던 게, 약간은 좀 그래도 여기는 드랙퀸도 그렇고 다른 퍼포머도 그렇고 예쁘게 하려고 하잖아요. 예쁘게 한다는 게 댄스도 좀 추고, 광대스런 모습보다는 좀 약간 쇼적인 모습이 가미되다 보니까 애들도 좀 부담없이 보는 것 같고. 예술성은 확실히 TRANCE의 드랙들에 비하면, 진짜 드랙 퍼포먼스적인 예술성은 좀 떨어지는데, 

 

터울 : 취향인 것 같아요. 사람마다 TRANCE의 드랙쇼랑 Le Queen 쇼에 대한 취향이 확 갈리더라고요.

 

임찬혁 : 그렇죠. 

 

터울 : 임근준 님의 인터뷰집 『여섯 빛깔 무지개』(2015)에 실린 Anchovy Oil님 인터뷰에서도, 그 분의 드랙 퍼포먼스가 고전적인 드랙퀸쇼랑 다르다는 대목이 기억나네요. 
그리고 새벽 4시부터 게이들이 상의를 벗고 노는 문화는 Le Queen의 시그니쳐가 됐잖아요.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가요.

 

임찬혁 : 그게 Le Queen에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새벽 1시와 3시 공연이 끝나게 되면 4시부턴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4시면 문닫았었어요. 문닫고 Pulse 가서 놀고 그랬어요. (웃음) 그러다가 생각을 했죠, 어차피 클럽도 좋아하고 옛날 서킷 파티 음악을 좋아한 경험도 있으니까, 그러면 4시부터 애프터클럽을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그걸 2014년 1월달에 처음 만들었죠. 

 

홍보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홍보했을 때는 외국 DJ를 불러야 되니까, 한 달에 한번씩 외국 DJ를 무조건 부르자 해서 매월 불렀죠, Le Queen 애프터에. 사실 그건 남는 장사도 아니에요. 섭외비랑 티켓 수입 하면 그냥 똔똔인데, 그것도 저는 일종의 서비스라고 생각했죠. 좀 새로운 음악도 들려주고, 그 문화가 자리잡힐 때까지는 한번 해보자 그래서 했는데, 사람들이 잘 따라와준 거죠. 그렇게 놀 공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는. 왜냐하면 운동해서 몸 좋아지고 했는데, 어디가서 자기 몸을 보여주고 놀 공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요새는 들어올 때부터 벗어요, 4시부터는.

 

터울 : 그게 2014년 1월부터 바로 생겨났던 문화였어요? 

 

임찬혁 : 계속 꾸준히 했죠. 처음에는 애프터타임 돼도 50명쯤 오기 시작하다가, 점점 많아졌어요. 그러다가 2014년 여름이 제일 Le Queen의 피크였어요. 우리 바캉스 갔을 때. 그 때를 기점으로 대박이 터졌죠. 

 

터울 : 그 때 바캉스 간 게 되게 신기했거든요. 왜냐하면 클럽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어디 놀러가고 하는 건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도 그냥 기획하시다 보니까 그렇게 되신 건지, 

 

임찬혁 :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갖고 있던 생각들이 다 녹아나온 것 같아요. 제가 항상 느끼는 게, 저는 클럽 사장이 되고는 싶었으나, 막상 클럽 사장이 되고 나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그렇게 와서, 

 

터울 : 사람과의 관계가, 

 

임찬혁 : 네, 그냥 안녕하세요, 그렇게 하고 그런 게 너무 싫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Le Queen은 가족같단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Le Queen이 cozy하고 작고 그러다보니까 가족같은 분위기가 더 나는 것 같아요. 온 사람들 한 명 한 명 다 볼 수 있고. 사실 Looking-Star는 너무 크다보니까 다 못보거든요. 그런데 Le Queen은 작고, 보면 인사하고 이러다보니까, 그 사람들하고 이왕이면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고생 너무 했어요. 우리는 영업을 다 마치고 일요일날 준비해서 가는 거니까, 우리 직원들이며 뭐며는 다 짐싸고 뭐하고, 

 

터울 : 피곤하니까, 

 

임찬혁 : 가서 막 고기 하고 뭐하고, 그런데 재미는 있었어요. 추억으로 남죠.

 

터울 : Le Queen의 성격이랄 게 자연발생적인 게 아니라 정말 기획 하에 이렇게 된 거군요. 처음부터 인간관계가 탈각된 클럽문화가 싫어서 이런 형태의 클럽을 꾸리게 되셨던 거고, Le Queen 쇼도 뮤지컬 베이스 때문에 그런 형태를 띠게 된 거고.

 

임찬혁 : 그런데 이렇게 죽 보면, 말하다보니까 저도 그 때 기억을 떠올리면서 생각하게 되는데, 운때가 맞는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터울 : 트렌드랑 시류랑도 맞아서, 

 

임찬혁 : 네, 시기랑도 맞아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터울 : Le Queen 얘기를 좀더 하면, 2014년 바캉스를 기획했던 때는 페이스북 인프라가 있었던 시절이었잖아요. Le Queen을 처음 LGBT클럽으로 바꾼 다음에 사실상 반년만에 사람들로 북적이게 된 것도 페이스북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하시는 건가요?

 

임찬혁 : 그렇죠. 저는 페이스북에 많이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러니가 옛날 클럽은 꾸준히 해야 차츰차츰 손님 늘고, 물어물어 오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더뎠는데, 요즘에는 페이스북이 있어서 진짜 오픈한지 한 2주만에라도 사람이 많게끔 만들 수 있으니까, 그게 참 장점인 것 같아요. 

 

터울 : Looking-Star 때도 비슷하게 느끼셨던 건가요? 

 

임찬혁 : 그렇죠. Looking-Star도 SNS에서 전파가 금방금방 돼서, 원래 오픈하자마자 그렇게 사람들이 알아서 오지 않는데, 요즘은 전파력이 너무 좋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제가 올려놓으면 그걸 또 다른 사람이 전달하고 이런 게 되니까, 그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터울 : 끝으로 몰랐던 얘기라서 다시 여쭤보면, 개업 후 LGBT클럽으로 전환하기 전 석달 간 힘드셨다고 했는데, (웃음) 오셨던 여성 손님들은 주로 어떤 분들이었나요? 지금으로선 상상이 잘 안되는데요.

 

임찬혁 : 그 때 2013년 10월 할로윈까지도 일반 여성을 대상으로 장사했었어요. 그런데 홍보를 했는데도 인프라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손님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세빈씨랑 저랑 직접 길거리 나와서 호객했었어요. 들어오시라고, 쇼한다고, 1시 3시 쇼하고, 남자 웨이터들 있다고. 

 

그런데 그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것도 판단 미스였던 거죠. 왜냐하면 여성들끼리 오는 곳이라고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면 뭐야, 레즈비언 클럽이야? 약간 이런다든지, 심지어느 어떤 사람한테는 '결국 와서 돈 쓰는 건 남자들인데 뭐하러 여자들끼리 있는 곳에 가냐'는 얘기도 들어봤어요. 

 

터울 : 그럼 처음에 일반 여성만 들어올 수 있게 만든 기획은 어떤 까닭으로 하셨던 건지,

 

임찬혁 : 처음에 저는 되게 고급스런 이미지를 상상했었고, 그리고 이태원에 여자애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 여자들이 식사를 하러 오거나 하는 사람이 많고, 클럽을 안좋아하고 그냥 와서 편안하게 술 한잔 하고 수다떨고 가고 싶어하는데, 남자 추근덕대는 걸 싫어하는 여자들을 위한 멤버쉽 중심의 라운지바를 원했었어요. 그런데 내 머릿속의 그림과 실제가 달랐던 거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남자 종업원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터울 : 그 때는 게이 종업원을 쓰신 게 아니었군요, 일반 남자들이. 

 

임찬혁 : 그렇죠.

 

터울 : Le Queen의 과거를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Le Queen에 가끔씩 여성분들이 들어오실 때가 있더라고요. 혹시 그 시절을 알고 들어오시는 걸까요?

 

임찬혁 : 아니에요. 그 여성 손님들은 쇼 때문에, 쇼가 일반들에게 좀 유명해졌더라고요. 그래서 쇼 보러 많이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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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의 클럽 Le Queen 입구(2014.11.1.)

 

 


 

7. Looking-Star

 

 

터울 : 이제 클럽 Looking-Star 얘기로 넘어갈게요. 아까 잠깐 얘기나왔던 게 KPOP 얘기였는데, Looking-Star는 KPOP을 전면으로 내세운 클럽이잖아요.  

 

임찬혁 : 원래 저는 클럽에서 KPOP이 나오는 걸 절대 싫어했었어요. Le Queen에서 우리 DJ가 KPOP을 틀면 제가 되게 화를 낼 정도로, 

 

터울 : 정말요?

 

임찬혁 : 네, 왜 클럽에서 KPOP을 트냐고 화를 낼 정도로 싫어했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SNS나 이런 걸 보니까, 이게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더라고요. 음악도 워낙 좋아졌거니와, 요즘 클럽에 나오는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게 EDM(Electronic Dance Music)인데, KPOP에 EDM 장르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냥 가요가 아니라 진짜 말그대로 KPOP이 되고, 안무가 생기고 춤이 되니까 이게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한번 테스트를 해보자 싶어서, Le Queen의 1시 공연 끝나고 3시 공연 사이에 KPOP 타임을 만들었죠. 

 

터울 : 그게 언제였죠?

 

임찬혁 : 그게 Looking-Star 오픈하기 한 3개월 전? 

 

터울 : Looking-Star 오픈이, 

 

임찬혁 : 2016년 5월 13일에 오픈했어요. 

 

터울 : 그럼 Le Queen에 KPOP 타임이 생긴 게 올해 2월 정도네요. 

 

임찬혁 : 그렇죠, 얼마 안됐죠. 그 타임을 만들었더니 또 사람이 많아졌어요. 원래 그 사이는 사람이 텅텅 비었었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많아지고, 너무 즐겁게 노는 거예요. 그걸 보고, 아 이게 사람들이 음악이 즐거우니까 노는구나란 생각을 해서,

 

터울 : 그러면 그 때까지는 Le Queen에 KPOP을 한번도 안 트셨던 건가요? 

 

임찬혁 : 전혀요. 아예 못 틀게 했어요, 한 곡도. 왜냐하면 저는 차별화가 필요했었어요. Le Queen은 약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클럽으로 하고, 그 중 1시와 3시는 쇼를 위한 사람들에게 주고, 애프터 타임에는 클럽 음악만을 원하는 사람들을 잡아주고, 그런데 그 중간에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 한번 줘보자 해서 테스트를 한 거긴 한데, 여기도 KPOP 나오고 저기도 KPOP 나오는 건 싫었어요. Le Queen은 Le Queen만의 캐릭터가 있기를 원했고. 

 

터울 : 그 때는 Pulse에서도 늦은 새벽에 KPOP을 틀었었죠?

 

임찬혁 : 틀었죠, 꾸준히. 그렇게 KPOP을 틀기 시작하니까 사람들도 즐겁게 놀고 잘 됐었고, 그러다보니 Looking-Star에도 그런 수를 둔 거죠.

 

터울 : 이건 DJ분에게 여쭤보는 게 적합할 수도 있겠는데, 그런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클럽의 DJ라면 본인의 음악을 틀고 싶어하실 텐데, KPOP처럼 이미 완성된 곡들을 틀게 할 때, DJ의 음악적 지향과 KPOP적인 선곡 사이에 뭔가 긴장이 있을 것 같아요. 

 

임찬혁 : 그런데 저도, 사람을 되게 잘 만난 것 같아요. 지금 DJ들이랑도 다 잘 지내고, 무엇보다 너무 잘 만났다 싶은 게, 저는 제가 미안해서 물어봐요. KPOP만 틀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 DJ라면 이런 것도 좀 틀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KPOP을 이렇게 재밌게 트는 것도 힘든 거래요, 자기들 얘기로는. 이것도 프로페셔널한 거고, 오히려 이것도 틀고 저것도 틀고 장르가 다양해진다고 생각해야지, 어떻게 KPOP 트는 걸 자존심 상해할 수 있냐, 그건 DJ의 역량이 없다, 오히려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해요. 

 

터울 : 어떻게 보면 KPOP이 어느 정도로 입지가 생긴 거네요. 

 

임찬혁 : 그렇죠, 그게 파워가 된 거죠. 

 

터울 : 사실 이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 게이클럽은 나이트클럽같지는 않잖아요. 어느 정도의 아우라가 있는데, 그 이전 시대를 생각하면 보통 한국의 나이트클럽에서 으레 KPOP을 트니까, 우리는 클럽이다, 이런 게 또 있었을 것 같아요. 초반에는. 

 

임찬혁 : 맞아요. 그 땐 그게 세련됨이었고, 그게 트렌드였고 멋있는 거였는데, 지금 20대들한테는 가요 안 트는 그게 멋있는 게 아닌 거예요. 저는 그걸 확실히 느꼈어요. 왜냐하면 옛날 엄정화 세대의 가요하고, 지금 2NE1이나 프로듀스 101의 음악하고는 질이 다르니까요. 느낌도 다르고 장르도 다르고, 클럽에서 들어도 전혀 손색없는 EDM 장르니까, 게다가 가수들도 패셔너블하고, 심지어는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한류를 좋아하고 옷 따라입고, 이게 패션 트렌드가 됐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일 기분 좋았던 게 Looking-Star 오픈하고 나서 중국 사람들이 놀러왔는데, '아시아 최고의 클럽'이라고 찬사를 하더라고요. (웃음) 다음에 올 땐 곡을 꼭 연습해오겠다고, 제일 유명한 KPOP 곡을 갖다달라는 거예요. 그걸 보고 아, 이게 트렌드구나, 

 

터울 : 저도 처음 홍대 클럽에 갔을 때가 2006년이었는데, 그 때도 한국 가요 안 트는 게 멋있는 거였고, 가요 트는 게 좀 격이 떨어지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어느새 이게,

 

임찬혁 : 바뀐 거예요. 그게 바뀐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Heineken 주최로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하이엔드 뮤직페스티벌 5tardium이 열렸는데, 심지어 거기서도 프로듀스 101의 <Pick me>가 나왔다고 들었다. 그 정도로 시대가, KPOP이 트렌드가 된 것 같아요. 

 

터울 : 이런 흐름이 또 있군요. 나름 그 흐름을 잘 읽고 Looking-Star를 기획하신 거네요.

 

임찬혁 : 그런 것 같아요. 

 

터울 : Looking-Star에 소녀시대가 왔다면서요. (웃음)

 

임찬혁 : 네. 소녀시대도 오고, 연예인들 되게 많이 왔어요, 오픈한 이래로 엄청 많이 왔다 갔어요. 소녀시대, 카라, 또 모델들도 많이 오고 연예인들도 많이 오고, 영화배우도 오고. 좀 있으면 촬영도 해요, 영화촬영도. 좀 그게 운때는 잘 맞은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터울 : 그래도 어느 정도 그 흐름을 읽으셨으니까 가능했던 성취들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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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Looking-Star의 <Pick me> 타임 (2016.5.22.)

 


 

8. I:M​

 

 

터울 : 이제 I:M 얘기로 넘어가볼 게요. 작년인 2015년에 처음 런칭하셨는데, 그 때 보니까 많은 일들이 있었더라고요. 메르스도 있고.

 

임찬혁 : 맞아요.

 

터울 : VELOCITY 하실 때는 참여자로, 디렉터 일을 하셨다가, I:M 때는,

 

임찬혁 : 주최자가 된 거죠.

 

터울 : 둘의 위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랐던 걸까요? 

 

임찬혁 : 그런데 위상을 떠나서, 그냥 뭐라 그럴까, 제가 VELOCITY 할 때도 투자자는 아니지만 스스로 주최자라 생각하고 참여했었고, 그런데 I:M은 진짜로 제 돈도 들어가고 투자가 됐다는 게 다르죠.

 

터울 : 실투자를 시작하신 거군요. 

 

임찬혁 : 왜냐하면 내 클럽을 가지고, 그 전에 (이태원 게이클럽들간의)클럽데이란 것도 먼저 만들게 됐고,

 

터울 : 클럽데이는 언제 만들어지게 됐죠?

 

임찬혁 : 그게 I:M 생긴 해, 2015년 1월에 만들었어요. 2014년 12월에 클럽 Pulse와 GRAY에 건의를 해서, 우리 이걸 이렇게 해서 클럽데이 때 나오는 수입을 계속 모아서 I:M을 만들어보자, 

 

터울 : 아, 이 때 이미 I:M에 대한 계획을,

 

임찬혁 : 계획을 세웠었죠. 그래서 할까말까 다들 그러다가, 이래저래 조합이 잘 맞아서 하게 됐었죠.

 

터울 : 홍대에서 클럽데이를 하다가 없어졌잖아요. 예전의 홍대 클럽데이는 공연하는 클럽과 춤추는 클럽을 함께 묶었었는데, 사실 그렇게 묶으면 말이 많이 생기잖아요. 성격이 다르고, 손님들끼리 서로 싫어하기도 하고, 이랬던 기억이 나는데, 이태원 클럽 Pulse, GRAY, Le Queen도 물론 사장님들끼린 친분이 있으시겠지만 어쨌든 마켓 쉐어가 각자 다르잖아요. 같이 하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임찬혁 : 솔직히 저는, 그 때 당시에 그걸 할 수 있었던 계기가 금요일에 급속도로 사람들이 줄었거든요, 이태원이. 그래서 사람들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좀 모아보자고 했고, 잘 됐어요. 평소보다 각 가게당 100-200명이 더 나오기는 했는데, 당연히 규모가 큰 Pulse는 더 유입 인구가 많았고. 그러다보니까 Pulse 측에서는 다 묶어서 쉐어하는 부분이 있다보니까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을 거고, 그러다 어떻게 흐지부지되게 됐는데, 

 

터울 : 지금은 안하죠?

 

임찬혁 : 네, I:M 이후부터는 없어졌어요. 그리고 올해 I:M은 Pulse는 참여 안하게 되고, 여러 상황이 있었죠.

 

그런데 저는 그게, 사람들한테도 나는 솔직히 이럴 말하면 믿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돈에 욕심이 별로 없어요. 진짜로. 그냥 내가 밥먹을 정도,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돈에 별로. 그냥 핸드폰 요금 내고, 집세 내고, 밥 먹으면 됐다, 근데 밥을 많이 처먹어서 그렇지만, (웃음) 암튼 그거에 되게 연연해하지 않아서, 그런데 Le Queen 사장들이 다 그래요. 우리들이 막 다들 이거 어떡하지, 이러지는 않아서,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냥 이런 날이 있는 게 난 재밌었거든요. 

 

터울 : 그러게요, 이런 기획은 뭔가 상업적인 것만 따지면 할 수 없는 일 같거든요.

 

임찬혁 : 그렇죠, 이건 계산을 하기 시작하면 할 수가 없는 건데, 왜냐하면 각자 가게가 임대료 내는 게 다를 거고, 직원 고용 규모가 다를 건데, 그런데 지금도 고마운 건 큰 클럽인 Pulse가 그 때 당시에 이걸 했다는 건 큰 결정을 해준 거예요, 솔직히 거기로서는. 왜냐하면 거기도 변화를 감지했고, 왜냐하면 해봐야 평수 조그만 코딱지만한 Le Queen이 어떻게 그 대형 클럽한테 하자고 하겠어요. 그런데 각자가 가진 역할들이 있고, 또 충분히 시너지도 나긴 났고.
 
터울 : 그렇게 해서 I:M을 열게 되셨는데, 처음 기획하실 때 그럼 어떤,

 

임찬혁 : 그래서 이제 VELOCITY부터 시작해서 서킷이란 이름을 내세우기는 했는데, 결국은 우리 안의 축제이긴 했어요. 해외 사람들은 많이 모르고. 그리고 규모와 투자 면도 제한이 있었고. 그런데 I:M의 경우는 3개의 클럽에서 같이 클럽데이 예산까지 모아가지고 하다보니까 억대의 투자가 됐고, 또 그 때 당시에 OB맥주라든가, OB같은 경우는 대기업이잖아요. 거기서 투자가 들어왔고, 여러 조건들이 잘 맞춰지면서 제대로된 서킷 파티를 좀 만들 수 있겠다, 마침 장소도 좋은 곳이 나왔고. 이래저래 삼박자가 맞았던 것 같아요. 3개의 클럽을 다 닫고 서킷 파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센세이셔널했고. 그래서 사실은 올해도 Pulse가 같이 하길 바랐는데, 또 거기 입장도 있고 상황도 있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터울 : 말이 나와서 얘기인데, 어쩔 수 없이 대기업 투자가 예산상 중요하잖아요, 자금면으로.

 

임찬혁 : 네, 제일 중요하죠.

 

터울 : 게이 파티에서 대기업 투자가 들어온 시점이 언제부터인가요?

 

임찬혁 : 음, 그런데 솔직히 이것도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투자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게, 제가 생각하는 투자의 개념은, 진짜 아예 Heineken이나 아니면 어떤 브랜드 파티처럼, 파티의 비용 전액을 낼 만큼 어떤 막대한 투자가 들어와야 투자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 같은 경우는, 그러니까 뭐든지 그런 것 같아요. 이게 게이고 일반이고를 떠나서 이게 장사가 되느냐 안 되느냐를 얘네도 판단하는데, 그 때 당시에 3개의 클럽이 함께 하다보니까 그 세 클럽에서 팔아주는 그들의 술만 해도 어마어마하잖아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태원 안에서 게이클럽의 입지가, 영항력이 있고. 왜냐하면 여기다 주류를 배급하는 주류사같은 데서는 게이클럽에서 판매되는 술 판매량의 에버리지가 나오잖아요. 게이클럽은 꾸준하니까, 왜냐하면 경쟁도 적고, 있지만 일반 클럽에 비하면 적고, 그리고 갈 수 있는 곳이 제한돼있고 이러다 보니까,  

 

터울 : 게이클럽은 나름 고정된 마켓으로 계속 인지되고 있군요.

 

임찬혁 : 그렇죠, 그러니까 주류사에서도 어 얘네 봐라, 얘네도 돈이 되는 아이들이네-가 보여지는 거고, 그리고 실질적으로 사람이 몰리다보면, 오늘 제가 낮에 미팅하고 온 것도 사실 앱솔루트에서 직접 연락이 와서 갔다왔거든요. 자기네가 파티와 관련해서 투자하고 싶은 내용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다, 그러니까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 몰리고 이게 돈이 된다 싶으면, 어떤 기업이냐를 떠나서 자기네 이윤과 직결되는 것이라, 붙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터울 : 그럼 그런 투자는 주로 어떤 형태로 들어오는 건가요?

 

임찬혁 : 다양해요. 현금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작년 같은 경우는 기프트 제작같은 것도 다 거의 주류 스폰이었거든요. 부채라든가 타월이라든가. 왜냐하면 거기에 다 자기들 로고랑 이런 게 들어갔으니까. 그런 것들이 있고 그렇죠. 그리고 원래 제일 좋은 건 해외처럼 앱솔루트 하나가 그냥 통째로 팍 들어와서, 그냥 술은 너네가 알아서 제공하고, 그냥 파티에 얼마 찬조금을 낸다든지, 그게 제일 좋은 시스템이긴 한데.

 

터울 :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안의 축제에서 벗어나서 판을 벌려보자는 취지에서 I:M을 기획하셨다는 얘기까지 들어봤고, 그러다 공교롭게 메르스가 터졌죠. 그 때 경위가 좀 궁금해요. 심정적으로도 그렇고 금전적으로도 잡아놨던 걸 미뤄야 되니까 위약금이라든지 뭔가가 있었을 것 같아요, 실무적으로. 

 

임찬혁 : 네, 맞아요. 그런데 메르스가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이 된 부분도 있어요. 왜냐하면 준비해놨던 홍보를 두배로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그래서 조금 더 꼼꼼하게 챙길 수 있었던 것 같고,  더 뭔가 디테일하게 챙기지 못했던 걸 좀더 챙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화위복이 되기는 했는데, 그리고 더 여름 타임이라, 6월이었으면 좀더 안좋았을 텐데 한여름이어서 잘 됐던 것도 있고. 그리고 퀴어문화축제 측에서 하는 행사와도 일정이 비슷해서, 그것도 좀 마음에 걸렸었거든요. 

 

터울 : 그랬겠네요, 파티가 죽 붙어있으니까, 

 

임찬혁 : 네, 그래서 오히려 잘됐다 싶었어요, 하고 나선. 그래서 그 다음해부턴 아예 8월에 하자 그래서 8월에, 

 

터울 : 그래서 8월에 계속 하는 걸로,

 

임찬혁 : 네. 

 

터울 : 그래서 작년 I:M 파티가 나름 성황리에 잘 끝났다고 들었는데요. 흑자는 안 났다고 듣긴 했지만요. (웃음) 어떠셨어요? 해보시면서,

 

임찬혁 : 이제는 나 혼자서 뭔가 할 수 있을 만한 규모의 파티가 되지는 않았구나, 좀더 갖춰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올해 더 느껴요. 왜냐하면 그 전에는 어찌됐건 혼자 하면 되지 하고 낑낑대고 만들긴 했는데, 그래도 해외 서킷에 비하면 미흡한 부분이 많았거든요.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예산도 많이 들어가고 하는데. 올해 하면서, 아 이건 내가 더이상 재미로 할 행사가 아니구나 싶어요. 사실 파티를 만드는 게 다른 사람들도 즐겁지만 나도 만들면서 즐겁기 위해 하는 건데, 즐길 수가 없더라고요, 점점. 너무 힘드니까. 

 

그리고 힘든 것에 비해서, 물론 좋은 소리만 듣자고 하는 건 아니지만, 내 취지와는 어긋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마치 이 파티로 수억 버는 듯이. 그런 사람들도 있고 그러다보니까, 그냥 굳이 이걸 해야 되느냐는 질문을 나 스스로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만약 내년에 기획을 하고 구성을 잡는다면, 그러면 좀더, JL Cultures를 법인으로 만들까-까지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아예 엔터테인먼트 사업쪽으로 분야를 넓혀서, 직원을 뽑고 서포트할 수 있는 어시스턴트를 같이 뽑고 해서, 좀더 체계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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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I:M 파티 공식 로고 (2015.8.21-23.)

 

 

 

 

9. JL Cultures, 게이 파티 기획사

 

 

터울 : JL Cultures 얘기를 해주셨는데요. 이 곳은 언제 만들게 되셨어요?

 

임찬혁 : 2013년 4월에 만들었어요. 그 전에는 VELOCITY나 다른 파티를 꾸준히 만들고, 클럽 CIRCUIT에 있다가 CIRCUIT을 나오자마자 JL Cultures를 만들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파티 기획 능력이 있는데, 나 혼자 못할 게 뭐있냐 싶어서, 저는 그 당시에 CIRCUIT에서의 제 역할에도 좀 자신감에 차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어차피 놀고 먹는 클럽이 많으니, 내가 거기 들어가서 파티 하나씩만 기획해서 열어줘도, 거기서 베네핏을 나눠만 가져가도 나 하는 데 무리가 없겠다, 

 

터울 : 그러면 JL Cultures는 정확히 게이 파티 기획사인 거죠?

 

임찬혁 : 그렇죠. 그런데 Cultures라고 이름을 지은 게, 저는 그 때 당시에도 클럽에서만 하는 파티만 파티가 아니라, 같이 모여서 소규모라도 지금 만들어져 있는 커뮤니티들 있잖아요. 그것도 그냥 문화고, 나중에 얘기 나올 UNICORN부터 시작해서, 그런 모든 게 다 이쪽 사람들의 컬쳐? 그런 걸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가 좀 되고 싶은 게 컸요. 

 

터울 : 클럽뿐만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도 본다는 뜻이 있었던 거고, 거기서 페이스북도 나름 참고를 하셨겠네요. 그렇게 해서 Le Queen을 만드셨던 게 이 해의 일인 거죠? 

 

임찬혁 : 네, 2013년 7월이에요. JL Cultures 만들고 제가 4월달부터 Le Queen 하기 전까지 진짜 파티를 한 열몇 개 만들었어요. 엄청 왕성하게 활동했어요. 운때가 맞아서, 종로에도 막 클럽이 새로 생기고, 어디에도 생기고 그래서 제가 계속 파티를 기획해줬고, 하는 데마다 사람들이 많아졌거든요. 그 때 종로의 클럽 G2의 낙원파티도 5월달엔가 6월달에 해서, 그 작은 가게에 600명이 넘게 왔으니까요. 

 

터울 : 네, 너무 신기했어요. 

 

임찬혁 : 그 때 처음 세빈이랑 드랙 아티스트 Anchovy Oil을 공연에 올렸어요. 

 

터울 : 지금도 G2가 있죠?

 

임찬혁 : 지금은 업종이 바뀌었죠. (웃음)

 

터울 : 종로가 좀 그래요. (웃음)

 

임찬혁 : 그런데 제가 거기서 파티를 하면서 느꼈지만, 이게 종로 낙원파티도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사람이 줄었거든요. 그 지역의 특성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터울 : 거기가 사실 파티랑은 안 어울리니까요, 솔직히.

 

임찬혁 : 네, 안 어울리고, 거기에 포장마차나 술집들이 잘될 수 있는 건 1·2·3차가 되기 때문인 건데, 클럽도 똑같은 것 같아요. 그것 하나만 있으니까, 다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종로에 동시다발적으로 한 2~3개의 클럽이 생긴다 그러면, 이태원 아마 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만약에 동시다발적으로 종로 상권에 동시다발적으로 2~3개의 괜찮은 클럽이 생긴다, 그러면 또, 

 

터울 : 요원하지 않나 싶은데요. (웃음) 그러면 JL Cultures 만드시고 Le Queen을 여신 다음에도 다른 파티 기획을 계속 하시면서 클럽을 운영하셨던 건가요?

 

임찬혁 : 음, 이미 잡아놓은 파티들이 있어서, Le Queen을 오픈하고 나서도 11월에 있었던 VELOCITY 마지막 Episode 6, 웨이브 선상파티까지 제가 기획을 했었고,

 

터울 : 그 때 이후로는 클럽 운영을 하시고,

 

임찬혁 : 클럽 운영에 전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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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L Cultures 로고 (2013.4.)

 

 

 

터울 : JL Cultures의 로고가 신박한데, 전 이게 이름(Justin Lim) 이니셜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웃음) 그리고 여기엔 다른 의미도 담았다고 들었는데요. 

 

임찬혁 : 네, Just Life란 뜻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차피 게이 라이프도 그냥 삶이다, 단지 삶일 뿐이지 그게 특별하지 않고, 우리도 즐기고 우리도 이런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렇게 꺼리지 않고, 

 

터울 : 옛날에는 게이들이 즐기는 문화가 '주말 게이'처럼 삶과 아주 분리된 상태였다면, 지금은 즐기는 문화가, 

 

임찬혁 : 그러니까요, 다양해지고, 

 

터울 : 삶의 일부로 확 들어와버린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임찬혁 : 그리고 사람들이 겪으면서 좀 생각들도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다들 같은 생각이겠지만, 굳이 이렇게 분리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고, 그리고 클럽 문화 외에 같이 모여서 영화도 보고, 같이 모여서 보드게임도 하고, 약간 이런 것들이 많아진 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터울 : 맞아요. 그러면 JL Cultures의 활동은 계속 진행 중인 거죠?

 

임찬혁 : 그렇죠. 그래서 사실은 JL Cultures를 Le Queen 파티할 때마다 로고를 넣기는 했었어요. 결국은 내가 기획하는 브랜드를 계속 노출하고 싶어서. 그런데 이렇게 딱 구성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그냥 놨었던 건데, 그걸 잘 정리해서 나중에 그걸 좀 브랜딩해서 뭔가를 해볼까, 그런 계획은 있어요.

 

터울 : 한국인 게이 고고보이분들이 생겨난 것도 이 JL Cultures와 연관이 있지는 않나요?

 

임찬혁 : 감히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너무 거만한 것 같은데, (웃음) 사실 그 전에도 만들려고 노력했고, 있긴 있었어요. 그전에도 고고보이라고 해서 부르기는 했는데, 마사지샵에서 일하는 친구들 그냥 팬티만 입혀놓고 춤추게 하고 그게 고고보이다, 이렇게 했던 경우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도 고고보이에 대해서 되게 cheap하고, 그냥 쟤네 옷벗는 애들, 이 정도였는데 지금은 조금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터울 : 마치 아이돌처럼,

 

임찬혁 : 그런데 그렇게 스타화된 게 사실 그 무대 때문이거든요. 솔직히 소녀시대도 포장마차에 가서 노래 시키면 그건 진짜 3류 가수가 되지만, 진짜 제대로 갖춰진 무대에 제대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분위기만 갖춰지면, 그 때부터는 누구든 서고 싶어도 아무나 설 수 있는 무대가 아니게 되니까, 저는 그래서 그 무대가 되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서, 그 무대를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게 저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노력해온 사람들, 또 같이 변화해온 시대, 그런 것들이 같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터울 : 국가별로 고고보이 문화의 차이도 살짝 궁금해요. 

 

임찬혁 : 예전에는 한국의 고고보이 문화라는 게 아예 없었죠, 제대로 자리잡힌 게. 그냥 옷벗고 올라가는 게 고고보이, 약간 이런 거였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죠. 그리고 다 발굴해낸, 제가 많이 발굴했어요. 

 

터울 : 아 진짜요? (웃음)

 

임찬혁 : 그러니까 전혀 올라갈 사람이 아닌데, 옛날에 대만 서킷파티 G5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고고보이 썼던 Kang이란 친구도 제가 20살 때부터 고고보이로 만들었어요. 지금은 없어진 파티인데, 연말파티인가, 제가 20살 때부터 꼬맹이 때부터 고고보이로 만들었던 친구가 메인으로 켄타랑 같이 섰었죠. 

 

터울 : 아무래도 고고보이 관련해서는 별도의 특집을 마련해야 할 것 같네요. (웃음)

 

임찬혁 : 한번 해주세요, 고고보이들. (웃음) 왜냐하면 인식들도, 고맙기도 한데 그들 스스로의 인식도 많이 변화한 것 같아요. 

 

터울 : 게이커뮤니티의 고고보이 문화는 참 독특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이성애자 여성 스트립걸과 비교하자면 위상이 전혀 다르니까요. 게이 고고보이들이 커뮤니티에서 아이돌처럼 돼있는 게 되게 특이한 거고, 상대적으로 성매매의 이미지에서 자유로운 점이 특히 이성애자랑 다르니까,

 

임찬혁 : 그렇죠. 그런데 요즘에는 고고보이 문화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권에서는 고고보이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아요. 많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예요, 요즘엔. 그래서 저도 고고보이의 미래가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바뀌어야 할 트렌드는 그냥 단순히 옷벗고 언더웨어입고 춤추는 게 아니라, '퍼포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요즘에 댄스 추는 친구들 좀 유심히 보고 있고, 약간 춤을 춰도, 

 

터울 : 그러니까 몸이 아니라, 퍼포먼스, 

 

임찬혁 : 그게 되게 매력적이고 섹시하더라고요, 저는 요즘에 보니까. 암만 돈 꽂아주고 해도, 그건 사실 어디서 왔냐면 일본에서 온 거예요. 고고 퍼포먼스를 하는 스타일, 팁 꽂아주는 문화, 이게 아시아에서는 일본 파티에서 온 거예요. '고고보이'란 네이밍도 같이 해서. 그런데 그게 이제 앞으로는 트렌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몸이 갖춰진 애들이 멋있게 춤을 추면 너무 섹시한 것 같아요.

 

터울 : 이건 여담인데, 한국의 게이클럽 문화에 일본발 클럽문화와 서양발 클럽문화가 뭔가 부딪치는 느낌이 있잖아요. 가령 트랜스젠더 클럽도 일본에서 온 거잖아요. 가라오케 문화도 비슷한데, 그게 점차 서구화되는 양상들이 있는 것 같아요.

 

임찬혁 : 그렇죠. 그런데 이게 약간 어쩔 수 없는 게, 일본 미국 두 나라 다 우리가 교류하고 접하는 나라라, 젊은 세대들이야 미국 문화권을 보고 따라하려고 하다보니까 그런 것 같고, 옛날 세대들이야, 클럽 여보여보도 사실 일본의 정통 트랜스젠더 바의 형태를 갖춘 거니까요, 사교장으로서. 그런데 그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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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Le Queen이 있는 이태원로27가길 (2016.5.21.)

 

 

 


10. 이태원 주변 상가들과의 관계

 

 

터울 : 이제는 이태원에서 나름 이름이 있으시잖아요. 게이클럽 말고 주위 이태원 업소들과의 관계도 되게 궁금해요. 아까 살짝 얘기 나왔는데 단속이 들어올 때도 있다고 하셨고, 소음 때문에 트러블이 있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임찬혁 : 그러니까 이게 이태원이, 어딜 가든 안 그렇겠냐만 이태원은 이상하게 되게 세련돼보이고, 해외 친구들도 많은 것 같고 겉으로는 그래보이지만, 되게 시골같아요. 조직화돼있고, 토박이들이 토착돼있는 곳이라서,

 

터울 : 텃세 있고, 

 

임찬혁 : 텃세도 있고, 임대업 하는 사람들끼리의 유대관계도 너무 많고, 조폭들도 워낙 많고 그래서, 여기서 굵직굵직한 건물들 주인 중에 조폭들도 많고, 관리 명목 하에 붙어있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보니까, 그렇게 인맥이 생기기도 해요, 어쩔 수 없이. 밤문화 업소다보니까, 그런 분들과의 인맥도 생기게 되고. 그런데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옛날처럼 거리끼는 사람들이 아니다보니까, 

 

터울 : 기업형으로 바뀌어서,

 

임찬혁 : 네, 그렇죠. 거의 다 기업형이죠, 지금은. 그러다보니까 그렇게 됐고, 그리고 주변에 (홍)석천이형하고도 잘 지내고, 여기서 장사하시는 분들하고도 교류를 해요, 아무리 일반이어도. 

 

터울 : 가령 어떤 형태가 있을까요?

 

임찬혁 : 뭐 거기 식당 가서도 밥도 먹어주고, 그분들도 오시기도 하고, 서로 뭐 좋은 자리 나면 알려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게 타지에서 오면 여기서 장사하려고 아무리 부동산 돌아다녀도 좋은 데를 안 내줘요. 

 

터울 : 아, 여기서 머문 구력이 좀 있어야,

 

임찬혁 : 그렇죠. 그런 면에서 저는 Le Queen 자리를 소개받은 게, 여기 글로벌 라운지 형님이 소개시켜주신 거거든요, 여기 일반 라운지바에서. 그 형님한테 너무 감사하죠. 왜냐하면 그 때만 해도 여기가 비포장도로에 앞에 편의점도 없고, 여기가 완전 주말 밤 되면 깜깜한 거리였어요. 죽어있는. 그런데 Le Queen 들어오고 갑자기 포장도로가 깔리고, 편의점 생기고, 

 

터울 : 처음에 그 앞 도로가 포장돼있었던 게 아니었군요.

 

임찬혁 : 네. Le Queen 계약하고 2개월 뒤에 포장이 됐어요. 

 

터울 : 야, 정말 그건 진짜 '운때'네요. 아까 말씀하셨던 운때는 제가 웬만하면 안 믿는데, 이건 진짜 운때네요. (웃음)

 

임찬혁 : 그리고 그 다음에 갑자기 맞은 편에 편의점이 생기고, 여기 주변에 클럽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거리가 살아났죠. 그래서 Le Queen을 호시탐탐 노리는 일반들도 많아요. 들어오고 싶어서. 

 

터울 : 그러면 그 일반 분들이 여기에 나름 게이 상권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계신 거죠?

 

임찬혁 : 아주 많이요. 왜냐하면 Le Queen은 특히나 드랙 분장을 하고 나와있고, 또 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Le Queen에 오는 애프터타임에 오는 사람들이 워낙 인물이나 몸들이 좋으니까 눈에 확 띄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도 전 좋은 것 같긴 해요. 너무 우리가 저쪽에서 숨어있지 않고, 이렇게 메인 스트릿에 나와서 우리끼리 아무렇지 않게 서 있고, 또 여자애들도 그걸 좀 보고, 이제 좀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전 스스로. (웃음)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걸 그 사람들이 좀 접하기도 하고. 

 

터울 : 하긴 클럽 GRAY가 근처로 오기 전까지는 Le Queen이 여기서 독보적인 LGBT 클럽이었던 것 같아요. 

 

임찬혁 : 그렇죠, 아예 없었죠. 

 

터울 : 게이클럽이 여기 있다고? 이런 느낌이었으니까요. 혹시 이웃들 중에 게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있나요? 혹시 계세요?

 

임찬혁 : 있을 수가 없죠.

 

터울 : 마켓 쉐어가 있으니까,

 

임찬혁 : 네. 그리고 실질적으로 저는 석천이형한테도 되게 고맙고, 또 여기서 큰 클럽들이나 큰 레스토랑 하시는 분들 중 게이 형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 형님들한테 고마워해야 돼요. 왜냐하면 그런 초석을, 게이들이 하면 뭐든 된다, 게이들이 하면 상권을 만든다, 이게 일반들한테도 인식이 돼버리다 보니까. 저도 업자 알아보러 다니고 하면, 게이라 그러면 되게 프렌들리해요. 

 

터울 : 아 진짜요?

 

임찬혁 : 네. 그리고 건물주들이 좋아해요. 그런 이미지가 생겨버렸어요. 그래서 그런 면에 있어서는 그 형님들이 되게 잘해주신 거죠.

 

터울 : 그야말로 이런 평판을 잘 만들어서 주신 거네요. 그렇구나, 감히 호모가 싫다고 얘기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가, (웃음) 

 

임찬혁 : 그렇죠, 맞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 같아요. 솔직히 싫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싫어도 어차피 그 사람들한테 피해 안 가고, 그리고 워낙 이태원 자체가 서로 교류가 많으니까요.

 

터울 : 그렇구나, 그 정도 입지군요, 사실 그 정도인지는 잘 몰랐어요. 여기 이태원 가게들 중에 게이 사장이 많았다는 것도 잘 몰랐고, 남들이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을 만큼, (웃음)

 

임찬혁 : 되게 많아요. 이태원은 아마 조금 잘되는 바나 잘되는 클럽들 중엔 게이 사장이 많을 거예요. 유대가 워낙 잘돼있고, 토박이들이 또 많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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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Looking-Star에서 열린 콘서트 UNICON (2016.7.9.)

 

 

 


11. UNICON(UNIque-music CONcert)

 

 

터울 : UNICON 얘기로 넘어갈게요. 클럽 Looking-Star에서 올해 7월에 열렸던 콘서트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왔죠. 그게 사실 제 생각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돈이 될 만한 행사는 아닌 것 같거든요. 

 

임찬혁 : 네, 돈 보고 한 건 아니에요. (웃음) 

 

터울 : 이걸 기획하시게 된 경위가 듣고 싶어요. 

 

임찬혁 : 저는 그런 행사를 하면 되게 피곤하거든요, 사실. 신경쓸 것도 많고. 그런데 저는 왜 그런 걸 하면 재밌는지 모르겠는데, 그걸 제가 주최는 했지만 주관은 Moi:m이라고, Muzixay를 기반으로 한 음악하는 애들이 만든 건데, 앞서 언급한 Triangle의 MouM에서 한달에 한번씩 공연을 계속 했었어요, '오픈마이크'라고. 그래서 그 친구들한테도 항상 말은 했었어요. 나중에 언젠가 형이 큰 클럽하면 너네들이 콘서트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이야기했었던 터였고, 그리고 Looking-Star를 계획할 때부터 공연용 앰프라든가 마이크 등 공연장비를 추가로 설치했었어요. 아예 기획이 돼 있었던 거였고, 

 

터울 : 처음부터요?

 

임찬혁 : 네, 그런데 언제 할지는 몰랐었던 거였고, 

 

터울 : 의외로 빨리 된 거네요.

 

임찬혁 : 빨리 됐죠. 왜냐하면 그건 그 Moi:m 친구들한테 고마운 게, 얘네들이 너무 열심히 해요. 에너제틱하고. 솔직히 걔네들한테 수익이 가는 구조가 아니거든요, 심지어. 그냥 너네 알아서 와서 해라, 형이 장비랑 이런 거 렌탈하는 비용 내줄게, 너네는 공연해라, 하면 솔직히 걔네한테는 무대가 고마운 거예요. 그 무대가. 그러니까 너무 열심히 준비해주고, 힘든 일인데 Moi:m측에서 연락해서 다 짜갖고 오고, 그래서 계획하게 됐고. UNICON 이름은 제가 지었어요. (웃음) 그런데 그런 게 되게 재밌어요, 저는. 좋아요. 클럽 외의 행사를 하는 게.

 

터울 : 그게 참, 뭐라고 해야 될까,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지금 잘될 때 돈을 땡기셔야 할 것 같은데, (웃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임찬혁 : 그런데,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런 걸 해서 그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느는 것 같아요, 그게 나중에 다 밑천이 되는 것 같고, 장사에. 사실 요즘에 저희 때문에 Pulse가 무료 입장을 하고 있잖아요. 금요일 토요일 무료 입장을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꾸준히 사람이 오고 있거든요. 그건 분명히, 저는 솔직히 걱정됐었어요, 두렵고. 왜냐하면 이러다가 사람들이 또 무료 입장 하는 데로 몰려가는 거 아닌가 하고, 그런데 이제 게이들도 좀 인식이 바뀐 사람들도 있고, 돈만 보고 따라가지는 않는구나라는 걸 좀 느낀 게, 이 돈을 내고도 가치있는 클럽이 된 거잖아요, 어찌됐건. 다른 데 다 공짜인데. 그걸로서 나는 좀 고맙고. 

 

그리고 솔직히 Pulse도 되게 영업 잘했고, 고맙고 한데, 아쉬운 건 왜 한번도 게이커뮤니티를 위해서 한번도 어떠한 걸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정도까지 했으면 솔직히 뭔가는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근데 그걸 이해는 해요. 그 형들은 워낙 연세도 있으시고, 같이 교류할 수 있을 만한 인맥이나 이런 것들도 없었을 테고. 그런데 저는 제가 즐기니까 하지, 사실 밤 클럽 업소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 활동하는 게 힘들어요. 잠을 안 자고 나와야 되고, 그리고 조금 더 자기가 부지런해야 되는 거라서.

 

터울 : 종합하면, 게이커뮤니티를 의식하고 어떤 활동을 하시는 게, 단기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매출에, 그걸 의도하지는 않더라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시는 거군요.

 

임찬혁 : 그렇죠, 그런 것도 그렇고, 그냥 장사 생각하면 못하죠. 그냥 같이, 왜냐하면 제가 뭘 느꼈냐면, 커뮤니티 사람들이 이 클럽에 나온다고 나는 생각을 안했어요. 그런데 친구사이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여서 그렇지만, 클럽 나오고 어디 즐기러 나오는 사람들 자체도 게이고 결국에는.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우리는, 게이들은 그런 생각 많이 하잖아요. 게이클럽 하면 우리 돈으로 다 돈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장사는 어디든 다 똑같은 거고, 그 돈을 번 것만큼의 베네핏을 우리는 줘야 되는 거고.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도 난 그게 다 하나의 서비스라고도 생각하고. 무엇보다 그냥 제가 재밌어서 해요. 딴 걸 다 떠나서.  

 

터울 : 대단하세요. (웃음)

 

임찬혁 :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웃음)

 

터울 : 제가 볼 때는 대단하네요. 

 

임찬혁 : 진짜 그냥 재밌어요, 그게. 

 

터울 : 사실 그 전에는 뭔가 커뮤니티에 클럽이 구색상 끼어있는 거지, 실질적으로 함께 한다는 느낌은 잘 안 들었다면, 그런 느낌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임찬혁 : 또 같이 동업하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마음에 안들어하거나 싫어하면 몰라도, 같이 하는 사람들도 너무 그걸 좋아하니까요. 세빈이도 적극적이고. 

 

터울 : 저도 다른 클럽과 Le Queen이랑 Looking-Star이 다른 점은, 커뮤니티와 명백히 같이 간다는 사인이 계속 있으니까, 그게 신기했던 게 있어요.

 

임찬혁 : 저는 그건 앞으로도 고수하고 싶어요. 그게 장사가 되든 안되든, 내가 이렇게 같이 그 사람들과 있고, 내가 번 걸 좀 이렇게 Oblige도 해야 될 것 같아요. 좀 쓰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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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보릿자루』가 100분의 이반업소 업주들을 대상으로 '진상 고객'에 대해 설문조사한 답변 중 일부. 

"'보갈'이 아니라 '이반'인 '인격체'라는 것을 너무 부정하는 고객들은 정말 싫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런 고객 소금 뿌려」, 『보릿자루』 9, 1999.7.1., 12쪽.)

 

 

 

터울 : 사실 초창기의 게이 업소들, 클럽이 아니더라도 가라오케나 DVD방이든지, 그런 곳의 업주분 관련 자료들을 보면, 그 분들도 사실은 그런 얘기를 하세요. 이게 돈만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커뮤니티의 기반을 닦는다는 감각을 갖고 계신데, 물론 그러다가 가게가 망하기도 하고, 커뮤니티에 실망도 많이 하고 그러는데요. 그런데 커뮤니티와 업소가 함께 간다는 그 흐름이 공공연하게, 확실히 성공 모델로 자리잡은 게 지금의 Le Queen, Looking-Star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기한 느낌이 있어요.

 

임찬혁 : 그러니까 그건 나는 고마운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에 사실, 돈을 위해서 커뮤니티에 힘을 쓴다고 했을 때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된다고 하면 다 커뮤니티에 신경쓸 텐데, 

 

터울 : 그렇진 않죠.

 

임찬혁 :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사람들도 오는 것 같고. 그리고 저는 사실 Le Queen이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했을 때도 사람들한테 이슈였고, 올랜도 LGBT 클럽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제에 참석했을 때도 그렇고, 사실 그런 게 이슈화되었을 때 조금 부끄럽거든요.

 

터울 : 왜요? (웃음)

 

임찬혁 : 이게 뭐 당연히 나는 좀 해야 되는 것 같고, 하고 싶었던 것들인데, 왜 이렇게 이슈가 될까,

 

터울 : 그 전에는 그만큼 그런 식으로까지 게이클럽이 이슈에 대해 개입하거나 그게 전면화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임찬혁 :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렇게 좀 참여하고 하면서 저도 배워요. 많이 배웠어요. 그러니까 저도 인식이, 처음 Le Queen 오픈할 때나 그 전에 파티 만들 때나 지금을 비교해보면, 게이가 추구해야 되는 삶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터울 : 어떻게 바뀌셨어요?

 

임찬혁 : (웃음) 저는 솔직히 놀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게이는. 그냥 어차피 인생 한번 태어난 거, 나중에는 가족이 있을까 뭐가 있을까, 어차피 그냥 즐길 대로 즐기고 놀고 먹고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많이 바뀌었죠. 그게 다가 아니구나,

 

터울 : 조금 더 필요한 것이 있구나,

 

임찬혁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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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PULSE : 서울-올랜도 연대 촛불문화제>에서 공연하는 Le Queen 공연 팀 (2016.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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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제가 끝난 당일 Le Queen 입구 (2016.6.17.)

 

 

 


12. <LIFEPULSE : 서울-올랜도 연대 촛불문화제> 참석

 

 

터울 : 자연스럽게 올랜도 추모 집회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부끄럽다고 하셨는데, 뭔가 그래도 추가적인 소회가 어떤 게 있으셨을지, 저는 사실 신기했던 게, 왜냐하면 그 자리는 정말 클럽 관계자분들이 오시면 너무 빛이 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올랜도 참사가 클럽에서 일어난 혐오범죄였기 때문에. 그래서 오셨을 때 그 임팩트라는 건 정말 강했던 것 같아요. 

 

임찬혁 : 그랬나봐요. 더군다나 인권운동 하셨던 분들에게는 그게 더 그랬는지, 그날 유독 포스팅도 엄청 많이 올라왔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그 기사를 처음 봤을 때, 그 때가 언제였냐면 아마 주말 장사 끝나고 집에 가서 누웠는데 그 기사가 보였나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처음에 기사를 봤는데 게이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보고서 솔직히 저는 찝찝해서 껐어요. 괜히 이거 분위기 타면 그렇겠다, 왜냐하면 그 때만 해도 사상자 수가 알려지지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든요.

 

터울 : 속 시끄러운 얘기니까요, 사실.

 

임찬혁 : 네, 더군다나 장사도 끝나고 왔는데 피곤하고. 그런데 점점 기사들을 보니까 그렇게 흘러가서는 안될 방향으로 좀 흘렀잖아요, 이야기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기도 하고, 그리고 참사가 일어난 올랜도 클럽 이름이 'Pulse'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오히려 Pulse에서 좀 의견 표명을 하거나 하면 되게 드라마틱하겠다, 약간 그런 생각도 했었거든요, 사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친구사이의 종걸님에게 먼저 연락이 왔고, 추모제 때 발언을 해주는 게 어떻겠냐, 그래서 저는 부끄럽지만 흔쾌히 승낙은 했죠. 제가 그런 자리에 가면 오히려 영광이겠다고 생각을 했고, 한다고 했더니 세빈이가 그럼 Le Queen 공연팀도 참가하겠다고, 그래서 그럼 다 같이 가자, 그렇게 해서 이제 같이 가게 된 거죠.

 

터울 : 너무 좋았어요.

 

임찬혁 : 그런데 저희도 되게 많이 느끼고 오고, 또 많이 얻어오는 것 같아요. 사실 퍼레이드도 그렇고, 인권단체들이랑 접한 게 저도 얼마 안됐는데, 그렇다고 깊이 교류하는 건 없잖아요, 사실. (웃음) 이렇게 잔잔히 서로 부딪치는 정도인데, 점점 이렇게 부딪치고 할수록 많이 배우고 느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클럽이 물론 유흥 공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방향은 있지만, 그래도 좀 이렇게 좀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이 유흥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한테 좀 던져줘야 되는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이 좀 생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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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Folsom Street Fair 2015 포스터 (2015.9.27.)

 

 

 


13. 서킷 파티의 미래

 

 

터울 : 마지막 질문인데요. 질문지를 그대로 읽을게요. (웃음) 한국의 게이 클럽 씬은 1990년대 초 게이커뮤니티가 탄생한 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1990년대 말부터는 완연한 형태로 자리잡았고, 전반적인 게이 문화 진영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음은 물론, 최근에는 인권운동단체와의 연대 및 다양한 공연활동과의 연계 등으로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고요. 이렇게 게이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클럽에 대해, 이를 운영하시는 철학을 여쭙고 싶고, 찬혁님이 생각하시는 게이커뮤니티에 대해 여쭙고 싶다고 질문드렸는데, 사실,

 

임찬혁 : 다 얘기하면서 나온 것 같은데요? (웃음)

 

터울 : 네, 얘기하면서 다 된 것 같고요. (웃음) 몇 가지 이야기됐던 것이, 클럽이 게이커뮤니티란 말에서 갖는 반향이 늘어나고 있고, 그것이 단순히 노는 것을 넘어서 뭔가 생활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있고, 거기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고, 이런 것들이 확인된 것 같은데요.

 

제가 인터뷰 중에 궁금했던 것은 두 가지 정도였어요. 제가 인권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야겠죠? (웃음) 그런데 활동 내용을 따지면 그냥 무료로 봉사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 저도 돈을 안보고 활동하는 거겠죠, 지금 이 기사도 돈 안 받고 쓰는 거고요. (웃음) 사실 그런 입장에서, 그런 기준에서 보면 굉장히 인권운동적인 활동을 하고 계신 거잖아요.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은.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활동의 깊이나 질적인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충분히 어떤 인권활동만큼이나 중요한 활동을 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반면에 장기적으로 봤을 땐, 인권활동 안에서도 그런 얘기가 많이 하거든요. 너무 자원봉사로만 항상적으로 굳어져서 하면 안되고, 

 

임찬혁 : 그렇죠, 맞아요.

 

터울 : 좀더 커져야 되고, 좀더 분화되어야 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사실 사업가이시기도 하잖아요. 여러 활동들을 본인이 좋아서 하고 계신다니 저도 너무 좋고, (웃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이게 좀더 커졌으면 좋겠다는 어떤 뷰도 사실은 있으실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래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은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보니까. 

 

임찬혁 : 그래서 이건 내가 내 입으로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사실 지금 I:M 같은 경우도, 대형 서킷 파티를 제가 처음 꾸렸던 목적이 그거였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즐겁게, 게이들이 즐겁게 놀아야돼, 한국에도 이런 문화가 생겨야돼, 이건데. 이게 제가 사업을 해보니까 이건 절대로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사업은 아니에요. 물론 제가 몇 억을 투자하면 되는데, 제가 그만한 예산도 없고, 또 그 파티의 파이를 이만큼 키우려면 날 돕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되는데, 이 사람들을 내 돈을 들여 고용하면서 뭔가 이렇게 운영하기에는 이만한 파티씬을 만들 수가 없어서, 

 

지금은 3개의 클럽 이렇게 하고 뭐하고 해서 I:M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수익 구조로 가지만, 전 나중에 브랜딩화하는 최대 규모의 파티는, 미국의 BDSM 파티인 Folsom Street Fair 같은 형태를 구상하고 있어요. Folsom Street Fair는 전액 기부 파티잖아요. 그래서 심지어 걔네들이 길거리에서 섹스를 하든 가죽을 입든 뭘 하든간에 그걸 제재하지 않는 게, 거기서 한 해 몇십 억의 수익이 기부된다고 그러더라고요.

 

터울 : 어디로 기부되나요?

 

임찬혁 : 심장병 어린이인가? 아무튼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된다고 들었고요, 저도 정확하겐 모르겠는데. Folsom이라고 지역 이름인데, 그게 가죽 본디지, SM하는 파티예요. 그래서 포르노스타들 막 나오고, 길거리에서 막 하고 사진 찍고. 그런데 그게 도시 문화로 정착되고 페스티벌이 돼서, 진짜 말도 안되는 상식 이하의, (웃음) 길거리에서 행위를 하는데도 그게 용납될 수 있는 건, 그게 좋은 취지의 행사가 되고, 그러기 때문에 또 그런 사람들도 있구나라는 게 알려지고 하는 건데.

 

그래서 최종의 궁극적인 대한민국 서킷 파티의 목적지는, 저는 그런 건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어요. 태국이라든가 일본이라든가 대만이라든가, 서킷이 여러 개가 있지만, 분명히 걔네는 수익 사업이고 돈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미 Le Queen도 갖고 있고 Looking-Star도 있고, 호텔포차도 있고, 난 여기서 나오는 걸로 난 좀 충분한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내가 이 다음에 파티를 만들 때 내가 즐기고 재밌게 하려면, 돈 갖고 할 게 아니라 약간 이런 구조? 그러니까 뭔가 수익에서 기부로 들어가는, 그런 걸 하고 싶은 게 제일 궁극적인 목적이죠, 나중은. 그런데 지금 I:M이 다른 사장들도 연계가 돼있고 그러다보니까 못하는데, 나중에는 그렇게, 세빈이도 그렇고 저랑 같이 하는 민이형도 그렇고 그런 의견을 같이 막 얘기하거든요. 

 

터울 :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수익금을 어디로, 사회적인 기부로 돌리는 방식을,

 

임찬혁 : 네, 그렇게. 그래서 저는 제가 좀 건방진 생각일 수도 있지만, 사실 퀴어문화축제 공식파티의 규모가 커진 게 얼마 안됐고, 진짜 대단하거든요, 올해 Private Beach 가서도 느낀 것이 많고. 이렇게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 사람들이 이 파티를 보는 시각도 생길 거고, 당연히 기업들도 붙을 거고, 왜냐하면 사람이 많아지면 돈이 되니까 기업들이 분명히 붙을 거예요, 스폰이고 뭐고. 그런 걸 좀 잘 이용했으면 좋겠거든요, 저는 그것도. 그런데 가끔 인권단체 측 사람들을 보면 그게 이제 좀, 약간 중간에 대립되는 부분이 그건 것 같아요.

 

터울 : 대기업 후원을 아예 들이지 말자는, 

 

임찬혁 : 예, 사업성을 들이지 말자는 주장. 그런데 충분히 그런 부분을 잘 들이면서, 그걸 잘 이용해서 쓰면 기업 후원이든 뭐든, 하면 좀더 그럴싸할텐데, 모르겠어요, 제가 정치적으로나 인권적으로 그런 지식은 많이 없어도, 저는 제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형태대로 게이들에게 만약 파티를 해서 수익금이 생기면, 그걸 일반들도 알 수 있는 어떤 기부행사로 된다든지, 그런 포맷이 되면 좀 다르게 보지 않을까, 

 

터울 : 사실 이게 "수익성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이 발언만 잘라서 나가면, "무슨 장사꾼이 뭔 소리야"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을 텐데, (웃음) 이 인터뷰를 죽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납득이 되실 것 같아요. 사업성을 끼고 더 큰 어떤 판을 벌려서 더 큰 사회적 가치로 간다는 비전이 있으신 거잖아요. 

 

임찬혁 :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함부로 그런 것들을 얘기하기 조심스러운 게, 인권단체 측과 알게 된지가 얼마 안되는데, 사실 보고 처음에는 "어우 저게 인권운동이야? 저렇게 하는 게 인권에 도움이 되겠어?" 저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인권에 힘써야지, 약간 그런 생각도 하고 했었는데. 

 

그러니까 생각이 바뀌었다는 게 그런 것들이에요, 아 이렇게도 운동할 수 있고, 저렇게도 표현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데, 저들이 하는 방식에도 내가 배워야 할 가치들이 많구나,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알았죠. 그러니까 개념적인 부분들. 저는 제 상식에서만의 인권을 생각했던 건데, 개념과 논리로 들어갔을 때 진짜 인권이 뭐며, 그리고 어떤 걸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거며, 그런 것들을 좀 많이 배우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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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2015년 미국 HBO에서 방영된 드라마 <Looking>

 

 

 

 

14. 일상으로 성큼 들어선 놀이 문화, 그럼에도 남는 삶의 과제

 

 

터울 : 이 인터뷰를 준비하기 전에 제 머릿속에 있었던 이분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게이의 삶이 있고, 놀이라는 건 사실 그 가운데 협소한 부분이고, 놀이 외의 부분에서 할 게 아직 많고, 그런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보니 놀이라는 것도 어쨌든 외연이 커졌고, 삶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지분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 설득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 외에 다른 삶의 부분들이 많잖아요.

 

임찬혁 : 너무 많죠. 

 

터울 : 그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하시는 바를 듣고 싶어요. 이건 필요할 것 같다든지, 물론 지금도 충분히 놀이 문화의 확장과 커뮤니티와의 접점에 애쓰고 계시지만, 본인이 뛰어들어서 하지 않더라도 지금 게이의 삶에서 필요한 많은 국면들 중에, 놀이 문화나 하고 계신 것 말고 추가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체감하신 부분들을 여쭤보고 싶어요.

 

임찬혁 : 어떤 부분이 필요한 것 같냐면, 요즘 느끼는 건 외로우니까 실버 게이들을 위한 정책이 제일 필요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례가 없는 것 같아요. 노년을 어떻게 멋있게 보냈다든지, 노년의 삶을 게이로서 어떻게 지냈다는 사례가 없는 것 같아서, 그런 교육들도 좀 필요한 것 같고. 그리고 또 느끼는 건, 정확한 게이들의 성교육도 좀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요. 

 

터울 : 그렇게 했는데도 부족하죠 사실, (웃음)

 

임찬혁 : 아니 그런데 그 성교육이라는 게, 그런 것들도 어떻게 보면 게이 선배로서의 역할 같아요. 

 

제가 뭘 느끼냐면, 드라마 Queer as Folk가 저한테는 게이 라이프의 바이블 같은 거였어요. 어렸을 때 봤거든요. 그래서 아 이게 게이 라이프야, 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요즘에 이렇게 살아보니, 드라마 Looking에서의 삶이 진짜 게이 라이프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두 드라마의 차이점은, Queer as Folk에서는 완전 밤문화와 섹스와 마약 과, 거의 게이들의 밤이 배경이잖아요. 그런 삶들이 대부분인데, 그 시대는 진짜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를 앞서갔던 미국의 게이 라이프는 그랬던 것 같은데, 그걸 보면서 저도 게이의 삶은 이래야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게,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아까 형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진짜 이건 제가 유흥의 삶에 젖어있고 이걸 제가 비즈니스로 해서 그렇지, 이건 진짜 일주일에 이틀이고, 그렇지 않으면 한달에 한번 있는 파티고, 일년에 한번 있는 파티인 거거든요. 물론 그 안에서 저는 제가 나름 사명을 갖고 하는 건, 내가 이걸 하는 만큼 그것만이라도 내가 좀 잘 만들어서 지키자고 하는 그런 바람이 있는 거고. 

 

그래서 아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건 것 같아요. 실버 세대랑,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젊은 20·30대 게이들의 커뮤니티가 서로 교류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인권운동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고, 교육이 잘 되고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저같은 사람들, 클럽에 나와서 놀고 사회에 나와서 노는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살게 되거든요. 정확한 교육이 안돼요, 될 수도 없고 사실, 뭔가 깨닫지 않는 이상, 자기가. 그런데 그걸 어떻게 잘 서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인권운동단체들과, 이런 게이커뮤니티가 어떻게 같이 좀 융화될 수 있게끔 하느냐, 그게 좀 최대의 숙원이 아닐까 싶어요. 

 

터울 : 맞아요, 인권운동단체에서 맨날 고민하는 부분인데 늘 부족하고,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죠. 

 

임찬혁 : 그런데 보니까 되게 다르더라고요. 제가 보니까, 다르지 않은데 다르더라고요. 그게 되게 왜, 기름과 물이 잘 안섞이는 것처럼, 같은 게이들인데도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또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르고, 그러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터울 : 친구사이가 사실 인권운동단체 중에는 좀 커뮤니티 기반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곳이긴 하지만, 다른 커뮤니티의 눈으로 보면 '친구사이가 과연 커뮤니티인가?' 이런 느낌이 사실 있죠.

 

임찬혁 : 그래서 되게 좋았던 게, 친구사이에서 게이코러스 지보이스란 팀을 만들었잖아요. 그런 게 그 중간의 연결고리 역할이지 않을까 싶어요. 난 노래가 좋아서 가긴 하지만, 그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간에 섞이고. 그런 게 중요한 과정이지 않을까,

 

터울 : 지보이스에 신입 단원이 들어왔는데, 게북 셀럽이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웃음)

 

임찬혁 : (웃음) 그런데 그런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먼저 선뜻 친구사이에서 뭔가 우리하고 같이 프로젝트 하자고 했을 때, 저는 되게 기분이 좋았고, 잘했던 게, 원래는 처음에 파티를 어떻게 한다고 그러길래, 제가 되게 뭐라고 그랬었어요. 무슨 파티를 하냐, 파티하지 말고 이러이런 걸 해봐라, 그런 이야기도 했었는데. 그런 것들이 하나의 시도고, 먼저 손 내밀어주고 그런 것들이 좋지 않았나, 가끔 보면 우리 유흥업이나 장사하는 사람도 너무 닫고 있고, 또 인권단체도 커뮤니티도 되게 너무 독불장군 같았어요. "우리 주장이 맞아!" 약간 이런 것.

 

터울 : 어떤 대의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바로 따라주는 게 아니니까요. 어쨌든 친구사이도 그렇지만, 나름의 위치에서 너무 잘 활동하고 계신 것 같아요. 

 

임찬혁 :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웃음)

 

터울 : 저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게이의 삶에 어떤 게 필요할까를 저도 요새 많이 생각하거든요. 당장 누굴 만나서 행복한 것만 좇다가, 세빈씨가 '내가 여자가 되는 게 꿈이 되면 안된다'고 얘기한 것처럼, 게이도 애인이랑 두명이서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꿈이 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멀리를 보게 되는 시점인데, 저는 최근에 느꼈던 게, 게이들을 상대로 한 항문외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저는 이미 있는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요. 게이 의사가 하는 항문외과.

 

임찬혁 : 너무 잘될 것 같아요. (웃음) 

 

터울 : 너무 필요하잖아요. 우리가 1년에 몇 번이라도 애널 섹스를 하는데. (웃음)

 

임찬혁 : 하나 차리세요. (웃음) 그런데 진짜 그러네. 왜냐하면 분명히 다르거든. 어떻게 보면 우리한텐 그게 생식기일 수 있잖아요. (웃음) 

 

터울 : 그러니까요. 일반 의사들이 보면 "애널 섹스를 왜 하세요?" 이럴 거 아니에요. (웃음) 그런 어떤 게이 친화적인 서비스가 슬슬, 게이의 삶에 진짜 필요한 부분들이 고민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10년, 20년 후면 그런 것도 생기겠죠?

 

임찬혁 : 그러게요. 그런데 빨리 좀 생겼으면 좋겠다, 잘될 것 같은데. (웃음) 그래서 그것도 그렇고, 저는 그래서 나중에는 그런 거 하고 싶어요. 강화도 같은 데다 땅 사서, 빌리지 만들어서 노후를 준비하고 싶어요. 그게 제일 걱정 아닐까요. 저는 이상하게 쓸데없이, 너무 벌써 미래가 걱정돼요.

 

터울 : 네, 저도 그래요 사실.

 

임찬혁 : 왜냐하면 돈이고 이걸 떠나서, 삶이 즐거워야 될 텐데, 무엇에서 낙을 얻어서 즐겁게 살까를 조금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내가 천년만년 파티를 만들 것도 아니고. 사실 파티는 내가 이미 지쳐있는 상태고. 그래서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뭔가 유흥 외 다른 목적이 필요한 것 같고, 이 시점이. 제 미래가 제일 걱정이죠 뭐. 

 

터울 : 사실 그렇게 40-50대 게이에게 특화된 어떤 사업이 있을 수도 있는 거죠. 

 

임찬혁 : 그러니까요. 실버 사업이, 비즈니스 모델이 좀 구축되긴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 지금 40-50대의 형들은 거의 결혼을 했잖아요. 그래서 그런 전례가 없는 것 같아요.

 

터울 : 맞아요,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유부게이들만 있으니까, 

 

임찬혁 : 그러니까 지금 우리 84들이나 형님 나이대인 83들, 이 사람들이 40대, 50대가 됐을 때 뭐가 될까, 그리고 그게 비단 밤문화뿐이 아니라 뭔가… 그게 참 힘들 것 같아요. 너무 외로울 것 같아요. 

 

터울 : 앞으로 잘 만들어봅시다. 

 

임찬혁 :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웃음) 갑자기 미래를, 40대를 생각하니까 또 암담해지는 것 같애. (웃음)

 

터울 : 사실 그런 게 이제 클럽으로만 공글려질 수 없는 게이들의 미래이기도 한 것 같고요. 

 

임찬혁 : 맞아요, 저는 제가 클럽을 하고 있지만, 지금 클럽은 40대 형들, 50대 형들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형들 20대 때는 이런 클럽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재밌는 건데, 과연 우리한테도 그럴까를 물어봤을 때, 저는 제가 40대가 되면 못 나올 것 같아요, 솔직히. 나올 수는 있지만, 나는 클럽이란 장소는 솔직히 얘기하면 젊고 활기차고 즐거울 때 즐겨야 되는 영한 문화고, 그 이후부터 노후는 다른 문화가 좀 자리잡아야 되지 않나 싶어요. 

 

우리나라의 좀 특이한 점이에요, 솔직히. 막 40~50대 형들이 와서 부킹하고 이거는, (웃음)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점이에요. 그래놓고 20대 애들 막 인사 안하면 화내고. 말이 안되는 거죠, 해외 같으면, 어디 그 클럽에, 그렇잖아요. (웃음) 아예 입장부터 안되지. 그런데 우리나라도 한 10년 뒤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지금 사우나 같은 데는 몇 세 이상은 입장 안됩니다 이런 게 생긴 것처럼.

 

그래서 지금 나이 드신 분들 보면 더 안쓰럽기도 하고, 우리야 다 어리지만. 

 

터울 : 그런 면에서는 사실 우리가 1세대인 거죠.

 

임찬혁 :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만들어나가야 될, 개척해야 될, 

 

터울 : 열심히 살아야죠. 

 

임찬혁 : 형 그 항문외과 너무 좋은데요? (웃음)

 

터울 : 너무 필요한데 없잖아요. 너무 실질적으로 필요한데. (웃음)

 

임찬혁 : 잘될 것 같은데 진짜, (웃음) 아 그런데 안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갔더니 "야, 거기 갔더니 걔 있더라" 막 이럼 어떡해. (웃음)

 

터울 : 그러니까 그게 사실은 커뮤니티의 성숙도가 같이 올라가야 되는 거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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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I:M 파티 공식 로고 (2016.8.12-15.)

 

 

 


15. 홍보의 시간

 

 

터울 : 마지막으로 올해 I:M을 홍보할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임찬혁 : 아까 다 얘기한 것 같긴 한데, 

 

터울 : 엘루이호텔 지하의 클럽 Ellui를 파티 장소로 잡았던데요.

 

임찬혁 : 그것도 사실 되게 힘들게 잡았어요. 그러니까 세상에 안 힘든 게 어딨겠냐만, 원래 올해 세빛섬에 저희도 3~4월부터 가계약을 해놨었어요. 그리고 Private Beach 파티 할 때 일부러 한번 가봤어요, 어떻게 해놨나. 물론 거기는 예산도 충분치 않았을 거고, 그런데 예산을 떠나서 거기는 할 와꾸가 아니더라고요. 처음에 갔을 때는 들어가는 입장 자체가 너무 좋아서, 여기서 해야겠다, 외국인들도 오면 너무 판타스틱하겠다, 그래서 계약을 했는데 막상 들어가서 사운드라든가 확인하니까, 이게 돔이니까, 

 

터울 : 울리니까, 무대 볼 때랑 뒤돌아서 있을 때랑 사운드가 달랐죠.

 

임찬혁 : 네, 사운드가 치고, 그리고 하얀 돔이라 조명을 조금만 켜도 너무 밝고 이러다보니까, 여기는 우리가 제대로 파티 만들려면 아예 리노베이션을 해야 되겠다, 돈 너무 많이 들겠다 싶어서, 다른 장소를 알아보다가, 옥타곤이랑 다 알아봤죠. 그런데 마침 엘루이 호텔이 다른 데로 팔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11월달 즈음에. 그래서 8월달에 그 장소에서 행사를 치를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이렇게 뜨내기 신세로 I:M을 하다간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장소. 사실 예산만 많고 스폰만 들어오면 우리도 막 잠실 주경기장 이런 데서 하고 싶은데, 시기상조인 것 같고. 

 

터울 : 그래도 올해 I:M에 이런 걸 기대해달라는 포인트가 있으시다면,

 

임찬혁 : 딴 데로 샜네요. (웃음) I:M은 사실 작년만 해도 Concert & Circuit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그래서 한국만의 컨텐츠를 가지고 KPOP 스타부터 해서 공연 등을 보는 위주로 했었는데, 올해같은 경우는 좀 컨셉을 바꿔서 뮤직 페스티벌로 바꿨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DJ를 부르고, 그 DJ의 음악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게 구성을 짜고 있고. 

 

무엇보다 좋은 게 클럽 Ellui다 보니까, 국내에 내로라하는, 탑3에 드는 클럽이라서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사운드 시스템이 끝장나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음악 페스티벌에 걸맞는 사운드 시스템을 갖고 있고, 원래 일반들만 향유할 수 있었던 1등 클럽에서 언제 게이들이 모여서 파티를 하겠어요. 그런 것만으로도 의미가 좀 있을 것 같고. 그리고 이번에 해외 친구들이 많이 온다고 하네요. (웃음)

 

터울 : 알겠습니다. 이번에 너무 기대하고 있고, 올해엔 꼭 가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해에 못 가서. 

 

임찬혁 : 꼭 오세요. (웃음) 

 

터울 : 그럼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임찬혁 : 고생하셨습니다.

 

(2016.7.12. 인터뷰, 2022.5.8. 전면 개고)

 

 

 

 

* 서킷 파티와 관련된 내용은, '이쪽사람들'의 이승준 님이 기고해주셨던 「한국형 서킷파티의 출발을 알리다 - '아이엠(I AM)'이 탄생하기까지」, 『친구사이 소식지』 64, 2015.10.31.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터울(new).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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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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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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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노 2016-07-21 오후 14:49

정말 재밌게 쭉쭉 읽었네요ᄒᄒ 처음 클럽을 접한 곳이 르퀸이었는데 그때 오마담님의 매력에 푹 빠졌던 기억이..ㅎ 항상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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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재 2017-04-28 오전 01:35

다시 읽을 수록 행복하고 감사하고 벅차 오르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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