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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커버스토리 ‘클럽’ #2] 이태원 게이클럽의 어제와 오늘 - 클럽 Le Queen/Looking-Star 사장 임찬혁님 인터뷰
기간 7월 

[커버스토리 ‘클럽’ #2]

이태원 게이클럽의 어제와 오늘

- 클럽 Le Queen/Looking-Star 사장 임찬혁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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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Le Queen의 임찬혁(Justin Lim) 님 (2015.11.21.)

 

 


터울(이하 터) : 반갑습니다. 

 

임찬혁(이하 임) : 반갑습니다. (웃음)

 

 

 


1. 이태원 첫경험

 

 

터 : (이하 경칭 생략) 10대 때 청소년 동성애자 모임 '아쿠아'에서 활동하셨던 걸로 알고 있다. 그 때 이태원에 처음 나오셨다고 들었는데, 이태원에 나오게 된 경위나, 그 때 이태원의 풍경에 대해 듣고 싶다.

 

임 : 그 때 아쿠아의 정식 모임원으로 활동한 건 아니고, 가입만 돼있다가, 두번째 정모까지 나오고 참여는 안했다. 왜 그랬냐면, 처음 아쿠아 정모에 나갔을 때가 이태원 역이 생긴지 얼마 안됐던 2001년 고2 때였다. 그 때 동갑내기인 (현재 클럽 Le Queen의 공동 사장)차세빈 씨랑 같이 갔었는데, 처음에 갔을 때 사람들이 뉴페 왔다면서 왔다가, 별로라면서 다 가버렸다. (웃음) 그래서 그 모임이 끝날 때까지 우리 둘을 거들떠도 안봤다. (웃음) 너무 괘씸했다. 인천에서 나름 예쁘다고 자신감을 갖고 왔는데. 아무튼 당시 행사가 해밀턴호텔 뒤에 있던 클럽 ZIPPER에서 열렸는데, 거기서 웰치스를 나눠줬다. 원래는 그 시각에 클럽 운영를 하지 않았었는데, 청소년 이반들을 위해 오픈을 해줬었다. 그 때 가서 놀고 둘이서 이런 문화가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다. 그리고 나와서 2차로 짜장면 먹으러 가고, 그리고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아쿠아 관련 활동은 그게 다였다. (웃음) 
 
터 : 초창기 친구사이 소식지에도 그런 기사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일부러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당해서 섭섭했다는 내용의. (웃음)

 

임 : 진짜 그랬다. 재미도 없고, 민망하고. (웃음)

 

터 : 그러면 어쨌든 그 때 이후로 이태원에 오시게 된 건데, 그 때 이후로 계속 이태원에서 활동을 하셨나?

 

임 : 아무래도 고등학생이니까, 고2 때 처음 이태원 오고 난 후에는 안 나왔고, 고3때는 이쪽 사람들도 아예 안만나고, 핸드폰도 없앴다. 그 때 당시엔 대단한 각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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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이태원 게이클럽 ZIPPER의 광고.
"이태원역 개통 기념행사"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6호선 이태원역은 2001년 3월 9일에 완공됐다.
(『BUDDY』 19, 2001.5.9., 107쪽.)

 

 

터 : 그 기갈이 어디서 나왔을까. (웃음)

 

임 : 밤에도 나와 놀지 않고, 어머니 말씀 잘 듣는 학생으로 고3 때를 살았다. 고1, 고2 때는 매일 나와서 놀았었고.

그러다가 대학교 1학년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이태원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홍대의 클럽 m2를 너무 좋아했다. 대학교 와서 홍대의 클럽문화가 너무 재밌었다. 당시 NB와 m2가 다 떴었는데, 나는 m2를 좋아했다. 제일 좋아했던 게 Bob Sinclar라는 DJ 가수의 노래였고, 그의 음악을 들으러 홍대에 나왔다. 한창 나왔던 게 <Love Generation>이란 곡이었고. 
그러다가 이태원 클럽을 알게 돼서, 스무살 가을 즈음에 이태원 G-Spot에 처음 가봤다. 그 곳에서 놀다보니 TRANCE도 가게 되고 QUEEN도 가게 되고, 항상 그 골목(게이힐)에서만 놀았었다. 정말 매주 나왔던 것 같다. 너무 신기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 때 당시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게 화랑(이반시티의 전신), 이반시티 아니면 어플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을 때였다. 그나마 싸이월드로 일부 교류하긴 했지만, 그것도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한번 교류가 있던 사람들과만 아는 거였고. 그래서 클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신기함이 컸다.

 

터 : 그 때 클럽은 지금이랑 뭐가 달랐나.

 

임 : 오히려 그 당시에는 클럽이 메이저문화였다. 이태원 G-Spot에 일반들도, 연예인들도 많이 왔다. 왜냐하면 클럽 문화 자체가 생소했고, 강남에도 홍대에도 클럽이 많이 없을 때였다. 홍대의 m2 클럽이 좀 핫한 곳이었는데 m2 사장분이 G빠(G-Spot)에 놀러올 정도였다. 클럽 사장들과의 교류도 많았고, 서로의 클럽에 DJ가 번갈아 오가기도 했다. 

 

터 : 그 때는 클럽이라는 문화 자체가 힙했던 시대였던 셈인가. 지금은 클럽이 조금 흔해졌지만.

 

임 : 그렇다. 그리고 어떤 문화든 한국에 들어와 정착될 땐 그 문화가 한국화된 모습이 되기 마련인데, 현재 성업하는 한국의 큰 클럽들 중에는, 클럽이지만 약간 나이트클럽과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어쩔 수 없는 한국의 정서가 그 사이에 녹아드는 것 같다. 

 

터 : 클럽 문화가 자리잡던 처음에는 좀더 어센틱한 형태의 클럽이 많았던 건가.

 

임 : 그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클럽이란 개념이 모호하기는 하다. 소위 무도장이나 라운지바도 춤추면서 음악 듣는 곳인데, 클럽과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다. 

 

터 : 홍대에서 처음 클럽 시작할 때도 바에서 춤추다가 시작했다고 들었다. 

 

임 : 그런데 그런 모든 형태를 클럽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하긴 하다. 

 

터 : 초창기 게이바와 게이클럽이 명확히 분류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임 : 그래서 저도 클럽이 뭔가 하는 건 정확히 모르겠는데, 그래도 외국에서 클럽이라고 하면, 제대로 시설 갖춰놓고, 쿵쾅거리는 사운드에 제대로된 음향시설을 갖춰놓은 곳을 클럽이라고 하는 편이다. 그런 문화가 한국에 수입돼 정착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색다른 형태로 변형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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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게이 전용 "까페&단란주점 YOU"의 광고. 
"매일밤 11:30-12:00 봉고 대기"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1998년 8월 1일 심야영업 제한이 해제되기 이전에는,
이렇게 문을 닫아놓고 영업하는 곳이 많았다.
(『친구사이 소식지』 7, 1994.12., 8쪽.)

 

 

 


2. 대학생활과 게이클럽

 

터 : 미대를 다니셨다고 들었는데, 대학교 생활 하시면서 이런저런 게이 문화 관련 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게이클럽과 함께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했나.

 

임 : 대학교 다니면서 주말마다 클럽을 다녔는데, 잘 노니까 클럽 사장 형이나 매니저 형들 눈에 들게 됐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당시 G빠(이후 ReBall) 바로 밑 지하 2층에 Heaven이라는 게이 클럽이 생겼다. 같은 건물에 두 개의 층이 게이 클럽이어서 서로 왕래도 했는데, 그 클럽들의 사장 형들을 알게 되어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Heaven에서 파티를 기획했는데, 컨셉이 예전 클럽 ZIPPER의 90년대 음악을 트는 거였다. 그 파티의 포스터 제작을 맡게 되어, 대학교 때 과제도 제쳐두고 포스터를 만들어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대학교 2학년 때 G빠에서 크리스마스랑 뉴이어 때 고고보이도 했었다. 제가 직접. (웃음)

 

터 : 고고보이를 하셨었다고? (웃음)

 

임 : 겁도 없이. (웃음) 그런 것도 했었고, 한마디로 난년이었다. 너무 열심히 놀아서, 클럽 다니는 형들 사이에서는 어릴 때부터 눈에 띄기는 했다. 쟤는 학교도 열심히 다니는데 놀기도 잘 논다, 이런 식으로. 

 

터 : 저도 그 시절에 홍대 클럽 다니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임 : 그렇게 노는 걸 너무 좋아했다. 음악도 좋아했고, 춤도 좋아했는데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재밌었다. 

 

터 : 그러다 군대는 언제 갔나?

 

임 : 늦게 갔다. 21살까지 대학교 2학년 과정을 마치고, 군대는 23살이던 2006년 10월에 갔다. 그 사이 1년 반 공백기 동안 놀았다. (웃음) 

 

터 : 그 때 아니면 언제 노나. 사실 그 때 아니면 놀 때가 없다. 이후엔 평생 일하는 거고. (웃음)

 

임 : 진짜. (웃음) 그 때 엄청 놀았다. 당시 세빈씨가 21살부터 트랜스젠더 클럽 여보여보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세빈씨 집이 이태원이라 주말만 되면 세빈씨 집에 놀러가고, 동대문 가서 옷 사입고, 매주 나가서 클럽 가서 놀고 그랬다. 

 

터 : 그러면 25살에 전역한 셈인데, 전역하시고 난 2008년에는 이태원의 분위기가 좀 변해있었나?

 

임 : 변해있었다. 그 사이에 해밀턴호텔 지하에 게이클럽 Del Disco가 생겼다. 그리고 전역하고 나니 클럽 G-Spot이 ReBall로 바뀌었다. (두 클럽 모두 2006년에 개업 - 편집자 주)

 

터 : 이 게이클럽의 역사를 누군가 정리를 해야 되는데. (웃음) 

 

임 : 그래서 G-Spot 사장분들 중 한 명이 나와서 Del Disco를 차리고, 거기에 원래 있던 분이 같은 위치에 ReBall을 그대로 했었다. 그 때 ReBall에 새로운 클럽 사장 인맥이 들어왔다.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던 분들. 그 때는 동대문이 엄청 돈을 잘 벌 때여서, 패셔너블하고 재력이 있는 분들이 차린 클럽이 ReBall이었다. 

 

터 : 그럼 그 전에는 이태원 게이클럽 사장분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나.

 

임 : 이태원에 주로 있었던 분들이었다. 옛날부터 클럽 whynot?을 운영했거나, 아주 오래 전부터 조그맣게 클럽 하시다가 그걸 불린 분들이었다. 

 

터 : 2000년대 초반대에 게이커뮤니티에 동대문 형/언니들이 힙했다는 얘기는 얼핏 들었다. (웃음)

 

임 : 그 분들이 ReBall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거다. 그러다가 경쟁하면서 Del Disco가 사라지고, ReBall은 그대로 유지되다가, Del Disco의 사장분이 지금의 이태원 다모토리 자리에 클럽 Pulse를 열게 된다. 처음에 Pulse를 열었을 때는 지금의 Le Queen 같이 소규모 클럽의 형태였다. 

 

터 : Pulse가 연 시점이 언제인가. 

 

임 : Pulse가 연지 벌써 8주년이 됐으니까, 2007년일 거다. 그리고 게이클럽은 그 사이에 계속 생기고 사라졌다. EF라는 클럽도 있었고, 문나이트 자리에도 게이클럽이 생겼었다. 

 

터 : 개업했던 이태원 게이클럽의 수가 의외로 많더라. 전부 세어보면 거의 40개쯤 되는 것 같다. 

 

임 : 되게 많다. 그런데 1년 넘게 생존한 클럽이 많이 없다. 제가 클럽을 해보니까, Le Queen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 클럽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고, 그게 경쟁력이 됐다. 없으면 없는대로 허리 졸라매는 게 되는데, 큰 클럽들은 1,2달 정도만 손실이 나면 임대료, 인건비를 못 견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규모가 작은 편이 더 내실을 다지기가 좋다. 여러가지 시도나 변화를 주기도 좋고. 
클럽이라는 곳은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한 곳이어서, 사실 오래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트렌디하게 하려면 끊임없이 투자해야 하고 끊임없이 바꿔야 하는데, 큰 클럽들은 사실상 그러기가 힘들다. 그래서 클럽은 크게 남는 장사가 못된다. 그런 걸 보면 Pulse가 정말 대단한 거다. 물론 운도 있겠고 사장 형들이 많이 노력하셨던 탓도 있지만, 클럽이 8년이라는 장수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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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게이업소 정보지 『보릿자루』에서 조사한 이태원 이반업소 현황.
가라오케와 까페가 많고, 클럽(Club, Dance)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보릿자루』 16, 2000.3.15, 95쪽.)

 

 

 


3. 외국 게이클럽문화의 경험

 

터 : 외국에는 클럽문화가 사실 더 발달해있는데, 20대 때 볼 기회가 있었나.

 

임 :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후 게이클럽을 하고 파티를 만들게 된 것에는, 외국의 클럽문화를 본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우선 군대에 있을 때는 운동을 열심히 했다. 왜냐하면 친척 형이 게이인데, 그 형이 홍콩으로 시집을 갔다. (웃음) 

 

터 : 아 '취직'이 아니라 '시집'? (웃음) 

 

임 : (웃음) 홍콩으로 장가를 갔는데, 그 전에는 그 형이랑 자주 클럽에서 놀다가, 제가 군대를 간 사이에 형이 남자를 만나 홍콩을 갔다. 그 형이 전역하면 홍콩으로 놀러오라고 했고, 그래서 군대에서 운동을 열심히 했고, 전역하자마자 한달 동안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홍콩을 갔다, 25살 때.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외국의 게이클럽과 파티를 접했다.
또 홍콩에서 한달 머물던 시기가 12월 연말이었는데, 방콕에 연말 게이파티를 한다고 해서 처음 방콕에 갔다. 그 때 너무 신기하고 재밌고,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진짜 한국 사람들 되게 불쌍하다, 한국 게이들이 왜 이들처럼 자유롭고 재밌게 못 놀까, 내가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이런 걸 만들어야겠다, 그 때 그걸 다짐했다.

 

터 : 그곳의 클럽문화가 기존 한국의 게이클럽문화와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었나.
 
임 : 지금은 한국 게이들도 너무 잘 놀고 자유분방한데, 거기엔 페이스북이 확실히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아무래도 태국이란 나라 자체가 LGBT에 대해 많이 열려있고, 또 외국인도 많이 오다 보니, 다른 무엇보다 거기 온 사람들이 자유분방한 것이 좋았다. 시선을 하나도 신경 안쓰고. 심지어 메인 파티 장소가 Siam Center 앞의 Paragon이란 커다란 곳이었는데, 그런 규모에서 게이 파티를 한다는 것도 신기하고 파격적이었다. 그리고 당시 이태원 게이클럽은 대부분 지하였는데, 거기는 지상과 야외에서 파티를 하니까 너무 신기했다. 사람도 많고. 잘생긴 게이들도 너무 많고. (웃음)

 

터 : 그 때 당시 이태원 게이 클러버들은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은 느낌이었나.

 

임 : 나름 자유로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인원과 규모가 작았다. 나오는 사람들만 나왔고. 그리고 제가 생각했을 때 분위기가 좀 어두웠던 것 같다. 물론 지금 제가 이쪽 생활만 하고 여기에만 전념하고 있는 반면에, 그 때 당시 저는 주말에 노는 그 때만 게이라이프를 누리는 거였고, 나머지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런 식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밌게 못 노는 게 싫었다. 그 때는 그냥 특별한 게 없다는 느낌이었다. 외국처럼 웅장하고 즐겁게 파티하고 자유롭게 즐기는 문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터 : 당시 이태원 게이클럽에 DJ는 있었나.

 

임 : 다 있었다. 다만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었던 것은, 당시 이태원 클럽에서는 DJ를 내세우지 않았다. 

 

터 : 어떤 DJ가 음악을 튼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던 건가.

 

임 : 보통 그랬다. 이태원 게이클럽에 DJ가 전면에 홍보되는 것은, 서킷 파티가 생기고 나서부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 전에는 클럽이 크더라도 DJ 부스가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있었고, 누가 음악을 튼다는 게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당시 일반 클럽에서는 DJ가 중요하게 각광을 받았는데, 이태원 게이클럽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터 : 처음 알았던 사실이다. 당시 홍대 클럽에서는 DJ의 이름이 전면에 걸리는 게 상식이었다.

 

임 : 그래서 저는 파티할 때 항상 DJ를 앞에 내세웠고, 자꾸 노출하려고 신경썼다. 그래서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제가 관여했던 서킷 파티에는 DJ가 전면에 홍보되었던 반면, 게이클럽에서 상시로 일하던 DJ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감춰져 있었다. 서킷 파티를 하면서 DJ 부스를 중앙에 크게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물론 지금도 그러는 사람들이 있지만, 클럽에서 그냥 CD 트는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저도 20대 초반에 클럽에 나와 놀 때는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음악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고 그냥 신나니까 노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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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킷 파티 VELOCITY 2013 "THE WHITE BOAT" 포스터 (2013.11.2.)

 

 

 

 

4. 서킷 파티

 

터 : 서킷 파티(게이들이 대규모로 모여 며칠간 펼쳐지는 댄스 파티 이벤트) 얘기를 해보겠다. 한국에 게이 서킷 파티가 2007년에 처음에 있었다고 들었다. 

 

임 : 그렇다. 2007년 Blue Party가 있었다. 

 

터 : 그 때 행사 기획에 참여했었나.

 

임 : 참여하지 않았고, 파티 기획에 참여한 형들은 알고 있었다. 적자를 크게 봤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걸 만든 형들은 파티를 많이 다녀본 동대문 출신 형들이었고, 장소도 청담동 Tribeca와 남산의 naos nova 등 좋은 곳을 빌려서 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 파티를 홍보할 인프라가 부족했다. 게이클럽 안의 사람과 그들의 주변 인맥, 싸이월드 정도가 전부였다. 그 때 당시 파티란 개념도 생소했고, 그런 파티에 돈내고 찾아갈 만한 시스템도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들이 더 많았었다고 들었다.
 
터 : 2011년 즈음에 이태원에서 브랜드 게이 파티가 생겼던 것으로 확인된다. 서킷 파티 브랜드 VELOCITY가 생긴 것도 그 해라고 알고 있다. 

 

임 : 그 즈음일 거다. 그리고 그에 앞서 VELOCITY보다 먼저 제가 시도했던 파티들이 있다. 2011년 8월 이태원 IP 부티크 호텔 지하의 클럽 Rococo에서 VELOCITY 첫회 파티가 열렸는데, 그로부터 한달 전인 7월, 같은 장소에서 G Fant-Asia라는 서킷 파티를 열었다. 또 이것에 앞서서는, 같은 해 6월에 Pulse의 3주년 파티 White Party를 제가 했다. Pulse는 매주년 파티를 열었는데, 당시 Pulse 사장 형들과 식사하다가, 이번에 한번 정말 그럴듯한 파티처럼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그 일을 제가 받게 됐다. 그게 제가 서킷 파티를 만들게 된 시작이다. 그럴싸하게 파티의 구색을 갖춘, 드레스코드를 정하고 클럽 내부의 데코레이션에 신경을 쓰고, CD를 제작해서 기념품으로 배포하는 식의 파티였다. 개인적으로 파티와 클럽이 다른 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클럽이 와서 음악 즐기고 가는 곳이라면, 파티는 말 그대로 즐기는 페스티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터 : 그러면 그 전의 이태원 게이 파티들은 보통 어땠나.

 

임 : 한 클럽 안에서 하는 규모였고, 서킷 파티라고 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2011년에 이태원에 서킷 파티가 처음 시도된 셈이다. 앞에서 제가 기획한 파티들 이후에 VELOCITY가 생겼고 거기에도 관여했는데, 이반시티의 투자를 받기도 했고, 찾아온 사람수나 규모의 면에서, 서킷 파티다운 서킷 파티는 VELOCITY가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터 : 클럽 Rococo가 있던 자리엔 지금 어떤 업장이 들어와있나?

 

임 : 지금은 '밤과 음악 사이'가 됐다. (웃음) 당시엔 그곳이 시설이 참 좋았다. 그 클럽에서 제가 기획한 Pulse 3주년 파티를 보고, 먼저 파티 기획을 제안하는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하게 된 서킷 파티가 G Fant-Asia다. 그런데 120명밖에 안왔다. (웃음) 

 

터 : 적자가 났을 것 같다. (웃음)

 

임 : 금전적인 투자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심적인 좌절감은 맛봤다. (웃음) 이후 VELOCITY란 서킷 파티 브랜드가 만들어졌는데, 첫회까지는 관조자였고, VELOCITY Episode 2를 만들 때 이반시티 사장분인 박사이먼 형 등의 제안으로 파티 디렉터로 들어오게 됐다. 그 당시에 클럽 G-Spot이 있던 공간이 문을 닫은 채였는데, 이 곳이 역사적인 자리이니 여기서 파티를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됐다. 

 

터 : G-Spot, ReBall 이후에 클럽이 들어와있지 않은 상태였나?

 

임 : 그랬다. 있긴 있었는데 일반 클럽하다 망하고 그런 분위기였다. 그 때 당시에도 ATOM이란 클럽이 들어왔다가 망한 상태였다. 그 가게에서 파티를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VELOCITY Episode 2를 기획하고 G-Spot을 만든 사장분을 모델로 하는 포스터를 만들어서 홍보를 했는데 그게 대박이 났다. 그 이후부터는 VELOCITY에 파티 디렉터로 죽 참여했다. 

 

터 : 클럽에 놀러가는 사람은 많아도 클럽 실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들이 적을 텐데, 파티 디렉터는 정확히 무얼 하는 사람인가.

 

임 : 파티의 스토리를 잡는 사람이다. 이 파티를 어떤 목적에서 어떻게 재밌게 만들 거라는 스토리가 필요하잖나. 파티의 기획자인 셈이다. 컨셉을 잡고 테마 잡고, 고고보이라든가 DJ 섭외도 하고. 원래 더 큰 파티가 되면 역할을 더 세분화하는데, 한국의 서킷 파티의 실정상 그 역할들을 묶어 한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 제가 디자이너과 홍보, 디렉터를 겸했었다.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여태 큰 파티를 하면서 수익이 300만원 이상 난 적이 없는데, 이런 실정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돈 되게 많이 버는 줄 안다. 2015년 I:M 파티도 수익이 남지 않고 적자를 봤는데, 그래도 그런 것이 투자라고 생각하고, 파티를 만든 것도 돈을 번다기보단 재밌게 놀려고 만든 거였고.

 

터 : 1인 다역을 하셨던 셈인가.

 

임 : 그랬다. 자랑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웃음) 안그러면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어떻게 보면 경쟁력이기도 했던 것 같다. 한국의 다른 게이클럽에서 이만큼의 파티를 못 만드는 건, 이 역할을 혼자 도맡지 않고 전부 쪼개서 사람을 고용할 경우에 예산을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터 : 규모가 커져서 장기적으로는 분업이 되어야 할텐데, VELOCITY 기획 때부터 지금까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몇 개의 역할을 한꺼번에 맡아 진행했다고 말씀해주셨다. VELOCITY는 2013년 Episode 6까지 진행되었는데. 

 

임 : 그 때의 경험이 공부가 되고, 초석이 되었던 것 같다. 또 그 때 좋은 형들을 만났기도 했고. 어린 나이였지만 그만한 파티를 만들 기획 능력이나 크리에이티브는 있었다고 자평하는데, 그래도 예산이나 인맥은 제한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좋은 형들을 만나 굵직한 행사를 하면서 잘 되게 된 것 같다. 그게 인연이 되어 29살이 되던 2012년에 클럽 CIRCUIT을 같이 오픈하게 됐다.

 

터 : 클럽 CIRCUIT은 VELOCITY 기획자 분들이 운영했던 건가. 

 

임 : 운영진에 VELOCITY에 관여했던 이반시티 사장 박사이먼 형과 제가 포함되어있었다. 박사이먼 형은 정말 많은 일을 했고, 지금도 존경하는 형들 중 한 분이다. 

 

터 : 클럽 CIRCUIT엔 저도 가본 기억이 있다. 

 

임 : 그 때 한국 가요를 컨셉으로 한 '응답하라' 파티를 처음 만들어서 대박이 났다. 

 

터 : 1990년대 후반에 ZIPPER나 BANANA 등지에서 한국 가요가 메인 선곡으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러다가 2000년대에 접어들어 DJ가 전면에 내세워지게 됐는데, 그러다 201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DJ 중심의 클럽음악이 주류인 가운데 이벤트격의 파티에서만 한국 가요를 틀었던 셈인가.

 

임 : 그렇다. 그러다가 Pulse에서 '끼타임'이라고 해서 KPOP을 틀기 시작했다. 

 

터 : KPOP에 대해서는 잠시 후 클럽 Looking-Star를 다룰 때 더 얘기나누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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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Bar# 내부 전경 (2015.4.5.)

 

 

 


5. Bar# + MouM + 소온테이블 = Triangle

 

터 : 조금 시간을 뛰어넘어서, Bar#, MouM, 소온테이블로 구성된 공간 Triangle에 대해 궁금하다. 오픈한 날짜가 언제인가.

 

임 : 2014년 12월 19일에 ITW호텔 지하와 1층에 각각 오픈했다. 그 날이 제 생일이라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 

 

터 : 좋은 정보 감사하다. (웃음) 개인적으로 이 공간에 대한 기억이 강하다. 지금은 호텔포차가 되어있고 지금도 물론 좋지만, 그 전에는 Bar#(지하, 바+샵), MouM(지하, 공연장), 소온테이블(1층, 레스토랑)이 합쳐진 형태였는데, Bar#의 그 공간 배치가 신박하다고 생각했다. 실험적이기도 하고. 공간 설계에 대한 레퍼런스라든지, 만드셨을 때 기획의도에 대해 듣고 싶다. 

 

임 : 제게는 애증의 공간이었다. 왜냐하면 너무 고생을 많이 했고, 1년 동안 Le Queen에서 벌었던 돈을 그곳에 다 박았었다. 몇개월째 집세 밀리고 핸드폰 끊기고 그럴 정도였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너무 고생을 많이 한 가게라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그 공간을 만든 취지는, Le Queen을 하다가 좋은 자리가 났다고 소개가 들어와서 해보자 했는데, 원래는 호텔 지하였기 때문에 거기에도 클럽이나 바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 때 저는, 그런 거 할 거면 난 안할 거라고 했었다. 왜냐하면 그 때 당시 Le Queen 1주년 지나고 2주년이 됐을 땐데, 제 스스로 밤업소 사장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가 좀 있었다. 왜냐하면 그걸 하는 건 나쁘지 않은데, 그 생활에 너무 젖어있는 느낌이 싫었고, 사교장이다보니 밤에 와서, 솔직히 클럽에서 대화를 해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그냥 서로 인사하고 마니까, 별로 인간에 대한 애정도 없어지는 것 같고, 내 시간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거기를 그런 컨셉으로 잡으려고 했던 건, 클럽에서 만나는 사람들 말고, 식사를 하러 오든 샵을 오든, 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하면서 실제로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클럽에서 아는 인맥 외의 사람들과도 교류가 돼서, 원하는 취지대로는 잘 됐는데, 처음에는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터 : 지금도 Bar# by Triangle 페이스북 페이지가 남아있는데, 보다보면 신박하다. 여기가 이태원인지 외국인지 알 수가 없는. (웃음)

 

임 : 헌데 레스토랑의 경우는, 그 곳의 문화공간적 성격보다도 그냥 음식 먹으러 가는 때가 많고, 요즘엔 워낙 편하게 음식 먹으러 가니까, 우리들끼리 밥먹으러 가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사업적으로 잘못 판단했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술은 우리들끼리만 모이는 게 편한데, 밥은 따로 먹어도 되고 일반들끼리 섞여서 먹어도 되고. 또 너무 맛있고 싼 집들이 많고 그들과 같이 경쟁해야 하니까, 그 점이 판단 미스였던 것 같고.
Bar#의 경우는 좋은 경험이긴 했는데, (웃음) 그 공간의 취지가 우리들이 만든 제품을 우리들이 소비하는 그런 개념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판단 미스였던 게, 이미 예쁘고 싸고 좋은 제품들 살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은데, 굳이 사람들이 이걸 사러 올까, 그리고 사실상 그 컨셉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제가 좀더 투자를 해서 제품도 더 갖다놓고, 바도 좀더 제대로 시스템을 갖춰서 마음에 들게 했어야 했는데, 그 때 돈이 없어서 그러질 못했다. 그러니까 모든 게 그렇다, 괜히 준비없이 장사를 하면 100% 망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터 : 그 때 Bar#의 내부 조명이 기억난다. 바다같은 느낌으로 꾸며졌던.

 

임 : 예뻤었다. (웃음) 지금도 그 공간은 애착이 있다. 공간 자체도 재밌는 구조고, 보자마자 여긴 공연장 할 거야, 여긴 바 할 거야, 여긴 레스토랑 할 거야, 이 계획은 세웠었다. 

 

터 : 이태원이든 어디든 한국에서 게이들을 대상으로 그런 공간을 꾸렸던 전례가 있나.

 

임 : 들은 바 없다. 기존에 있던 업장에서 시도는 많이 됐던 걸로 아는데, 아예 처음부터 공간을 그렇게 설계했던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운이 맞았던 게, 페이스북이라는 SNS의 영향이 저와 제 사업전략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왜냐하면 형들 세대나, 저 위로 그런 걸 해보고 싶었던 분들은 많이 계셨던 것 같고, 소소한 모임을 만들었던 분들도 많이 있고 한데, 그게 노출되고 더 시너지가 된 건 제가 SNS를 쓰다보니까, 그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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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낙원 Week 02 파티 포스터 (2013.7.27).


 

 

6. JL Cultures, 게이 파티 기획사

 

터 : JL Cultures는 언제 만드셨나. 

 

임 : 2013년 4월에 만들었다. 그 전에는 VELOCITY나 다른 파티를 꾸준히 만들었고, 클럽 CIRCUIT에 있다가 거기에 나오자마자 바로 JL Cultures란 브랜드를 만들었다. 파티 기획 능력을 좀더 주도적으로 펼쳐보고 싶었다. 다른 클럽들에 파티를 기획해주고 열어주는 식으로 하고, 그 과정에서 수익을 클럽과 나눠가지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터 : 그러면 JL Cultures는 정확히 게이 파티 기획사인 건가.

 

임 : 그렇다. 그런데 Cultures라고 이름을 붙인 건, 저는 그 때 당시에도 클럽에서만 하는 파티만 파티가 아니라,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소규모 모임, 커뮤니티의 행사도 파티고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이쪽 사람들의 문화를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희망했다. 

 

터 : 그렇다면 클럽 뿐만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도 조망한다는 뜻이 있었던 셈인데, 거기서 나름 페이스북 인프라도 참고가 되셨을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7월에 Le Queen을 만드셨는데,

 

임 : 그래서 4월부터 Le Queen을 열었던 7월 사이에 파티를 열몇 개 만들었다. 운이 맞아서, 당시 종로에도 클럽이 생기고 해서 제가 파티를 계속 기획해줬고, 사람들도 많이 몰렸다. 당시 종로의 클럽 G2에 낙원파티를 기획했는데 600명이 넘게 왔다.

 

터 : 종로에 클럽 파티가 생겨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임 : 그 때 차세빈씨와 드랙 아티스트 Anchovy Oil씨가 같이 무대에 섰었다. 헌데 이후 종로 낙원파티는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이 줄었는데, 그 지역의 특성은 어쩔 수 없다는 걸 느꼈다. 

 

터 : 사실 종로가 파티랑은 안 어울리긴 한다.

 

임 : 그리고 종로에 포장마차와 술집이 잘 되는 이유가 1,2,3차가 되기 때문인데, 클럽도 똑같은 것 같다. 종로에 클럽이 한 곳만 있으니까, 2차로 갈 클럽이 없는 거다. 그래서 만약에 종로에 동시다발적으로 2,3개의 괜찮은 클럽이 생긴다면, 이태원 게이클럽 지형이 크게 변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터 : 그러면 그 해에 Le Queen을 여신 다음에도 파티 기획은 계속 하셨던 건가.

 

임 : 이미 잡아놓은 파티들이 있어서, 오픈하고 난 후에도 11월에 있었던 VELOCITY Episode 6 파티까지 제가 기획을 했다. 그 이후로는 클럽 운영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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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L Cultures 로고 (2013.4.)

 

 


터 : JL Cultures의 로고가 신박한 것 같다. 

 

임 : JL은 제 닉네임인 Justin Lim의 줄임말이기도 하고,

 

터 : 정말인가? (웃음)

 

임 : 그리고 Just Life란 뜻도 담았다. 게이 라이프도 하나의 삶이고, 게이들 또한 이런 문화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지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자유롭게 즐기는 데에 큰 거리낌이 없이.

 

터 : 옛날에는 게이들이 즐기는 유흥문화가 '주말 게이'처럼 삶과 아주 분리된 상태로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즐기는 문화가 삶의 일부로 확 들어와버린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임 : 그렇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하면서 생각들도 많이 바뀌는 것 같다. 굳이 삶과 즐김을 분리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고, 클럽 문화 외에 같이 모여서 영화 보고 보드게임도 하고, 이런 문화가 많아진 게 되게 좋은 것 같다. 

 

터 : JL Cultures의 활동은 계속 진행 중인 건가.

 

임 : 그렇다. 초반에는 Le Queen이나 다른 클럽에서 기획하는 파티를 홍보할 때마다 JL Cultures 로고를 넣기도 했었다. 제가 기획하는 브랜드를 계속 노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나 딱 구성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 내걸지 않았는데, 이걸 잘 정리해서 좀더 체계화된 형태의 브랜드로 발전시킬 계획은 있다.

 

터 : 한국인 게이 고고보이가 생겨나고 지금처럼 대중화된 것도 이 JL Cultures와 연관이 있지는 않은지.

 

임 : 감히 그렇게 얘기하면 제가 너무 거만한 것 같은데, (웃음) 그 전에도 그런 시도들이 있었다. 헌데 그 전에는 마사지샵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팬티만 입혀놓고 춤추게 하고는 고고보이라고 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었고,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도 고고보이에 대해 cheap하고, 그냥 옷벗는 애들이란 선에서 머물러 있었는데, 지금은 다소 인식이 바뀐 것 같다. 

 

터 : 마치 아이돌 같은 이미지의,

 

임 : 그런데 그렇게 스타성이 붙게 된 원인은 다름아닌 '무대'다. 사실 소녀시대도 포장마차에서 노래 시키면 3류 가수가 되지만, 진짜 제대로 갖춰진 무대에서 제대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그 때부터는 누구든 서고 싶어도 아무나 설 수 없는 무대가 된다. 그래서 저는 무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무대와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제가 발굴해서 무대에 세운 한국인 고고보이도 있고. 그런데 그런 고고보이 문화가 어느 정도 형성되고 정착된 게 저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노력해온 사람들과 변화해온 시대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터 : 아무래도 고고보이 관련해서는 별도의 특집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웃음)

 

임 : 한번 다뤄달라. (웃음) 고고보이들 스스로의 인식도 많이 변화한 것 같다. 

 

터 : 고고보이 문화는 특히 스트립걸 같은 이성애자 여성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독특하다. '성적 매력'을 팔고 전시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고고보이는 게이들 사이에서 어떤 아이돌처럼 받아들여지는데, 게이 고고보이와 여성 스트립걸은 각자의 커뮤니티 안에서 위상이 많이 다르다. 

 

임 : 헌데 고고보이 문화가,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는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고고보이의 향후 트렌드는, 단순히 언더웨어입고 춤추는 것에서 벗어나 '퍼포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고보이에 팁 꽂아주는 문화와 고고의 스타일은 본래 일본에서 온 것이고, '고고보이'란 이름도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앞으로는 몸이 갖춰진 이들이 퍼포먼스 실력까지 갖췄을 때 내뿜는 섹시함이 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터 : 이건 여담인데, 한국의 게이클럽 문화에서 일본발 클럽문화와 서양발 클럽문화가 부딪치는 느낌이 있다. 가령 트랜스젠더 클럽은 일본에서 온 것이고, 가라오케 문화도 비슷한데, 그게 점차 서구화되는 양상들이 있는 것 같다.

 

임 : 그렇다. 클럽 여보여보도 사실 일본의 정통 트랜스젠더 바의 형태를 갖춘 건데, 젊은 층들이 서구의 클럽문화를 흡수하면서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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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의 클럽 Le Queen 입구(2014.11.1.)

 

 


 

7. Le Queen

 

터 : 그럼 클럽 Le Queen 얘기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보겠다. Le Queen이 2013년 7월에 개업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 때 클럽 CIRCUIT도 남아있을 때였나?

 

임 : 남아있었다. CIRCUIT에서 3개월간 있다가 Le Queen을 오픈하게 됐다. 

 

터 : Le Queen은 어떤 경위로 여시게 됐나?

 

임 : 이게 좀 드라마틱하긴 한데, 당시에 게이클럽이 좀 지긋지긋했다. 시설투자 등의 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 대로 안 따라와지는 부분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힘이 없었고. 이태원에서든 어디서든 장사를 하려고 하면,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도 있어야 하고 홍보력도 있어야 되는데, 당시엔 그런 것들이 좀 부족했었고. 
그래서 들으면 웃기실지 모르겠지만, Le Queen을 처음 오픈했을 땐 일반 클럽으로 오픈했다. 

 

터 : 정말인가? (웃음)

 

임 : 그것도 오직 여성을 위한 클럽으로. 남성이 서빙하는 바로 오픈했다. 신기하지 않나? (웃음)

 

터 :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임 : 그렇게 오픈했는데, 인테리어 다 해놓고, 오픈 때 식사하러 오라고 지인들을 다 불렀는데, 여기 너무 좋은데 게이클럽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형 저 이제 지긋지긋해서 일반 장사할 거예요' 그랬다. (웃음) 그렇게 딱 두 달 고생했다. 손님 세 명 놓고 공연하고 그랬다. 그런데 그 공연팀이, 그 때부터 운이 맞은 게, 당시 '드랙퀸'이라는 뮤지컬을 하고 있던 세빈씨가 들어왔다. 

 

터 : 처음 오픈했을 때부터 세빈씨가 공연을 했던 게 아니었나?

 

임 : 처음부터 들어오긴 했는데, 세빈씨는 마담으로 들어왔었다. 왜냐하면 여자 손님을 대하는 게 아무래도 능숙했기 때문에. 아무튼 그 때 엄청 고생했다, 3개월 동안 쫄쫄 굶고 빚만 쌓여가고. 

 

터 : 지금 Le Queen의 사장이 세 분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때도 그랬나?

 

임 : 그렇다, 처음부터 그랬다. 

 

터 : 그러다가 3개월이 지나서 LGBT클럽으로, 

 

임 : 11월부터 Le Queen의 드랙퀸 공연팀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특집으로 뮤지컬 공연팀이 들어온다고 홍보해서, 그 때 이후로 조금씩 조금씩 사람이 차기 시작하더니, 특이하게 백설공주 컨셉으로 드랙퀸 쇼를 뮤지컬화해서 공연했는데 그게 초대박이 난 거다. 그래서 갑자기 Le Queen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터 : 이 Le Queen의 쇼가 고전적인 드랙퀸쇼, 트랜스쇼랑 많이 다른데, 그 기원이 뮤지컬을 베이스로 했기 때문이었던 셈인가.

 

임 : 그렇다. 그것도 프로페셔널한 뮤지컬 배우들이, 그것도 기획자가 다 들어와서 한 거라. 심지어 매니저부터가 전부 뮤지컬쪽 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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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Queen의 1시 쇼 中 (2015.11.21.)

 

 


터 : 2013년 11월부터 공연팀이 들어왔다면, 그 전의 쇼들은 어땠나?

 

임 : 그 전에는 초청으로만 불렀다. 예산이 없어서 정식으로 부를 수가 없어서, 9월부터 한두번씩 해주십사 부탁만 하다가, 아예 정식으로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해서 아예 들어와버린 거다. 그게 대박이 난 거다. 그래서 저는 그 뮤지컬팀한테 고맙다. 그 기획자 형님이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허풍선이 과학쇼'라는 어린이 뮤지컬 을 기획하고 있다. 잘 되셨다. 

 

터 : 보통 고전적인 드랙퀸쇼는 분장이나 실연을 과장된 형태로 표현하고, 트랜스쇼는 또 별도의 형태로 이어져내려오고 있는데, Le Queen의 쇼는 그 둘의 계보와는 사뭇 다른 형태의 쇼여서 그 계보가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 뿌리가 뮤지컬에서 왔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임 : 그리고 그런 형태가 20대 초반 친구들에게 트렌디하게 먹혔던 게, 그래도 Le Queen은 예쁘게 하려고 하니까, 댄스도 추고. 광대스런 모습보다는 쇼적인 모습이 강하니까 좀 부담없이 보는 것 같고. 예술성은 확실히 트랜스쇼나 드랙퀸쇼의 드랙 퍼포먼스에 비하면 좀 떨어지는데,

 

터 : 취향이 갈리는 것 같다. 임근준 님의 인터뷰집 여섯 빛깔 무지개』(2015)에 실린 Anchovy Oil님 인터뷰에서도, 그 분의 드랙 퍼포먼스가 과장된 실연을 강조하는 고전적인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지적된 바 있다. Anchovy Oil님의 퍼포먼스는 얼핏 보면 정말 여성으로 보일 정도니까. 
그리고 새벽 4시부터 몸좋은 게이들이 상의를 벗고 노는 문화는 어느새 Le Queen의 시그니쳐가 됐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가.

 

임 : Le Queen에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새벽 1시와 3시 때의 공연이 끝나면 4시부턴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4시면 문닫았었다. 문닫고 Pulse 가서 놀고 그랬다. 그러다가 어차피 클럽도 좋아하고 서킷 파티 음악을 좋아했던 경험도 있으니까, 4시부터 애프터클럽을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2014년 1월부터 4시 이후 애프터클럽을 처음 만들어 홍보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씩 무조건 외국 DJ를 Le Queen의 애프터타임에 불렀다. 사실 그건 남는 장사도 아니다. 섭외비랑 티켓 수입을 포함하면 그냥 똔똔인데, 그것도 저는 일종의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음악도 들려주고, 그 문화가 자리잡힐 때까지는 한번 해보자 그래서 했는데, 사람들이 잘 따라와준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운동해서 몸 좋은 사람들이 어디 가서 자기 몸을 보여줄 공간이, 그런 놀 공간이 필요했던 거다. 요새는 들어올 때부터 벗고 들어온다, 4시부터는.

 

터 : 그런 문화가 2014년 1월부터 차츰 시도되기 시작했던 건가.

 

임 : 계속 꾸준히 했다. 처음에는 애프터타임 해도 50명쯤 오다가, 점점 많아졌다. 그러다가 2014년 여름이 Le Queen의 피크였다. 바캉스 갔을 때. 그 때 대박이 터졌다. 

 

터 : 그 때 바캉스 간 게 되게 신기했다. 왜냐하면 클럽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어디 놀러가고, 놀러가는 사진이 실시간으로 페이스북에 올라오고 하는 걸 그전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건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건가.

 

임 : 다들 갖고 있던 생각들이 다 녹아나온 것 같다. 제가 항상 느끼는 게, 저는 클럽 사장이 되고는 싶었으나 막상 되고 나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생각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깊게 못 맺는 게 싫었다. 그래서 Le Queen은 가족같단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Le Queen의 규모가 작다보니까 그런 분위기가 되는 것 같다. 온 사람들 한 명 한 명 다 볼 수 있고. 사실 Looking-Star는 크다보니까 다 못본다. 그런데 Le Queen은 작고, 서로 인사하다보니까 이왕이면 그 사람들이랑 같이 여행가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게 됐다. 물론 고생도 많이 했다. 우리는 영업을 다 마치고 일요일에 준비해서 가는 거니까, 가서 고기 굽고 하다보니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던 추억이다. 

 

터 : Le Queen의 성격이랄 게 자연발생적인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한 결과라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관계가 탈각된 클럽문화가 싫어서 이런 형태의 클럽을 꾸리게 됐던 거고, Le Queen 쇼의 독특한 성격도 뮤지컬 베이스 때문에 그런 형태를 띤 거고.

 

임 : 저도 말하다보니까 그 때 기억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데, 운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시기랑도 잘 맞아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터 : 2014년 바캉스를 기획했던 때도 페이스북 인프라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Le Queen을 처음 LGBT클럽으로 바꾼 다음에 사실상 반년만에 사람들로 북적이게 된 것도 페이스북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하시는 건가.

 

임 : 그렇다. 저는 페이스북에 많이 고마워하고 있다. 예전 클럽은 꾸준히 해야 차츰차츰 손님 늘고, 물어물어 오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더뎠는데, 요즘에는 페이스북이 있어서 오픈한지 2주만에라도 사람이 많도록 만들 수 있으니까, 그게 참 장점인 것 같다. 

 

터 : Looking-Star 때도 비슷하게 느끼셨던 건가. 

 

임 : 그렇다. Looking-Star도 SNS에서 전파가 금방금방 돼서, 원래 오픈하자마자 그렇게 사람들이 알아서 오지 않는데, 요즘은 전파력이 너무 좋으니까. 제가 올려놓으면 다른 사람이 전달하고 이런 게 되니까, 그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터 : 몰랐던 얘기라서 다시 여쭤보면, 개업 후 LGBT클럽으로 전환하기 전 석달 간 힘드셨다고 했는데, (웃음) 오셨던 여성 손님들은 주로 어떤 분들이었나.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되는데.

 

임 : 2013년 10월 할로윈까지도 일반 여성을 대상으로 장사했다. 그런데 홍보를 했는데도 인프라가 없으니까, 손님이 거의 없었고, 세빈씨랑 저랑 직접 길거리 나와서 쇼한다고, 남자 웨이터 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결국은 그것도 판단 미스였는데, 여성들만 들어온다고 하면 레즈비언 클럽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반여성 전용 클럽에 올만한 여성들도 많지 않았다. 처음의 기획은 고급스런 클럽으로 가고 싶었고, 이태원에 여성들이 많이 오는데 그들 중에 클럽을 안좋아하고 남자가 추근덕대는 걸 싫어하고, 편안하게 술 한잔 하고 갈 여성들을 위한, 멤버쉽 개념이 있는 라운지바 스타일의 공간으로 구상했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그림과 실제가 달랐던 거다. 그리고 일반 남성 종업원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터 : 지금도 Le Queen에 여성 손님들이 들어오실 때가 있는데, 혹시 그 시절을 알고 들어오시는 건가.

 

임 : 아니다. 일반 여성 손님이 오시는 이유는 쇼 때문이다. 쇼가 일반 사이에서 좀 유명해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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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Looking-Star의 <Pick me> 타임 (2016.5.22.)

 


 

8. Looking-Star

 

터 : 이제 클럽 Looking-Star 얘기로 넘어가겠다. Looking-Star는 KPOP을 전면으로 내세운 클럽인데. 

 

임 : 현재 KPOP 중심의 클럽 Looking-Star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이 모순이 될지 모르지만, Le Queen를 오픈하고 2주년이 됐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클럽에서 가요가 나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Le Queen에서 DJ가 KPOP을 틀면 되게 화를 낼 정도로, 왜 클럽에서 KPOP을 트냐고 화를 낼 정도로 싫어했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당시에 Pulse에 '끼타임'이라고 해서 이미 KPOP을 틀기 시작했고, 그게 Pulse의 인기의 주축이 됐었는데, 그래도 저는 사람들이 왜 클럽에 와서 KPOP을 듣는지 이해가 안됐고, 클럽에 KPOP이 나오는 게 싫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운영을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이게 트렌드가 된 거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클럽은 트렌디해야 되는데, 이제는 이게 트렌드가 된 거다. 사람들이 모임을 결성해서 춤을 배우고, 페이스북에 자기 끼춤 영상을 올리는 걸 보니까, 이건 한두 명의 현상이 아닌 거다. 그리고 요새 클럽에 나오는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게 EDM(
Electronic Dance Music)인데, KPOP에 EDM 장르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냥 가요가 아니라 말그대로 KPOP이 되고, 또 안무가 생기니까 이게 재밌는 거다. 그래서 테스트를 해보자 싶어서, Le Queen의 1시 공연 끝나고 3시 공연 사이에 KPOP 타임을 만들었다. 

 

터 : 그게 언제였나.

 

임 : Looking-Star가 2016년 5월 13일에 오픈했는데, 그로부터 3개월 전에. 

 

터 : 그럼 Le Queen에 KPOP 타임이 생긴 게 올해 2월인 셈인가.

 

임 : 그렇다, 얼마 안됐다. 그 타임을 만들었더니 또 사람이 많아졌다. 원래는 1시와 3시 사이에 사람이 텅텅 비었었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지고, 너무 즐겁게 노는 거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음악이 즐거우니까 노는 구나 싶어서, 이들을 대상으로 클럽을 열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터 : 그러면 그 이전에는 Le Queen에 KPOP을 전혀 안틀었던 건가.

 

임 : 전혀 안 틀었다. 아예 한 곡도 못 틀게 했다. 왜냐하면 그 때는 다른 클럽과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Le Queen은 전반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클럽으로 하고, 그 중에 1시와 3시는 쇼를 위한 사람들에게 주고, 애프터 타임에는 클럽 음악만을 원하는 사람을 잡아주고, 그런데 중간에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 한번 줘보자 해서 테스트를 한 것이다. 여기도 KPOP 나오고 저기도 KPOP 나오는 건 원치 않았다. Le Queen은 Le Queen만의 캐릭터가 있기를 원했다. 

 

터 : 그 때는 Pulse에서 KPOP을 틀었으니까,

 

임 : 늦은 새벽 Pulse에서는 KPOP을 꾸준히 틀었다. 그러다 Le Queen에서 1-3시 사이에 KPOP을 틀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했고, 그것에 착안해서 Looking-Star에도 그런 수를 둔 거다. 

 

터 : 헌데 클럽의 DJ라면 으레 자신의 음악을 틀고 싶어할 텐데, KPOP처럼 이미 완성된 곡들을 틀게 할 때, DJ의 음악적 지향과 KPOP적인 선곡 사이에 뭔가 긴장이 있을 것 같다. 

 

임 : 제가 지금 DJ들이랑도 다 잘 지내고, 무엇보다 너무 사람을 잘 만났다고 생각하는 게, 저는 제가 미안해서 먼저 물어본다, KPOP만 틀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그리고 DJ라면 다른 것도 틀고 싶지 않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그분들은 KPOP을 이렇게 재밌게 트는 것도 힘든 거라고 대답한다. 이것도 프로페셔널한 거고, 이것도 틀고 저것도 틀고 장르가 다양해진다고 생각해야지, 어떻게 KPOP 트는 걸 자존심 상해할 수 있냐, 그건 DJ의 역량이 없는 거다, 오히려 그렇게 이야기하신다. 

 

터 : 어떻게 보면 KPOP이 어느 정도의 대중적, 음악적 입지가 생긴 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게이클럽은 나이트클럽같지는 않고 어느 정도의 아우라가 유지되는데, 그 이전 시대를 생각하면 보통 한국의 나이트클럽에서 으레 KPOP을 트니까, 우리는 '클럽'이다, 그러니 가요 못 튼다, 이런 게 있었을 것 같다, 초반에는. 

 

임 : 맞다. 그 땐 그게 세련됨이었고, 그게 트렌드였고 멋있는 거였는데, 지금 20대에게는 가요 안 트는 그게 멋있는 게 아니다. 저는 그걸 확실히 느꼈다. 옛날 엄정화 세대의 가요하고, 지금 2NE1이나 프로듀스 101의 음악하고는 질이 다르니까. 느낌도 다르고 장르도 다르고, 클럽에서 들어도 전혀 손색없는 EDM 장르니까. 게다가 가수들도 패셔너블하고. 심지어는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한류를 좋아하고 옷 따라입고, 이게 패션 트렌드가 됐다. 그래서 제일 기분 좋았던 게, Looking-Star 오픈하고 나서 중국 사람들이 놀러와서는 '아시아 최고의 클럽'이라고 찬사를 하더라. (웃음) 그리고 다음에 올 땐 곡을 꼭 연습해오겠다고, 제일 유명한 KPOP 곡을 갖다달라는 거다. 그걸 보고 아, 이게 트렌드구나, 싶었다. 

 

터 : 저도 2006년에 처음 홍대 클럽에 갔을 땐 한국 가요 안 트는 게 멋있는 거였고, 가요 트는 게 좀 격이 떨어지는 거였는데, 어느새 이게, 

 

임 : 바뀐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Heineken 주최로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하이엔드 뮤직페스티벌 5tardium이 열렸는데, 거기서도 프로듀스 101의 <Pick me>가 나왔다고 들었다. 그 정도로 시대가, KPOP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터 : 클럽 음악의 트렌드 흐름이 있는 셈인데, 그 흐름을 잘 읽고 Looking-Star를 기획한 셈인가.

 

임 : 그런 것 같다. 

 

터 : Looking-Star에 소녀시대가 왔다던데. (웃음)

 

임 : 소녀시대도 오고, 연예인들 되게 많이 왔다 갔다. 소녀시대, 카라, 또 모델들도 많이 오고 영화배우도 오고. 좀 있으면 클럽 내에서 영화촬영도 한다. 운때도 잘 맞은 것 같아서, 항상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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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I:M 파티 공식 로고 (2015.8.21-23.)

 

 


9. I:M

 

터 : 이제 I:M 얘기로 넘어가겠다. 작년에 2015년에 처음 시작했는데, 클럽을 운영하시다가 다시 서킷 파티 브랜드를 런칭하셨는데. 이전에는 디렉터였다가 I:M 때부터는 주최자가 되셨다.

 

임 : 헌데 디렉터로 참여했던 VELOCITY 때에도, 투자자는 아니지만 주최자로 생각하고 참여했었다. 대신 I:M 부터는 실제로 제 돈도 들어가고 투자가 됐다는 게 다르다. 왜냐하면 내 클럽을 가진 상태에서, 그 전에 (이태원 게이클럽들간)클럽데이를 먼저 만들기도 했고. 

 

터 : 클럽데이는 언제 만들어졌나.

 

임 : 2015년 1월에 만들었다. 2014년 12월에 클럽 Pulse와 GRAY에 건의를 했다. 클럽데이에서 모인 수입을 계속 모아서 I:M을 만들어보자, 

 

터 : 클럽데이를 시작할 때부터 I:M에 대한 계획이 있었던 건가.

 

임 : 그렇다. 

 

터 : 홍대에는 클럽데이가 있었다가 없어졌는데, 더구나 홍대 클럽데이는 공연하는 클럽과 춤추는 클럽을 함께 묶어 운영했었다. 그렇게 다양한 클럽들을 묶어 행사를 주최하다보니 여러 어려움들이 수반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태원 클럽 Pulse, GRAY, Le Queen도 사실 마켓 쉐어가 각자 다른 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같이 클럽데이를 꾸렸을 때 어떤 느낌이셨는지.

 

임 : 당시에 클럽데이를 할 수 있었던 동기가, 금요일에 이태원이 급속도로 사람이 줄었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사람들을 금요일에 모아보자는 의도가 있었고, 의도대로 잘 되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평소보다 100-200명이 더 모이기도 하고. 물론 규모가 큰 Pulse는 유입 인구가 더 많았고. 그러다 I:M 이후부터 클럽데이가 없어졌다.

이런 말 하면 사람들이 잘 안믿겠지만, 저는 돈에 욕심이 별로 없다. 돈에 별로 스트레스를 안받는 편이고, 밥먹고 핸드폰요금 내고 집세 내고 하면 됐다, 하는 편이다. 물론 밥을 많이 사먹긴 하지만. (웃음) 아무튼 그런 행사를 할 때 수익이 크게 나는지의 여부에 그렇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Le Queen 사장들이 다 그렇다. 그래서 이런 클럽데이 같은 날이 있는 게 재미있었다. 

 

터 : 그러니까 클럽데이 같은 기획은 상업적인 의도만 따지면 할 수 없는 일 같다. 

 

임 : 그렇다. 계산을 하기 시작하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각자 클럽의 사정이 다를 테니까. 그런데 지금도 고마운 것은, 수입을 다 묶어서 나누는 클럽데이 같은 행사에, 큰 클럽인 Pulse 측에서 참여해줬다는 것은 솔직히 큰 결정을 해준 것이다. 그리고 시너지효과도 충분히 있었고. 

 

터 : 그러면 클럽데이의 수입으로 I:M을 열게 된 건데, 처음 기획하실 때 어떤 의도를 가졌었나.

 

임 : 서킷 파티 VELOCITY를 기획했었지만, 국내에 국한된 축제라는 느낌이 있었다. 해외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규모와 투자 면에서도 제한이 있었고. 그런데 I:M의 경우는 3개의 클럽에서 클럽데이 수익을 모으다보니까 억대의 투자가 됐고, OB에서도 투자가 들어와서 여러 조건들이 맞춰졌고, 제대로된 서킷 파티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마침 장소도 좋은 곳이 나왔고. 이래저래 삼박자가 맞았던 것 같다. 3개의 클럽을 다 닫고 서킷 파티를 한다는 것도 사람들에게 센세이셔널했고. 

 

터 : 파티의 예산에는 어쩔 수 없이 대기업 투자가 중요해지는데, 게이 파티에서 대기업 투자가 들어온 시점이 언제부터인가?

 

임 : 사실 제가 생각하는 투자의 개념은, 진짜 아예 Heineken 등에서 여는 브랜드 파티처럼, 파티 비용 전액을 낼 만큼의 규모가 되는 투자다. 그런데 그 정도의 투자가 들어온 것은 아니었고, 작년 I:M의 경우를 보면, 게이고 일반이고를 떠나서 대기업들은 이게 장사가 되느냐 안되느냐를 판단하는데, 당시에 3개의 클럽에서 함께 하다보니까 세 클럽에서 팔아주는 술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이태원 안에서 게이클럽의 입지가 지금도 나름 굳건하다. 왜냐하면 주류를 배급하는 주류사에서 게이클럽에서 소비하는 술의 양을 파악하고 있는데, 게이클럽은 일반클럽에 비해 술 판매량이 꾸준히 많은 편이다. 일반 클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적고, 갈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터 : 게이클럽은 나름 고정된 마켓으로 인지되고 있다는 건가.

 

임 : 그렇다. 그러니 주류사에서 게이클럽의 주류 판매량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또 사람이 몰리다보면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이윤이 예상되므로 그 행사에 붙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가령 작년의 경우 기념품의 제작을 주류사에서 제공해줬다. 거기에 기업 로고가 들어갔고.

 

터 : 서킷 파티를 나름 글로벌한 규모로 크게 벌려보자는 취지에서 I:M을 기획하셨다는 얘기까지 들었는데, 그 해에 공교롭게 메르스가 터졌다. 파티 일정이 한달 미뤄졌는데, 그 때의 경위가 궁금하다. 심정적인 타격도 있었겠지만, 장소 예약도 다 미뤄야 하니 위약금 등 실무적인 타격도 있었을 것 같은데.

 

임 : 사실이다. 그런데 메르스가 전화위복이 된 부분도 있다. 홍보할 수 있는 시간을 두 배로 벌었고, 그래서 디테일한 부분들을 더 꼼꼼하게 챙길 수 있었다. 또 바뀐 일정이 한여름이라 잘 됐던 것도 있고. 그리고 일정 변경 전에는 퀴어문화축제 측에서 하는 공식 파티와 일정이 너무 붙어있어서 마음에 좀 걸렸었는데, 8월로 변경되고 난 다음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래서 그 다음 해인 올해도 8월에 하게 됐고. 

 

터 : 작년 I:M 파티가 나름 성황리에 잘 끝났는데, 그래도 흑자는 안 났다고 들었다. (웃음) 해보시면서 소회가 어땠나.

 

임 : 이제는 나 혼자서 뭔가 할 수 있을 만한 규모의 파티가 되지는 않았구나, 좀더 갖춰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올해 더 느낀다. 그 전에는 어쨌든 혼자 하면 되지 하고 낑낑대고 만들긴 했는데, 그래도 해외 서킷에 비하면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예산도 많이 들어가고. 그리고 올해 하면서, 이건 내가 더이상 재미로 할 행사가 아니구나 싶다. 사실 다른 사람도 즐겁지만 저도 만들면서 즐겁기 위해 이 파티를 만든 건데, 점점 즐길 수가 없게 된다, 너무 힘드니까. 그리고 힘든 것에 비해서, 물론 좋은 소리만 듣자고 하는 건 아니지만, 제 취지와는 어긋나게 이 파티로 뭔가 굉장한 액수의 돈을 벌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굳이 이걸 해야 되느냐는 질문을 스스로 하기도 한다. 그래서 만약 내년에 기획과 구성을 잡는다면, 좀더 엔터테인먼트 사업 쪽으로 분야를 넓혀서, 서포트할 수 있는 직원을 뽑고, 좀더 체계적으로 서킷 파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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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Le Queen이 있는 이태원로27가길 (2016.5.21.)

 

 

 


10. 이태원 주변 상가들과의 관계

 

터 : 이태원 주변 상가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궁금하다.

 

임 : 어딜 가든 안 그렇겠냐만, 이태원은 겉으로 볼 때 외국인도 많은 것 같고 세련돼보이는데, 실제로는 시골과 비슷하다. 토박이들이 조직화돼있고, 텃세도 있고. 임대업자 분들간의 유대관계도 많고, 기업형으로 변모한 조폭들도 있고.
아무튼 홍석천 형이랑도 잘 지내는 편이고, 이태원에서 장사하시는 일반 분들과도 교류가 있는 편이다. 가게에 들러 밥먹기도 하고, 그분들이 오시기도 하고, 좋은 자리 나면 서로 알려주기도 하고. 만약 타지에서 오면, 여기 부동산에서 아무리 장소를 구하려고 해도 좋은 데를 안 내준다. 그런 면에서 처음 Le Queen을 열 때 지금 자리를 소개해준 분이, 주변의 일반 라운지바 사장 형이다. 그 형님에게 너무 감사하다. 그 때만 해도 그 자리 앞이 비포장도로에 편의점도 없어서, 주말 밤이 되면 깜깜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Le Queen 들어오고 나서 포장도로가 닦이고, 편의점이 생겼다. 

 

터 : 처음부터 그 앞 도로가 포장돼있던 게 아니었던 건가.

 

임 : 처음에는 포장이 안돼있었다. Le Queen 계약하고 2개월 뒤에 포장됐다. 

 

터 : 그건 정말 '운때'인 것 같다. (웃음)

 

임 :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앞에 편의점이 생겼고, 주변에 클럽들이 생기면서, 거리가 살아났다. 

 

터 : 그러면 이 동네의 일반 분들이 여기에 나름 게이 상권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건가.

 

임 : 아주 크게 인지하고 있다. 특히 Le Queen은 드랙 분장을 하고 나와있고, 새벽 4시 이후 애프터타임에 오는 사람들이 몸도 좋고 인물도 좋은 편이어서 눈에 확 띈다. 그런 것도 사실 저는 좋다. 뭔가 숨어있는 이미지가 아니고, 메인 스트릿에 아무렇지 않게 나와있고 뭇사람들이 그걸 보는 게 나름 교육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니까.

 

터 : 하긴 클럽 GRAY가 근처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이 부근의 게이클럽은 Le Queen이 유일했던 것 같다. 

 

임 : 그랬다. 

 

터 : 혹시 이웃들 중에 게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있나?

 

임 : 있을 수가 없다, 마켓이 딱 굳건하니까. 그래서 저는 실질적으로 석천이형한테도 되게 고맙고, 이 주위에서 큰 일반 레스토랑과 클럽을 하시는 분들 중에 게이 형들이 많아서, 그 분들에게 고맙다. 게이들이 하면 뭐든 된다는 인식의 초석을 닦아주신 분들이다. 게이들이 장사를 하면 상권을 만든다는 게 일반들한테도 인지가 되다보니까. 그래서 업장을 알아보러 다니다보면, 게이라고 밝혔을 때 오히려 반겨주신다. 그리고 건물주들이 좋아한다. 그런 이미지가 생겨버렸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그 형님들이 되게 잘해주신 거다. 

 

터 : 이태원에서 이전부터 영업하시던 게이 형들이 터전을 잘 만들어줬고, 그래서 감히 게이라서 싫다고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가.

 

임 : 맞다. 속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터 : 이태원에서 게이 업주들의 입지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태원 가게들 중에 게이 사장이 많다는 것도 몰랐고. 

 

임 : 되게 많다. 이태원에서 잘되는 바나 클럽들 중 적지 않은 곳은 게이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유대가 워낙 잘돼있고, 토박이들이 많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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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Looking-Star에서 열린 콘서트 UNICON (2016.7.9.)

 

 


11. UNICON(UNIque-music CONcert)

 

터 : 클럽 Looking-Star에서 올해 7월에 열렸던 콘서트 UNICON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이제 막 오픈한 클럽에서 이런 공연을 연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는데, 이런 공연이 크게 돈이 될 행사는 사실 아닌 것 같다. 

 

임 : 돈 벌려고 한 행사는 아니다. (웃음) 

 

터 : 공연 기획의 경위를 듣고 싶다. 

 

임 : 사실 그런 행사를 하면 피곤하고, 신경쓸 것도 많은데, 저는 왠지 그런 행사를 꾸리는 게 재밌다. 주최는 제가 했고, 주관은 Moi:m에서 했다. 앞서 언급한 Triangle의 MouM에서 한달에 한번씩 '오픈마이크'라는 공연을 했었는데, 그 공연을 기획했던 그룹이 Moi:m이었고, 게이 음악동아리 Muzixay를 기반으로 한 모임이다. 그 친구들에게 평소에, 내가 나중에 큰 클럽을 오픈하면 콘서트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Looking-Star를 계획할 때, 처음부터 공연용 앰프나 공연장비를 추가로 설치했다. 때문에 Looking-Star에서의 공연은 본래 계획돼있던 거다. 

 

터 : 클럽 계획단계부터?

 

임 : 그렇다. 그런데 언제 할지는 몰랐는데, 의외로 공연이 빨리 성사된 거다. 빨리 성사된 것은 Moi:m에서 워낙 열심히 뛰어준 탓이다. 얘네들이 너무 열심히 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솔직히 그네들에게 수익이 가는 구조도 아니고, 형이 장비 렌탈 비용을 내줄 테니 너네는 공연해라, 이런 식인 건데. 걔네들한테는 무대가 고마운 거다. 그래서 힘든 일인데도 Moi:m에서 공연을 손수 준비해주고, 다 연락해서 다 짜갖고 왔다. 그리고 UNICON 이름은 제가 지었다. (웃음) 아무튼 이런 행사가 재밌고 좋다. 클럽 파티 외에 다른 행사를 하는 게.

 

터 :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사장이신데 당장 돈이 안되는 행사를 선뜻 벌이시는 게 이채롭다. 

 

임 : 헌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런 행사를 해서 그런 취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느는 것 같고, 그게 나중에 결국 장사 밑천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근래에 주말 무료 입장이 가능한 클럽들이 있음에도, 입장료가 있는 Le Queen과 Looking-Star에 꾸준히 사람들이 몰리는 걸 보면, 이제 게이들도 인식이 좀 변해서 저렴한 가격만 보고 따라가지 않고, 돈을 낼 가치가 있는 공간에 돈을 내고 들어가는 소비형태가 자리잡힌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고맙다. 
또 게이를 대상으로 유흥업을 하는 입장에서, 게이커뮤니티를 위한 행사를 뭐든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저는 제가 그런 행사를 즐기니까 기획하는 거지, 사실 밤 클럽 업소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게 힘들다. 잠을 안 자고 나와야 되고, 조금 더 부지런해야 가능한 거라서.

 

터 : 종합하면, 게이커뮤니티를 의식하고 어떤 활동을 하시는 게, 단기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의도하지는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매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시는 건가. 

 

임 : 그렇기도 한데, 그런 행사를 만드는 것은 정말로 당장의 장사 생각을 하고서는 못한다. 그런데 꼭 게이 장사로 국한하기보다, 그냥 '장사'로 생각했을 때 달리 보이는 것은 있다. 가령 예전에 저는, 친구사이 사람들이 유독 클럽에 많이 보이긴 했었지만, 커뮤니티 사람들이 클럽에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에 클럽에 오는 게이들 스스로는, 우리 돈으로 클럽이 다 돈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장사를 좀 크게 보면, 솔직히 장사는 어디나 똑같은 거고, 그 돈을 번 것만큼 우리는 베네핏을 주는 거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저는 그런 행사를 여는 것도, 그게 다 클럽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재밌어서 한다. 

 

터 : 그 전에는 사실 '게이커뮤니티'에 클럽이 구색상 끼어있는 느낌이지 실질적으로 함께 한다는 느낌은 잘 안 들었는데, 이제는 클럽도 점점 명실공히 '게이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잡는 느낌이다. 

 

임 : 다행히 같이 동업하는 사람들도 다 그런 방향을 좋아하는 편이다. 세빈씨도 적극적이고. 

 

터 : Le Queen과 Looking-Star는 확실히 커뮤니티와 명백히 같이 간다는 싸인을 계속 던져주니까 되게 신기했었다. 

 

임 : 그 점을 저는 앞으로도 고수하고 싶다. 장사가 되든 안되든, 내가 그 사람들과 같이 있고, 내가 번 걸 어느 정도 그 사람들에게 쓰기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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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보릿자루』가 100분의 이반업소 업주들을 대상으로 '진상 고객'에 대해 설문조사한 답변 중 일부. 

"'보갈'이 아니라 '이반'인 '인격체'라는 것을 너무 부정하는 고객들은 정말 싫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런 고객 소금 뿌려」, 『보릿자루』 9, 1999.7.1., 12쪽.)

 

 

 

터 : 사실 초창기 게이 업소들, 가라오케·소주방·게이바 업주 분들의 기사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 시절 그 분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 게이 대상 장사라는 것이 돈만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게이커뮤니티의 기반을 닦는다는 감각을 갖고 계셨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러다가 가게가 망하기도 하고, 커뮤니티에 실망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런데 커뮤니티와 업소가 함께 간다는 그 유서깊은 흐름이 비로소 가시적이고 확실한 성공 모델로 자리잡게 된 것이, 지금의 Le Queen, Looking-Star인 것 같다. 

 

임 : 그래서 고마운 부분이 있다. 헌데 만약에, 돈을 위해서 커뮤니티에 힘을 쓰고, 또 그런 노력이 확실한 금전적 수익으로 이어지고,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될 것 같으면 업소들이 다 커뮤니티에 신경쓸 텐데, 

 

터 : 사실 꼭 그렇게 되리란 법은 없다.

 

임 : 그렇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찾아주시는 것도 같다. 
그리고 Le Queen이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했을 때 사람들에게 이슈였고, 올랜도 LGBT 클럽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제에 참석했을 때도 이슈였는데, 그게 이슈가 된다는 게 개인적으론 좀 부끄럽다.

 

터 : 왜 그런가. (웃음)

 

임 : 당연히 해야 되는 것 같고, 하고 싶었던 일들인데, 왜 그렇게 굳이 이슈가 될까 싶다.

 

터 : 그 전에는 그만큼 게이클럽에서 이런 이슈에 대해 이 정도로 개입하고, 개입이 가시화된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임 :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저도 배운다. 많이 배웠다. 처음 Le Queen 오픈할 때나 그 전에 파티 만들 때랑 지금을 비교하면, 스스로 생각했던 게이가 추구해야 할 삶의 지향이 많이 바뀌고 있다. 

 

터 : 어떻게 바뀌었나.

 

임 : 저는 솔직히 게이들이 놀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어차피 인생 한번 태어난 거, 나중에는 가족이 있을까 뭐가 있을까, 어차피 그냥 즐길 대로 즐기고 놀고 먹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많이 바뀌었다. 그게 다가 아니구나,

 

터 : 좀더 필요한 것들이 있구나,

 

임 :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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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PULSE : 서울-올랜도 연대 촛불문화제>에서 공연하는 Le Queen 공연 팀 (2016.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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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제가 끝난 당일 Le Queen 입구 (2016.6.17.)

 

 

 


12. <LIFEPULSE : 서울-올랜도 연대 촛불문화제> 참석

 

터 : 자연스럽게 올랜도 추모 집회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참석의 소회가 어떠셨나. 올랜도 총격사건은 사실 LGBT클럽에서 일어난 범죄였고, 그래서 그 추모제는 클럽 관계자가 오시면 너무 빛이 나는 자리였다. 그래서 Le Queen 공연팀과 함께 오셨을 때 임팩트가 컸던 기억이 난다.

 

임 : 그랬던 것 같다. 더구나 인권운동 하셨던 분들에게는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페이스북 관련 포스팅도 많이 올라왔고. 사실 관련 기사를 처음 봤을 때는 주말에 장사 끝내고 자리에 누웠을 때다. 그 때는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찝찝한 소식이기도 하고, 사상자 규모도 제대로 알려지기 전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이튿날 보니까 이야기가 흘러서는 안될 방향으로 흘러서 걱정이 됐고, 또 클럽 이름이 한국의 게이들에게도 친숙한 "Pulse"이기도 해서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러던 중에 친구사이의 이종걸님에게서 추모제 때 발언을 해주면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고, 부끄럽지만 흔쾌히 승낙했다. 그랬더니 세빈씨가 그럼 Le Queen 공연팀도 참가하겠다, 그럼 다 같이 가자, 이렇게 해서 같이 가게 됐다. 

 

터 : 그날 그 자리에서의 발언과 공연이 참 좋았다. 

 

임 : 사실 퍼레이드도 그렇고, 인권단체들이랑 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깊이 교류하는 건 아니고 잔잔히 서로 부딪치는 정도지만, 그렇게 점점 부딪치고 무언가를 할수록 많이 배우고 느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클럽이 유흥 공간이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흘러가는 방향은 있지만, 그래도 이 유흥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에게 던져줄 수 있는 메세지는 어떤 게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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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Folsom Street Fair 2015 포스터 (2015.9.27.)

 

 


13. 서킷 파티의 미래

 

터 : 마지막 질문은, 게이클럽을 운영하시는 철학과, 찬혁님께서 생각하시는 게이커뮤니티의 정의에 대해 묻는 내용이었는데, 이야기 중에 이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충분히 설명된 듯하다. (웃음) 게이커뮤니티란 말에서 클럽이 갖는 반향이 늘어나고 있고, 그 반향은 단순히 노는 것을 넘어서 뭔가 생활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있고, 거기에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 확인된 듯하다. 
인터뷰 중에 궁금했던 것은, 당장의 이문을 좇지 않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시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인권운동과 진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헌데 반면에, 장기적으로 봤을 땐 어떤 행사가 개개인의 봉사에만 기대서는 안되고, 규모가 커지면서 역할들이 분화되는 것이 나름대로의 건강한 방향이기도 하다. 여러 활동들을 좋아서 하고 계신다니 너무 좋지만, (웃음) 동시에 사업가로서의 입장도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여러 활동들의 수익 규모가 좀더 커졌으면 좋겠다는 전망도 갖고 계실 것 같다. 

 

임 : 지금 시점에서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사실 I:M라는 대형 서킷 파티를 처음 꾸렸던 목적이 한국 사람들이 즐겁게, 또 게이들도 즐겁게 놀아야돼, 한국에도 이런 문화가 생겨야돼, 이런 거였는데. 사업을 해보니까 이건 현 시점에서는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물론 제가 몇 억을 투자하면 가능하겠지만, 그만한 예산도 없고, 또 그 파티의 파이를 키우려면 날 돕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되는데,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 사람들 모두를 내 돈을 들여 고용하면서 이만한 파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은 현재와 같은 구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중에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BDSM 파티인 Folsom Street Fair 같은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 Folsom Street Fair는 전액 기부 파티로 운영된다. 심지어 참가자들이 길거리에서 섹스를 하든 가죽을 입든 뭘 하든 그걸 제재하지 않는데, 이유는 거기서 한 해 몇십 억의 수익금을 기부하기 때문이다. 

 

터 : 어디로 기부되나?

 

임 :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심장병 어린이 등을 위해 기부된다고 들었다. 파티에 포르노스타도 나오고, 길거리에서 섹스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데, 그게 도시 문화로 정착되고 페스티벌이 됐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돼보이는 행위들이 용납될 수 있는 건, 그 행사의 수익금이 좋은 취지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게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거고. 
그래서 대한민국 서킷 파티의 최종적인, 궁극적인 목적지는 그런 형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태국, 일본, 대만에 이미 여러 서킷 파티들이 있지만, 그건 모두 수익 사업의 형태이기 때문에, 그것과 구별되는 지점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저는 지금 가지고 있는 클럽이랑 포차에서 나오는 수익이면 현재로서는 충분한 것 같다. (웃음) 그래서 이 다음에 내가 파티를 만들 때 내가 즐기고 재밌게 하려면, 수익 사업에서 기부 파티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 필요할 것 같고, 그게 추후의 궁극적인 목표다. 지금 I:M의 형태로는 아직 실현하기 어렵지만. 

 

터 : 수익금을 수익 사업화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기부로 돌리는 식으로,

 

임 : 건방진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퀴어문화축제 공식파티의 규모가 커진 속도를 생각해보면 참 대단하다. 올해 PRIVATE BEACH 가서도 느낀 것이 많았고. 이렇게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시각도 달라질 거고, 자연히 기업들도 붙을 거다. 사람이 많아지면 돈이 되니까 기업들이 분명히 붙을 거다. 그런 걸 잘 이용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끔 인권단체 측 분들을 보면 그런 점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터 : 그런 대기업 후원을 아예 들이지 말자는 의견도 있다. 

 

임 : 상업성을 들이지 말자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그런 상업적 요소를 충분히 들이면서도, 기업 후원이든 뭐든 그런 후원들을 잘 이용해서 쓰면, 좀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제가 정치적으로나 인권적으로 그런 지식은 많이 없지만, 제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파티 형태가 구현돼서, 파티의 수익금이 생기면 일반들도 알 수 있는 기부행사로 된다든지, 그런 포맷이 실현되게 되면 그런 시선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터 : 사실 "수익성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이 발언만 잘라서 나가면, "장사꾼이 뭔 소리야"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이 인터뷰를 죽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납득을 하실 것 같다. 아무튼 서킷 파티에 관해, 상업성을 끼고 더 큰 어떤 판을 벌여서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싶다는 비전을 말씀해주셨다. 

 

임 : 그런데 이런 얘기는 참 조심스럽다. 인권단체 측과 알게 된지 얼마 안되는데, 처음에는 인권단체의 행사를 보고, "어우 저게 인권운동이야? 저렇게 하는 게 인권에 도움이 되겠어?"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인권에 힘써야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생각이 바뀌었다는 게 그런 거다, 아 이렇게 운동할 수 있고, 저렇게도 표현할 수 있는데, 저분들이 하는 것에도 내가 배워야 할 가치들이 많구나,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개념적인 부분들. 나는 내 상식에서만의 인권을 생각했던 건데, 개념과 논리로 들어갔을 때 진짜 인권이 뭐며,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게 어떤 것이며, 그런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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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2015년 미국 HBO에서 방영된 드라마 <Looking>

 

 

 

 

14. 일상으로 성큼 들어선 놀이 문화, 그럼에도 남는 삶의 과제

 

터 :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다. 이 인터뷰를 준비하기 전에 제 머릿속에 있었던 이분법은 다음과 같은 거였다. 게이의 삶에서 놀이라는 건 사실 협소한 일부분이고, 놀이 외의 부분에서 할 게 아직 많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놀이라는 것도 어쨌든 외연이 커지고 있고, 삶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설득된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그럼에도, 놀이 외에 챙겨야 할 다른 게이로서의 삶의 부분들은 많다. 그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하시는 바를 듣고 싶다. 놀이 문화의 확장과 커뮤니티와의 접점에 대해 충분히 애쓰고 계시지만, 그것 외에 지금 게이의 삶에서 필요한 많은 국면 중에, 놀이 이외에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에 대해 체감하고 계신 부분은 없는지?

 

임 : 요즘 느끼는 건, 외로우니까 실버 게이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게이들이 노년을 이렇게 멋있게 보냈다, 게이로서 노년을 어떻게 보냈다고 하는 전례가 없는 것 같다. 그런 교육들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또 느끼는 건, 게이들의 정확한 성교육도 좀 필요한 것 같다. 

 

터 : 그렇게 많이 했지만 그래도 사실 부족하긴 한 것 같다. (웃음)

 

임 : 그 성교육이라는 게, 그런 것들도 어떻게 보면 게이 선배로서의 역할 같다. 
제가 요새 뭘 느끼냐면, 원래는 드라마 Queer as Folk가 저한테는 게이 라이프의 바이블 같은 거였다. 그래서 아 이게 게이 라이프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요즘에 이렇게 살아보니, 드라마 Looking에서의 삶이 진짜 게이 라이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드라마의 차이점은, Queer as Folk에서는 섹스와 (미국의)마약 같은 게이들의 밤문화가 대부분 그려진다. 그리고 우리를 앞서갔던 미국에서의, 그 시대의 게이 라이프는 정말로 그러했던 것 같다. 그걸 보면서 저도 게이의 삶은 그래야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게 아닌 거다. 
유흥 이외의 삶의 부분이 많다고 아까 지적해주셨지만, 제가 유흥의 삶에 젖어있고, 유흥업을 비즈니스로 해서 그렇지, 이건 진짜 일주일에 이틀이고, 그렇지 않으면 한달에 한번, 일년에 한번 있는 파티인 셈이다. 물론 그 안에서 내가 이 업을 하는 만큼, 이것만이라도 내가 좀 잘 만들어서 지키자, 이런 바람과 사명은 있는 거지만. 
그래서 마지막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그건 것 같다. 실버 세대랑, 앞으로 살아갈 젊은 20대, 30대 게이들의 커뮤니티가 서로 교류됐으면 좋겠다. 또 인권운동하는 사람들은 내부에서 어떤 지식을 잘 알고 있고, 교육이 잘 되고 있겠지만, 실제로 저같은 사람들, 사회나 클럽에 나와서 노는 사람들은 으레 자기가 생각한 대로 살게 된다. 뭔가 자기가 깨닫지 않는 이상은, 정확한 교육이 되기가 힘들다. 그래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인권운동단체들과, 게이커뮤니티가 어떻게 같이 융화될 수 있느냐가 최대의 숙원이 아닐까 싶다. 

 

터 : 인권운동단체에서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늘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고, 또 어느 정도는 늘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임 : 보니까 그 양자가 되게 다르더라. 제가 보니까, 다르지 않은데 또 다르다. 같은 게이들인데도,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르고. 

 

터 : 친구사이가 사실 인권운동단체 중에는 커뮤니티 기반의 사업을 중시하는 곳이긴 한데, 다른 게이커뮤니티의 눈으로 보면 '친구사이가 과연 커뮤니티인가?' 이런 느낌이 사실 있을 것이다. 

 

임 : 그런 의미에서 되게 좋은 게, 친구사이에서 게이코러스 지_보이스를 만들지 않았나. 그런 곳이 그 중간의 연결고리 역할이 되지 않을까 싶다. 노래가 좋아서 가긴 하지만, 그 안에서 양쪽의 사람들이 서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섞이고. 그런 게 중요한 과정이지 않을까.

 

터 : 지_보이스에 신입 단원이 들어왔는데, 게북에서 라이크 많이 달리던 사람이 와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웃음)

 

임 : (웃음) 그런데 그런 게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먼저 선뜻 친구사이에서 우리하고 먼저 프로젝트 하자고 했을 때, 저는 되게 기분이 좋았다. 원래 처음에 친구사이에서 파티를 어떻게 한다고 그러길래, 제가 실은 되게 뭐라고 했었다. 무슨 파티를 하냐, 파티하지 말고 이러이런 걸 해봐라, 그런 이야기도 했었는데. 어쨌든 그런 것도 하나의 시도고, 먼저 손 내밀어주고 그런 것들이 좋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끔 보면 우리 유흥업 하고 장사하는 사람도 너무 닫고 있고, 또 인권단체도 너무 독불장군 같을 때가 있다. "우리 주장이 맞아!" 약간 이런 것.

 

터 : 어떤 대의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바로 따라주는 게 아니니까. 어쨌든 나름의 위치에서 너무 잘 활동하고 계신 것 같다. 

 

임 :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웃음)

 

터 : 여담인데, 유흥 외에 게이의 삶에 어떤 게 필요할까를 저도 요새 많이 느낀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게이들을 대상으로 한 항문외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이미 있는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없었다. 사실 너무 필요하지 않은가. 1년에 몇 번이라도 애널 섹스를 하는데. (웃음)

 

임 : 너무 잘될 것 같다. (웃음) 누군가 차렸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분명히 게이 의사가 조언할 수 있는 게 다르니까. 

 

터 : 일반 의사들한테 상담하면 "애널 섹스를 왜 하세요?" 이럴 것 아닌가. (웃음) 그런 것처럼 게이 라이프 친화적인 서비스가, 게이의 삶에 진짜 필요한 것들이 뭔지 고민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0년, 20년 되면 그런 게 더 많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임 :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웃음) 그래서 저는 제일 나중에, 강화도 같은 데에 땅 사서, 빌리지 만들어서 노후를 준비하고 싶다. 그게 제일 큰 걱정 아닐까. 저는 이상하게 벌써 미래가 걱정된다.

 

터 : 저도 그렇다. 

 

임 : 왜냐하면 돈이고를 떠나서, 삶이 즐거워야 할 텐데, 무엇에서 낙을 얻어서 즐겁게 살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제일 걱정이다. 내가 천년만년 파티 만들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유흥 외 다른 목적이 필요한 것 같고. 제 미래가 제일 걱정이다. 

 

터 : 앞으로 40-50대 게이에게 특화된 어떤 사업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임 : 실버 게이들을 위한 사업이, 비즈니스 모델이 구축돼야 할 것 같다. 근데 지금 그 나이대, 지금 40-50대의 형들은 거의 결혼을 했다. 그래서 그런 전례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지금 우리 나이 때인 30대들이 40대, 50대가 됐을 때 어떤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까, 비단 밤문화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그런 고민이 있다. 나중 되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갑자기 한 40대를 생각하니까 암담해지는 것 같다. (웃음)

 

터 : 사실 그런 게 클럽으로만 공글려지지 않는 게이들의 삶이고 미래인 것 같다. 

 

임 : 저는 제가 클럽을 하고 있지만, 나이가 더 들었을 때 클럽 외에 게이들을 위한 다른 놀이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개척해야 될 게 많다. 

 

터 : 열심히 살아야겠다. 

 

임 : 항문외과 너무 좋다. (웃음)

 

터 : 실질적으로 너무 필요한데 없다. (웃음)

 

임 : 잘될 것 같은데... 아 그런데 안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갔더니 "거기 갔더니 걔 있더라" 이런 소문이 나면 어떡하나. (웃음)

 

터 : 그러니까 그게 사실은 커뮤니티의 성숙도와 연결되는 문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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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I:M 파티 공식 로고 (2016.8.12-15.)

 

 

 


15. 홍보의 시간

 

터 : 마지막으로 올해 I:M을 홍보할 시간을 드리겠다. (웃음) 엘루이호텔 지하의 클럽 Ellui를 파티 장소로 잡았던데.

 

임 : I:M은 작년만 해도 Concert & Circuit이라고 이름붙였었다. 한국만의 컨텐츠를 가지고 KPOP 스타도 부르고 공연을 보는 위주로 꾸렸는데, 올해는 뮤직 페스티벌로 컨셉을 바꿨다. 최대한 많은 DJ를 부르고, 그 DJ의 음악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도록 구성을 짜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게 클럽 Ellui는 국내에 내로라하는, 탑3에 드는 클럽이라 규모도 크고, 사운드 시스템이 끝내준다. 그래서 음악 페스티벌에 걸맞는 소리 퀄리티를 내줄 것이다. 일반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1등 클럽에서 게이들이 파티를 연다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해외 친구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웃음)

 

터 : 지난 해엔 못갔는데, 올해엔 꼭 가겠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다. 

 

 

 

 

* 서킷 파티와 관련된 내용은, '이쪽사람들'의 이승준 님이 기고해주셨던 「한국형 서킷파티의 출발을 알리다 - '아이엠(I AM)'이 탄생하기까지」, 『친구사이 소식지』 64, 2015.10.31.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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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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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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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노 2016-07-21 오후 14:49

정말 재밌게 쭉쭉 읽었네요ᄒᄒ 처음 클럽을 접한 곳이 르퀸이었는데 그때 오마담님의 매력에 푹 빠졌던 기억이..ㅎ 항상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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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재 2017-04-28 오전 01:35

다시 읽을 수록 행복하고 감사하고 벅차 오르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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