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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기획] <新 가족의 탄생 #1> 사랑에 차별이 있나요 – 레즈비언 부부 '낮잠과 유다' 이야기
기간 5월 

[新 가족의 탄생 #1]

사랑에 차별이 있나요 – 레즈비언 부부 '낮잠과 유다' 이야기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족이 될 수 있어.’

2006년 5월 개봉한 영화 <가족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로부터 10년 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가족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2006년 가족구성권연구모임부터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결혼식에 이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의 출범, 그리고 최근 동성혼 불복 소송에 따른 심리까지 험난하지만 다부지게 계속돼 왔죠.

 

그럼에도 ‘종북게이’, ‘골수 페미니스트’ 등의 용어가 난무하며 혐오가 판치는 게 현실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요원하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은 좌초됐으며, 한 지자체의 성평등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은 삭제됐습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가시화를 통한 존재 드러내기와 당연한 권리 주장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에 친구사이에서는 성소수자 가족공동체를 위한 제도적, 사회적 변화요구에 앞장서는 가구넷과 함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당사자 연재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 첫번째로, 올해 9년차를 맞이하는 레즈비언 부부 낮잠&유다의 이야기입니다!



 

 

“파트너와 얘기해 보니, 집 초대 인터뷰가 여러 얘길 나누기에 편하고 좋겠다고 정리가 되었어요. 대단치 않은 집이지만… 오셔서 다과하며 자연스레 이야기 나누지요 :-)”

 

2016년 봄, 낮잠과 유다는 고양시의 한 LH아파트로 이사했다. 새 보금자리를 낯선 손님들에게 공개하기까지 고민들이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하니 고마움이 앞섰다. 지난 9년간 수차례의 이사 끝에 비로소 입주했다는 그들만의 공간은 커튼 사이로 스르륵 비치는 햇살을 머금고 우리를 따스하게 반겨주었다. 바로 기획 연재 인터뷰의 시작을 알리는 첫 가족, ‘낮잠과 유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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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부에게나 시작의 순간이 있다. 두 사람의 오랜 인연도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풋풋하고 서툴렀던 한 시기에 다다른다. 햇수로 10년 전, 2007년의 가을 유다의 눈에 낮잠이 들어왔다. 문예창작학과에서 시와 소설을 전공했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와 여성 영화를 좋아하며, 같은 취미 같은 취향을 가진 두 사람의 만남을 ‘운명’이라는 말 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상형을 물으면 농담 삼아 “여자 기형도가 이상형”이라고 말했어요. 농담만은 아니었던 게 십대 시절 정체성으로 고민할 때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으며 위안 받았기에, 이런 면을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모 레즈비언 사진동호회 모임에 처음 나갔다가 우연히 낮잠을 만났어요. 출사 마치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무리에서 외따로 떨어져 앉아 있더라구요. 말을 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낮잠에게 ”전공이 같다.“, “김혜순 시인께 배웠는데 시만 생각하던 그때가 그립다.”는 등의 얘기를 듣게 됐죠. “서울살이가 힘들지 않냐?”는 질문도 하더군요. 마음이 덜컹했어요. 다시 그때를 떠올려도 ‘운명’이나 ‘숙명’ 외에 다른 말을 찾기 어려워요. 지금은 이상형과 매일 문학 얘길 나누면서 살고 있으니, 힘든 서울살이 덕에 이루고 싶은 모든 걸 이룬 셈이죠. [웃음] | 유다

 

 

저는 조금 달랐어요. 그렇게 만나기 이미 1년 전, 동호회 온라인 카페에서 유다의 이름을 봤지요. 동호회 게시판에 자기소개 ‘100문 100답’을 필수로 올려야 하는데, 그중 유다가 쓴 대답이 기억에 남더군요. 좋아하는 책에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것 등 저와 겹치는 대답을 한 게 꽤 있었어요. 그래서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들어가 보니, 애인이 있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그냥 ‘에잇!’ 하고 말았죠. 그러다 한참 뒤에 동호회에서 만난 거예요. 유다가 먼저 다가오긴 했지만 관심을 가진 건 제가 더 먼저였어요. | 낮잠

 

 

운명이라 정의한 만남을 유다는 쉬이 접지 못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느낀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부담 없이 들어주는 친구, 혹은 선배가 생겼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위안이었을까. 낮잠 또한 마찬가지였다. 첫 만남부터 이질감이 없고 개그코드(!)와 음담패설(!)까지 잘 맞는 사람은 유다가 유일했다.

 

 

그해 겨울 초입 청계천 어디 즈음에서 했던 이야기도 생각나요. 낮잠과 거닐면 대화가 깊어졌지요. 어린 시절 친오빠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었고, 그래서 부모님 사는 곳에 거의 가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자연스레 듣더니 “네 잘못이 아니고, 말해줘서 고맙다.” 라고 말하더군요. 상담 치료를 권한 것도 낮잠이었어요. 아동 성폭력에 대해 다룬 질 티보의 동화 <네 잘못이 아니야, 나탈리>도 선물해 주더군요. 그런 것들이 우리 만남을 끈끈하게 하는 계기였죠. 심리적으로 큰 위안이 되었고, 사려 깊은 낮잠에게 더 깊이 빠졌어요. | 유다

 

 

유다가 이렇게 말하면 저만 도움을 준 것 같지만, 그때 저도 서른을 앞둔 때라 머리도 복잡하고 불안했어요. 원가족 관계로 인한 혼란도 있었지요. 출판사 편집부 생활을 하며 작가라는 꿈과는 멀어져 직장 생활 고민도 했고요. 결국에는 함께 기댄 셈이죠. 대화를 많이 나눈 것만으로도 저 또한 위안 받았어요. | 낮잠

 

 

유년기의 상처로 제 안의 어둠을 혼자 오래 감당해 온 유다에게 낮잠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그 시기 트라우마(trauma)는 결국 병증으로 나타나 두 사람의 인연을 갈라놓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와 그로 인한 조울증. 유다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토록 거부했던 부모 형제의 근처로 다시 가야 했다. 당시엔 연인도 부부도 아니었던 낮잠은 안타까움을 누르고 “꼭 나아서 돌아오라.”고 유다에게 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건강 회복 의지의 한가운데에 낮잠이 있었어요. 더 건강해져서 만날 요량으로 병원 치료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님 생각은 달랐더군요. 그 시기 부모님께 여러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커밍아웃을 했는데, 얼핏 듣기로 어머니가 치료 범위를 정신적 외상뿐 아니라 동성애자인 것까지로 생각하셨어요. 치료진에서 여러 번 ‘동성애는 병이 아니다’라고 정확히 안내를 했지만요. [웃음] | 유다

 

 

이듬해 2월, 유다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주치의의 복약지도와 식생활 처방을 철저히 따랐다. 낮잠과의 ‘인간적인 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병’을 경계로 두 사람만의 러브스토리는 순탄치 않았다. 서울과 지방, 이동 거리는 네 시간여. 전화도 쉽지 않았다.

 

 

병은 다스렸지만, 형제도 부모님도 그대로였어요. 내가 아픈 것은 약해서라며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제게 책임을 돌렸어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죠. 독립해서 살 곳이 필요했고 건강하고 깊은 대화가 절실했어요. 이러니 낮잠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 만나자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이런저런 고백도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요.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메신저로 얘길 하다가 대화 창에 썼어요. ‘만약 내가 병이 낫는다면 나랑 결혼해 줄래요?’ 정말 폭탄 같은 프러포즈였죠. 독일이든 어디든 당장 가서 도장을 찍자, 그런 분위기였으니까요. 낮잠이 ‘웬 결혼? 생각해 보겠다.’고 반응이 왔지만 ‘생각해 볼 수 없다. 지금 당장 답을 달라!’고 했어요. 그날이 저희의 은밀한 결혼기념일입니다. [웃음] | 유다

 

 

2008년 2월 27일, 유다는 낮잠에게 거친 청혼을 했다. 이날을 계기로 유다는 같은 해 봄 아현동 옥탑 방을 빌렸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홍대 근처에서 하우스메이트와 살던 낮잠이 자기 생활을 정리하고 유다와 살기까지 두 사람의 동거 과정은 매우 복잡했다. 여러 사건이 터지는 대혼란의 시기에도 두 사람이 견디어 함께 살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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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찍어준 낮잠, 낮잠이 찍어준 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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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새로 꾸린 가족 안에서 보듬으며 이겨내고 있었다. 이를 솔직하게 드러내 비슷한 시기를 지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낮잠과 유다. 복잡한 상황 가운데도 2008년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추억은 고스란히 둘의 사진첩에 녹아 있었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함께 혼인신고를 하는 대신 한날한시에 개명을 했다. 감성적인 한글 이름을 지은 낮잠과 ‘부드러움이 많다(柔多)’는 뜻의 유다. 그들의 존재에는 서로 보완하며 성장하는 관계를 넘어선 특별함이 스며있다.

 

 

단순한 연민은 아니었어요. 유다가 재능이 넘쳐서 한때 제게 과분한 사람이라고 여겼으니까요. [웃음] 관리해야 할 지병이 있다뿐이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아플 수 있잖아요. 결혼을 단번에 승낙하지 않은 건 단순한 이유예요. 이렇게 뜨겁다가 언젠가는 변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동성애자로서 ‘결혼’이라는 단어가 잠시 어색하기도 했고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인식도 미약하고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 낮잠

 

 

자신에게 특별한 단 한 사람한테 전하고 싶은 말, 어떤 것이 있을까. 유다의 고민은 그 지점이었다. 다시 말해 성소수자로 살아가면서 ‘결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는 건, 당신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원한다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낮잠과 유다에게 청혼은 햇수로 9년째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반복되었고, 내년에도 다시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저희한테도 ‘결혼’이나 ‘가족’이라는 단어가 마냥 긍정적인 건 아니에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말이잖아요. 그래도 쉽게 쓰이는 현실 언어니까, 버리지 말고 새로 구성해 사용하려는 거죠. ‘결혼, 가족=이성애자 부부와 그 자녀’인 것은 부당하잖아요. | 유다

 

 

결혼에 대한 유다의 확신은 낮잠이 병문안 왔을 때 정해졌다. 눈 오는 날, 화분을 들고 네 시간여 기차를 타고 온 낮잠. 그가 유다 눈에는 영화 <레옹>의 소녀 마틸다로 보였다. 낮잠에게는 그간 유다를 찾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잘 타일러서 가족과 살게 하라.”고 청하는 유다의 어머니, “상처 없는 곳에서 건강한 새 삶을 꾸리겠다.”는 유다. 그 사이에서 낮잠은 유다 이야기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어머니는 상심했다. 낮잠은 유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대신, 유다 원가족의 미움을 샀다.

 

 

낮잠은 정의로운 사람이에요. 미움을 감수하고 진실을 알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돌이켜 보면 저는 그날 낮잠의 방문으로 다른 삶을 살 기회를 얻게 된 셈입니다. | 유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그들 자신을 변화시켰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커밍아웃이었다. 낮잠과 유다는 서로에 대한 확신으로 자기 성정체성을 원가족과 지인에게 알렸다. 유다는 위기의 순간에 정신적 아픔 속에서 레즈비언으로서의 자기 행복과 의지를 드러내고 기억하기 위해 커밍아웃을 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혼란스러워했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라는 당당한 소망 표현이 탈출구가 되고 지금의 건강한 관계로 이어진 것 같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낮잠의 커밍아웃은 더 다채롭다. 주변 친구들과 직장 동료에게 평소 정체성을 자연스레 알려 왔건만, 유독 가족에게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고령의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굳이 ‘내 성적지향까지 말하는 것’이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유다를 만난 후 확신이 들어 어머니에게 알렸다. 여든이 가까우신 어머니께서 자식이 혼자 외롭게 산다고 여기기보다 인생길 의지할 배우자가 있다는 것을 아는 편이 안심될 것이라 판단해서였다.

 

 

예상대로 어머니는 오히려 반가워하셨어요. 이미 아시는 눈치였는데, ‘네가 이제야 말하는구나.’ 하는 반응이랄까요. 엄마는 제가 늘 ‘원하는 대로 해라.’ 하셨죠. 세상의 이목보단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요. 독실한 기독교인인 언니는 강경하게 반대했어요. 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어릴 적엔 나서서 이것저것 챙겨주곤 했거든요. 제2의 부모 같은 존재랄까요. 그런데 유다와 함께 집에 가면 아예 자리를 뜨고 피하더군요. 저도 어릴 때와 반대로 언니를 챙기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갈등이 컸어요. | 낮잠

 

 

기독교인인 언니가 냉대를 했을 때 낮잠의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TV에서 동성애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욕을 하셨다는 아버지는 딸의 고백을 받아들이셨을까?

 

 

아버지 생각은 잘 모르겠어요. 원래 깊은 대화를 안 나누는 사이였으니 갑자기 어색하기도 하고요. 요즘 귀도 잘 안 들리셔서 소통이 더 어려워졌어요. [웃음] | 낮잠

 

 

아버님이랑 저랑 성격이 비슷한 면이 있어 이야기가 잘 통하거든요. 넷이서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뒤로 사이가 더 가까워졌어요. 언니 또한 종교적 신념으로 갈등하고 있을 뿐, 이 집을 마련할 때 잘 살라고 큰돈을 보내 주셨지요. 낮잠의 가족 안에서 더 확장된 온기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TV에서 뵌 홍석천 씨 아버님 어머님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응원해 주시는 느낌이 들어요. 확실한 건 이젠 저흴 단지 ‘친구’ 사이로 여기진 않는다는 거죠. | 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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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과 유다의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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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부부’라는 이름은 아직 이성애 중심으로 극히 한정되어 있다.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남녀의 신분’이라는 정의가 이를 증명한다. 실제로 부부 관계가 실감날 때는 동사무소나 병원, 경찰서 같이 법적인 혼인상태 증명이 필요할 때이다. 그러기에 두 사람에게 부부라는 관계, 부부라고 정의되는 모든 순간은 매우 특별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부부 관계에서의 온갖 역동이 다 일어나기 때문에 저희 스스로는 ‘부부’라고 규정하고 살아요. 또 부모님 모시고 어디 갈 때 부부라는 느낌이 들고요. 식당에 같이 가면 제가 ‘어머니~’ 하고 부르니까, 눈치 빠른 분들이 무슨 관곈지 궁금해 하시더군요. 하지만 혼인 관련법이 아직 개정되지 않은 이상, 현실에 없는 ‘현실초월적인’ 관계죠. 이번에 LH공사 통해 이 집을 구할 때도, 관리사무소에서 “자매냐?” 묻더군요. 그럴 땐 간단하게 등초본상 명칭인 “동거인”이라 답하지만 그게 우리의 진짜 이름은 아니죠. | 유다

 

 

주변 친구들한테 부부라고 소개하면 “결혼식 올려라.”는 얘기가 나오고, 일반 부부라면 지킬 법한 예의들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가 연인 아닌 부부라고 강조해도 학교 모임 중에 누가 결혼한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친한 친구가 “우리 중에 결혼하는 사람 처음이네?”라고 말해 섭섭한 적도 있었고요. 굳이 당차게 정정을 하면서도 내심 ‘저 녀석 우릴 어떤 관계로 생각하고 있나?’ 고민도 하게 되요. | 낮잠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같이 공개적으로 결혼 예식을 올려야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보편적 권리 실현이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김김 부부도 아직 법적 혼인신고가 수리되지 않았다. 성소수자로 살면서 결국은 본의 아니게 정치적 흐름과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저희 둘 다 글 쓰는 사람이라 정치와 호흡이 다른 부분이 있어요. 심지어 진보 정치와도 마찬가지죠. 한데 성소수자 부부로 살면서 자연스레 사회 변화의 흐름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동성결혼 법제화 운동이나 가구넷(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활동도 비슷한 맥락이지요. | 유다

 

 

급진 성향이라 보수 기독교인, 일베 등 일부 사회의 지탄과 조롱에 맞서는 것은 두렵지 않아요.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 정체성의 일부가 뚜렷한 이유 없이 차별 받는다면, 의도적으로 드러내 바꾸려하는 것이고요. 노예 해방, 여성 참정권 획득이 그러한 과정을 거쳤듯이 말이죠. 저희도 사회의 병적인 관심은 원하지 않습니다. 지난 9년간 그랬듯이 조용히 행복하게 서로를 돌보며 성장하고 싶어요. 하지만 개인의 인권이 지켜지는 좀 더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그저 욕심일까요. | 낮잠

 

 

2년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때 상영된 <마가리타>의 도미니크 카르도나 감독은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서 ‘캐나다에서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해 엄청나게 싸웠다.’고 말했지만, 정작 법제화 이후 본인은 배우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혼이 별로 필요하지 않아서.” 관객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던 낮잠과 유다에게 결혼의 의미는 비슷하게 정의된다. 법제화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부부’, ‘결혼’, ‘가족’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새롭게 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여긴다는 두 사람. 둘 어쩌면 하나, 셋 이상의 의미 깊은 공동체를 정의하고자 하는 흐름 속에서 우리 중 누군가는 부단히도 일상에서 부딪히고 경험하며, 자연스럽게도 정치적인 흐름과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무나 평범한, 결혼하면 으레 주어지는 관계의 이름 ‘부부’. 결혼도 이혼도 흔한 사회에 유독 누구에겐 결코 얻지 못하는 ‘무지개 너머’에 그 이름이 있다는 건 비극이다. 병원에서 가족 동의가 필요할 때 대상에서 열외가 되며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 ‘배우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생활동반자법’ 같은 대안이 나오지만, 일상 내 자기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그것은 이번 <新 가족의 탄생> 기획 연재의 의도이기도 하다.

 

 

당장 세상의 흐름을 만들고 뒤집을 순 없어도, 적어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한 가지는 있더군요. 우리 존재를 주변에 알리고 계속 대화를 시도하는 거죠. 일상에서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 우선 주치의 선생님이 저희 두 사람을 완벽히 ‘부부’ 혹은 ‘배우자’ 관계로 보거든요. 보호자는 ‘가족 1인’이어야 하는데, 낮잠을 제 든든한 보호자로 지칭하고 ‘커밍아웃은 꼭 필요한 용기고 두 분의 의미 있는 관계가 감추는 두려움으로 인해 고통 받는 후배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세요. 이러한 정서적 지지를 통해 사회 변화에 자그마한 희망도 품습니다. | 유다

 

 

지금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변화를 위해 가구넷(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의 ‘커플 당사자 모임’에도 참여했다. 낮잠과 유다는 이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인종 차별, 소득 격차 등 유럽과 미주에 존재할 다른 차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소수자들이 공식 결혼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에, 시민결합(주: 혼인 관계에 준하여 배우자로서의 권리와 상속, 세제, 보험, 의료, 입양, 양육 등의 법적 이익이 일부 혹은 온전히 보장되는 가족 제도) 같은 대안도 의미가 있고, 보다 폭넓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문제는 사회문화적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시민결합을 자연스럽고 평등한 관계로 수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2014년에 실시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LGBTI 정책적 이슈에 대해 ‘동성 커플에 대한 법적 결혼 인정’을 두 번째로, ‘결혼이 아닌 동성 커플을 위한 파트너 관계 법적 인정‘을 네 번째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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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부부의 결혼 생활은 무엇이 또 다를까? ‘남편’이 없으면 누가 돈을 버는지, ‘여자 사위’가 생기면 손주를 어찌 볼 건지에 대한 이야기 등이 안 나온다면 그나마 다행일까? 사람이 먹고 사는 게 다 비슷비슷, 그게 그거일 수 있겠는데. 두 사람의 속내를 좀 더 들여다보자.

 

 

부끄러운 얘기지만 결혼 생활 초기에는 낮잠이 요리와 돌봄을 잘 하고, 저는 전동드릴 같은 도구로 조이고 고치는 일에 집착해서 소위 말하는 ‘성별화’ 경향을 피할 수 없었어요. [웃음] 화장실 청소와 빨래는 제 담당이지만 가사 일이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오죽 하면 주치의 선생님이 ‘대안적으로 사시려는 분들이 그렇게 가사분담을 못 하면 안 되죠.’ 라고 하더군요. 오래 같이 살다 보니 딴 것보다 먹는 게 특히 중요하더라고요. 작년부터 조금씩 요리 시간과 종류를 늘리고 있어요. | 유다

 

 

신기하게 닮아도 너무 닮은 취향과 가치관을 확인한지라 같이 살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싸울 게 무궁무진했다고 두 사람은 쑥스럽게 고백한다. 같은 유전자로 한 배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이상 기질도 다르고 성격도 고향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꾸리는 게 어디 뚝딱하고 될 일인가. 청소하는 주기, 식사 시간과 종류 등 각종 습관이 쉽게 변할 리 만무하다. 지금은 적응이 많이 되었지만, 한 작가의 책을 놓고 꼭두새벽까지 지성 토론을 벌인다거나 마감 스트레스로 대립하는 등 아직 싸울 일은 무궁무진하다.

 

 

심지어 화해하는 방식을 놓고 서로 다투기도 했어요. [웃음] 싸우면 말을 안 하더라고요. 미안해서 말을 안 한다는 핑계로요. | 낮잠

 

 

9년쯤 되니까 싸우는 방식은 확실히 좀 터득한 것 같아요. 언성이 높아질 쯤 되면 타임아웃이라 해서 ‘잠깐 우리 쉬자’ 라고 해요. 그래도 시간으로 쌓은 믿음이 분명 있습니다. 싸우다가도 어차피 화해할 텐데 왜 이렇게 심각하게 싸우나 싶으면 이내 웃음이 터지죠. | 유다

 

 

함께 살기 위한 공간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끝을 모르고 오르는 집값에 두 사람의 보금자리도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LH공사에서 제공하는 주택 같은 경우도 ‘신혼부부’에 주는 가산점 제도를 동성부부는 얻을 수 없었다.

 

 

경제 독립을 준비한다면 본인에게 맞는 다양한 지역사회 환경이 있을 테니 서울을 고집하기보단 수도권, 도시 근교까지 고려해 보길 권하고 싶어요. 그런 변화로 좀 더 안정된 삶의 공간에서 함께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겠죠. 불평등한 것을 바꾸는 동시에, 소수자 간에 서로 어떻게 사는지 생활 노하우를 공유하고 제도의 틈새를 파악해 충분히 활용하며 살면 좋지 않을까요. 동네에 닮은꼴 이웃이 늘길 바랍니다. | 유다

 

 

결혼 생활자로서 삶을 세세하게 공개하는 이유도 부부 생활을 원하는 이들이 너무 높이 멀리만 기준을 두지 말고 가까이, 현실에 맞게 꾸리면 충분히 다른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다. 성소수자 서민 부부들도 마을 안에 살고 있고, 언젠가 세상을 바꾸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 안전망을 만들면서, 소수자로서의 진정한 ‘독립(경제적인 독립+정신적인 독립)‘을 유지하고 싶은 바람이 있는 것이다. 낮잠과 유다는 더 많은 성소수자 이웃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싶어 했다.

 

탄탄한 관계의 두 사람이 꿈꾸는 미래에 그 관계를 더욱 이어줄 수 있는 존재, 아이를 위한 자리는 있을까. 낮잠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될 때를 걱정했다. 닮은 사람이 있으면 죽음 후에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바람도 조심스레 꺼내 놓았다. 결혼한 부부의 대화에 아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게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생겨나더라고요. 같이 살다 보니 유다 닮은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해 본 거죠. 친한 친구들이 가끔 아이 얘길 하면서 “너네는 안 키워봤으니까. 엄마가 되지 않으면 몰라.”라며 주름잡거든요. [웃음] 어쩌면 그들보다 더 잘 키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렇다고 지금 아이가 없어서 불안하거나 비어있는 느낌은 아니에요. | 낮잠

 

 

입양에 대해 얘기도 해 봤어요. 과학이 더 발달하면 난자끼리의 결합도 보편화될 수 있다는 예측도 접했고요. 10년쯤 뒤에는 다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이성애자 친구의 남편이 ‘우리 둘 같으면 애기를 참 잘 키우겠다.’는 얘기를 했대요. [웃음] 레즈비언 부부를 어쩔 때에는 ‘엄마가 둘’이라고 보는 것도 같아요. 물론 차별도 걱정되지요. 하지만 우릴 닮았다면 사랑으로 맞서는 법을 먼저 배울 겁니다. | 유다

 

 

그래도 두 사람 모두 작가라 ‘작품이 곧 아이’나 다름없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함께 그리는 앞으로의 날들에 빠질 수 없는 과정인 ‘죽음’까지 고려한다면, 아이란 존재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성소수자 커플들이 반려 동물이나 다양한 식물을 키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스러운 이름을 지어주고 보듬어 아껴 주는 그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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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동반자로서, 상대의 반려자로서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두 사람의 계획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다. 그 중 하나가 둘이 함께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출판사에 다니며 콘텐츠 발굴과 집필에 있어서의 여러 장벽을 느꼈다. 이를 과감히 넘어 좀 더 다양한 여성과 소수자의 이야기들을 세상에 당당히 알리고픈 소망. 이젠 현실이 되었다.

 

 

회의 때 막히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결국 출판사도 회사니까 영리적인 면을 우선으로 고려하는데다가 성소수자 대중은 아예 없는 소비자로 취급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레즈비언 작가 앨리슨 벡델의 <재미난 집> 그래픽 노블의 경우, 콘텐츠 우수성을 인정해도 내용에 공감은 안 간다는 얘길 들었지요. 성소수자 작가이자 편집자로서 한계를 경험했어요. | 낮잠

 

 

문학 세계, 상업화된 출판 예술 공간에 나름의 구조화된 틀과 헤게모니가 있는데, 이를 저희 나름의 방식으로 흔들고 뚫어 보자는 생각으로 출판사를 만들었죠. | 유다

 

 

출판사 이름은 ‘움직씨’. 고정화된 흐름이 아닌 움직이는 책을 만들자는 의미로 낮잠이 지은, ‘동사’의 순우리말이다. 독립 출판사의 시작에는 소박한 바람도 있다. 낮잠은 두 사람 이야기를, 유다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소설과 그림책으로 각각 쓰고 있다. 서로의 책을 직접 만들어 주고자하는 선물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난해에는 <신나는센터>에서 주최한 성소수자 문화생산 컨퍼런스 마켓 프라이드 페어에도 참여했다. 두 사람은 움직씨의 퀴어북(www.queerbook.co.kr) 홈페이지와 트위터(@oomzicc)를 통해 상처를 창작으로 극복해 온 성소수자 작가들을 폭넓게 만나고 싶어 했다.

 

실제로 우리가 접하는 예술계 곳곳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출판계만 해도 하류문화라고 하는 소위 ‘BL’, 야오이물이 넘쳐나고 순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유명 작가의 작품에 퀴어 코드가 곳곳에 스며있으며, 어느 출판사 도서 목록에나 레즈비언이나 게이 등이 나오는 도서가 끼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끼어듦만으로 만족하지 못해 두 사람은 본격적인 ‘퀴어 북’ 출판을 시작하려 한다.

 

결국 처음 시작도, 이후에 남는 것도 두 사람이다. 낮잠과 유다는 수많은 관계의 생멸 사이에서 서로를 지켜 왔다. 유다가 삶의 구멍으로 괴로워하던 시절, 그 구멍을 메워준 이가 낮잠이었다. 유다는 두 사람의 사주를 빗대어 이렇게 비유했다. 어린 시절 겪은 고난으로 자신은 물에 잠겨 ‘썩은 나무’가 되었고, 꽃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산인 낮잠은 ‘쓸쓸한 큰 산’으로 허무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서로 만나 큰 산에 썩은 나무가 기대어 보기도 하고, 결국 나무는 퇴비가 되고 물기도 흡수되어 여러 싹을 틔운 격이었다. 역학을 배운 유다의 풀이가 제법 와 닿았다.

 

 

그동안은 우리 관계가 힘 있고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시간이었어요. 그 덕에 ‘애 잘 키우겠다.’는 평가도 받고 부모님도 안심하셨지요.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이성애자 부부보다 몇 배씩 더 노력하며 사는 건 또 부자연스럽잖아요. 그저 자연스러운 모습이 우리 삶을 더 단단하게 하고, 독립된 개체로서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여겨요. 가족이 커지고, 친구와 지인도 확장되다가 결국에는 다시 서로 인생의 ‘반려자’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저를 돌보느라 힘겨웠던 낮잠의 구멍을 메우는 데에 더 애쓰고 싶어요. | 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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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자기 인생 하나 부지하기 힘든 게 요즘 현실이라지만, 관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그래도 서로를 다독이고 보듬어주며 최소한의 안전망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확인했듯 국가가 만든 안전망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모든 개인에 대한 복지가 이루어지면 비로소 비혼도 얼마든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기대어 성장하는 것이 의미 있으며, 수시로 커플 관계가 바뀐다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고 염려했다.

 

 

가족이 언젠가는 해체될 수도 있고, 다시 또 태어날 수도 있어요. 마음을 너무 닫아 두진 마셨으면 해요. 어떤 분들은 돈이 많아 집 평수도, 생활도 여유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저희는 아현동 옥탑 방에 있는 3평짜리 원룸에서 시작을 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의미 있는 추억의 시간들이거든요. 그 시절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던 때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죠. 없어도 살만하니 사랑이 있다면 ‘저질러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웃음] | 낮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면 ‘퓨리오사’가 분노의 도로를 역주해 자기 살던 곳으로 돌아가잖아요. 여성주의저널 <일다>의 한 기사에서 ‘망한 데서 시작하라’라는 표현을 보고 공감했어요. 우리나라의 지금은 소위 ‘헬조선’이라는 폐허죠. 그래도 이 땅을 포기하지 말고 함께 시작을 했으면 좋겠어요. 새 시작이 꽤 근사할 수도 있어요. | 유다

 

이제 독립출판사의 작가이자 공동 대표로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해 먼저 용기 있게 나선 주인공으로서, 또 한 걸음을 내딛게 될 두 사람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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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낙타(친구사이 상근자, 가구넷)

글,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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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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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욜 2016-05-24 오후 15:06

주인공의 영화같은 이야기, 그리고 글쓴이의 따뜻한 시선.
비오는 날 오후, 일하다 잠깐 읽은 글이, 작은 위로를 건네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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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v 2016-05-24 오후 16:47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시리즈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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