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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에서 '다모' 이후, '스캔들', '황산벌', '대장금'으로 이어지는 사극 열풍을 분석하는 글을 내놓았네요.

'여인천하'에 이어 스캔들, 대장금이 게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여성들이 많이 나오는 사극들이 유독 게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씨네21 글 중에서 대장금에 관한 글과 작가 김병헌 씨 인터뷰 글을 퍼옵니다.

출처 : http://www.cine21.co.kr/



<다모>의 처연한 칼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에 또 다른 칼바람이 불고 있다. 말 달리는 벌판 대신 도마 위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의 진원지는 조선조 중종 때의 대전 수라간. 신분과 성의 멍에를 뛰어넘어 의녀로 대성한 실존 인물 서장금의 일대기를 그린 MBC 50부작 드라마 <대장금>(연출 이병훈, 극본 김영현)은 일사천리로 대중의 입맛을 휘어잡았다. 달포 전만 해도 신비한 악기인지 희귀한 비단인지 알쏭달쏭했던 ‘대장금’이라는 이름은 금세 ‘장금이’로 친숙하게 회자되고 있으며, 10월14일 방영된 10회분 시청률은 38.4%(AC닐슨 집계)에 이르러 애초 경쟁구도가 부각됐던 다른 방송사의 궁중사극을 멀찌감치 앞서나갔다.
TV사극의 진화를 운위하게 만든 일련의 드라마 가운데, 지극한 순애보와 함축적 대사, 감각적인 액션과 비주얼로 젊은 시청자를 사로잡은 <대망>과 <다모>를 한 갈래로 묶을 수 있다면, <대장금>은 같은 연출자의 작품인 <허준> <상도>의 계보를 잇는다. <대장금>은 <대망>과 <다모>가 탁월함을 과시했던 인물과 심리의 곡진한 묘사보다 흥미진진한 상황을 연달아 꿰어나가는 플롯의 추진력에 승부를 건다. 주무대는 주방이요, 주요 액션은 식재료를 다듬는 일인 터라 화면도 다분히 정적이다. 덧없는 청춘의 피가 부르는 절절함과 비장미 넘치는 낭인의 정서가 <다모>의 것이라면, <대장금>은 어찌됐든 열심을 놓지 않고 마음 붙일 곳을 찾아 종종거리며 사는 분주한 생의 눈부심을 한 여성의 입지전을 빌려 말한다. 많은 전통 궁중사극이 그랬듯 <용의 눈물> <여인천하>가 ‘살아남아야 한다’를 지상명제로 삼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면, <대장금>에서도 생존은 몹시 중요하다. 산중에서 비명에 죽어가며 장금의 어머니는 딸에게 묻는다. “넌 이제 어찌할 것이냐? 굶어 죽을 것이냐? 병들어 죽을 것이냐?” 어린 딸이 산딸기를 따먹고 약초를 캐먹고 살아남겠노라 약조한 뒤에야 박 나인은 숨을 거둔다. 박 나인의 동무 한 상궁은 “죽느니 관비로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목숨이 위태로워진 친구를 의금부에 고발한다. 그러나 <대장금>의 인물들은 망가지지 않은 채 자존을 안고 살아남으려 한다는 점에서 궁중 암투에 휘말린 여인들과 조금 다르다.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지키면서 살아남는 방식을 시도한다”고 김영현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게 부여한 소임을 설명한다. 작가의 자평대로 따분하게 말하면 건전하고, 좋게 말하면 진취적인 드라마 <대장금>의 재미를 추려본다.




재미 하나 귀여운 여인

<대장금>은 16세기판 천재명랑소녀 성공기다. 이 활극의 영웅인 장금을 무엇보다 빛나게 하는 성격은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겁없이 줄기찬 호기심이다. “제가 보는 하늘을 요런 모양으로 쓰는 것이 저는 참으로 신기하옵니다”라며 하늘 천자를 흙바닥에 쓰는 장금에게 자연을 이해하려는 열의와 책에 대한 집착은 같은 욕망이다. 호기심으로 말미암아 성장을 멈추지 않는 장금은 어른이 된 뒤에도 지켜보기 심심치 않다. 물동이를 드는 벌이 힘겨워 눈물을 쏟다가 타박을 듣자 “물동이 들고 있으랬지 울지 말란 말씀은 없었다”고 되받아치는 맹랑함도 기가 차다. 희망없이도 살아갈 방도를 생각하는 초연함보다 악착같이 희망을 구하는 인생관을 선호하는 <대장금>의 태도를 함축하는 장금의 성격은, 친구를 돕다가 다재헌(약초 재배하는 궁궐 채마밭)으로 쫓겨난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장금에게 최악의 고문은 목표를 뺏기는 것이다. 그녀에게 목표는 그 자체로 숭엄한 것이라기보다 삶을 지속하기 위한 도구다. 궁내 낙오자들이 모여 있는 다재헌의 책임자 정주부는 “마치 이곳에 희망이라도 있는 양 종종거리고 다니지 마라”고 명하나, 장금은 “풀 한 포기에라도 희망을 걸지 않으면 저는 지금 정신을 놓게 됩니다”라고 고집을 피운다. 흙덩이라도 들쑤셔 뭔가를 얻어내려는 장금의 의욕은 철없는 것이지만, 체념과 절망에 익숙한 사람까지 흔들어놓는다.



재미 둘 주객전도

<대장금>은 궁중사극이면서 서민의 사극이다. <대장금>의 주인공은 보통 궁중사극에서 가구나 비품처럼 전각 귀퉁이에나 붙어 서 있던 상궁 나인, 내의원, 금군 병사들이다. 처음 입궁한 어린 생각시들이 왕의 행차에 연예인 보듯 탄성을 지르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여기서 궁궐은 왕족의 처소가 아니라 다양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의 직장이다. 10회까지 왕족은 음식맛을 볼 때에나 얼굴을 내밀고, 많은 사극이 힘주어 그렸던 폐비 윤씨의 사사는 한 내금위 군관의 삶을 뒤흔든 기억으로 스쳐간다. “원자를 불러오라”는 폐비의 오열보다 “어찌하여 그런 영이 내게…”라는 군관의 번민이 마음을 친다. 덕분에 궁중사극 하면 곧장 떠올랐던 왕과 비를 중심에 붙박은 숨막히는 화면구도가 깨졌고, 극 전개에 유효한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상투적 대사가 예닐곱번 오가던 기다림이 덜어졌다. 앉아서 논쟁하는 사람들 대신 노동하는 자들이 주연이 되니 참신한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재미 셋 여자의 드라마

큰 인물을 뜻하는 ‘대’(大)자를 여성의 이름에 붙인 <대장금>은 제목부터 동시간대 SBS 사극 <왕의 여자>와 상극이다. 그러나 ‘크게 출세한 비범한 여성의 일대기’라는 점이 <대장금>을 여성극으로 보고 싶은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대장금> 1, 2부는 장금의 아버지 서천수가 고명한 도사에게 들은 예언의 실현과정이다. 서천수에게 죽인 여인, 그가 살린 여인, 그를 죽게 할 여인이 차례로 등장하는 설정은 초반 흥미를 돋우는 장치이지만 <대장금>에서 운명의 실을 잣는 것은 여자라는 사실도 예고한다. 초반의 주요 무대인 궁녀들의 세계는 남자들의 개입없이도 극적인 사건이 풍부한 프로페셔널의 일터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왕의 여자’이지만, 때로 그것은 명분을 가장한 울타리로 보인다. ‘군림하나 지배하지는 않는 남편’격인 임금의 여인이라는 핑계로 사가 여자들이 짊어져야 할 짐을 벗고 전문적 기량을 닦고 일하며 녹봉을 받는 처지. “다른 여인들처럼 제 몸이나 찌르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버지가 장금에게 건넨 장도처럼, 명분 뒤에 주체적 목적을 따로 숨긴 존재로 비치는 것이다. 한편 여자들끼리의 동료애와 우정은 남녀간의 정을 압도한다. 궁녀들은 “임금을 배신하는 것만큼 동무의 의를 저버리는 것은 큰 죄다”라는 계율을 익힌다. 한 상궁과 박 나인의 재회는 박 나인이 가는 길에 미리 징검돌을 놓는 서천수의 배려보다 뜨거운 호응을 샀다. “민정호가 등장했지만 아직 남자가 장금이의 관심 뒷전이라 은근히 통쾌하더라”는 한 30대 여성 시청자의 반응은 서로 경쟁하고 아껴주는 옛 여성들의 드라마가 발휘한 신선한 매력을 짐작게 한다.



재미 넷 먹고 마시는 일의 중함

어린 딸이 씹어주는 열매를 입에 넣고 운명한 장금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맛있구나”였다. 음식 구경거리는 <대장금>이 누린 초반 인기에 큰 몫을 했다. 계삼웅장이니 맥적이니 하는 궁중요리 스펙터클은 드라마의 보기 좋은 고명이다. 하지만 <대장금>의 각본이 긴 호흡으로 알게 모르게 강조하는 것은 미식 취미가 아니라 널리 이로운 음식이다. 독약을 마신 두 여자의 이야기로 출발한 <대장금>은 먹고 마시는 일을 죽고 사는 일의 근본으로 바라본다. 장금은 왕의 수라가 백성의 음식을 이끄는 밥상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귀하고 비싼 밀가루를 잃어버리고 육수에 맞는 값비싼 부위의 고기를 뺏긴 어선경연의 난국을 그녀는 백성의 빈궁한 살림이 빚어낸 궁여지책의 지혜로 돌파한다. 어선경연의 시제가 제갈량이 저 살자고 인명을 해할 수 없어 만든 음식인 만두였던 것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극 특유의 지상명제 못지않게 “살려야 한다”는 명제가 중한 사극이라는 점에서 <대장금>은 <허준>이 발휘한 대중적 호소력을 이어받을 법하다.


50부작 <대장금>은 앞으로 다섯달을 내처 달려간다. 반정공신 오겸호에게 돈과 무사를 대며 정치적 비호를 약속받은 최 상궁 가문의 움직임은 극성스러워지고 장금은 의녀로 제2의 생에 진입할 것이다. 요리 명인의 자긍심을 버리느니 차라리 후궁이 되기로 결심한 금영과 하룻밤 승은을 입고 고독하게 사는 연생의 이야기는 또 다른 궁중 여인의 역사를 그릴 예정이다. 장금이 적들을 감복시키며 한 계단씩 전진하리라는 것은 만백성이 알고 있는 예정된 이치. 정작 구경꾼을 마음 졸이게 하는 구경거리는 장금이가 매주 곤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아니라 <대장금>이 ‘장애물 경주’식 구성의 숨가쁜 리듬에 치이지 않고 초심을 잊지 않는 사극, 발칙한 말을 다소곳하게 하는 드라마로 꾸준히 호흡을 고를 수 있을지다.


<대장금> 김영현 작가 인터뷰
“의사나 음식하는 사람의 기본은 어머니와 같다”



'대장금'의 김영현(37) 작가는 10여년 전 어느 출판사가 주최한 방송창작반 교실에서 방송작가라는 직종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당시 교사였던 황인뢰 PD가 수강생들이 숙제로 제출한 10분짜리 대본 중 하필 그의 것을 복사해 돌린 일이 ‘화근’이었다. 잘 썼다 못 썼다는 말도 없이 띄어쓰기법을 설명한 것이 다였으나, 당사자는 “혹 이 길이 아닐까?” 하는 직감에 샐러리맨 생활을 작파했다. <간이역II> <테마게임> <애드버킷> <신화>를 거쳐 <대장금>의 수라간에 발을 들인 김영현 작가는 왜 사극이냐는 질문에 실존인물이니 자연히 사극이 된 것이지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답한다.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사온데 어찌 홍시맛이 나냐고 물으시오면…” 하고 곤란해하던 장금이처럼. <대장금>은 <허준> <상도>(극본 최완규)의 직계로 이병훈 PD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전문직 사극’이지만 그 안에 담긴 뜻과 인간상의 면면에는 작가의 색도 만만찮게 배어 있다. 한때 높은 포부를 품었으나 한 차례 좌절을 겪은 뒤 궁궐 구석구석에 몸을 낮추고 조용히 살고자 하는, 그럼에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는 극중 인물들에는, 학생운동으로 뜨겁게 보낸 대학 시절을 뒤로 하고 “지금은 그저 나쁘게 살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얼굴이 도리없이 겹친다.
-총 50부 가운데 10부가 끝났다. 몇부쯤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는 대강의 설계는 정해졌나. 20부 이후 장금이 수라간에서 쫓겨나 관비가 되고 다시 의녀로 뽑혀가는 과정이 그려질 것이다. 후반은 의녀로서 성공하는 스토리를 담는다. 금영은 음식 갖고 장난치는 권력 다툼에 염증을 느껴 “그렇다면 차라리” 하는 심정으로 후궁이 되고자 한다.

-<대장금> 기획의 뿌리는.

지난해 2, 3월경 이병훈 PD와 만나 ‘어사 박문수’를 준비했다. 사헌부 조직을 현대의 검사, 판사 이야기처럼 풀면 재미있을 거라는 구상이었는데, 다른 팀에서 제작하게 됐다. 처음 쓰는 사극인 만큼 원작을 물색하다가 이병훈 PD가 <허준>의 리서치 과정에서 발견한 장금이라는 의녀 이야기를 꺼냈다. <허준>에서 의녀를 보여준 적이 있어 망설였지만 의의와 재미의 가능성을 보아 결국 돌아왔다.

-준비과정에서 발견한 조선조 의녀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남녀 구별이 중국보다 심한 조선 문화가 낳은 존재다. 지금까지 사극이 남자의원이 발을 드리우고 여인의 손목에 실을 매어 진맥하는 것을 보여줬지만, 실제로는 의녀가 진맥한 소견을 듣고 남자의원이 약을 짓고 침을 놓았다고 한다. 실력 불문하고 시침탕액의 권한은 의녀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의녀 교육과정은 요즘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비록 제대로 운영되지는 않았으나 일일, 주말, 월말, 기말 시험이 엄격해 이를 충실히 따라가면 의사만큼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의녀와 궁녀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전문직 여성이었다.

-역사에 의녀로 기록된 장금이 극중에서 수라간 궁녀로 출발하도록 설정한 것은 그 때문인가.

극적인 유추다. 실록이나 기록에 보면 임금이 장금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는 정황이 나와 근거로 삼았다. 옛날식의(食醫)라 불리는 수라간과 의술을 함께 관장하는 직책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직분이 있었다. 모든 의서에는 처방전에 음식을 잘 먹이는 것이 기본으로 나온다. 작가로서 수라간에서 쌓은 경험과 정신이 뛰어난 의사가 되는 것이 주제의 흐름상 좋겠다는 감이 와서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장금은 인간적으로 어떤 여자인가.

나는 장금이를 ‘왜 안 되나요 캐릭터’라고 부른다. (웃음)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어린 장금이는 어머니에게 연신 묻는다. “그 애는 산에 가도 되는데, 전 왜 안 되나요? 그 애들은 책을 읽어도 좋은데 저는 왜 안 되나요?” 그렇게 세상에 끝없이 호기심을 품는 캐릭터다.

-<허준>과 어떻게 차별화할까에 대한 논의는 없었나.

‘여자 허준’이냐고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도리어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여자가 의사가 되기는 어땠겠나. 후반에 가면 장금이 한 계단 승진할 때마다 남자 관헌들이 떼지어 반발한다. 여자가 시침탕약을 하자 기득권의 치명적 침탈이라고 여긴 남자 내의원과 장금이의 갈등 상황이 벌어진다. 허준은 개인의 성공에 대한 시기와 유도지라는 살리에리적 인물의 질투가 주요 갈등이지만, 장금의 경우는 한 여자의 성공 때문에 발생하는 양반사회, 봉건관료사회의 동요가 주요 갈등이다. 그러나 누군가 병들고 그것을 치료하는 그림은 일단 똑같을 테니, 그걸 두고 아류작이라고 이야기하면 할말이 없다.

-주인공 캐스팅에는 다른 가능성이 있었는지.

이영애씨의 선택이었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제의했는데 뜻밖의 답을 얻었다. <봄날은 간다>를 좋게 보았고, 음색이 연약한 것이 단점이었지만 노련한 이병훈 PD가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상도>의 김현주씨도 그랬지만 복식호흡 발성으로 바꿨고 진중하고 섬세한 이미지가 의녀로 변모해갈수록 어울릴 것이라고 보았다.

-장금의 활약에 대한 봉건관료사회의 반발이 부각되지 않은 초반이지만, 아버지 서천수의 운명을 결정하는 세 여인의 예언부터 궁녀의 직업세계까지 ‘여성극’의 느낌이 강하다.

수백의 궁녀 중에는 다양한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것에 자족하며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때우며 사는 궁녀도 있고, 조정대신과 가까이 지내는 권력지향적 나인도 있고 직업여성인 만큼 직업에 투철한 궁녀도 있었다. 재주도 다양해 글 잘 쓰는 궁녀는 출궁 뒤에도 문장을 청하러 불러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마작, 투호도 즐겼고 임진왜란 이후 담배가 들어온 뒤에는 나인이 되면 줄담배를 피우게 해 그것을 견디면 선배들과 맞담배를 허했다는 일화도 있다. 모두 고종조 조선 최후의 궁녀들 증언을 채록한 김용숙 교수의 <조선조궁중풍속연구>를 자료로 삼았는데, 그 책에는 궁궐에 들어온 일본군이 궁녀가 몰래 키운 자식을 발견한 이야기도 들어 있었다. <대장금>에서 노상궁의 일화로 이용했는데, 비밀을 감쪽같이 숨긴 궁녀들에 대해 일본인들이 “조선 궁녀는 정말 무섭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여학교 기숙사 같으면서도 일에는 철저한 흥미로운 조직이었다.

-상상과 고증의 비중은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스토리라인은 상상이지만, 그 일들이 가능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작가나 PD 입장에서 고증에 충실하다고 자부한다. 궁중요리, 한의학, 역사에 관해서는 대본이 나오면 촬영 전 각각 전문가와 기관에 보내 검증받고 있다.

-<대장금>을 참신하게 보이게 하는 힘은, 극적으로는 ‘양념’에 해당하는 인물들에서 나오는 듯하다.

기획의도부터, 왕족을 제외한 궁중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는 뜻이 있었기에 가능한 한 다양한 궁중 사람들을 많이 찾아내려고 한다. 모래주머니와 멍석을 차고다녔던 멸화군(궁궐 소방대)도 그렇게 등장한 인물이다.

-매회 시련이 닥치고 극복하기를 반복하는 구성이다. 만두피 가루가 없어진다거나 냉국수 육수가 모자란다거나.

요리 명인 만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미스터 초밥왕> 같은 만화는 요리가 어떻게 사건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재미난 작품이었다. 그러나 극적 구조도 다르고 일본 음식이라 본뜰 수도 없다. 비법이 등장해야 마무리가 되니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밖에 없다. 매회 사건이 터지는 건, <허준> 때부터 이병훈 PD의 스타일인데 작가로서는 고달프다. 캐릭터로만 가도 재미있을 듯한데 용납을 안 한다.

-실력과 페어플레이 정신을 갖췄으나 장금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금영은 독특한 악역이다.

생각보다 금영이에게 동기를 주기 쉽지 않았다. 11부부터는 금영의 동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고, 11, 12부에 걸쳐 정 상궁-한 상궁-장금과 제조 상궁-최 상궁-금영이의 세력이 확연히 갈라진다. 세계관 차이로 인한 대립이라 말해도 좋다. (웃음)

-<대장금>에도 전형적이고 원색적인 갈등의 씨앗은 내재돼 있다.

당파와 결탁한 권력싸움이나 민정호를 사이에 둔 금영과 장금의 삼각관계가 뒤로 가면서 드라마를 지배하게 되지 않을지. 권력투쟁은 최 상궁 집안을 중심으로 “아랫것들도 권력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지 그 이상은 아니다. 멜로드라마가 잘 붙지 않아 괴롭다. 궁녀는 수녀나 진배없으니 고증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남녀를 한번 만나게 하기가 어렵다. 개인적으로 ‘찔끔 멜로’라고 부른다. (웃음) 후반부에는 왕과 민정호, 장금이의 삼각 로맨스가 있다. 이는 설득력 있게 쓸 자신이 있다. 왕은 장금을 취하면 그만인데 왜 안 취했을까. 왕은 치열한 암투 와중에서 유일한 휴식처로서 장금을 사랑한다. 그 휴식처를 파괴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장금을 보호하고, 장금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입지전 드라마지만, 자연과 음식으로 사람과 세상을 치유하고 위안한다는 메시지가 비친다.

의사나 음식하는 사람의 기본은 어머니와 같다는 생각이 있다. 장금을 치열하게 살도록 하는 힘은 어머니의 기억이고 한 상궁과 장금의 관계도 모녀에 가깝다. 제도적 보건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몇몇 어머니들에게만 위생교육을 해도 무수히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장금의 활동도 뒤에 나온다.

-한 상궁 인기가 대단하다. 짐작했나.

예상 못했다. 여성 시청자들은 로맨스보다 장금 엄마와 한 상궁의 우정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남자들은 나도 임금처럼 한 상궁 같은 아내나 어머니에게서 수라상 한번 받아봤으면 하는 판타지를 품는 것 같다. (웃음) <태조 왕건>에서 잘못된 길을 걷는 군주도 죽음으로 지키는 신하에 대한 남성 판타지가 보이지 않는 성공요인이었던 듯하다. 그처럼 줄거리와 무관한 매혹이 없다면, 드라마는 어느 선 이상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장금>에 나오는 음식 중 실제로 먹어본 것이 있나. 유일하게 먹어본 것은, 소라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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