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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슴 2003-12-16 02: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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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회원들의 교양을 늘 염려하는 꽃사슴. 영화 사이트도 아닌데 늘 영화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붉은 돼지'가 최근 한국에 소개된다더군요. 생각나서 예전에 쓴 글 퍼옵니다.


[2003/04/10]
들리는 곡은 원령공주 O.S.T
http://chingusai.net/sound/won.wma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을 다시 보았다. 드문 일이다.
하지만 예상대로 다시 보아도, 난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으며 하야오가 빚어놓은 아름다운 마을 어귀에서 흠칫 몸을 떨거나 울고 있었다.

이틀에 걸쳐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았다.
그는 낭만적 아나키스트다. 그 고집불통의 낭만성 때문에 여태 흑인 한 명도 그리지 않은 인종주의를 가지고 있다. 흑인을 그리면 그림이 안 된다고 말하는 그다. 그는 스스로 표현의 편견을 깨지 못했다.

하지만 그처럼 고집스럽게 낭만적 생태공동체,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된 지구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 예술가는 극히 드물다.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거장이며, 실로 이 시대가 떠안은 숙명을 알고 있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난 끝없이 하늘을 비상하는 그의 주인공들을 사랑하고, 구름밭에 파묻힌 비행기를 보며 세파에 찌든 나를 잊곤 한다.

간만에 머리가 탁 틔이는 느낌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인간들에 의해 초토화된 지구.
아직은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하야오지만, 진정한 영웅은 벌레들이다.
촌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자율적 생태 공동체를 사유하기 전에 만든 탓인지 군데군데 흠이 드러나지만, 하야오만이 표현할 수 있는 바람의 힘은 충분히 감지된다.

바람계곡에 가고 싶다, 풍차가 도는 그 마을. "불은 생명을 죽이지만, 바람은 생명을 만들어내요."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라퓨타는 하늘에 떠 있는 이상향이면서 악의 근원이다.
나도 언젠가는 라퓨타를 찾으러 가야겠다.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사람들은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라퓨타가 실제로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거대한 나무로 되어 있는 라퓨타를 보시거든, 그곳으로 가려는 생각 말고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세요. 우린 아직 그곳에 가기에 너무 많은 욕망에 휩싸여 있다.






이웃집 토토로(1988)


가장 일본적인 작품.
하야오는 스스로 토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막부 이전, 섬으로 잘게 나뉘어져 다양한 부족과 다양한 문화로 구성되어 있던, 20세기 오리엔탈리즘의 그물코 눈을 가진 푸코에 의해 '중심이 없는 나라'로 의미가 부여되었지만 실제로는 막부시대 이후 민족국가의 권력에 의해 다양성이 파괴된 일본.
모권제의 전설과 다양한 애니미즘은 실로 놀라운 상상력의 자양분을 제공한다. 오에 겐자부로가 그렇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렇다.

토토로, 틀림없이 존재하는 이웃. 고양이 버스를 타러 갑시다.





빨간 돼지(1992)


하야오는 아버지로부터 두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하나는 아버지의 아나키즘, 또 하나는 밀매로 돈을 버는 아버지의 나쁜 모습.

하야오의 아버지는 비행기 정비 회사의 공장장이었고, 하야오는 어렸을 적부터 비행기를 곁에서 보고 자랐다. 유독 그의 영화에 비행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그 탓이다.

빨간 돼지는 개인적 아나키스트의 전형이다. 국가와 민족을 부정하고, 고정된 직업 세계도 거부한다. 또한 한 사람에게 얽매이는 애정관계도 그는 훌훌 벗어던졌다. 생떽쥐베리보다 더 고고한 이 붉은 돼지는 말한다. '하늘을 날면 모든 게 보이지.'

빨간 돼지가 모는 붉은 경비행기가 빛나는 구름 사이를 조용히 날아가는 모습. 생떽쥐베리의 '야간비행'을 읽었을 때만큼 가슴이 콩닥거려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원령공주(1995)


하야오 작품의 결정판.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가슴 저미는.
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이 작품이 나온 후 참 말이 많은 일본 사람들은 숲 보존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세 번째 원령공주를 보는데도 난 이번에도 완전히 몰입되어 어쩔 줄 몰라하고 만다.

하야오는 말한다. "내 영화에 여자가 주인공이거나 여자 이야기가 많은 건 사실입니다. 전 이제 남성 문화는 끝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숲의 정령은 분명 여성들의 구두 문화와 함께 한다. 전설을 들려주는 할머니의 명민한 기억력과 각색의 지혜. 내게 아이가 있다면, 꼭꼭 챙겨서 보여주고 싶은.





센과 히치로의 행방불명(2001)


하야오 세계관의 집결판.

노동하는 사람들의 마을, 탐욕의 돼지들에게 응징의 칼을 휘두르는.

나 역시 가끔 행방불명이 되고 싶다.




하야오, 난 언젠가 또다시 그의 작품들을 늘어놓고 나를 배려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를 배려하는 일, 한 줌 자아의 껍질을 벗겨내는 일, 그 순간만큼은 도회적 욕망을 해변의 구두처럼 벗어놓는 일.

모든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전쟁을 일삼는 자본과 남성들도 사라져야 한다. 하야오가 말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꽃사슴 2003-12-16 오전 02:44

루팡, 코난 등의 하야오 초기 시리즈 물도 단연 강추입니다.

위에 언급된 하야오 전작들을 선물로 드려야겠어요.
명단1 : 죽음을 앞둔 한상궁마마
명단2 : 이후 제 애인이 될 분 --;;

한? 2003-12-16 오전 04:19

붉은돼지"가 무슨 제목인지 몰라는데... 많은 도움됏습니다. ㅠㅠ
영화 같이보면 더 좋을텐데...

한군 2003-12-16 오전 08:45

너무 잘봤습니다..특히 모노노케 히메의 노래가 잔잔히 깔리는게 죽이네요..

난정이 2003-12-16 오전 09:2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원령공주를 제외하고는 전부 중학교때 봤었죠..애니쟁이 매형을 둔덕에 그땐 멋모르고 봤었는데 마녀키키와 귀를 기울이면은 안보이네요 그것도 재미있는데말이죠

꽃사슴 2003-12-16 오후 14:52

마녀 배달부 키키는 하야오 작품에서 다소 동떨어진, 지브리 스튜디오를 겨냥한 작품이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야오 필로그라피에서도 대부분 평자들이 열외로 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귀를 기울이면은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긴 하지만 하야오가 연출한 게 아닙니다.

콘도 요시후미라는 감독이죠. 또,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중에 최근에 나온 '고양이의 보은'이 있었지만 엉망진창이 영화입죠.

흠.... 2003년에 기다린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지만.... 내년, 혹은 내후년까지 기다릴 영화는 하야오가 마지막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공언한 영화입니다.

시댕 2003-12-17 오후 23:48

반딧불의 묘도하고 추억은 방울방울은 왜 안 올려 놔써요?

꽃사슴 2003-12-18 오전 00:24

저도 시댕 님께서 말씀하신 두 작품을 좋아해요. 제목이 '미야자키 하야오를 보는 날' 아니었나요? 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입니다. 하야오와 함께 지브리 스튜디오의 양대 산맥입죠.



지브리 스튜디오에 관련한 홈페이지
http://www.aniju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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