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39 김찬영 : 낙타의 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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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사무실을 방문하면 늘 조용히 맞아주는 청년이 있다. 새침한 듯하지만 알고보면 안경 너머 다정한 눈을 가진 청년. 친구사이의 상근자로 오며가며 많이 알고있을 얼굴이지만, 불필요한 말은 잘 하지 않는 성격 탓에 여전히 궁금한 것 투성이인 그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은 ‘김찬영’이고 그의 만남 어플 프로필은 '172/54/29, 친절한 호구'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른아홉 번째커밍아웃 인터뷰의 주인공이 되었다기분이 어떤가.

- 사실 별생각이 없다.

 

(…) 질문이 짧으니 대답도 짧은가 보다다시 묻겠다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그럼에도 현재 아주 논쟁적인 이슈가 바로 동성애다이런 상황에서 라는 개인을 드러내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 인터뷰를 수락하게 되었나.

- 친구사이 사무국에서 일하는 입장에서일거리를 빨리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컸다.(웃음사실 그렇다기보다는누군가는 하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당장 안 하더라도 언젠가는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도 있고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젊고 예쁠 때머리가 총명할 때 해야겠다..하고.(웃음가장 중요한 건좀 더 스스로 날 것이라고 생각될 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내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는 지금과는 또 다를 것 같고그것도 좋지만 지금, 20대의 나를 한 번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그런 거.

 

예전에 이 인터뷰를 했던 이들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이게 좀 계속해서 남는 것 같다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이나 애인이 검색했다가 이 인터뷰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그 덕분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과거사를 알게 되고.

이게 과거에 내가 알아왔던 사람들이나 혹은앞으로 나를 거쳐 갈 사람들이 이걸 본다면 어떨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을 하긴 했었다.

 

알겠다너무 들춰내진 않는 걸로.(웃음그나저나 낙타라는 닉네임은 어떻게 지은 건가.

학부 때 후배가 낙타를 닮았다고 지어줬다그렇게 친구들이 계속 별명으로 쓰다가 친구사이에 왔는데다들 닉네임을 쓰더라그때는 그게 좀 어색하기도 하고 그랬는데아무튼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그 별명을 쓰게 됐다그 후배도 그냥 가볍게 지어준 건데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을 거다다른 얘긴데얼마 전에 그 후배한테 안부 엽서가 왔는데그냥 뭔가 고맙고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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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서울로


이제 본격적으로 질문하겠다. 다들 알다시피 현재 친구사이 상근자로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나.

그전에 계속 부산에서 일하고 있었다디자인 쪽 일이었는데편집일이 나랑 너무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그래서 한창 이직을 생각 중이었는데그즈음에 게이 포털 사이트에서 친구사이 상근자 채용 공고를 봤다.

 

그래서 바로 지원하기로 결심했나.

아니다나는 사실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단체가 큰 것 같지도 않고내정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당시에 나는 지리적으로 좀 멀리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부담이었다그래서 그냥 지원하지 말까..하고 그냥 놔뒀다그렇게 공고 마감 전까지 고민하다가 막판에지금 다시 그 자기소개서를 보면 앞뒤가 하나도 안 맞고오그라드는데.(웃음).

 

당시 직장은 부산이고집은 김해라고 알고 있다서울까지는 먼 거리인데.

- 사실 그 당시에 다른 비영리 단체에 같이 지원했었다근데 우연히 면접 날이 겹쳤고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어쨌든 일주일 정도 후에 친구사이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는데마침 면접비까지 준다고 하니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그냥 놀러 가는 셈 치고 가보자 했는데며칠 뒤에 연락이 바로 오더라. 11월부터 출근할 수 있겠냐고.

 

그러니까 여기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여태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시작하는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접 이후에 좀 몰아치듯이안 그래도 거의 무작정 면접을 본데다가지낼 집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문제였다그 걱정을 하고 있는데, 집 구하기가 어려우면 회원분 중에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믿을 만한 분이 있으니 한 번 생각해보라고 연결을 시켜줬다그 고민이 해결되자마자집에다가 서울에 갈 거다서울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 통보를 했다갑작스러웠을 텐데 부모님은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라그런 것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와서 지내보니 좀 어떤가.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둘째이고친구도 없고 연고도 전혀 없고좀 어려웠다어쩌다 보니 당시에 서울에 오자마자 연애를 시작하게 됐고이곳과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데에 그 친구의 도움이 정말 컸다그리고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다그냥 종로를 걷는 것도 내겐 너무 힘들더라워낙에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도 않고.

 

지금은 조금 나아졌나.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다힘든 부분들은 여전히 비슷하고늘어나는 건 카드값이고. (웃음아무튼 자꾸 일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 같은데아무래도 여기가 후원으로 움직이는 단체이고그전까지는 비영리 단체라는 것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만 하다가 막상 일을 하고월급의 출처를 알고 그러니까 일하는 것에 있어서 예전과 좀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건 있더라다달이 들어온 급여에 대한 가치소중함이 예전 회사와는 전혀 다르다.

 

이제 2년이 넘는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 사이에 기억에 남는 일도 있었을 텐데.

기억나는 건 작년 광수 형 결혼식 날뒤풀이 자리에서 왜 그렇게 울었을까..하는 것그날 광통교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오면서 느꼈던 마음에 대해 지금도 많이 생각한다그전까지는 내가 게이로 살아오며 차별이나 혐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그냥 게이씬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번개도 하고사람도 만나며 지내왔는데그날은 우리를 이렇게 혐오하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몸에 각인이 되었다고 할까

 

다른 사건이지만, 지난 퀴어퍼레이드 때에도 반대집단과 대치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땐 어땠나. 

- 꽉 막힌 도로에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나가는 상황이 마치 정말 우리가 처한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길 위에서의 시간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퍼레이드를 마치고 다시 신촌으로 돌아올 때를 기억한다작년 광수형 결혼식 때 몸으로 겪은 혐오처럼 이번엔 사랑이 혐오를 이긴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고나 할까그렇다. 뭐든 몸소 겪어봐야 아는 거다


알겠다. 어쨌든 서울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혐오라니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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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근자의 고민


친구사이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는데활동하면서 어렵거나 힘든 점은 없나.

힘든 것글쎄사실 상근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고 서울에 왔다면접을 볼 때도 그렇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는데다만 활동하다 보니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고어울려야 할 일이 있는데..여기는 뭔가직장과 사적인 관계의 경계에서포지셔닝이 어려운 것 같다그냥 편하게 하라고들 하는데그렇게 사적인 자리에서 편하게 지낸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은내 입장에선 일처럼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다그런데 그건 회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나에게는 말 한마디를 해도 조심스럽게 하는 것 같고그렇게 서로에게 조심조심하는 부분이 서로 배려하는 동시에 거리를 두게 되는 그런 게 있더라.

 

공감하고 동의한다스스로 느끼는 다른 부담은 없나.

올해는 특히 몸도 마음도 슬럼프그런 느낌이 있다이제까진 정신없이 지냈는데해가 바뀌면서 조금씩 일들이 쌓이면서 늘어지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내가 가진 욕망과 능력의 간극을 느낄 때나, 연대활동을 통해 주변의 활동가라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활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이 좀 많아졌다분명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는 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스스로 관리하면서 해야 할 일도 생기니깐안팎으로 조금씩 부담스럽긴 하다.

 

친구사이가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했다사무국 입장에선 그게 부담이기도 할 것 같고업무가 많아질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주로 20주년 기획팀처음엔 그냥 20주년을 맞아 기념식 같은 걸 진행해보자 하는 거였는데그 의미가 좀 모호하고 어렵더라그래서 좀 더 의미를 새겨보자고 이야기가 됐고지금은 친구사이가 했던 유의미한 길들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물론목적은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것이다그리고 홍보팀여기선 후원과 관련해서 마케팅이나 모금 전략에 관한 것들을 공부하고 있다20주년 기념 사업으로 커뮤니티 욕구조사도 진행했는데이 수치들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도 숙제가 될 것 같다.

 

친구사이라는 단체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나상근자로서 활동 회원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을 것 같다.

사실 20년이라는 것이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다예전에 포스터를 붙이러 종로를 돌아다닐 일이 있었다그러면서 어느 게이바에 처음 가봤는데거기에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들이 계시더라거기서 어떤.. 흘러온 시간을 보게 된 것 같다이분들은 과거는 어땠을까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그냥 처음부터 저절로 생겨난 것들이 아닐 텐데오래전 이곳에 숨어들어 처음 모이고시작하고 그런 생각 하면 좀 짠하다그리고 그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20년을 버텨온 형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해보고 싶은 건 있나.

지금 기록물 사업을 하고 있는데좀 더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들이 기록이 되면 어떨지이태원 게이 클럽의 역사종로 번개 방장들의 연대기나 뭐 대대로 유명한 역대들그런 것들도 모아놓으면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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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과 커밍아웃


지난 아이다호에 친구사이는 어린 시절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

나도 그 프로젝트에 사진과 사연을 보냈다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고할머니 밑에서 컸다부모님이 평가하시길순하고 말 잘 듣고.. 게임기 같은 것도 한 번을 사달라고 한 적이 없다부모님은 나한테 가끔 사내애가 그렇게 물욕이 없어서 어떡하느냐고 하신 적이 있을 정도다근데 그러면서 고모 백을 그렇게 탐을 냈다고 한다.(웃음화장품이랑 파자마 같은 거그래서 고모가 그런 것들을 내 손에 닿지 않는 선반 위에 올려놓고 그랬던 생각이 난다애가 조용하긴 한데좀 이상한 거지(웃음사자 다섯 마리를 합체하면 완성이 되는 로봇 장난감이 있었는데합체된 로봇을 해체해서 다리 한쪽과 아는 여자아이가 가지고 있는 인형이랑 바꿔오고 그랬던 생각이 난다.

 

엄청 귀여웠을 것 같다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커가면서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 일이 있나.

고등학교 1, 2학년 때쯤이었나영화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친구를 굉장히 좋아하게 됐는데그때부터 어떤 열병 같은 것이 시작됐었다일부러 책이나 체육복 같은 걸 빌리러 가기도 하고 그러면서..그러다 같은 반이 되었는데그게 같은 공간에 같이 있으니까 더 힘든 그런 게 있었다그 친구를 좋아하는 걸 넘어서 내가 자신에게 갖는 감정까지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그게 스트레스가 되고 그래서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어지다 실신을 한다거나내 몸이 통제되지 않는 일들이 몇 번 있었다.

 

뭐랄까정신적 고통이 신체적으로 작용할 정도였다니뭔가 내가 방금 엄청난 걸 들었구나 싶은데.

처음엔 그저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걸로 생각해서 검사도 받고 그랬는데 결과를 보니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검사를 담당했던 의사선생님이 조심스레 정신과 소견서를 써주셔서 정신과로 찾아가 상담 후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한 달 정도 입원을 했었다부모님은 이 모든 게 학업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 생각하시곤 자책을 하시면서 괴로워하시고여러모로 힘든 시기였다.

 

어떻게 해소가 됐나.

특별한 건 없다사실 병원에서 퇴원 후, 그 친구에게 커밍아웃과 함께 고백했고 예상했던 대로 매몰차게 거절당했다그런 시기가 지나고 어렵게 입시 준비를 하고 있을 때그 친구에게서 화해의 내용을 담은 메일이 왔다그래서 같이 만나 자주 가던 럭키오락실이란 데를 가서오락실 안에 있는 노래방에 갔던 생각이 난다거기서 거위의 꿈을 불렀다.

 

독립영화 같은 이 결말.(웃음뭐랄까정체성을 인지하는 과정을 정말 몸으로신체로그 고통을 겪어낸 것 같다본인에겐 몹시 괴로웠겠지만한 발짝 떨어져서 보기엔 흐릿하게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그리고 작년에는 돌연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고 올라왔다좀 놀라기도 했는데그 이야기도 좀 듣고 싶다.

사실 그건 ‘돌연’이라기 보다는그전에 유언장 쓰기 행사에 참여했던 게 컸다유언장 쓰기를 해보니까 내가 이제 어떻게 살겠구나혹은 살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을 정리하게 됐다그러다 보니 언젠가 해야 할 것을 미루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지금 사는 곳이 또문밖을 나서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각박한 도시이기도 하고제일 중요한 건 내가 이제 부모님 집을 떠나 살고 있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정한 것 같다.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굉장히 갑작스러우셨을 것 같은데.

부모님이 정말 순박하신 편이다커밍아웃을 한 순간에는어머니가 굉장히 놀라셨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럼 너희는 성장난을 어떻게 하니?’ 하고 물으셨고아버지는 편지와 함께 가져간 단체 사업보고서를 보시더니 대뜸 그래서 네가 일한다는 회사는 야당이냐.’라고 했다.

 

부모님 반응은 마치 유럽영화 같다.(웃음) ‘성장난이라는 표현도 재미있고커밍아웃과 야당의 관계라니.

- (웃음그런데 그 순간에도 예전 내 모습들을 떠올리시는 것 같았다그러면서 뭔가 그게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끼워 맞추시는 느낌.(웃음다음날 새벽에 아버지가 목욕탕에 가자고 하시더라그러면서 아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그러면서 예전에(고등학교 시절아프고 힘들어하던 모습들이나계속해서 집을 떠나려고 했던 것들이나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기분이 드신다고그렇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고그냥 몸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지금은 내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작년 지보이스 정기공연 때부모님이 공연을 보러 오신 것을 봤다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공연 전날부모님이 올라오셨는데, ‘다 자란 자식이 그렇다는데 말릴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다만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이 유감이다그리고 너의 삶에 보탬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더라어머니는 옆에서 그냥 눈물을 흘리시고우리 부모님이 굉장히 순수하단 생각이 들었다치열하게 싸우는 그런 과정은 없었다다만 다른 친척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 어려워하는 부분들이 보이긴 한다다른 친척분들께 얘가 지금 인권운동에 미쳐서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씀을 하시더라.

 

당연히 어렵겠지만그럼에도 몹시 사랑스러운 관계라는 느낌이 든다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느낌도 있고앞으로는 어떨 것 같나.

더 나빠질 것 같진 않다이번에 집에 내려갔다 왔는데배웅하시면서 그 아이는 잘 있니.’ 하면서 헤어진 애인 이야기를 하시더라헤어졌단 말은 차마 못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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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고 지는게 어디있나. 그냥 하는 거지.


너무 들추지 말라고 해서 좀 망설여지는데, (웃음우리가 연애하려고 이걸(성소수자 인권운동한다는 이야기를 우스개로 많이 한다연애는 언제 처음 했나.

좀 더 어릴 때처음 만났던 형이 있다포털 사이트의 온라인 카페에서 만났고한 일 년 정도 만나다가 그 형이 복학하고나는 군대에 가고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연애에 대한 걸 물을 때는 늘 망설여진다이게 왕도가 없지 않나좋다고 느끼는 부분이나 옳다고 느끼는 부분도 다 다르고어떤 편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그냥 내 경우에는 주로 둘이 만나지 외부로 관계를 드러내는 타입은 아니다최근에는 본의 아니게 상황상 공개적으로 하게 됐다아무래도 활발하게 활동을 해야 하다 보니, 주변에 관계없는 사람들도 알게 되고.

 

예전까지는 알아서 조심스럽게 했겠지만, 지금은 친구사이 상근자다이게 연애할 때 걸림돌이 되지는 않나.

물론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다이건 상근자뿐만 아니라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들이면 누구나 느끼는 부분이 있을 거다내 경우에는 어플에서 블락 당한 경우도 있었다그게 좀 충격이긴 했다. 친구사이 활동가는 블락이 공식이 웃겼다그래도 그냥 받아들인다그게 현실이구나그럼 나는 어디서 누굴 만나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웃음그런데 거짓말은 하기 싫으니까.

 

맞다그런 게 좀 우습다그 부담의 정체가.. 불안의심공포 그런 것들일텐데우리가 해야 할 게 참 많다.(웃음그럼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지금 당장은 외모 같은 것보단나의 이런 생활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어플 자기소개에는 오디너리 게이라고 적어놨지만게이 커뮤니티 내부에서 볼 때는 우리는 정말 독특하고 튀는 아이들인 것 같다나를 이 직업이나 활동 같은 것으로 보지 않고 그냥 나 자체로만 봐주면 좋겠는데뭐 때 되면 생기겠지하고 있다.

 

별로 조급한 마음은 없어 보인다당장은 연애 욕구가 없나 보다.

- 아니다. 조급하다.(웃음) 기회가 되면 하고 싶은데지난 이별을 정리하기도 해야 했고 스스로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은 시기인 것 같다.

 

알겠다이건 그냥 요즘 유행이라 물어보는 건데낮이밤져인가낮져밤이인가노코멘트 해도 된다.

이 질문 어디선가 받은 기억이 있는데나는 낮에도 이기고 밤에도 이기고 싶다.(웃음) 농담이고 모르겠다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나그냥 하는 거지... 그렇다. 그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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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기다리다.


이제 슬슬 인터뷰를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오디너리 게이라고 하니오디너리한 질문들로 마치겠다숨도 돌릴 겸일단은최근에 관심을 두는 것들이 있나.

최근에 걸어서 출퇴근하고 있다아침 출근길은 항상 스트레스다사람도 많고 부대끼고사소하지만 그런 스트레스에서 좀 벗어난 삶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걸어서 출근을 해봤는데 너무 좋았다그래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밤에 잠도 잘 온다.(웃음그리고 한 번도 가난이라는 것에 대해 체감을 하지 못하고 살다가이제는 집을 나와서 스스로 삶을 꾸리면서 살아가야 하다 보니거주하는 공간이나 공동체어떤 자급자족적 삶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가급적이면 내 일터가 있는 서울 안에서의 그런 삶을 모색해보는 중이다.

 

아. 사진찍는 것도 참 좋아하는 것 같던데.

- 그렇다. 우선 추억을 남기는 용도로 좋아한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뭔가 사람들과 친해지는 매개체로 늘 사진을 사용한 것 같다. 쾌활한 성격도 아니고 조용한 내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나름의 자구책이랄까사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찍은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할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들이 더 좋다그런 재미로 사진을 찍는 것 같다. 풍경보다는 사람들을 찍는 것이 더 좋고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들어떤 상대를 실제로 눈 앞에서 볼 때와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볼 때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그 때의 그런 느낌이 참 좋다.  


인터뷰 중간에도 많이 느꼈지만서울이 워낙 대도시이기도 하고인구밀도도 어마 무지하고그러다 보니 그런 것에 답답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어딜 가나 사람이 많은 게 정말 괴롭다그런데 괴로워만 하기보다는 그것을 기회 삼아보고 싶기도 하다이 낯선 공간에서지금은 친구사이 인맥이 내 커뮤니티의 거의 전부인데 그것을 벗어나 관계를 좀 더 확장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삶에 대해서도 참 많은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특별히 그리는 삶이 있나.

일단 내가 선택한 것들하기로 한 일들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좀 더 갖추고 싶다최근에 이런저런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아마 올 한 해는 그렇게 지낼 것 같다그리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정리를 좀 해보고아까도 이야기했지만지금은 모금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고내가 나중에 어디를 가더라도 도움이 될 것들을 더 찾아서 배워보고 싶다.

 

예전에 친구사이에서 일을 시작하면서인생의 정말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이 인터뷰를 통해 나도 그것에 많이 동의했다좋은 방향인가?

뭐 그렇다나는 사실 서울에 오고 친구사이 일을 하면서부터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서.. 뭐랄까인생의 방향이 어느 순간 정말 많이 바뀌었다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큰 변화가 또 찾아올지 모른다그냥 어떤 상황이나 변화에 놓이더라도 일관성과 자아 성찰을 잃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얼마 전가벼운 인터뷰를 할 일이 있었는데,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그럼에도 이 세상이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믿음은 있다.’고 대답을 했었다그 믿음을 잃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좋은 이야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지켜내기에도 벅찬 세상이다.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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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편집 : 샌더

김찬영님 메일 주소 : deepnote@naver.com


※ 이 인터뷰의 내용과 사진은 김찬영님과 친구사이의 동의 없이 다른 곳에 게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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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