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친구사이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친구사이에 들어오는 것도, 글을 올리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기껏해야 겨우 2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그 2개월이 제게는 꽤 긴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2월 말에, 저는 입대하여 훈련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 너나 할 것 없이 긴장했고 또 걱정이 컸습니다. 집을 떠나오는 것도 격리된 생활을 하는 것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에... 무엇보다 지금껏 익숙해져온 현실의 모든 것들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아득한 절망에 가깝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게이라는, 동성애자라는 현실이 남자들만 가득한 공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몰라 두려웠습니다. 저는 그런 제 자신을 받아들였지만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인 것은 아니니까요.
처음 가서 입소식을 치르고, 익숙하지 않은 군복에, 익숙하지 않은 단체 생활, 딱딱한 제식 등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며 나아갔고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지만 단 하나만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던 고민ㅡ 그것을 소대장님과 중대장님께서 친절하게 상담해주시고 고민을 들어주셔서 그것이 저를 일어서게 만들었습니다. 누구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고 자기 길만 걸어가기 바쁜 공간에서 저를 이해해주고-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지만-기운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에 힘든 와중에도 미소 지을 수 있었습니다.
6주 간의 훈련을 끝마치고 훈련소를 나가기 얼마 전, 제게 기쁜 일이 일어났습니다. 훈련소에 와서 안 친구가 제게 고민이 있는 것 같다며 '상담'을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말하기 곤란한 것이어서 처음에는 침묵했으나, 친구의 끈질긴 설득과 그 내용이 무엇이든 네 편을 들어주겠다는 친구의 말에 결국에는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놀라고 혐오할 것 같았던 친구는 예상과 달리-놀라긴 했지만-저를 이해해주었습니다. 물론 이성애자로서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해하려 노력하였고 제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중.소대장님과 면담을 했다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여 고립된 정체성에 힘들었던 제게 그것은 정말로 희망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아, 이 세상은 그래도 아직 살만하구나 하고.
커밍아웃, 한번 한 이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한번도 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단입니다. 과연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혹시 경멸하거나 혐오하지는 않을까, 몰래 소문 내지는 않을까 등등. 그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친지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인데ㅡ 그것을 이해해주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얼마나 큰 희망을 갖는지, 얼마나 삶에 애착을 갖게 되는지...
지금은 훈련소를 나와 자대배치를 받아 다들 제각각 흩어져 있습니다. 저는 운 좋게 상근이라 집에서 출퇴근을 합니다. 저의 커밍아웃을 들어준 친구도 상근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야기 할 때 그 화제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는 제 고민을 들어주었지만 그것을 비밀로 해주었고, 일상얘기에 되도록이면 띄우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것은 도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정체성을 알고도 그가 저를 피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저를 계속 마주 보고 친구로서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기쁘고, 살아갈 희망을 얻습니다. 세상이 저에게서 등을 돌리는ㅡ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저를 절망에 가까운 극심한 정신적 고난에 빠지게 만들고 죽음조차 생각하게 만들지만, 저를 이해하고 경멸하지 않는다는 그것으로 아직도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다만 앞으로 2년 간 부산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꽤 짜증나네요. 앞으로 친구사이 모임도 2년 동안 못가겠구...(물론 지금까지도 절대 잘 나간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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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이라도 여러모로 고생이 많으실 텐데, 앞으로 그 친구분하고 잘 지내시고 몸 건강하시길...
화이팅!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