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의 '에이즈 택시기사'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언론은 이번 사건의 원인을 '허술한 감염인 관리 체계'에서 찾는다. 감염인에 대한 관리·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감염인과 사회적 소수자들이 얼마나 강력한 통제와 차별을 받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감염인 전 씨는 변태성욕자 또는 정신이상자"
충북 제천경찰서는 지난 12일 택시기사 전 모 씨를 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단순 절도범이었지만 전 씨가 훔친 물건이 여성 속옷이라는 점이 일단 문제가 됐다. 그리고 조사과정에서 전 씨가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언론은 감염인인 전 씨가 여성 수십 명과 성관계를 가져 에이즈 관리체계에 구멍이 뚫렸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전 씨의 신상은 낱낱이 언론에 까발려졌다. 전 씨의 성적취향은 물론 그의 사진까지 모두 공개됐다. 전 씨가 양성애자이고 여장을 했다는 경찰의 발표도 빠뜨리지 않았다. 경찰과 언론은 전 씨에게 '변태'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조선일보와 MBC 등 대다수 언론은 경찰 발표를 인용해 전 씨가 "여성용 브래지어와 팬티를 착용한 변태성욕자 또는 정신이상자"라고 보도했다. '변태', '정신이상', '에이즈'란 키워드가 전 씨를 포박했다. HIV와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면역결핍증)는 다르고 전 씨와 같은 '크로스 드레서'(Cross dresser, 이성복장선호자)가 '변태'가 아닌 하나의 취향으로 인정되는 사회도 많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에 경찰 발표를 인용해 "복수심에 불타 일부러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맺었다"는 추측 보도까지 이어졌다. 관심은 전 씨와 성관계를 맺은 그/그녀들에게 쏠렸다. 처음엔 전 씨가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에 나온 10여 명의 여성을 '수사선상'에 올리더니 급기야 전 씨 휴대폰에 전화번호가 기록된 70명에게 까지 달려들었다. 경찰은 이 70명의 신원 및 전 씨와 성접촉 여부를 파악하는 데 분주하다.
제천경찰서는 16일 전 씨를 절도와 '전파매개행위 금지'(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지금까지 전 씨로 인한 추가 HIV 감염은 확인되지 않았다. 당초 경찰은 추가 감염인이 확인되면 전 씨에게 형법상 중상해죄도 적용할 계획이었다.
감염인 차별과 편견 조장하는 언론들
에이즈하면 이름이 자주 인용되는 미국의 유명한 농구스타 매직존슨, 그는 지난 1991년 코트를 떠나며 자신이 HIV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 이전부터 '여성편력'으로 화제를 몰고 다닌 매직존슨이 '커밍아웃'을 하자 당시 언론은 그와 성관계를 맺은 여성이 수백여 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지금의 한국사회 같은 상황이었다면 매직존슨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으로 처벌을 받고 그와 성관계를 맺은 여성들은 경찰의 추적을 받았을 게다.
질병으로부터 안전하게 사회구성원을 보호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대하는 언론과 경찰의 태도는 에이즈 예방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질병관리본부조차 전 씨의 감염력이 대단히 낮다고 밝혔지만 언론은 '마녀사냥'에 열을 올렸다. 다행스럽게도 추가 감염 사실이 한 건도 없자 모두가 민망해하는 분위기다.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통제가 에이즈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외국에선 이미 상식이다. 한국 보다 먼저 에이즈로 홍역을 치른 국가들은 대부분 감염인 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98년부터 장애인인권법을 통해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감염인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그들을 더욱 숨게 만들고, 에이즈 확산을 막는데 아무런 기여도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또 에이즈는 '게이 돌림병'도 아니고 자기관리만 잘하면 만성질환처럼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질병이라는 것도 이미 확인된 의학적 사실이다.
전 씨가 설령 언론의 추측대로 복수심에 불타 타인과 성관계를 했다고 해도 이게 '감염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져선 안 된다.
감염인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에게 낙인을 찍는 사회야말로 병든 사회다. '변태'라는 말은 이번 사건처럼 이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한국언론에게 더 잘 어울리는 수식어다. 많은 인권단체들은 '감염인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에이즈 예방의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