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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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꼬마 2007-12-03 06:32:24
+3 1200
오늘 잠시 제 컴퓨터를 큰누나가 쓰게 됐네요.
그런데 어쩌다가 검색기록이란 게 나왔고, 부지불식의 순간에 이반 동영상이 떠버린 겁니다.
그것도 대여섯개나...
뭐라 제지할 시간도 없이 떠버려서 난감했고 순간 누나는 "너.. 남자가 남자 동영상 보며 있냐.. 너 혹시 동성애자냐?"라 묻더군요.

먼저 이해를 도와드리기 위해 간단히 주변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진주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이 진주란 도시는 전국에서 아마 보수적인 도시를 손에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엔 족히 들 것이고 동성애자가 있든 없든 간에 커밍아웃을 한 사람, 하는 사람..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소문으로 들은 것도 한 사람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커밍아웃 = 삶의 포기라는 공식이 성립될만큼이나 사람들이 호모포빅합니다.
친구며 어른들이며 동성애가 사회적 이슈라고 해도 입도 뻥긋 안 하고..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제가 고1때 저희 학교는 논술 교재로 EBS의 사고와 논술을 택했습니다.
그때 동성애라는 주제가 있었는데, 그때 35명의 학생 중 한 명도 옹호 발언을 한 사람이 없다면, 대충 어느정돈지 짐작되실 겁니다. (한다면 매장당하는 분위기...)
그러니.. 당연 저희 가족도 호모포빅입니다. 그리고 저는 집에서 장남이자 막둥이자 늦둥입니다.

순간 누나가 그렇게 묻는데 저는 아주 당황했습니다.
  머리가 백짓장처럼 하얘지고...
'이제라도 커밍아웃을 할까?'라는 생각보다 '어쩌지.. 어떻게.. 죽어야 될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과 동시에 이리 저리 변명했습니다.
제가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거든요.
평소엔 논리고 생각이고 없이 그저 생각없이 살며 붕 들떠 사는 아인데 아주 화가 나거나 위급하거나 당황할 땐 제 스스로도 놀랄 만큼이나 논리정연해지고 차분해집니다.
그러며 각종 잡다한 지식을 끌어모아 웬만한 사람이라면 제가 이성애자라 납득할만하게 설명을 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늦둥이라 누나들과 터울이 좀 많이 큽니다.
그런지라 누나들이 절 업어 키웠고 그래서 저의 이런 특이한 성격을 정말 잘 압니다.
  오늘 제가 그렇다는 낌새를 챘지만 평소 제가 그런 말은 입도 뻥긋 안 하고 평소 제 가치관을 미루어 짐작해 '아니겠지' 생각 하더라구요.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는 커밍아웃을 할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저로서는 도저히 할 용기가 없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제 주변 누구에게도...
집안의 장남이자 장손이고... 그런지라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인척분들께도 제가 관심의 대상이며 희망이거든요.
'장남은 한 가문의 기둥이다'라는 구태의연한 생각.. 저희 지역의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저희 집안은.. 아직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희망을 도저히 져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우선은 컴맹인 제 자신에 대해서.. 조금만 더 신경 쓰고 공부했더라면 이런 상황을 조기에 막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에는 나조차도 내 자신에 대해 떳떳하지 못하면서 나중에 뭘한다는 건지..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이렇게 소심한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싫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런 감정 어디다 하소연 하고 싶어 폰 전화번호 찾아보다 보면 한숨만 나오고...

친한 친구들에게 넋두리라도 하고 싶긴 하지만 호모포비아입니다.
정말 저와 오래사귀고 친한 친구들은 유유상종이라고 죄다 군인이 꿈이네요.
친구가 아니라면 이상형이다 싶을 만큼이나 멋진 녀석들인데 친구기 때문에 그런 연정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가진다는 것조차 죄스럽다고 느낄 만큼 저도 그들도 소중히 여기는 친구이라서 할 수 없습니다.
분명 그들이라면 절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들이 받을 충격을..
제가 감당해 낼 자신이 없습니다.

    
정말 절친한 친구가 올 여름에 여행가서 제게 자기전에 말하더라구요.
"OO이는 누구한테나 기대길 원하고 실제로 여럿한테 기대잖아. 그리고 1학년 애들은 걔한테 기대고... 근데 나는 너를 '기대도, 믿고 따라도 좋을 친구'라 생각하고 그러고 있다. 그리고 우리 동아리 1학년 애들 그리고 나를 포함한 2학년들 모두가 너한테 기대고 또 너를 '믿고 따라도 되는 놈'이라 믿고 있다. 모두의 기댈 곳이 돼 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라는데...
그래서.. 저는 기댈 곳이 없습니다. 저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많은데.. 그렇기에 너무 부담스럽기도 했고 지금도 부담스럽습니다.
부담스럽지만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믿음에 부응하고자 더욱 더 남들 앞에선 애써 남자다운 척, 강한 척하는 제 자신이 정말 싫습니다.
강한 척, 남자다운 척하는 거.. 싫지만.. 정말 강해지고 싶고 흔히 말하는 남자다워지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쩐지 나날이 약해지고 여려지고 힘들어지네요.
귀여운 후배들도 정말 멋진 동기들도 저를 믿고 따라주고 제게 기대줘서 고마운데...
때로는 너무도 부담스럽고 그런 그들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죄짓는 것 같아 너무도 미안합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이 기댈 튼튼한 기둥이 돼 줘야하고 그들의 넋두리를 들어줄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을 포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더 부담스럽지만 정작 리더는 리더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어 모든 감정을을 안으로 삭여야만 하니 그만큼이나 더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이고 리더이기 때문에 빛이 나지 않습니까?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친구사이 대표님께서도 정말 고생이 많다라는 거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항상 힘내십쇼. 저는 항상 대표님들 편일 겁니다.. 아마도.. ㅡ.ㅡ;

요새 가뜩이나 외롭고 쓸쓸해 괴로운데.. 직접적으로 그런 일이 있어서 오늘은 견디기 힘들 만큼 그러네요..

어디 맘 터놓고 제 내면 깊숙한 이야기 하고 싶지만 할 곳 없어 이렇게 푸념이나 늘어놓습니다.
   역시나 마무리로는 할 말 없음으로.. 건강에 유의하시란 말씀 드리고 갑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자자~ 이쁜 언니, 아주머니들의 악플 환영합니다.
다만 미워할 거에요!! ㅎㅎ

차돌바우 2007-12-03 오전 06:38

한참 힘들때로군요.
그저 참고 견디라는 말밖에는 할말이 없네요.
커밍아웃이라는 것이 자신의 채임을 수반하는 일이고 보면, 무척 어렵죠.
저도 아직 커밍아웃도 못한걸요.
하지만 친구사이 형, 동생들로 인하여 잘 견뎌내고 있답니다.
힘들땐 언제나 친구사이에 기대 보세요.
푸념은 언제든 들어드립니다 ^^

땅꼬마 2007-12-03 오전 06:42

어머 형, 그렇게 관대하게 말씀하시면 만날와서 만날 푸념 늘어놓을지 몰라요. 또 안 들어주심 들어주시라구 계속 독촉할거에요 ㅡ.ㅡ;;

피터팬 2007-12-04 오후 21:01

맞아요. 친구사이로 오세요. 차돌바우처럼 푸근한 아줌마들이 무척 많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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