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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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aged..? 2007-11-10 07:09:21
+8 1396
내가 게이라는 걸 알고 받아들인 몇 안 되는 일반 친구들하고 동생한테
생각 있으면 차별 금지법안 반대 서명해달라고 멜을 보냈더랬다...
물론 그 전에 법안 축소 찬반 기사 둘다 보냈고.

반응이 대체로 호의적이긴 했는데, 일반 친구놈하고 동생놈이 맘에 걸린다...
동생은 서명은 해줬지만 연락 주고받는 과정에서
난데없이 '페미' 어쩌고 하면서 여성 운동가들 욕하길래,
난 왜 군 가산점제가 차별이고
한국 사회가 얼마나 남녀 차별적인지 일장 연설했다 (답장은 없더군;;)
친구한테는 왜 이 법안이 단지 특정 이익 집단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고,
왜 동성애/양성애/이성애가 동등한 위치에 놓이는 한편
매춘, 강간, 아동 성추행, 수간, 시간하고는 다르고 상관 없는지,
그리고 여중 여고 등에서의 '이반 검열'이 왜 중요한 문제고 차별이고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지
역시나 일장 연설했다 (결국 둘다 뚜껑 열려서 대판 싸워버렸지만;;)

친구도 동생도 자기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남을 이용해먹거나 해코지할 사람들은 아닌 것같다.
(내가 사람 사귈 때 제일 중시하는 '사심 없음'을 갖췄달까...)
나에 대해 걱정들도 많이 하고, 기본적으로 마음이 따뜻하다...

하지만 둘다 개신교 신자고(물론 이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이상적'인 여성상이랑 남녀 관계에 대해서 은근히 보수적이다;;
가령 난 과부인 엄마가 연애나 재혼해도 좋을 것같다.
(본인은 '내가 이 나이에 남자 수발들게 생겼냐'고 마다하지만)
하지만 동생은 그런 건 용납 못하는 눈치고...
사소한 예지만, 친구는 밥은 여자가 지어야 되고 그게 '진짜' 밥이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물론 둘다 가령 자기 여친이나 아내를 막 부려먹거나 패는 건 아니고
나도 웬만하면 싫은 소리 안 하려고 하지만,
결국 호모포비아랑 남녀 차별이 뿌리가 같으니까
이 점에서만큼은 두 사람이 나한테 언제나 조금은 불안하고 불편했던 것같다.
(사실 더 짧은 기간 동안 알고 지낸 친구 여친이랑 제수가 더 대하기 편한 면이 많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겠지만, '착한 마초들'이랄까...;;
그 모순이 이번에 터진 것같긴 하지만.

게을러터진(!) 내가 페미니즘을 열나 파고든 것도 아니고
페미니즘--또는 다른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만병 통치약으로 보지도 않고,
여성부랑 여성 운동가들이 종종 실수도 하지만,
아무리 일부라고 해도 '꼴페미'니 '개페미'니 하면서 마구 욕하는 인간들 보면 무섭다...
더구나 싫든 좋든 한국 사회는 빨리빨리 변하고 있어서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같은 사고 방식으로는 하다못해 장가도 가기 힘든데...!

워낙 소수자나 '나랑 다른 사람'한테 무관심하고
상대방이 나보다 힘 없다 싶으면 마구 짓밟는 게 한국 사회의 생리지만,
인권에 대한 의식도 지난 10년 동안 많이 높아졌고
차별 금지법안이 이반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서
('성별 정체성'은 애초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니까 트랜스들이야말로 정말로 억울해해야 되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들 난리쳐서 기어이(!) 차별 조장법안으로 전락시키는 걸 보면
이 사람들 생각에 '내가 살고 싶은 나라', '이상적인 사회', '우리 모두의 공동체'에서
배제되(어야만 하)는 집단, 부류, 유형의 인간은 참으로 많은 것같다...
아니, 자기하고 다르거나 힘 없는 사람들은 아예 짐승이나 괴물로 보는 거겠지.
결국 차별 행위랑 차별 금지 행위 모두
한 사회가 얼마나 열려 있거나 닫혀 있느냐는 문제하고 직결되는데,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 잇속만 챙기는 대선 후보가 지지율이 제일 높은 데서 드러나듯
한국은--그리고 세계는(?)--근본적으로는 안 변하나보다...
(미국도 지금 동성애 차별 금지법 때문에 시끌시끌하고)

한편으로는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페미'라는 말을 쓰는 친구랑 동생한테 기분 나빠하는 내가 쓸데없이 예민한 건 아닐까?
서명 운동 참여 여부하고는 상관 없이,
내가 충분히 논리적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설득하지 못해서 친구랑 싸운 건 아닐까?
더 부드러우면서도 효과적인 전술이 있는데도 내가 모르고 괜히 심각하게 굴어서 이렇게 된 걸까?
아니면 내가--그것도 아주 미미하고 어설프게--'의식화', 정치화된 나머지
만사를 너무 도식적이고 교조적으로 보게 된 건 아닐까?
게다가 오만하게도(!) 나만 옳다고 믿는 바람에
어쨌든 날 인정하는 바로 주변의 사람들마저 밀쳐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학생들한테는 관용이니 공존이니 강조하면서도 정작 나는 실천 못하는 '바담 풍' 선생 아닐까?
결국 내가 공부도 수양도 부족해서 불필요하게 감정적으로 부딪치고 만 건 아닐까?

물론 어떤 운동이든 이념이든 제도든
하루 아침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의 머리를 개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너무 조바심내는 것일 수도 있고,
설사 제대로 시행되더라도 차별 금지법은 실질적 효력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게이라는 걸 받아들였다는 주변 사람들 생각도 못 바꾸는데
과연 생판 모르는 저 많은 군중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생각을 바꿔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허탈하기도 하고, 무력감도 많이 느낀다.
특히 친구는 오랫동안 내 정체성 때문에 갈등도 많았고 나한테 '설교'도 무지 많이 들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게 말짱 헛짓거리 아니었나 싶어서 씁쓸하다...
비록 게이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이쁜 인형 취급하는 건 불편하지만,
이 점에서는 차라리 얼굴도 모르는 야오녀들이 지지 세력으로서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인간이라는 게 워낙 복잡 미묘하고 모순적인 동물이라
게이라는 사실만으로 나를 100% 설명하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한테 성 정체성은 아주 중요하고 또 공적, 사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근데 만약에 가까운 사람이 가령 자기 '친구'나 '형'이니까 나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결국 동성애 자체는 비정상적이거나 잘못된 거니까 인권의 문제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차별 금지법같은 법적 제도적 장치에 미지근하게 반응하거나 아예 반대한다면
난 앞으로 이런 사람들하고 어떻게 지내야 하며, 또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어차피 인간이라는 게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니까
이런 점까지 그 사람의 일부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상대방을 어떻게든 설득하고 바꾸려고 노력해야 되는 건지...?
그리고 만약 이런 '계몽' 시도가 실패하면 나랑 그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무슨 선교사나 선동가처럼 내 생각을 남들한테 강요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런 모든 고민 자체가 불필요하고 흑백 논리에 빠진 건 아닌지...?

솔직히 나, 워낙 밴댕이 소가지라서 상처받거나 배신감 느끼면 두고두고 사람 미워한다...;;
안 그래도 숫기가 없고 경계심이 많은 편이라서 친구든 애인이든 쉽게 못 사귀는 데다
나이 들수록 새로 사람 만나는 것도, 알던 사람하고 잘 지내는 것도 어려워지고
피가 물보다 진하기는커녕 피도 물 타면 얼마든지 물 된다는 게 개인적인 경험인데,
동생이랑 친구의 경우에서처럼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가까운 사람들하고도 부딪치다보면
결국 외토리 되는 건 아닐까...?
나이 들수록 둥글둥글해지긴커녕 오히려 '심술쟁이 노친네'가 돼가고, 싫고 좋은 게 분명해지고;;
특히 껄끄러운 가족 관계랑 차별 금지법안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노처녀 히스테리(!)까지 겹쳐서 내가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 걸까?

하지만 상대가 누가 됐든 간에 존중을 구걸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과연 게이로서 나라는 인간을 이 세상에 끊임 없이 설명하고 정당화해야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건 엄청 피곤한 노릇이기도 하니까)
갈수록 사람 사이의 소통, 이해가 참으로 어렵다 싶기도 하고...

결국 주정뱅이 걸음걸이처럼 왔다갔다하는 글이 돼버렸군;;
암튼 속상하고 해골 복잡하네...!
(이런 글 올려서 다들 힘 빠지게 하는 건 아닌지~!;;)

박재경 2007-11-10 오후 18:12

언니 힘내삼.... 어제는 후원회원의 밤 잘 했답니다.

어젯밤킹카 2007-11-10 오후 20:52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기 위해서는 참 긴 시간과 큰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내 스스로 벽에 머리를 박는 느낌이 드는 것도 힘들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그러한 노력에 합의 점을 찾는 것도 참 어려운 일.

고민은 고민,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일일 것이고,
어쨌든 그럼에도 저희는 어제 열심히 놀았답니다.
(사실 별로 열심히 부비적대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술잔으로 ^^)
게이토끼 님, 몽 님, 조한 님, 등 멋진 분들을 한자리에서 다 보았다지요.
(순번가지고 싸우지들 마세요 나열은 가나다 순)
초 꽃미남 영화배우 휘파람 님도 오셨었답니다. 싸인 받을 껄.
게다가 술자리 분위기가 좋아서 친구사이 대표 추녀 아류, 나이푸 등도
평소와는 다르게 귀여운 구석이 있어 보였습니다.
많이 취했던 게지요.

오늘도 여기 저기 껄떡대고 다니는 안 이뿐 애들을 보니 종로에 힘 빠질 일은 없겠더군요.
여긴 걱정하지 마시고 데미미님 마음, 건강 잘 챙기세요.
데미미 님 사랑합니다.

데미미의 남자 2007-11-10 오후 22:24

이십여 년 전(나 넘흐 늙었나봐...ㅜ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요.
일상적인 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정치적인 것은 일상적인 삶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소해 보이지만 그런 일상에서의 치열한 싸움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그런 부분들을 이 게시판에서 공유해 주시는 데미미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참, 글구 섹쉬한 선물들도 잘 받았어요.^^

마지막으로 앞에 쓴 천박한 칫솔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세요.
어제 칫솔은 후원회원들이 보는 앞에서 엄청난 커밍아웃을 했답니다.

추적걸 2007-11-11 오후 15:00

그제 칫솔군이 후원회원이 보는 앞에서 이쁜이 언니한테 사랑을 고백했다는군요, 글쎄.

아류 2007-11-12 오전 02:13

언뉘 먼 타국에서도 참 걱정거리도 많겠수~
보내주신 City of Glass는 어제 부터 읽기 시작했답니다.
첫 장면부터 Auster가 제대로 된 작화가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우~
정말 정말 감사~~ ^-^

데이 2007-11-12 오전 11:22

형 말씀 틀린거 하나도 없어요. 저 역시 착한마초?들을 상대할때 똑같은걸 느껴요^^

vefeFrietle 2010-11-02 오전 09:25

DuriExtette

blurred vision alierr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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