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병사 성희롱, 인권침해 시달려
군대 내 동성애자 차별 여전히 ‘심각’
김영선 기자
2007-10-25 02:54:15
군대에서 동성애자 병사가 지속적으로 성희롱 당해온 사실이 알려지며, 군대 내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 침해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동성애자인권연대 등은 24일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성애자 병사의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렸다.
성희롱과 괴롭힘, 구제요청 후에도 인권침해
이 단체들은 동성애자 A씨가 2월 말 자대배치를 받은 후 두 달 동안, 10여 차례 성희롱 및 성추행을 당해왔다고 밝혔다. A씨는 부대의 다른 병사와 중위, 하사 등으로부터 “오늘 밤에 내 침대로 와라.” “여기 ‘다방아가씨’가 한 명 있다. 빨리 커피 타서 오라” 등 모욕적인 언사는 물론, 수치심을 주는 신체 접촉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들은 “견디다 못한 A씨가 커밍아웃을 하고 군 간부 등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오히려 성 정체성을 이유로 2차 가해를 겪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군의관이 A씨의 고통에 대해 “군복무를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왜곡하고, “사건과 관련 없는 성관계 경험이나 방식 등에 대해 수차 질문하며 조롱했다”는 것.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 후 오히려 더 힘들어진 A씨 사례는 군대가 동성애에 대해 얼마나 몰지각한지 보여준다.
A씨가 대대장으로부터 “참고 있어야 한다. 연병장에 병사들 집합시켜 (A씨가) 남들과 다르니 만지지 말라고 해야 하나?”는 말을 듣거나, 감찰대로부터 “부모님에게 모든 상황을 알리고, 직접 육군본부에 인터넷으로 민원 접수하라”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도 기자회견을 통해 전해졌다.
또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A씨는 “신변노출에 이의 제기하지 말 것”과 “커밍아웃 관련 인권 침해를 이해할 것”을 요구 받았다고 한다. 인권 침해를 겪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해도 구제 받기 어렵고, 성희롱 피해자의 신원 보장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군의 현실을 보여준다.
기자회견을 연 단체들은 “A씨는 심한 절망감에 자살 시도를 하였으나, 군대는 A씨를 정신병동을 거쳐 군 부적응자 캠프인 비전캠프로 보냈다”고 보고하며, “절망에 빠진 피해자는 다시 자해 행위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해당 부대가 피해자의 휴가 요청을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10월 15일 정식 휴가를 보내줄 때조차 피해자 어머니에게 각서를 받았다”고 고발했다. 각서는 “휴가 중 사고가 발생하면 군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은 전시행정
피해자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사실을 진정했다. 24일이 휴가 복귀일이었으나, 현재 군에 청원휴가를 신청하고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다. A씨를 진찰한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A씨는 우울감, 수면 장애, 체중 감소 등으로 주요 우울증을 의심해볼 수 있으며 증상을 유발시킨 환경에 다시 노출된 경우 자살 시도 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친구사이 이종헌 대표는 “A씨는 현재 청원휴가 요청에 대한 부대 조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군으로부터 성희롱 사실에 대한 언급 없이 ‘동성애 때문에 정신이상이 왔다’는 내용만 전해 들었었던 A씨 부모님도 지금 무척 억울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작년 2월에도 군대 내 한 동성애자가 정체성을 말하자 HIV/AIDS 검사, 성관계 사진 제출 등을 요구 받았던 인권침해 사건이 있었다. 이에 국방부는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을 만들었지만, ‘이성애자 전환 희망 시 적극 지원’ 등 동성애 혐오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장병권 사무국장은 “그나마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에서 지키고자 했던 ‘성경험, 상대방 인적 사항 등 사생활 관련 질문 금지’ 등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관리지침은 전형적인 ‘전시(展示) 행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동성애자 권리단체 및 인권단체들은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는 군대가 가지는 계급, 위계질서 중심의 악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해당 부대에게 가해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할 것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성실히 응할 것 등을 요구하고, 국방부에게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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