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잘 시작하셨는지요.
지난 토요일은 제가 극장에 안 보여서 많이 서운하셨을 것 같습니다.
조한 님을 오랜 만에 뵐 생각을 하니 금요일 밤에는 잠이 잘 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소 즐겨 읽던 시집을 펼쳐서 잠을 청했답니다.
그런데 이 날 따라 모든 문구가 왜 이리 아름답게 들리는지
잠은 커녕 구절 구절에 푹 빠져있다 보니 창밖에 해가 떠버리더군요.
할 수 없이 밤을 꼬박 새운 체로 백수의 가사 일과를 시작했답니다.
표 안 나는 집안 일을 다 해놓고 점심을 느즈막히 먹고나니 오후 3 시쯤.
아, 피곤과 식곤증이 함께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딱 두 시간만 자고 일어나자 다짐을 했건만,
푹 자고 일어나 보니 밖은 새까맣고 시계는 10 시로 가고 있더군요.
전 그대로 벼개에 코를 박고 엉엉 울었답니다.
세 시간쯤 후, 울어서 퉁퉁 부운 얼굴을 이불에서 떼어내니,
이대로 토요일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벽 1 시가 넘어서 집 앞 극장에 갔습니다.
애들이 빗자루 타고 다니는 영화는 아직도 하더군요.
제 지적 수준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보지 않았습니다.
뱀이 빌딩 타는 영화도 하던데
닭살 돋으면 피부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보지 않았습니다.
김상경 님이 휴가 가는 영화가 있던데
김상경 님이 멋지기는 하지만 솔직히 몸매가 좀 두리뭉실하셔서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 그런데, 한편에 처음 보는 꽃미남이 포스터에 보이더군요.
미셸 아주머니도 나오시고, 꽃미남에 끌려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결정했습니다.
아, 스타더스트, 제 영화 선택은 역시나 탁월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꽃미남의 웃음이 종횡무진하는 보람찬 모험영화였습니다.
스토리 진행의 인과관계는 다 필요없었답니다.
그냥 주인공이 한번 웃어주면 그걸로 즐거웠지요.
영화는 매우 유쾌했지만 조한 님과 함께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한편 아쉬웠답니다.
마지막 씬까지, 끝까지 웃어주는 주인공을 향해
무릎 꿇고 서서 기립박수를 치면서 나왔습니다.
조한 님, 지금 제 소원이 있다면 조한 님의 손을 꼭 잡고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입니다.
극장안에 팝콘을 들고와 삐약 삐약 앂어대는 무개념 커플들을 모두 집에 보내고,
안 이쁜 애들이 모두 자는 새벽녘, 조한 님과 단 둘이 보는 영화, 너무 멋질 것 같습니다.
12 시가 지나면 거지로 변하는 가짜 미모의 그녀들과 저는 매우 달라서
제 미모는 12 시가 땡치면 더 빛나기 시작합니다.
환경오염을 생각해서 제가 자가용을 운영하지 않으니
새벽에는 저희 동네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답니다.
조한 님이 편하신 날, 제게 호박마차를 보내주세요.
그럼, 매일 밤 자정, 창밖을 바라보면서 조한 님의 연락를 기다리겠습니다.
조한 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