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심각하게 굴 뜻은 없지만 굳이(!) 해명하자면...
전 그저 '남자'/'여자'라는 게 과연 그렇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정의되고 나뉘는 건지,
'남성'/'여성'이라는 신체적/생물학적 성별(sex) 구분,
그리고 '남성성'/'여성성'이라는 사회적/심리적 성별(gender) 구분을
누가, 어떻게, 왜 하는 건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자는 뜻이었죠.
제가 좀 짓궂지만, 단비님께서 자신이 '남성'이라는 점을 (아마도 생물학적/신체적 근거로)
무척이나 확신하시고 강조하신다는 느낌이 들다 보니까
망할 놈의 직업병(!)이 도져서 일부러 딴지가 걸고 싶어지더군요 ^^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님이나 제가 남자가 아니라는 뜻은 전~혀 아니구요.
(그럼 우리 둘다 저~기 티지넷에 가 있어야겠죠...! ㅋ)
일단 사회적/심리적 성별하고 생물학적/신체적 성별이 반드시,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겠죠.
사회적/심리적 성별이 태어날 때부터 거의 결정론적으로 똑같고 고정돼 있기 때문에
가령 '모든 (신체적/생물학적) 남자는--심지어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하고도 상관 없이--늘 이렇게 행동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개개인이 상황 또는 심지어 기분에 따라서 자신의 사회적/심리적 성별을
'연출' 또는 '연기'(perform)한다는 주장이 (적어도 학계에서는) 이미 많이 받아들여졌죠.
실제로 과학자, 사회학자 등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사회적/심리적 특성에 있어서
남녀간의 집단 차이보다는 남남간의(그리고 여녀간의) 개인 차이가 더 크다고 합니다.
성적 지향하고 상관 없이, 전체 인구를 놓고 봤을 때 말이죠.
게다가 따지고 보면 '암'/'수'라는 생물학적/신체적 성별마저도
그렇게 산뜻하고 명백하게 나뉘는 건 아니라는 얘기가 하고 싶었어요.
가령 하리수씨는 심리적/사회적으로 자신을 '여자'로 보고 있고,
수술을 통해서 (외부) 성기, 유방, 골격 등을 '여성'에 맞게 바꿨고,
다행히 법적으로도 '여성'이라는 인정을 받았지만,
죽을 때까지 염색체가 XY고, 자궁이 있을 리도 없고, 애도 못 낳죠.
그렇다면 이 분의 성별 구분은 누가, 어떻게, 누구를 위해서 해야 될까요?
신체적/생물학적 기준을 따라야 될까요?
(물론 성기/유방 등등하고 염색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 기준도 아리까리해지지만요)
아니면 법적인 정의에 맞춰야 되나요? 또는 본인의 심리적/사회적 성별?
더구나 자기를 '여자'로 봐주길 바라면서도 자기 음경을 혐오하긴커녕 수술을 거부하는 MTF 트랜스,
(어중간하든 온전하든) 태어날 때 있던 남녀 성기 다 유지하고 어느 한쪽이 되는 수술을 거부하는 인터섹스(간성)도 있죠.
아무리 소수더라도 바로 위와 같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성별이라는 게 사회적/심리적으로도, 신체적/생물학적으로도
정의하고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지죠.
즉 이 세상에는 누가 '남자'/'여자'인지 규정하는 방식이 생각보다 많을 뿐 아니라
그 많은 방식이 반드시 늘 서로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그 중에서 100% 완벽한 방식은 없다는 얘기예요.
(이럴 때는 '내가 누군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제법 실존적인 질문까지 던질 수 있겠죠? ^^)
실제로 시대랑 사회에 따라서는 오히려 사회적/심리적 성별 구분이
생물학적/신체적 구분보다 중시되거나 그걸 압도한 경우도 적잖구요.
(가령 인도의 '히즈라', 북미 원주민의 '버다쉬' 등등 '제 3의 성'이 있죠)
적어도 요새 서구의 경우에는 '이성애자'/'양성애자'/'동성애자'라는
우리가 아는 크게 3가지의 성적 지향 구별을 답답해하고 거부하는 사람도 꽤 있죠.
(물론 요건 성적 지향이 고정됐느냐 유동적이냐는 해묵은 논쟁하고도 연관이 있구요)
이것하고 비슷하게--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남자'/'여자'라는
2가지의 신체적/생물학적 성별 구별을 답답해하고 거부하고,
그 대신 자신을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젠더) 퀴어'로만 정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가령 주민증 뒷번호가 2가지밖에 안 되고
공중 변소나 목욕탕이 '남자용'/'여자용'으로만 구별된다는 건 엄연한 폭력이죠.
'모든 사람은 남자 아니면 여자여야만 돼~ 2가지 중 하나밖에 될 수 없어~'라고
사회가 강요하는 거니까요.
(사회가 왜 이렇게 2분법적으로 구별하고 그걸 요구하는지도 생각해볼 만하겠죠?)
물론 우리 게이들이 '난 내가 남자라는 점을 알고 있고 좋아하며, 나랑 똑같은 남자를 좋아해'라고
자신의 신체적/생물학적 성별 + 성적 지향을
확실하게 알고 긍정하는 건 좋고,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자신의 성적 지향을 부인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비이성애자가 많은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저도 제가 남자라는 사실이 좋고, 실제 남자는 더더욱 좋네요~! *^ㅠ^*
물론 제 말투나 행동거지나 선호 체위하고는 상관 없이 말이죠)
하지만 만약에 종교, 정치색, 지역, 계급을 막론하고
호모포비아의 대전제 중 하나가
'신체적/생물학적 성별은 의심의 여지 없이 단 2가지로만 나뉘고,
바로 그 성별에 따라서 심리적/사회적 성별은 물론이거니와
성 정체성마저 좌우되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그리고 애도 꼭 낳아야 한다)'라면,
(우리 사회에서 흔히 들먹이는 '음양의 이치'를 예로 들 수 있겠죠)
'남'/'녀'(의 차이나 구별)를 강조함으로써
자칫 흑백 논리적이고 차별적인 호모포비아의 대전제에 휘말려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똑같은 대전제가 남녀 차별에 기여한다는 점도 당연하고 분명하구요)
말씀하셨듯이, 제가 '인류는 한 인격체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건 아닙니다. 부정해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겠죠.
(물론 결국 바위에 계란이랑 껍질이 묻어서 자국이 남을 수도 있지만요 ^^)
저는 단지 그런 구분이 과연 100% 타당하고 허점이 없는지,
그리고 그런 구분에서 비롯되는 여러 정의, 개념, 관습, 제도가
과연 남/녀, 일반/이반 모두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지
의문을 제기해보자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동성애/양성애라는 것도
'인간은 누구나 이성애를 하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오래된 사고 방식에
'과연 그럴까?'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현상이고, 행위이고, 정체성이니까요.
전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당연하고 영원하고 절대적인 건
바로 모든 건 변하게 마련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 (그 변화의 과정에서) 죽는다는 점뿐이라고 봅니다.
(윤회나 부활이나 빙의나 흡혈이나 유체 이탈이나 냉동 보존을 믿으시는 분들께는 죄송~! ^^;)
비슷한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신체적/생물학적 성별, 사회적/심리적 성별, 성 정체성에 대한
각종 생각, 관습 모두 가변적이고 상대적--즉 따라서 임의적--이라는 건 인류 역사를 훑어보면 알 수 있죠.
(물론 주류 사회/종교/체제가 규정하고 강요하는 지배 이념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그것 자체가 시대랑 사회에 따라서 상당히 달랐을 뿐 아니라 거기에도 늘 예외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바로 이렇게 고정 관념에 도전하고 그 고정 관념이 인위적이라는 걸 상기시키기 때문에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남녀 이반들이
종종 '계집애같은'/'머슴애같은' 말투를 쓰고 옷을 입고 드랙쇼랑 퍼레이드를 하는 거죠.
'너네 어디 한 번 엿 먹어봐라~ 너네의 고리타분한 정의 따위는 즐쳐드셈~!
성별이건 성적 지향이건, 내가 누군지 말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하는 심뽀로요 ^^
사회가 쫙 그어놓은 '남'/'녀', '남성성'/'여성성', '정상'/'비정상'이라는 경계선을
마치 고무줄하듯(!) 가뿐하게 넘나드는 일 자체가 위협적일 수 있으니까요.
만약 '아' 다르고 '어' 다른데다 언어가 결국 행동/실천하고 나뉘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사소하고 천박(!)하더라도 우리가 쓰는 '언니~'랑 '이년아~'같은 말뿐 아니라
초마초적인 가죽 잠바 입고 다니면서 남자 꼬시거나, 우정박 타거나,
기존 사회/제도에 없는 새로운 가족 꾸리고 사는 행위 모두
'"남자"는 이래야 되는 것 아니었나?', '저런 "여자"도 있네?', '사람이 요렇게도 살 수 있구나~'하는 식으로
'주류'/'일반'/'보통' 사람들한테 경각심, 의구심, 심지어 불안감(!)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죠.
아니면 일부 일반 여자들처럼 성 소수자의 '위반' 행위를 유쾌, 상쾌, 통쾌(!)하게 보고 공감할 수도 있구요.
(이 점에서 '게이끼리 서로 "언니" 등 여자 호칭을 쓰니까
말이 되려면 자기를 "여자 좋아하는 여자"로 정의해야 된다'는 주장은
형식 논리로서는 맞지만, 그런 행위의 다분히 전복적인 의미는 간과하는 것같네요.
어차피 '언니'/'형'같은 기존 언어/사회 관습이 전제하는 이성애 중심주의 자체가 근본적으로 비논리적이니까
우리가 굳이 1:1로 대응해가면서까지 형식 논리를 따질 필요도 없겠구요.
그리고 친족 호칭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부부/부모 = 남 + 녀'라는 정의도
'엄마 1 + 엄마 2'/'남 + 남 부부'같은 실제 예를 통해서 이미 상당히 금이 가고 깨졌죠?)
아, 물론 드랙쇼, 마초쇼같은 '연기'(performance)는 물론이거니와
언어라는 것 자체에는 '놀이'라는 기능/이유도 있죠.
단지 호모포비아적 일반들을 놀래키고 겁 주거나,
우리가 일상에서 강요당하는 '남성성'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풀거나,
자신의 감수성이랑 감정을 표현하거나,
우리만의 공통점/동질성을 재확인하고 비밀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순전히 재미있으니까(!) (짐짓) '여자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거죠.
(조금 딴 얘기지만, 억눌린 집단이라고 해서 '한'이랑 '슬픔'밖에 없고 완전 무기력한 건 아니잖아요?
가령 흑인들의 우렁찬 영가, 여자들의 접시 깨지는 수다,
농부들의 신명 나는 풍물 놀이, 게이들의 뒤집어지는 센스 모두 '흥'도 있고 '힘'도 있죠 ^ㅁ^)
물론 이런 게이들의 말투가 사회가 요구하는 (언어) 습관을 조롱하고 뒤집는다는 점,
그리고 나아가서 웃음이라는 것 자체가 언제나 기존 질서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정치적/이념적인 전복하고 통하지만요.
따지고 보면 욕설, 은어 사용, 심지어 노상 방뇨같은 '규칙 위반'은 그 자체로서 쾌감을 주잖아요?
(앗...! 저 길거리에서 쉬야 자주 안 했으니까 파출소에 신고하지 마시길~ ^^;)
이 점에서는 가장 약하고 웃겨 보이는 '끼와 기갈의 카니발'도 결국 위력이 대단할 수 있다는 거죠 ^_^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예요.
그게 인권 운동의 전략이든 일탈적 유희이든,
우리 모두 갑갑한 이성애 중심주의적 족쇄를 가급적 벗어던진 채
젠더 벤딩(gender bending)을 즐기고(!)
계속해서 사회의 고정 관념이라는 바위를 (기왕이면 썩은) 계란으로 치자구요~ ^ㅇ^
(비록 제가 세계 성 소수자 인권 운동의 모델이 돼버린
미국식 인권 운동을 100%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열나게 술병 빨고, 봉춤 추고, 마약 먹고, 더덕 때리고, 박만 타던
트랜스, 레즈, 베어, 바이, 땍마, 끼탑, 뚱보갈, CD, SM 연놈(!)들이
사회의 고정 관념에 계란뿐 아니라 짱돌, 하이힐, 끼빽 할 것 없이 집어던진 덕에
주류 사회도 더 이상 감히 '동성애/양성애 = 정신병'이라고 말 못하게 됐잖아요?
동성 결혼/입양이랑 차별 금지도 엄연한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추세구요.
어차피 우는 놈 떡 하나 더 먹는 세상이니, 크든 작든 저항의 몸짓이 중요할 것같네요~
(윽, 또 이렇게 시간 까먹었군... 누가 이 채점 지옥에서 벗어나게좀 해줘~! ㅠ.ㅠ)
단 16일 이후야.. 오호호호호호호
12월 어느날에 보갈 삼거리에서 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