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day
김은경 감독의 단편을 두 편 정도 보았었다. 마지막 반전이 돋보인 '망막(2000)', 그리고 꽤 잘 짜여진 맬로 영화인 '남산에 오르다(2001)'. 특히, 망막을 만들었을 때 김은경 감독은 프랑스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었더랬다. 그때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무척 재기가 넘치고 경쾌한 성격이었던 걸로 기억되는.
김은경 감독의 '디 데이'가 '어느 날 갑자기' 시리즈 중 가장 낫다는 평을 듣고 있다길래, 다 보기는 좀 버겁고 해서 우선 이 작품을 골라 보았다.
대체적으로 완성도가 있는 영화. 특히, 컷트의 반전과 사운드 효과로 공포를 창출하는 그 지겨운 방식이 아니라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 변화로 공포를 조성하는 힘이 단연 돋보인다. 아마도 분명 이 영화는 큐브릭의 '샤이닝'을 참조했었을 것이다. '학원괴담'이라는 전형적인 장르를 재수생 기숙사라는 특정 공간에 담아내고 있지만, 공포의 원인은 사다코도 아니고, '환생'류의 어정쩡한 귀신들이 아니다. 공간 자체가 바로 공포의 원인. 세트 촬영된 기숙사 복도의 음산한 분위기는 충분히 섬뜩하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마지막 1/3이 갑작스런 비약과 플롯의 실종, 그리고 다소 난삽한 컷의 배열로 인해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 아마 그건 두 가지 경우일 것이다. 하나는 TV 시리즈이기 때문에 은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충분히 슬래셔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거나 편집 과정에서 삭제 처리가 있었을 거라는 가정, 또 하나는 예산 문제 때문에 정작 뒷부분에 힘이 실리지 못했을 거라는 가정. 힘을 고루게 안배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놓친 것이 아쉽다.
해도 난 김은경 감독의 이 첫 작품을 지지한다. '망막' 때부터 공포 영화에 관심을 보여준 김 감독의 출사표는 상당히 안정적이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어느 날 갑자기 시리즈 중 가장 떨어진다는 '죽음의 숲'만 보고 정리할 생각. 왜냐, 수십 년만에 귀환한 한국형 좀비물이기 때문.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