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병원에 갔더랬다. 근 6개월간 쉬지 않고 일한 탓에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나는 이번 달 초부터 정기적인 병원 검진을 받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병원의 풍경들은 참으로 스산하다. 엠뷸런스는 왠지 삶보다 죽음을 싣고 달려 오는 것 같고,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은 외로운 영혼들 같아 보인다. 진료내내 나를 따라 다니며 천사같은 미소를 짓던 상담 간호사의 점심 대접을 뿌리친 채, 병원 진료가 끝난 뒤 오랫만에 혜화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 많이 변했더라. 내가 즐겨가던 꼬치집은 자리를 옮겼고, 중심가의 많은 가게들이 사라졌고, 인도 이웃이라는 카레와 돈까스를 팔던 식당은 확장을 했다. 주변을 둘러 보다보니 예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하나 둘씩 생각이 났다. 혜화동 살던 시절, 나의 식사 프렌드였던 엠씨몸 형에게 근 일 년만에 문자를 보냈지만 답은 오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변해 버린 시간 앞에서 추억만 껌처럼 씹고 있었다.
2.
2년이 가깝도록 혜화동에 살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창경궁에 간 적이 없었다. 언제나 버스 차창으로 스쳐 가는 풍경만 바라봤을 뿐 그곳으로 발길을 돌려 본적이 없었다. 오늘에서야 그곳에 가게 되었고, 많은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도심 안에 자리잡은 고궁이라....참으로 언발란스하고 기묘한 풍경이었지만 왠지 모를 여유로움이 묻어나서 좋았다. 한가롭게 벤치에 앉아 부채질을 하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나 햇볕을 피해 풀숲에 누워 조는 아저씨들의 모습이나 어린애 마냥 호숫가의 오리와 잉어들에게 모이를 주는 노인들의 모습이나 서로 손을 잡고 밀어를 주고 받는 연인들의 모습들이 참 좋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지는게 순식간에 감상적이 되어 버렸다. 혜화동에서 느꼈었던, 변해감에 대한 실망감 혹은 서운함들과는 반대로 정지된 시간 속의 이곳에서,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참 많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3.
사람의 얼굴을 찍는다는 건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들을 뷰파인더를 통해 들여다 보면 모르고 있던 그 사람의 표정이라던지 그 사람의 살아온 흔적 혹은 생각까지 포착할 수가 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엄마의 사진을 오랫만에 찍었는데 참 많이 늙으신거 같아서 맘이 아팠다.
4.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한발 앞서 갈수록 인간이라는 동물은 점점 강삼의 늪에 빠지는 듯하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나는 이십대의 후반에, 너무 늦은 시기에 알아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