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이지우
오랜만에
모두가 모이기로 했다,
서울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는 놈과
내일도 시험이라는 의대생 녀석과
급작스럽게 그럴듯한 일이 생긴 놈과
얼마 전부터인가 아예 연락이 되지 않는 녀석을 빼고서.
그러나, 그러므로, 모두가 모인 것이었다.
몇년 만이지
3년
우리가 놀란 건
3년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벌써 3년이 지났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누군가의 집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누군가의 집에는
가압류가 들어왔고
누군가의 집에는
예전부터 말 안 듣던 동생 녀석이 사람을 찔렀고
나이가 들었을 뿐
아무도 나아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사실은 모두가 건너 들어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4년제 대학을 다니는 놈과
2년제 대학을 다니는 놈
대학을 가지 못한 놈
대학을 등록했어도 가지 못하는
서로 다른 공기를 마시는 놈들이 모여
어릴 때의 기억들만을 꺼내기 시작했다.
바로 지금, 각자가 어떤지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음껏 웃었다.
오샙대의 동창회처럼 녹이 슨 웃음이
맥주잔 옆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이상하게도
아무도 스물셋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미친 듯이 경쟁하고 있고
커트라인은 날마다 승천하는
지극히 자유로은 시대를 생각하니,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한 녀석이 시뻘건 얼굴로 내 어깨를 잡고
뭐가 이리 힘드냐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모두가 관심이 있었던
예쁘장한 여자아이의 이름을 내뱉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다 캐어버리고서
빈 광산의 텁텁한 공기를 맡은 우리는
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 모임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알았다, 바쁘기 때문에.
무엇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쁘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정중한 악수를 했고
꼬인 혀로 서로의 앞날을 성축해주었고
제대로 된 전쟁 한번 없었지만
패잔병처럼 지친 몸으로
할증 붙은 서로 다른 택시에 올라탔고,
길은 저마다의 곳으로 한없이 뻗어 있었다.
몽정녀 회원과 개말라 회원의 되지도 않는 삿대질을 보고 있자니 너무도 기가차고
게시판의 황폐화가 우려되서 글 한편 옮겨봅미당...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