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가끔 하릴없이 죽치고 시간을 때워야 할 때가 있다오. 예를 들면 어제 냅다 부어라 마셔라 먹고 죽자며 털어넣은 술이 채 다 깨지도 않았는데 아침부터 사무실에 끌려나와 좌담회 몇가지 준비하고 시간이 남았다는 핑계로 익숙한 혹은 익숙치 않은 각종 농땡이들을 치고 있는 오늘 같은 날 말이오.
지나가는 개미새끼 한마리 없고 염병할 놈의 글자들은 눈에 들어올 생각도 안 하고 습관처럼 틀어놓은 노래에 혼자 흥에겨워 흥얼거리는 것도 지겨워져서 시간의 걸음걸이는 세가지가 있다던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말을 피식 비웃으며 시간의 흐름은 먹이 사냥에 나선 곰탱이처럼 빠르게 흘러버리거나 겨울잠에 빠진 곰탱이처럼 정지해있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라며 일갈하다 대체 왜 요샌 할만한 게임도 없느냐며 투덜거리다 인간이란 동물이 생각을 멈추는 것이 가능하긴 한지 나름 심각한 철학적 사색에 잠기는 난리부르스를 미친년처럼 혼자서 사정없이 부르르 떨어버리고 있던 그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던 망할 전화기가 내는 띠리리리 소리에 소박맞았던 여편내가 그리운 남편과 재회라도 한 마냥 정신 단도리하고 목소리 가다듬으며 반가이 "안녕하세요 친구사이 사무실입니다"라고 썰을 푼 순간 3초의 정적 후 가차없이 전화를 끊어버린 당신!
앞으로 제발제발제발 그러지 쫌 마소! 내 목소리가 심히 니글니글하다는 거 나도 아는데 가는 말이 있음 오는 말도 있고 아 그래야 알콩달콩 서로 정도 쌓이고 세상사는 야그도 해보고 혹여 잘못 건 전화라도 잘못 걸었다는 야그 한마디라도 쫌 줘야 아 이게 세상 사는 맛인갑다 그러지 않것소? 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