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입증 성관계 사진 내라”
[한겨레 2006-02-15 19:33]
[한겨레] 현역으로 군 복무중인 한 동성애자가 군 당국으로부터 ‘성관계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 등 동성애자란 이유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동의없이 에이즈 검사에 동료들 심한 폭언·모욕도
인권연대, 인권위에 진정
동성애자인 박민철(가명)씨는 지난해 6월 신병교육대에서 한 간부에게 교육대 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상담하다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털어놨다. 그러나 박씨가 동성애자란 사실은 비밀이 유지되지 않은채 곧 외부로 알려졌고, 박씨의 부모가 ‘아들이 동성애자이니 잘 돌봐달라’고 군 당국에 의견서를 보낸 사실까지 다른 훈련병들에게 알려졌다.
이후 박씨는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동성애자임이 드러난 뒤 지난 8개월 동안 온갖 인권침해를 겪었다. 군에서는 박씨에게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에이즈 검사를 했고, 복무가 부적합하다는 판단의 기준으로 삼겠다며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동성애자와 성관계하는 사진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박씨는 결국 100일 휴가를 나와 당국에서 요구한 성관계 사진을 찍어 제출했다. 그런데 박씨가 제출한 사진까지 일부 병사들이 보게 됐고, 이 사실이 다른 간부와 동료들에게 까지 알려진 뒤, 박씨는 간부들의 폭언과 내무반 동료들의 성적 모욕감을 주는 말과 행동을 견뎌야했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까지 했다.
지난 9일 휴가를 나온 박씨는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찾아가 그동안 겪은 인권침해 사실을 털어놨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박씨의 동의를 얻어 지난 10일 이 사건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긴급구제조치를 요청했다. 인권연대는 “14일 인권위 조사관들이 군 관계자를 면담했고, 군에서는 휴가를 10일 동안 연장하고 그 안에 전역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인권위는 현재 이 사건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박씨는 최근 정신과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주요우울증을 앓고 있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은 한 동성애자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 내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에 놓여있는지를 확인시켜 준 것”이라며, “군 당국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에이즈검사를 하고 성관계 사진까지 요구하는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적인 대응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를 성실히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석회의는 △동성애 행위 처벌조항인 군형법 제92조 삭제 △동성애를 심신장애로 규정하고 있는 국방부령 제556호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폐지 △성적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도록 인권교육 지침 마련과 인권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요구했다.
군 관계자는 “국가인권위의 조사 결과를 본 뒤 자체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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