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군인 군대내 성폭력 고발 “모두가 나의 敵”
[경향신문 2006-02-15 18:20]
“나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싶었다.”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성폭력을 참다 못해 세상에 고발하게 된 ㄱ씨의 사연은 우리 군대가 성적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얼마나 야만적 수준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ㄱ씨는 지난해 6월 말 모 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20대 청년이지만 동성애자여서 남들처럼 군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까 다소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이전까지 경험 못해본 남성들만의 집단생활에서 그는 금세 불편을 느켰다.
입대 며칠 뒤 그는 소대장 면담을 신청해 자신이 동성애자로서 느끼는 불편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후부터 기간병은 물론 훈련소 동기들로부터도 불쾌한 시선과 놀림이 이어졌다. 면담내용을 비밀로 부친다던 소대장의 약속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아들이 동성애자이니 잘 부탁드린다’고 아버지가 소대장에게 보낸 편지마저 부대의 관리소홀로 공개되고 말았다.
ㄱ씨는 6주 뒤 자대배치를 받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보직도 주어지지 않은 채 의무대로 보내졌다. 의무대에선 “현역부적합 심사를 받아야 한다”며 국군통합병원으로 보내 에이즈 검사를 받게 했다. ‘동성애자는 에이즈환자’라는 등식이 어떻게 성립되는 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ㄱ씨로선 거부할 길이 없었다. 헌혈 경험 여부에 대해 ‘있다’고 대답하자 “동성애자가 왜 헌혈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통합병원에서 복귀한 뒤에도 의무대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동성애자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에게 남성과의 성관계 횟수를 묻는 등 사적인 질문이 쇄도했다.
수치심에 치를 떨던 ㄱ씨가 제대시켜달라고 하자 의무대장은 다른 동성애자와 성관계한 사진을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마침 휴가를 얻어나온 ㄱ씨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성관계 사진을 찍어 가져갔다. 오직 “이 상황을 끝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다. 하지만 짐작했던 대로 이 사진도 부대 내에 유출됐고 선임병들의 성희롱이 잇따랐다.
ㄱ씨는 지난 6일 2번째 휴가를 받아 나왔다.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 등 인권침해 상황 속에서 8개월을 견딘 그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찾았고, 부대복귀 예정일인 15일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동성애자라는 사실 입증을 위해 성관계 횟수와 사진을 요구하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것인가”라며 “군 당국은 국가인권위의 진상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장관순·임지선기자 quanso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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