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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녀의 봄’ 남북통일 후의 어느 동성애 이야기

[경향신문 2006-02-09 17:56]    



연극 ‘이(爾)’, 영화 ‘왕의 남자’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동성애를 다룬 연극 한 편이 대학로에 또 등장했다.


화제의 연극 ‘저 사람 무우당 같다’를 쓰고 연출했던 김학선이 3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김학선은 연극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에서 아버지 이출식 역을 맡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극작·연출·연기를 모두 소화해내는 연극계의 ‘멀티 플레이어’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그녀의 봄’은 시간과 공간이 새롭다. 남북한이 통일을 선언한 지 몇 년 후, 통일 시범지구 및 신경제특구로 만든 항구도시 ‘경도(徑道)’. 이곳에 김철희와 리원석, 한기주 세명의 남녀가 모여든다.


리원석은 북한에서 철저하게 경호원으로 자라난 여성. 같은 경호원으로 연인이었던 김철희가 갑자기 사라지자 그를 찾기 위해 경도로 왔다. 김철희는 리원석을 사랑했던 인연은 물론 북한에서의 모든 기억까지 떨쳐버린다. 지금은 경도에서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에 나선 남자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동성애자 한기주. 어릴 적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찾아달라며 김철희에게 매달린다. 두 사람은 기묘한 동거에 들어가고 한기주는 운명처럼 김철희를 사랑한다. 연극에서는 동성애 장면이 노골적으로 다뤄지지는 않는다. 동성애는 통일 후 불안정한 남북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코드이기도 하다.


리원석 역을 맡은 채국희는 주로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해왔다. 발레, 재즈로 단련된 날렵한 동작이 경호원 이미지와 어울린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한기주 역은 최광일이 맡았다. ‘빨간 도깨비’ ‘남자충동’ 등에서 호연했던 배우. 김철희는 최원석이 연기한다. 채국희와 최광일은 각기 탤런트 채시라와 영화배우 최민식의 친동생으로 눈길을 끈다.


연출가 김학선은 “항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고 싶었다. 몇해 전 우연히 상상해봤다. 통일된 이후의 남북은 어떤 모습일까. 통일 이후를 다룬 얘기는 거의 없는 것 같아 통일 후 가상도시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과 삶을 그려봤다”고 말했다. 그는 “뻔한 것일지 몰라도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의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희생을 기반으로 한 만남이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월23일까지. (02)762-9190


〈김희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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