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 강제 주입은 위험"
[한국일보 2006-02-09 03:42]
커밍아웃, 아웃팅 피해 여부와 관계 없이 학교는 동성애 문제 자체가 부각되는 것을 꺼린다. 소문이 나돈다는 사실만으로도 학교 이미지가 손상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입 단속을 하며 자퇴를 유도하거나 전학을 시키는 등 사건 무마에만 급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껏 한다는 것이 부모에게 통보하는 정도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는 “청소년 동성애자 규모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은 것도 학교 현장에서 이처럼 철저하게 그 존재를 부정 당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대표는 “교사들의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다른 학생들이 비주류인 동성애자를 닮아갈까 우려하는 심리적 방어막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 내 청소년 동성애자들을 교육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는 배려가 우선 과제라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성역할의 경직성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이성과 동성을 나누는 이분법적 교육이 오히려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연구소 이영선 선임상담원은 “청소년기의 동성에 대한 호감을 동성애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고민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선임상담원은 “교사들은 ‘동성애는 무엇이고 그래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적 지침을 가르치지 말고 ‘정체성은 삶의 연속선상에서 스스로 알아가는 부분’이라는 식으로 정체성 탐색의 여지를 남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중앙위원도 “청소년을 무조건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해 이성애만을 유일한 성 정체성으로 주입시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동성애 문제를 인권 교육의 한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채윤 대표는 “동성애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법 조항이나 학칙에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특혜로 비쳐질 수 있다. 성 정체성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 기본권 차원의 문제이므로 ‘학교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존중 받을 가치가 있음을 배우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힐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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