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동성애 "긁어 부스럼" 교사들 해결 외면
[한국일보 2006-02-08 20:21]
#1. 교사 김모씨는 동성커플이라는 아이들과 마주치는 일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잘 해보라”고 할 수도, “절대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나 각종 성교육자료를 뒤져봤지만 동성애 학생 교육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결국 눈 질끈 감고 아무 말 않기로 했다.
#2.동성애자인 유라(17ㆍ여ㆍ가명)는 얼마 전 상담실에 불려갔던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교사는 다짜고짜 누구와 사귀었는지, 그가 알고 지내는 동성애 친구들이 누구인지 댈 것을 종용했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처벌이 뒤따를 것이라는 협박도 뒤따랐다. 유라는 결국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지만 고자질을 했다는 자괴감과 언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날지 모른다는 근심에 하루하루가 힘겹다.
청소년 동성애를 대하는 교육현장의 현실은 예상보다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교사들은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나서는 경우에도 학교 폭력처럼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이렇다 보니 정서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동성애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육적인 보살핌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2년 전 커밍아웃(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한 장모(18)군은 “주변 동성애자 커플 중에는 아웃팅(다른 사람에 의해 성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을 당하자 부모님끼리 서로 싸움까지 하고 강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설령 주위에 알려지지 않고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상급 학교에 진학해 적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이성애자로 가장하는 것이다.
이는 교육현장의 부실한 성교육 실태에도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해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시ㆍ도교육청들은 성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교원 연수를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러니 직무연수의 교양ㆍ선택과정으로 운영되는 성교육 강좌에 동성애 등 성 소수자 관련 프로그램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경기 의정부시 C중 김모(27ㆍ여) 교사는 “시청각 자료만 달랑 보여주거나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놓고 외부강사의 강연을 듣는 방식은 10년 전과 다름 없다”며 “이러니 동성애하면 아직도 에이즈를 먼저 떠올리거나 게이(남성 동성애자)와 트렌스젠더 같은 기본 개념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성교육 담당자들이 수두룩하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나이, 종교 등 교사별 편차 요인이 가세하면 객관적인 정보 전달은 더욱 어려워 진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가 발간한 성적소수자 인권교육 프로그램의 설문조사에서 교사들은 동성애 교육의 어려움으로 성발달 과정에서의 악영향(21.3%)과 학교와의 마찰 및 학부모 항의(37.2%) 등을 꼽았다.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 교육을 펼치고 있는 정연희(48ㆍ여ㆍ한세전산고 교사)씨는 “많은 교사들이 동성애 교육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학생들의 질문에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지 못할 경우 예민한 시기에 자칫 혼란을 부추길까 두려워 한다”고 지적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중학교 3학년만 돼도 입시체제로 돌입하는 상황에서 의무 교육이 아닌 권장 사항에 불과한 성교육에, 그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동성애 문제에 따로 시간을 할애할 학교는 없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계산도 작용한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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