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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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6-02-05 22: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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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The Way We Were, 시드니 폴락, 1973)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로버트 레드포드


미국의 6, 70년대 영화는 정말이지....

옛날 영화를 보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란 참으로 묘해요. 내가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잠시 잊을 수 있기도 하고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The Way We Were', 중학교 때 참 무지 많이 들었던 곡인데, 이 곡이 메인 테마곡으로 사용된 영화와 간만에 함께 듣고 있자니...

73년이란 시대는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 이런 재치를 가능하게 만든 정치적 시대였을 거예요. '추억'은 공산 청년 연맹의 열혈 액티비스트인 여성과 보수적인 남성간의 사랑을 그린 영화예요. 스페인 내전, 2차 세계 대전, 매카시즘을 경유하며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굶히지 않는 당찬 여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보수적이긴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죠.

하지만 이들은 정치적 의견 때문에 늘 다툴 수밖에 없어요. 아기를 낳았음에도 결국 헤어지죠. 맨 마지막 장면은 힘이 있어요. 서로를 사랑하지만 결코 결합될 수 없는 이들의 화학적 운명 때문에 서로를 응시하는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이 영화가 산 듯하네요.

아무리 정치적 시대를 배경으로 깔고 있어도 헐리우드는 헐리우드. 배경으로만 자리 잡고 있을 뿐, 바브라의 정치적 공간을 좀체로 할애하지 않고 로맨스로만 상황을 몰입해가는 흠이 있군요.

시드니 폴락의 걸작은 뭐니뭐니해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헐리우드 시나리오 사상 '차이나타운'과 함께 높은 완성도로 회자되는 '콘돌'이겠죠. 최근에 나온 '인터프리터'는 우울증 때문에 보다가 만. 다시 봐야겠어요.

연인끼리 정치적 의견이 다르면 참 힘들죠. 종교 문제도 마찬가지. 개인적으론 기독교에 헌신도 높은 사람과는 만나지 않을 생각이에요. 백치스러운 건 참아낼 수 있지만, 한 주먹의 알량한 삶의 태도를 쥐고 전부를 쥔 것처럼 구는 아주 대단히 멍청한 사람들은 도저히 당해내질 못하겠어요.

  

The Way We Were | Barbra Streisand





P.S
이상하게 보수적인 사람들 중에 꽤 괜찮은 남자들이 많죠. 그건 미모가 권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미모의 권력은 현실적 권력에 부착되기 마련. 그런 점에서 전 못된, 막 나가는, 불량한, 저속한, 타락한 옴므 파탈을 사랑해요.



나의 옴므 파탈
옴므 파탈Homme Fatale은 팜프 파탈Femme Fatale의 대꾸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타치오나 영화 고하토의 마츠다 류헤이처럼,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공동체와 개인의 운명을 파국으로 이끄는 뇌쇄적 매력의 남성들. 여성들의 혼을 쥐어짜고 그녀의 삶을 망가뜨리는 카사노바의 빛나는 미소. 첫눈에 그 사람의 영혼과 육체의 욕망을 송두리째 무릎 꿇게 만드는 무소불위의 권력,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

옴므 파탈은 그냥 잘 생긴 꽃미남 부류의 집합 이상의 그 무엇이다. 통제불가능할 정도로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키는 이 놀라운 생명체와의 조우는 낯익은 일상과 감각의 무료함을 흠씬 조롱한다. 어떤 빛나는 슬픔의 빛깔마저 지니는 그 투명하고도 아름다운 눈동자, 그게 바로 옴므 파탈과 평범한 존재를 구분짓는 낯선 악센트인 게다.  

때로 이런 옴므 파탈은 그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종내 살해되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도 한다. 고하토의 미소년 카노의 죽음을 보라. 옴므 파탈의 살해범들은 옴므 파탈의 매력에 무효화되는 자아의 경계선을 다시 찾으려는, 생존을 위한 음모자들인 셈이다.

생긴 게 하도 의뭉스러워 난 진작에 그런 옴므 파탈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면 내 생에 있어 그런 옴므 파탈을 만났는가 묻는다면, 잠시 긴 침묵의 공백 속으로 슬쩍 숨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다.

잠시 긴 침묵. 때론 그런 옴므 파탈을 조우하게 되었을 때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낫겠다 싶다. 내가 완전히 무효화되기 전에, 자아의 끈마저 미궁 속 어딘가에 잃어버리기 전에.

옴므 파탈과의 사랑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옴므 파탈, 그는 아름다움의 권력자, 도저히 찬탈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저 제논의 토끼인 게다. 옴므 파탈이 스스로 자신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옴므 파탈이 아니며, 우리는 곧장 노예의 환각에서 깨어나곤 한다.

치명적인 위험을 본질로 삼은 옴므 파탈과 타협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은, 꿈, 아침에 맞는 몽정 직전의 황홀, 혹은 소망욕구가 과잉된 상투적인 3류 멜러물 뿐이다.

옴므 파탈Homme Fatale을 만나거든, 그를 살해하거나 내가 파멸되는 것, 혹은 펀치 드렁크 같은 사랑을 가장하며 만화 같은 감수성으로 해피엔딩을 꿈꾸는 것, 가끔 난 내가 그런 육체를 갖지 못한 것에 역설적으로 안도하곤 한다. 실은 음모 파탈이 거의 대부분, 짧은 순간에 맞는 리비도 공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허무한 것이다.

나는 착한 남자가 좋다. 일종의 위선의 도피.



끝없는날개짓하늘로 2006-02-06 오전 06:23

다 읽고 싶은데 눈이 아프다 그래서 다 못읽었다..아주대단히멍청한사람은 나도 힘들어

안티모던보이 2006-02-06 오전 11:12

이제 언니도 돋보기를 써야 할 나이.
호홍,~

옴므파탈 2006-02-08 오전 09:35

가끔은 혹은 자주 저는, 저를 저주한답니다.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