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The Mother, 로저 미첼, 2003)
딸의 애인을 훔친 할머니의 로맨스.
아무리 늙어도 사랑할 권리가 있기 마련. 남편이 죽자 도시에 살고 있는 딸과 아들네 집을 오가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할머니는 어느 날 문뜩 딸의 애인에게 빠져버리게 됩니다. 젊고 근육질의 건축업자. 모든 가족에게 따돌림을 당한 할머니.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알았던 딸의 애인마저 자신의 돈 때문에 그리 좋아하는 척했다는 것이 영화 말미에 나오죠. 딸한테 주먹으로 얻어 터진 할머니는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가지만, 결국 짐을 꾸려 멀리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1971년도에 할 애쉬비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해롤드와 모드Harold And Maude'의 모디즘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모디즘은 부르조아 도덕에 대한 일체의 거부를 의미하는, 영화 '해롤드와 모드' 개봉 당시 잠깐 유행했던 신조어였습죠. 여행, 자연, 우상파괴 등 히피 문화의 또다른 변종쯤 될 듯 싶은데, 이 영화에선 할머니와 손자뻘 되는 10대 소년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더'는 노팅 힐 같은 로맨스, 그리고 꽤 잘 만들어진 세련된 스릴러 '체인징 레인스'를 연출한 로저 미첼 감독에 의해 2003년 제작된 영화입니다. BBC에서 투자되었군요. 가끔 BBC의 자유분명한 도덕, 이런 영화처럼 애초에 상업성을 포기한 다소 격앙된 어조의 영화들을 제작하는 뻔뻔함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아무튼 정갈한 쇼트로 할머니의 욕망을 차분히 관찰하는 군더더기 없는 연출이 인상적이네요. 집 나가는 '늙은 로라'의 뒷모습을 창문 안쪽에서 응시하는 엔딩 숏은 가족이 여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되짚게 하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2004/10/21
이 영화는 6.24일 소규모로 개봉될 예정이군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세드릭 칸의 '권태' 역시 강력 추천하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