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레즈비언’이 도드라지게 눈에 띄게 된 이유를 찾는다면 십중팔구 인터넷 커뮤니티 활성화와 ‘팬픽 이반’의 등장을 꼽을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야 여러 가지 이유에서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리겠지만, ‘팬픽’에 대해선 의아하다거나 이해할 수 없다 등 의견이 분분하다. 팬픽이 뭐길래 이렇게 난리야?
팬픽은 팬 픽션(fan fiction)의 줄임 말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작품이나 인물을 대상으로 팬들이 자신의 뜻대로 비틀거나 재창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십대 팬 문화를 상당 부분 주도했던 팬픽은 주로 남성 댄스그룹 구성원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 장르는 다시 이성애 소설과 동성애 소설로 나뉘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동성애 소설이 인기다.
팬픽은 구체적 인물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쓰였고, 또 수요층 대부분이 팬들이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력을 십분 자극한다. 소설 안에서 묘사되는 그네들의 연애 이야기가 이전에 교육받은 이성애주의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사실 팬픽 속 캐릭터들은 성별만 같을 뿐, 이성애자 커플과 같이 알콩달콩 수다를 떨고 싸우기도 한다. ‘공(攻)’, ‘수(受)’ 구분을 해서 ‘남’, ‘여’ 성 역할 이분법에 맞먹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팬픽은 ‘동성애자가 변태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잖아?’ 하는 반응을 끌어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팬픽 안에서 주인공들은 호모포비아로 포진된 사회를 끈끈한 사랑으로 가볍게 뛰어 넘는다. 팬픽을 즐기는 십대들 중에서 이미 자신의 성정체성을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십대 레즈비언(즉, 팩핀 이반)은 이 문화를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하고, 혹은 팬픽을 통해 자기 정체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팬픽 이반 문화는 비판 내지는 비난을 당하기 일쑤다. 십대의 팬 문화가 상당히 적극적이니만큼 팬픽 문화도 온라인 공유에서 그치지 않는데, 그녀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특정 외모를 구사하고 우르르 몰려다닌다. 이는 즉시 어른들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된다.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여자답지 못하게 꾸미고 다닌다는 이유다. 또 하나, 그들은 서로 사귄다. ‘유해하기 짝이 없는 동성애’를 퍼뜨리고 다니는 무리들이니 이성애주의자들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는다.
그렇다면 십대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 팬픽 이반에 대한 평은 어떨까.
“아는 레즈비언 언니가 ‘팬픽 이반도 아니면서 네가 무슨 이반이냐’던데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팬픽 이반이 이반 물을 다 흐려놓는 것 같아요. 물론 진짜 이반도 있겠지만 흉내만 내는 애들이 있어서 너무 싫어요.”
십대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팬픽 이반에 대해 보이는 반응인데, 십대 레즈비언 모임은 생각보다 그 양상이 복잡해 보인다. 팬픽 이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외되기도 하고, 혹은 팬픽 이반이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하튼 팬픽 이반 문화가 십대 레즈비언들과 관련해 활발한 논쟁이 된 문화라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팬픽 이반은 많은 경우 폄하하는 의미로 불린다. 이들의 어떤 점이 문제일까. 사람들 얘기처럼 잠시 스쳐가는 유행이라서 문제인 걸까. 비교해보자. ‘남녀 교제 절대 금지’가 교칙과도 같았던 학교의 학생들 사이에 미팅 바람이 불었을 때 이렇게 제재와 단속이 심했던가. 레즈비언이 아닌 아이들까지 동성애에 물들인다는 지적은 공정한가? 학교 교육은 오히려 이성애자가 아닌 아이들까지 이성애에 물들이고 있지 않나.
확실히 팬픽 이반이 유행이긴 했나 보다. 그러나 여전히 소설을 펴 들어도, 영화를 봐도, 온갖 남자와 여자와의 연애 이야기만 가득하다. 팬픽 문화가 특정 인물들을 대상화한다거나 정작 그 속에 레즈비언의 이야기가 없다는 문제 제기는 꽤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십대 여성들로 인해 동성 간 연애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너무 팬픽 이반이라는 거 티 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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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원영 기자
그분들이 그분들이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