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The Texas Chainsaw Massacre, 2003)
원작을 능가하는 호러 영화는 거의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리메이크하는 순간 원작의 아우라가 훼손되는 원초적인 결점을 안고 시작하기 때문. 이번에 개봉되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토드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1974년)의 리메이크 작이다. 간단히 개인적 평을 하자면,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전기톱을 피해다니며 꽥꽥거리는 여주인공에게만 무서운 영화.
이 리메이크 작은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살해당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다룬 토드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의 정치적 아우라를 깨끗이 발라버리고 때깔만 좋은 싸구려 슬래셔 영화로 탈바꿈되었다. 토드 후퍼의 원작은 미국의 악몽과 막 붕괴되기 시작한 미국 가족주의에 대한 끔찍한 은유였다. 더할 나위 없는 끈적거리는 고어의 향연 속에서 웃음짓던 괴기 가족의 이미지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더 록'과 '아마겟돈' 등의 대작을 연출했던 마이클 베이는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여주인공 캐릭터로 원더우먼을 원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 영화는 전기톱을 든 캐릭터 부재의 살인마와 원더우먼을 자처한 여주인공의 별로 재미없는 액션 게임으로 전락하고 만.
그루지 (The Grudge, 2004)
상상력이 고갈된 미국 헐리우드는 일본 호러 영화들을 재탕, 삼탕 우려먹기 시작했다. 흥행 결과는 성공이다. b급 호러의 대명사였던 샘 레이미가 어떻게 상업적인 귀재로 변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불쾌한 예.
'주온'을 기억하는가? 주온의 공포를 기억하는가? '그루지'는 아시아 공포가 어떻게 헐리우드 속에서 표백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 별로 웃기지 않다.
셔터 (Shutter, 2004)
태국은 지금 영화 제작 중. 아시아에서 지금 가장 열정적으로 영화가 제작되는 나라는? 태국이다. 태국형 액션, 호러, 느와르는 전세계 영화 장르들을 닥치는 대로 꿰매다가 점점 더 자신들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중 태국 공포 영화의 발전은 눈부시다.
신종 전염병 사스에서 좀비 이미지를 추출하는가 하면, 일본 영화를 베끼는가 싶다가 슬쩍 근대화된 태국의 정서를 삽입해 묘한 공포를 연출해내는 솜씨가 그리 녹록치 않다. '셔터'는 혼령 사진에 관한 영화다. 일본 호러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사용된 공포 장치들이 꽤 낯익을 것이다. 다만, 태국 영화에 지금 필요한 건 플롯 구성 능력이다.
영화적 쾌감을 교란하고 있는 플롯의 엉성함. 그건 태국의 시나리오 인력이 이제서야 점점 양성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셔터'는 일견 옥사이드 팽 천, 대니 팽 공동 연출의 '사망사진'과 닮아 있다. 플롯의 엉성함도 동시에 닮아 있다. '방콕 데인저러스'나 그리고 뛰어난 공포 영화 '디 아이'를 연출했던 두 팽 감독이 '사망사진'과 같은 졸작을 연출했다는 사실은 태국 호러 영화의 빈약한 플롯 구성력의 전체적 조감도의 구성을 가능하게 한다.
흥, 그래도 우리 영화가 젤로 보고 싶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