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덜썩 사두었던 책이 두 권 있는데, 피에르 제라마의 '세계의 최초들' 1, 2권이 그것이다. 사전처럼 가나다 순으로 명사들을 나열해놓아 보기도 쉽고, 내용도 간단해서 가끔 어떤 사물의 이력이 궁금해지면 들춰보곤 한다. 오늘은 갑자기 장미가 궁금해졌다. 직접 장미에 관한 소개글을 옮겨 보면,
『장미의 주 원산지는 중국과 인도이다. 이 식물은 기원전 300년경 프톨레마이오스가 통치하던 이집트에 전해졌다. 호메로스의 작품에 비너스가 물과 장미로 아킬레스의 시체를 향기롭게 치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그녀가 이미 장미를 알고 있었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헤브루인들에게도 페니키아산 장미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세계에서 장미는 곧 순결함으로 통했다. 777년경 사망한 노아이옹의 주교 생 메다르는 지혜롭고 순결한 처녀에게 장미관을 씌워주었다.
18세기말까지 유럽에서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린 장미는 대부분 십자군들에 의해 전해진 품종들이다. 1750년 이후 중국에서 돌아온 여행자들이 진홍색 장미를 들여오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오늘날 장미는 식물학자들의 수백 번의 교배 실험에서 나온 산물로, 그 옛날 앗시리아 칼데아 지방에서 방향제로나 또는 상처와 치질 치료를 위한 연고 재료로 이용되던 장미와는 전혀 다르다. 3,500만 ~ 7,000 만년 전의 지층에서 오늘날과 비슷한 장미 화석이 발견되었지만 차이가 있기는 매한가지다.』
장미가 치질 연고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대목도 재밌고, 아킬레스 주검을 치장하는 데 사용된 대목도 흥미롭다. 아래 게시글에 써놓은 '어떤 소녀 이야기'에서 소녀가 들고 있는 꽃을 기원전 원시 장미로 바꿔놓았다.
가끔 나는 사물들 속에서 감정의 은유물을 해석해내는 인간의 지각 능력보다, 지구 생물종들이 갖고 있는 왕성한 생식 능력의 결정적 응결체인 '꽃'이 이 지구에 있다는 게 더욱 고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꽃은 아름다운 생식기잖는가.
식물의 붉은 생식기를 건네며 사랑을 고백하는(섹스를 간청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결코 은유적이지 않다.
Audiology III | The Slee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