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따가운 한여름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거리를 걷다 공원에 들어서있었다.
가끔 발길이 닿는대로 마냥 가보는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그날이었다.
후텁지근한 기운이 그렇게 짜증스럽지 않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날 던져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무슨 목적지라도 있는 것 마냥.
그래서 공원에 수많은 사람들 속에 하필 그를 발견하고 발이 땅에 붙어버린 내가 이상하게 생각됐던 것도 같다.
그는 공원 의자에 앉아 양손을 깍지 끼고 몸을 숙여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이 번잡한 한 여름의 공원과는 동떨어진 침묵의 아우라가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내가 정신 차렸을 땐 이미 그의 바로 앞에 가있었다.
더위 탓인지 햇볕탓인지 내 머리 속은 하얬고 나는 그저 그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대로였다.
시계가 째깍째깍 가는 걸 듣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바로 앞에 있는 나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곤 얼마 후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이따금 사람들 속으로 숨는다고.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이 세상엔 자기처럼 숨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아무도 보지 못할 때 사람들은 다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나는 머뭇거렸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태우고 있는 담배 맛이 유난히 쓴 것 같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진정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그는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어디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자신은 왜 여기 있는지. 자기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내가 하나의 답을 생각해보기도 전에 그는 연이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가 한 말들이 질문이었는지 혼잣말이었는지 잠시 생각했다.
그가 진실로 답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얼마간 생각해봤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결론은 같았다.
나는 그를 그냥 지나칠 수도 모른 척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아름다웠고 눈이 부셨고 진득한 땀 냄새가 베어있었다.
그는 젊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에게서 여우의 모습을 발견해버렸다.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투명에 가깝게 푸르렀고 감히 범접할 수 없을만큼 높았다.
우유빛 구름은 그 하늘의 청명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의 눈을 들여다봤다.
상실감에 허덕이는 황망한 눈이었다.
지쳤는지 그 암울함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그가 살아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입을 열어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진심으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고.
하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히 알 것 같다고.
그대가 사랑을 원하든 미래를 원하든 삶을 원하든 친구를 원하든 그대 자신이 없으면 그 모든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노라고.
그대가 잃어버린 가장 큰 것은 바로 그대 자신이라고.
가엾게 내쳐진 그대 자신을 되찾길 바란다고.
.
.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하늘을 본다.
세상엔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냥 되는대로 사는 건 쉬운 일이지만 잘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가 더 특별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그도 이렇게 하늘을 봤으면 한다.
그리고 눈부심을 한번쯤 느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