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의 절실한 구원의 요청.
가끔 선택의 기로에서 힘이 들거나 어떤 생각의 그림이 부옇게 변했을 때 생각나는 말이 하나 있다.
"나 좀 붙잡아 줘."
고삐리 시절, 그는 한 서너 달 정도 내 짝꿍이었는데, 고3 때였던가, 어느 날 내 손을 지긋이 잡고는 그렇게 말했다. 뭘 붙잡아달라는 소리였을까? 저나 나나 성적이야 거기서 거기였겠고, 세월을 흘려보내는 게으름도 엇비슷했을 턴데 그는 떨리는 눈으로 내 손을 잡고 그렇게 말했었다. 재수를 어디선가 한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 한 번도 그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어디서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까. 흔들리다 못해 결국은 눈물을 보이고 만 녀석의 눈 앞에서 내 입은 참으로 황망하고 겸연쩍어 했다.
참 이상하게도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녀석의 그 눈빛, 나 좀 붙잡아달라는 그 소리는 잊지 못하겠다. 하물며 이제는 되려 내가 힘들 때 혀끝에 돋는 씁쓸한 타액의 긴 줄기, 혹은 어둔 밤 골목길 끝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휘파람처럼 그 말들이 빙빙 돌아 어지러울 지경이다.
나 좀 붙잡아 줘, 모르스 부호 같은 이 길고 가느다란 타전의 욕망을 과연 몇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
대체로 난 전화를 받지 아니하고, 대체로 내가 하는 전화는 그들이 받지 아니하니, 대체로 난 그렇게 먼 곳에서 구원에 대한 욕망을 소리로, 빛으로 마른 겨울 날 축포처럼 쏘아올린다.
2004-06-08
Graham Nash | Prison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