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Vendredi Soir / Friday Night, Claire Denis, 2002)
우아, 경쾌한 도시 소곡.
클레어 드니 아줌마에게 이런 상큼한 유머가 있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파리의 교통 체증, 여주인공 로르의 발랄한 상상, 원 나잇 스탠드, 핸드 헬드의 빅 크로즈업, 새벽의 질주... 오랜만에 뒤끝 없는 재밌는 원 나잇 스탠드에 관한 영화를 봤습니다. 우와, 소품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도시민의 하룻밤 열정에 관해 만들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은 기분 좋은 작품.
마치 깔끔한 단편 소설 하나를 읽은 듯한 느낌이네요. 내용도 간단합니다. 대중교통 파업이 일어나 모든 차와 사람들이 파리 시내를 점령하고 말지요. 교통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마침 이사가기 위해 짐을 다 싸놓은 로르가 운 나쁘게 차를 끌고 나왔다가 낭패를 당하지요. 그러다 차 없는 사람들 중 한 남자를 태우게 됩니다. 제법 매력적인 남자. 먼저 유혹한 건 로르였습니다. 남자와 함께 여관에 가서 잠자리를 갖습니다. 자다가 나와서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또다시 여관으로 들어가지요. 로르는 잠들어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이삿짐을 다 싸놓은 자기 집으로 데려갈까 속으로 상상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것 같습니다. 로르는 망설이다가 깨워도 깊이 잠들어 있는 남자를 보고는, 상쾌한 아침이 시작된 토요일의 파리 도시를 가방을 흔들며 경쾌하게 뛰어갑니다. 그녀 얼굴에 가득 피어난 웃음.
대도시의 한 미혼 여성의 하룻밤 욕망을 깜찍하게 만들었어요. 클레어 드니는 매번 영화 작업 때마다 앵글과 샷의 방식을 바꾸긴 하지만, 그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건 역시 핸드 헬드인가 봅니다. 타이트한 핸드 헬드와 점프컷으로 8분이 넘는 정사씬을 지루하지 않게, 절대 야하거나 천박하지 않게, 경쾌한 속도로 이어 붙이는 솜씨가 백미입니다. 또, 몇 대 되지도 않은 자동차를 가지고 파리의 교통 대란을 꾸며놓은 솜씨도 일품. 이 영화에 나오는 대사라곤 거의 30개 문장밖에 되지 않는 성싶습니다. 도심 풍광과 인물 크로즈업으로 금요일 밤의 원 나잇 스탠드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꾸며놓았습니다.
아마도 여성 감독이기 때문에 원 나잇 스탠드에 대한 도시 여성의 느낌과 감흥을 이처럼 군더더기 없이 표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기분이 마구 좋아지는군요. 웨슬리 스나입스와 나타샤 칸스키가 나오는 '원 나잇 스탠드' 같은 어깨뽕 영화보다 좋아요, 또 '비포 선셋'의 수다스러움과도 다른 느낌이에요.
아... 하룻밤 이야기를 저도 마구 찍고 싶어요. 이 영화를 보면서 거의 머릿속으로 동시에 영화 하나 찍었다는. 2005-01-16
King Crimson | Isla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