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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호][활동스케치 #2] 퀴어 영화를 잘 읽어내는 훈련 :〈금요 비디오방〉참가자 후기
2025-11-03 오후 17: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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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0월 

 

이미지 2025. 10. 14. 오후 2.26.jpeg

 

 

[활동스케치 #2]

퀴어 영화를 잘 읽어내는 훈련,〈금요 비디오방〉참가자 후기

 

 

2025년 10월 17일 저녁, 친구사이 사정전에서는 〈금요 비디오방〉 상영회와 GV가 열렸습니다. 게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친구사이는 사람들의 활동이 활발한 금,토,일에 진행되는 사업이 많습니다. 그중 지난 8월부터 꾸준히 이어온 ‘금요일은 친구사이’는 회원들과 함께 종로의 주말을 시작하고자 실행되었습니다. 금요일에는 다양한 욕구와 연결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성소수자와 관련된 문화예술을 소개하거나, 외부인사를 초청하는 자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금요 비디오방〉 상영회와 GV는 색동영화판의 5주년 이벤트로, 친구사이 회원이기도 한 박재현 감독님께서 기획하고 제안해주셨습니다. 비디오방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지만 ‘종로의 이상, 야릇한 밤’이라는 문장을 읽고서는 비디오방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이 무엇일지는 언뜻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금요 비디오방〉의 상영작은 김상백 감독의 ‘일 나누기 이’, 송한종 감독의 ‘사춘기’, 라한 감독의 ‘라텍스’였습니다. 저는 지난 프라이드 영화제 ‘색동영화 시즌2 - 3인 3색’에서 〈일 나누기 이〉, 〈사춘기〉를 감상했었고, OTT서비스를 통해 〈라텍스〉를 본 적 있었기에 이날은 기억을 더듬으며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김상백 감독의 〈일 나누기 이〉는 게이바 바텐더에게 마음이 쏠린 게이 ‘이진’을 따라갑니다. 이진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낸 뒤 오히려 스스로를 검열·억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야기 도중  ‘전환치료의 경험’이 드러나며, 이로 인해 ‘자신의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망상이 생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부정하고 미워하라고 가르칠 때, 한 개인에게 생기는 균열을 짧은 러닝타임 안에 압축하여 보여줬습니다. 송한종 감독의 〈사춘기〉는 중년에 커뮤니티에 발을 들인 기춘의 여정을 그립니다. 그는 ‘밥언니’로 불리며 무리와 어울리거나 이상형을 만나기 위해 지출을 떠안는 인물로 그려지는데요. 영화는 이른바 ‘매력 자원’이 적은 사람에게 커뮤니티가 어떻게 가혹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하며, 각자의 매력이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에 갈등이 해소되는 장면들을 보여줬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상영된 라한 감독의 〈라텍스〉는 타인의 물건을 통해 기억을 읽는 사이코매트리 능력을 가진 정수가 친구 수현과 함께 무당집을 꾸려가며, 그 힘을 연애와 유혹에까지 활용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한 번의 관계 뒤 정수를 잊지 못한 수현은 그의 문란함과 ‘기억 읽기’를 더는 묵과하지 못하고, 다른 무당 기환을 찾아가 정수의 능력을 없애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영화는 초능력과 무당이라는 굵직한 컨셉보다, ‘게이로서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충고의 진의가 그저 자신 옆에 정수를 두고 싶다는 수현의 마음이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영화마다 조연으로 친구사이 회원들이 나왔는데요. 그 발랄함(끼)은 관객들을 자주 웃게 해줬고, 사랑이든 배신감이든 그 감정이 커질 때마다 해소해주는 듯 보였습니다.

 

수다회(GV)에서는 송한종 감독님과 라한 감독님, 그리고 행사를 기획해주신 박재현 감독님이 패널로 참여했으며, 저는 이날 진행을 맡았습니다. 덕분에 궁금했던 점들을 먼저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송한종 감독님께는 ‘어째서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의 데뷔를 주목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영화 전반의 내용은 감독님이 늦은 나이에 데뷔한 경험과 겪은 사건들 그 정동을 중심으로 영화를 구성했다고 답했습니다. 라한 감독님께는 ‘왜 많은 초능력 중 하필 사이코메트리라는 능력을 선택하셨는지’ 물었습니다. 판타지적인 요소를 넣고 싶었지만 하늘을 날거나 불을 뿜는 등의 초능력은 구현하기 위한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고, 사이코메트리는 과거로 추정되는 씬을 촬영하여 컷편집하는 것만으로도 구현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영화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캐릭터성도 있었는데요. 좋아하는 감정이 있지만 연애가 아닌 친구로 머물며, 서로를 성장시키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라한 감독은 그러한 영화 공통의 특성이 게이 커뮤니티의 핵심요소로 생각된다고도 말씀주셨습니다.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퀴어 영화의 문법이 배우고 싶어서 참여했다는 관객의 질문이 기억에 남습니다. “왜 성소수자 영화는 그 작품의 의미값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영화의 완성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가”라는 말에 감독님 두 분의 대답은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 제작의 과정에서 공동의 목표를 갖고 진행해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크다고 판단한다. 또 예산을 많이 쓰면 잘 나오지만 한정된 자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라고 답변을 주셨습니다. 진행자였던 저 역시 퀴어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에 말을 얹었습니다. “완성도가 높은 퀴어 영화도 있고, 완성도가 낮은 퀴어 영화도 있지만 말씀해주신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합니다. 비단 영화만이 아니라 ‘퀴어’자 붙은 예술 전반의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내가 경험한 사건이 성소수자 공동의 감각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있고, 또 그럴수록 시의성이 중요해질 때 과연 예산 확보와 완성도가 우선순위에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과감히 내려두었는지를 읽어내는 것 역시 퀴어 영화의 묘미다.”라고 답을 드렸습니다. 마침 이어진 질문에는 함께 현장을 도우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단 관객이 등장했고, 어쩌면 몇 년 뒤에는 관객분들이 만든 영화를 보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도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관심을 받은 〈금요 비디오방〉의 2회차는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까요? 친구사이는 또다른 작품들을 모색해서 함께 감상하는 시간을 만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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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상근활동가 / 민영

 

 

 

금요 비디오방에서 상영된 세 편의 단편영화(映畵)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종로의 거리와 골목, 자주 가는 술집, 밥집, 그리고 모텔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이곳은 주인공이 전환 치료의 후유증으로 두 개의 자아로 떠도는 공간이며, 어리고 멋진 동생들에게 삥을 뜯기면서도 생존해야 하는 절박한 곳입니다. 동시에 초능력이 있다면 원하는 모든 남자들과 원나잇이 가능한 해방구이기도 합니다. 나는 종로가 이보다 더 영화 같은 웃음과 눈물, 사랑과 질투 그리고 우정과 배신과 이 넘쳐나는 배경이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곳에서 내가 주인공인 희로애락 가득한 게이영화(榮華)의 스토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친구사이가 있는 이곳 종로는 작은 용기를 가지고 발을 내딛는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나에게도 그랬고, 30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종로가 마음의 고향인 게이, 모두가 이곳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상영회를 준비해준 친구사이와, 수다회를 진행해준 민영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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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회원 /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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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우리들의 이야기를 우리들이 도란도란 모여 감상한 금요 비디오방.

다분히 이성애 중심적인 영화계물론 어느 분야가 안 그럴까 하냐만은(굳이 따지자면 패션계 정도)에서 색동영화제의 존재는 그 자체로 활력이 돋보인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것을 느끼게 해준달까. 우리 게이들의 마음, 몸 그리고 형형색색의 문화를 잘 그려내어 담은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이 이 금요 비디오방이라고 난 생각한다. 동족들의 끼스러운 숨결 하나하나를 스크린에서 경험하고 싶으신가요? 그런 당신에게 금요 비디오방을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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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회원 / 연우

 

 

성당 성가대에서 15년을 노래했지만 이제는 G-voice에서 노래한다. 그 이유는 내가 게이임을 부정하지 않고 감추지 않는 온전한 나로서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금요 비디오방을 찾았다. 다른 GV와는 다르게 이쪽 영화를 이쪽 사람들과 함께 보고 함께 나누는 자리. 이 자리야말로 영화를 솔직하게 감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금요 비디오방은 충분하게 솔직히 영화에 대한 이해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각자가 겪은 경험에 의해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금요 비디오방은 각자가 겪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질문과 대화들로 인해 매우 풍성했다. '나도 영화처럼 이런 경험이 있었어!' '나는 이런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죠?' 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느꼈던 것을 바탕으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이 왜 약점이냐는 질문을 받는 이 시대에, 내가 나이기에 할 수 있는 대화가 넘치는 자리였다. 이런 자리를 한껏 느낄 수 있음이 참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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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회원 / 젤로

 

 

함께 본 퀴어 단편영화 세 편은 단순한 상영회를 넘어, ‘우리가 이 세상 속에 존재하고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어둡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이야기되던 우리의 삶이 스크린 위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감독님들이 자신의 시선으로 퀴어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창작은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그저 ‘우리의 존재를 남기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듯했어요. 그 진심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어서, 짧은 시간 동안에도 가슴이 뜨겁게 벅찼습니다.

 

오늘 본 작품들은 누군가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우리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웃고 울며, 스스로의 존재를 스크린 위에 새겨 넣는 순간들이 쌓여 언젠가는 더 넓은 세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그 시작점에 함께할 수 있어서 참 따뜻한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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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회원 /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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