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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호][기고] 선택의 권리와 사회·가족의 책임은 구분되어야 한다
2025-11-03 오후 17:16:39
570
기간 10월 

 

 

[기고]

선택의 권리와 사회·가족의 책임은 구분되어야 한다

 

 

** 이 글은 자살과 상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사한 경험이 있으시거나 감정적으로 힘들 수 있는 분들께서는
읽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신 경우 109(자살예방상담) 24시간 상담 서비스 
혹은 마음연결(02-6953-7941)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스포일러 주의. 이 글은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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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 지난 22년간 단 두 해를 제외하고 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한 한국에서, 언론은 ‘자살’ 대신 이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묻고 싶다. 무엇이 극단적인가. 죽음인가, 아니면 그 죽음을 택하게 만든 삶인가.

 

2024년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 하루 평균 39.5명이다. 하루 사망자 670명 가운데 17명 중 1명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통한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선택하게 되는 걸까. 대학 입시에서 의대 쏠림 현상을 분석하듯, 삶의 여러 갈래 중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왜 늘고 있는지도 사회는 분석해야 한다.

 

물론 자살의 배경,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개 앞으로의 생애에서 마주할 어려움을 도저히 감당하거나 극복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죽음은, 더는 견딜 수 없는 삶의 연장이 아니라 그로부터의 탈출이다.

 

국내에는 정부 차원의 성정체성 관련 자살통계가 부재하지만 국제 연구에 따르면 시스젠더 동성애자의 자살률은 이성애자의 약 2배이며 트렌스젠더의 경우 절반 가까이 자살을 심각히 고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수치는 놀랍지만, 우리가 겪는 현실을 떠올리면 어쩌면 낯설지 않다. 정체성을 이유로 겪는 일상의 어려움, 혐오, 소외, 차별,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은 일상의 공기처럼 우리를 짓누른다.

 

그렇기에 자살은, 특히 성소수자의 자살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살인’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사회구조의 불평등으로 인해 일찍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의 현실을 지적하며 쓴 표현이다. 필자는 여기에 ‘심리적 억압’을 추가하고자 한다. 성소수자의 죽음은 단지 경제적 빈곤이나 제도적 배제만이 아니라, 인정받지 못한 존재로 살아야 하는 지속적 불안과 외로움에서 비롯된다. 그 고통은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며 우리 사회는 그 고통의 탈출구를 제시해주지 못한다.

 

넷플릭스의 화제작 「은중과 상연」은 과거 절친한 사이에서 얼굴도 보지 않는 사이가 되며 일생에 걸쳐 얽히고설킨 은중과 상연이 상연의 죽음 앞에 관계를 회복하는 이야기다. 이 중 주인공 상연은 고통스러운 말기암으로 스위스에서 조력존엄사를 택한다. 이야기의 배경에는 상연의 오빠이자 트랜스젠더 여성인 상학의 자살이 있다. 드라마는 상학의 죽음을 단지 은중과 상연의 서사적 동기로 사용하지만, 정체성으로 인한 고통의 구조적 배경은 다루지 않는다. 상학의 워딩으로 언급되진 않으나 상학은 부모님이 상학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아 고뇌하다 끝내 산속에서 홀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상연의 죽음은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의 ‘존엄한 선택’이다. 반면 상학의 죽음은 질병이 아니라 사회의 거부로 인해 삶의 의미를 잃은 결과다. 상학에게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그를 둘러싼 가족과 사회는 그에게 죽음 외의 길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상학의 죽음은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사회가 방관한 죽음, 곧 사회적 살인이다.

 

상연은 조력자살을 앞두고 은중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빠가 만약 그래야만 했다면, 그때 오빠에게도 스위스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상학에게 필요한 것은 스위스가 아니라, 살 힘을 줄 수 있는 세계였다. 죽음을 존엄하게 택할 권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 사회는 “살아 있을 이유를 지킬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죽은 상학에게 상연이 건넬 말은 “어떻게 하면 살 힘을 줄 수 있었을까”이다.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그리고 절망에 갇힌 모든 사람에게 건넬 질문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들에게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는가.”

 

 

 

[LGBTI 대중 중 유효 응답수 3,159명의]자살과 자해시도는 위험한 수준이다. 전체 응답자의 28.4%가 자살을, 35.0%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 특히 연령이 낮은 18세 이하의 응답자 중 45.7%가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고 53.3%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어, 거의 두 명 중 한 명꼴로 그 비율이 심각하게 높다. 또 LGBT라는 점 때문에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 자살시도와 자해시도의 비율은 각각 40.9%와 48.1%로, 차별이나 폭력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경우(각각 20.7% 26.9%)에 비해 상당히 높다.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 2014, 36쪽.


설문조사 대상은 최근 10년간 한국에 거주한 만 19세기 이상 만 34세 이하의 청년이자 스스로 성소수자로 정체화 하고 있는 사람이다. […] 3,911명을 최종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 최근 1년간 자살 생각과 자살 시도 경험에 대해 물었다. 전체 응답자의 41.5%는 최근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고, 8.2%는 최근 1년간 실제로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0 「청년층 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에서 청년들에게 '자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지'를 물었더니 단 2.74%만이 '그렇다고 응답한 것에 비추어 보면 매우 높은 수치이다.

-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나 같은 사람이 혼자가 아니구나" :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 조사 결과보고서』, 2022, 15~16, 87쪽.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의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 보고서』[100쪽]에 따르면, 실제로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의 비율은 1.7%로, 남녀 각각 1.6%, 1.9%였다.

- 통계청 통계개발원, 『한국의 사회동향 2023』, 2023,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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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대표 /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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