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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호][기고] 그 골목에서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보고: 10.29이태원참사 3주기를 맞이하여
2025-11-03 오후 17: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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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0월 

[기고]

그 골목에서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보고:

10.29이태원참사 3주기를 맞이하여

 

 

새벽 검은 하늘 아래/ 우린 외로운 사람들/ 이렇게 엉킨 길 위를/ 하염없이 헤매지/ 이 길고 긴 여행이/ 끝이 있긴 할 거야/ 어쩌면 조금 짧을지 몰라/ 그러나 그리 나쁠 건 없네/ 우린 모두 별이 될 거야/ 이 세상을 떠나면/ 바슬바슬 거리는/ 은하수 빛이 되어/ 하늘을 날거야/ 저기, 저기 아슬 거리는/ 은빛 너를 찾으면/ 우리 서로를 꼭 끌어안고/ 더 환한 빛이 되어/ 여기 어둠을 지워내 볼까 –정밀아, 「별」

 

 

언제나 뒤늦게, 후회하고 반성하며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갑니다.

 

정신없이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쳤던 날이었어요. 고단한 하루를 샤워로 마치고 침대에 누워 어김없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렸습니다. 가지지 못한 욕망이 마구 쏟아지는 와중에 한 게시물이 눈에 밟혔어요. 그 게시물에는 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이의 얼굴과 함께 ‘이태원참사 출동 소방관이 실종되었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었어요. 얼굴이 완전 공개되어서인지 저는 그 기사를 오보라고 여겼어요. ‘조회수 높이려고 참사를 이용하나’라며 가벼운 불편함을 뒤로하고 게시물을 넘겼습니다. 이틀 뒤였을까요. 회의 도중에 “소방관님이 결국 돌아가셨네,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도 저는 이틀 전에 읽었던 기사를 떠올리지 못했고, 말씀하신 선생님의 지인이 돌아가셨나보다 하고 그 말을 다시 지나쳤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기사를 확인했어요. 이틀 전 보았던 것이 오보가 아니고, 스쳐 들었던 죽음이 참사의 고통이 계속되는 와중에 발생했던 일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소방관님이 실종되고 경찰이 수색을 시작했던 때는 8월 10일 오전 8시였고, 제가 읽은 기사는 수색에 나선지 9일째(18일)에도 소방관님의 행방을 찾지 못하자, 가족들이 언론에 신상을 공개하며 도움을 요청했던, 그야말로 애타는 마음이 담긴 호소였습니다.

 

두 번을 지나쳐서야 받아들인 죽음 앞에 괴로웠어요. ‘도대체 나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그의 고통을 오보라고 착각하며 지나쳤을까.’ 그가 겪은 슬픔에 연결되지 못했던 혹은 연결되었다고 착각했던 스스로를 자책하고 원망했습니다. 과연 두 번 뿐이었을까요. 2022년 10월 29일 참사가 발생한 이후,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일어나고 있는” 참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견뎌왔던 이들의 고통에 대해 지금도 듣지 못하고 있는 저는, 지난 3년 내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지나치고 놓쳐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마주했던, 그리고 그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재난과 참사는 ‘사고-보상 프레임’ 아래 애도가 좌절되거나, 사상자의 수를 극대화한 채 ‘비극’과 ‘공포’로밖에 기억되지 못했습니다. 피해생존자가 참사의 고통과 경험을 말하기 전에, 한국 사회는 피해생존자를 향한 조롱과 힐난으로 그들이 말할 수 있는 무대를 봉쇄했습니다. ‘핼러윈 축제에서 놀다가’, ‘술에 취해 몸도 못 가누는’ 등 망자와 피해생존자를 향한 비난과 혐오가 빗발치는 가운데,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해 행정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던 당국의 책임은 지워졌습니다. “왜 놀다가 죽은 사람들에게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냐”라는 모욕이 정당화된 반면, 유가족과 피해생존자의 진상규명 요구는 ‘죽음 위에 숟가락 올려 정치선동질 하는’ 정쟁의 진원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벌어진 대규모 사상(死傷)이 사건인지 참사인지 명명하는 데에서부터 정치는 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하여 참사가 발생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행정당국의 대응과 수습마저 문제가 있었다면, 책임 규명은 당연한 과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5년 6월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서부터 2014년 세월호 참사, 그리고 2022년 이태원 참사까지, 한국 사회는 대형참사에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애도를 위한 투쟁에 나서는 순간 “정치적”이라며 그들이 애도할 권리를 박탈했습니다. 참사 이후 피해생존자가 어떤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는지 알지 못하면서, “지겨우니 그만하라”라는 언설이 참사 이후를 지배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3주기에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올해 10월 29일 오전 10시 29분, 1분 동안 서울 전역에 울린 추모 사이렌을 두고 ‘순국선열도 이렇게 기리지 않는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는 해결하지 않으면서 이태원만 추모하느냐’ 등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애도의 제도화’와 ‘국가애도(관제애도)’에 대해 비판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여 애도의 주도권을 장악했던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이 현 정부에게 유효하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고통의 위계를 생산하며 전개되는 비난이, 종국에는 이태원참사의 애도를 훼손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애도 가능한 삶(grievable life)”을 차등적으로 배분하는 사회적 규범과 권력이지, 애도 그 자체가 문제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두고 160번째 희생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듣고 위로하기 위한 노력보다 고통을 취사선택하여 애도를 좌절시키는데 혈안인 세상에 살아갑니다. 언제 우리는, 우리보다 참사를 먼저 마주했던 이들을 성찰적으로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이 사회에 애도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번 소방관님의 순직이 160번째의 희생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두렵습니다.

 

국가의 책임부인과 희생자/피해생존자를 향한 비난이 계속되면서 이태원참사의 피해는 ‘죽음’의 그늘에 갇혔습니다. 참사 초기부터 생존자, 목격자, 구조인력, 상인, 지역주민과 연결하고자 했던 시민사회의 노력도 있었으나, 피해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범주는 ‘희생자’와 ‘유가족’에 그쳤습니다. ‘죽음’만을 피해로 인식하는 좁은 시야 아래, 참사와 관련된 다양한 존재들은 물론이고, 이태원이라는 장소와 관계를 맺었던 존재들이 겪었을 트라우마는 좀처럼 논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상실과 슬픔을 말하기에 앞서, 더 아린 고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고통을 말하기를 유보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참사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고 날카로운 비난을 전개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 앞에서, 홀로 죄책감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이태원은 오랫동안 사회에서 밀려난 이방인들이 삶을 일군 장소였습니다. 루인의 주장대로, “한국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와 군사주의”가 “노골적으로” 결합한 이태원에서 미군, 성노동자, 퀴어, 외국인 서로는 두 체제의 틈새를 벌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일궈왔습니다. 퀴어인 우리에게 이태원은 각별한 장소입니다. 적대적인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내쉴 수 있는 곳이고,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 우정과 사랑을, 때로는 상실과 애도를 나누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오늘도 종로에서 밤을 시작해 이태원으로 향하는 동료들이 참사 이후 겪었을 깊은 상실에 대해 듣고 싶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이태원이 퀴어만의 장소는 아니지만, 이 참사에 우리의 상실이 연결될 때 비로소 이태원참사 이후의 권리실현과 사회적 애도가 가능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2022년 10월 31일 우리단체가 발표한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돌봅시다>라는 성명을 들여다봅니다. 이 참사가 절대로 우리와 무관할 수 없다는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서로에게 돌봄과 책임을 다하자’고, ‘우리가 연결되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는 그 요청이 먹먹한 위로와 고마움으로 전해집니다. 여전히 듣지 못한, 아직 우리가 나누지 못한 기억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이태원 참사의 또 다른 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억과 애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 과정이 눈보라 속에서 작은 불꽃을 지키는 것일지라도, 고통을 들을 수 있다면, 나눌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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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0월 31일, 이태원참사 골목에 설치된 조형물과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포스트잇.

 

 

이 글을 쓰기 위해 참고한 자료

 

김대현, 「고향을 떠나온 사람 - 퀴어 디아스포라, 이태원」, Littor 55, 2025.

루인, 「캠프 트랜스: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의 역사 추적하기, 1960~1989」, 문화연구 1-1, 2012.

유해정, 「재난정치와 애도」, 성공회대 박사학위논문, 2018.

주디스 버틀러, 「나 자신을 잃고: 성적 자율성의 경계에서」, 젠더 허물기, 문학과지성사, 2015.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조사단, 10.29 이태원참사, 인권으로 다시 쓰고 존엄으로 기억하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위원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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