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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 RUN/OUT: 서로 다른 정치를 엮어내는 힘
2025-09-03 오후 17: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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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8월 

 

[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

RUN/OUT: 서로 다른 정치를 엮어내는 힘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시작된 지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치 진입의 구조적 장벽으로 성소수자의 정치적 대표성은 제한되어 있고,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출마’에 대한 실질적 담론과 훈련 또한 부재합니다. 
   
RUN/OUT은 그 변화를 만드는 가장 실천적인 발걸음입니다. 2026년 지선과 2028년 총선을 앞두고, 성소수자 당사자가 당당하게 정치에 설 수 있도록 직접 보고, 듣고,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친구사이는 2025년 하반기부터 <하인리히 뵐 재단 - 동아시아 사무소>의 후원을 통해 커뮤니티 안에서부터 정치적 상상력과 실천 가능성을 함께 확장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직접 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각자의 ‘상상’에서, 한국 성소수자 정치의 첫 발걸음이 시작됩니다. - 소식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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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8월 정기모임 <이렇게 된 이상, 국회로 간다>를 기획하면서도 정말로 이뤄질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습니다. 성소수자 정치의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수락해주신 패널 네 분께 정말 감사드릴 뿐입니다.

 

성소수자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렇다저렇다 통찰력 있는 얘기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거대양당이 성소수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정치인들도 그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침묵하기도 하는 대 정치 침묵의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유효한 성과를 어떻게 내야 하지 하는 얘기를 바로 할 수 있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결국 문을 두드리든 부수든 그 문턱을 넘어 넘어서야 합니다. 결국 그 넘어섬은 당장은 현실적이지 않아보이는 용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의 사례들도, 모두 그 용기에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정기모임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이미 국회에 성소수자가 많다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누군가의 용기가 어떤 선을 넘어내면, 우훅죽순 변화가 기다리고 있겠구나 싶어서요.

 

같은 정치적 입장은 아니더라도, 성소수자로서라도 넓은 대화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함께 마음 모아주시고, 친구사이 후원으로 조금 더 과감하게 사업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세요. 앞으로 친구사이가 새로운 변화에 앞장 서보고 싶습니다. 이번 모임으로, 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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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OUT 프로젝트 기획자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
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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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두번째로 패널을 모시고 이야기 나누는 정모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의 사랑과 가족이 되는 마음을 이야기한 '결혼할 결심'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였던 것 같아요. 조금은 전투적이었달까요. 그만큼 정계는 치열한 공간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회를 맡으며 느꼈던 점은 우리 모두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방법'과 겪어온 일들은 다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이는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은 개인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중의 하나이므로 ‘성소수자 정치인’ 보다 ‘정치인인 성소수자’를 지향하는 것 같고 어떤이는 한명 한명의 표를 모아 ‘성소수자 정치인’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 기반이 되자고 합니다. 

 

관점에 따라 지금 해야 할 일은 다를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나의 꿈이 제한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 꿈을 이루는 여정에서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편안히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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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OUT 프로젝트 기획자
친구사이 대표 /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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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을 말리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에 가깝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가감 없이 응원을 보낸다. 물론 "잘 됐으면 좋겠네요" 같은 영양가 없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예외적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바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을 만났을 때다.

 

나는 대변인이라는 역할을 맡아 1년 동안 '여의도'에서 일했다. 제대로 된 정치를 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그마저도 녹록치 않은 경험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정치하는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당장 'ㅇㅇ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로 제작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힘겨운 일이었다. '동성애 반대' 수준의 혐오가 난무하는 국회 소통관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욕도 많이 먹었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성과를 내기는 어려웠다. 허공에서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까지 힘든 일을 가까운 사람에게 권하지 않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감정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래서 RUN/OUT 행사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고심을 많이 했다. 사람이 얼마나 올까. 관심들이나 있을까.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분위기를 망치지는 않을까. 고민에 고민이 이어졌고, 결국 고민을 더 하기 싫어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내가 가서 다 말려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행사장에 가보니 생각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진심어린 눈빛으로 앞에 앉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단박에 깨달았다. 아, 이 사람들은 말릴 수가 없겠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그랬다. 패널로 같이 자리한 분들도, 자리에 함께 있던 분들도 "이번에는 하고야 말겠다"는 눈빛을 잃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한 번은 가져보았을 눈빛. 나는 결국 무너졌다.

 

그래서 마침내 이 글까지 쓰게 되었다. 좋다. 원한다면 기꺼이 해야지. 무슨 재주로 말리겠나. 다들 이렇게 된 이상 국회로 가자. 가능한 많이, 그리고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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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국회로 간다" 패널
전)정의당 대변인 /
오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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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친구사이와 RUN/OUT 그리고 하인리히 뵐 재단에 감사드립니다. 평소 '한국 정치와 퀴어'라는 말을 들으면 혼인 평등 소송이나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떠올렸었는데, 국회 안에서 일하는 정치 인사이더로서의 퀴어도 고민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번 자리를 통해 정치 공간으로서의 '여의도'에도 퀴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본인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 운동에서의 퀴어는 여러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당당한 주체이지만, '여의도' 안에서의 퀴어는 타자화, 대상화 되고 있다는 점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아무리 여의도 정치 판 안에 퀴어가 많아도,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고 주체로서 행동하지 못하면 퀴어 인권 관련 여러 의제나 법안에 대한 목소리도 있는 그대로 낼 수 없기에, 일단 저부터 국회 구성원 안에 퀴어가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아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국회로 간다>에서 만난 패널 분들과 참가자 분들께 용기를 얻어 간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기회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날 까지 저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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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국회로 간다" 패널
현)진보당 선임비서관 /
윤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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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사슬 효과, 혹은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나중에는 능력으로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RUN/OUT을 기획하며, 또 “이렇게 된 이상, 국회로 간다” 행사를 준비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단어가 바로 이것이었다.

 

보통 사람이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전문성과 자긍심이 쌓인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나 정당에서 성소수자가 오래 일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설사 입법-행정적 전문성은 늘 수도 있겠지만, 자긍심 있게 삶을 이어가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분명 누군가는 오늘의 패널들을 두고 “경력이 짧으니 정치 현실을 모르는 객기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문제는 정반대다. 너무 오래 버티기만 하다보면, 결국 침묵은 습관이 된다. 정치 안에서 길러진 내면화된 무기력이야말로 우리를 갉아먹는 진짜 적이다.

 

정치라는 영역은 분명 다른 업과는 다르다. 대표적으로 국회 보좌진은 공무원이면서도 정당에 가입하고 정치적인 색깔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다. 직업 안정성은 약하지만 자기 색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분야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러나 스스로 성소수자라는 점을 약점으로 인식하는 순간, 당사자성 없는 거대한 담론은 오히려 목줄이 되어 주체적인 선택을 가로막는다. “묻지 않을 테니 말하지도 말라”는 조언은 적어도 정치라는 업에서는 목덜미를 물리는 것과 다름없다. 삶의 안정성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이 업을 떠나는 게 현명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제는 드러내고, 함께 전략을 세우며, 서로의 위험을 나눌 때다. 그래야 비로소 정치라는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가 살아난다.

 

정치 참여는 결코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몇몇 개인이 특이한 혹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설사 제도 안에 들어갔다 해도, 스스로 벽장 안에 남아 있다면 결국 도구로 쓰이고 버려질 뿐이란 걸 이제는 모두가 안다. 성소수자 관련 입법이 계속 "나중"으로 미뤄져 온 것은, 거대 양당의 폐쇄적 공천 구조와 지역 정치의 보수적 환경 같은 제도적 장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부여한 정치적 대표성이 개인의 경력으로만 소비되며 "정치적 현실"을 고려한 선택적 "나중"으로 끊임없이 미뤄어져 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용기이자 부끄러움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코끼리로 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2025년 8월의 마지막 토요일, 나는 불씨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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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국회로 간다" 패널
전)국회 보좌진 /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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