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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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성, <안아줘> (사진 by 맹보)
[커버스토리 '약물사용자와 함께하는 사람들' #1]
약물, 현상과 시각
‘약물’은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고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먼저 이 ‘현상’을 어떤 시각으로 해석할 것인가는 차치해야 합니다. 선입견처럼 고착된 시각은 오히려 현상을 왜곡하고 부정하게 만들며 현상 안에 놓인 사람을 구별 짓고 배제하고 혐오하게 합니다. 시각의 왜곡과 배제를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HIV 같은 엄연한 선행 ‘현상’에서 몸소 익히 겪어낸 바 있습니다. HIV와 약물은 꽤나 닮았습니다. 이 둘은 한번 삶에 들어오면 더 이상 당사자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며 삶의 마지막까지 당사자와 함께 합니다.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약을 복용하는 순간마다 자신이 HIV와 함께 살아감을 느끼며 삶의 매순간 HIV와 화해하고 수용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고 구현합니다. 약물사용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약물사용자가 현재 약물을 사용 중이든 중단 중이든 뇌리에 강하게 심어진 약물에 대한 인식과 경험과 감정과 형상들은 사용자가 약물과 분리될 수 없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삶의 매순간 약물과 화해하고 거리를 설정하고 관계를 정립하며 이 경험 혹은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고 실현합니다.
다시 원래 문제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지금의 현상은 무엇입니까?
*우리 커뮤니티의 많은 친구들이 이미 약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당면한 큰 문제 없이 약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형사 처벌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친구들은 협박을 받고 착취를 당하기도 합니다.
*어떤 친구들은 경미한 혹은 중대한 건강상 문제를 겪기도 합니다.
*어떤 친구들은 ‘약쟁이’라는 색안경 너머로 사회적 관계가 뒤틀려 심리적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의도치 않은 잘못된 만남 때문에 금전적 피해와 건강상 문제를 겪습니다.
현재 항시적이며 앞으로도 항시적일 것으로 예견되는 이 현상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우리의 친구들이 무게를 함께 나누고 해결하고 연대의 안정감을 기꺼이 누릴 공간은 현상이 있은 뒤로 지금까지도 우리 조직 내에 없었습니다. 의문과 반발, 배제와 삭제가 행해졌습니다.
우리가 모종의 선입견 없이 그저 현상을 직시하기만 한다면 문제는 매우 간단합니다. 해야 할 일도 명료합니다. 무분별한 사려없는 근거없는 주입된 치우친 무지한 그 어떤 시각에서 해방되는 것. 이것이 출발점입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언제나 시각이란 하나의 현상을 근저까지 이해하고 품기 위한 생산적 틀이어야 할 뿐 현상을 외면하고 파묻고 소멸하기 위한 잔인한 흉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현상에 대한 입장은 제각각입니다. 어떤 이는 사회적으로 제공된 범죄라는 시각으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커뮤니티를 지배하는 시각일 것입니다. 시각의 이면은 꽤나 서슬 퍼렇습니다. 범죄 행위를 우리 커뮤니티의 한 구성요소로 결합하는 것, 범죄자에게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 혹은 HIV의 등장 이후로부터 아주 유구한 전통을 지닌 ‘문란’과 ‘통제력의 상실’이라는 도덕적 죄명의 피고들이 이노센트한 커뮤니티를 감염시키고 중독시키는 것. 이것을 용납할 수도, 타협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는 매우 불쾌한 시선들이 존재합니다.
범죄. 약물에 있어서 애당초 이 단어는 국가로부터 부여된 강력한 집단의식을 떠받치는 견고한 토대입니다. 한국에서 약물 사용은 불법이고 처벌 대상이며 그에 따라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공공장소의 벽면에서 우리는 인생이 불가역적으로 산산조각난, 흉악한 짓을 저지른 사용자들의 말로를 전달받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범죄하였으매 너희는 결코 접근치 말지며 또한 이들을 이와 같이 정죄하고 용서치 아니함으로 우리를 영속케 할지니라.” 이 국교가 이미 온 나라에 성행하여 목회의 제단은 강건하고 전도 활동은 전에 없이 활발하며 이단을 심판하는 재판정도 더없이 준엄하여 감옥은 포화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범법’이란 단어가 절대적 가치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 가치 기준이 적용된 단어라는 점을 압니다. 범죄의 규정은 시대, 시기, 국가에 따라 다릅니다. 이곳에서는 죄인 것이 저곳에서는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상대적일 뿐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약물과 관련해서 두 나라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네덜란드는 이미 1976년부터 관용주의의 바탕 아래 정해진 장소에서 대마초를 구입하고 사용하는 것을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후로 세부적인 법 조항이나 규정 등의 변화가 몇 차례 있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여전히 사용자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네덜란드가 정책을 시행한 초기에 강력한 처벌주의를 견지하고 있던 미국과 주변 국가들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정책은 변함이 없었고 그로부터 40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 때문에 보건상의 문제가 발생하지도, 대마초가 게이트 역할을 해서 약물사용자가 증가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국과 주변 국가의 약물사용자 문제가 심각해졌을 뿐입니다. 우리 땅에서 범죄자가 그들 땅에서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포르투갈은 하드 드럭 사용자와 주사기 사용에 따른 HIV 감염자가 폭증하는 와중에 2001년 모든 약물의 소량 개인 사용을 비범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 정책의 핵심은 사용자 처벌과 감금이 아니라 이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 창구와 인력을 확대하고 의료서비스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약물 과다 사용에 따른 사망자 숫자가 유럽에서도 최하위권으로 급감했고 10만 명당 사망률도 유럽 평균 이하로 떨어졌으며 주사기로 인한 HIV 감염률은 거의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헤로인 중독자 수는 1/4로 급감했습니다. 우리 땅에서 범죄자가 그들 땅에서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이외에도 몇몇 국가와 몇몇 자치 주들이 소프트 드럭에 한정한 혹은 모든 약물에 대한 합법화 또는 비범죄화를 실행하거나 시도 중에 있습니다.
지금 논의의 초점을 약물 사용 비범죄화의 장으로 가져가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약물사용자를 바라보는 ‘범죄’라는 시각을 재검토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국가로부터 주입받은 시각은 과연 모두 절대적 판단 기준으로 인용할 만큼 믿을 만한가? 국가주의에 기반한 마타도어와 프로파간다는 없는가? 우리가 이런 시각에 기반해 약물사용자를 대하고 정죄하는 것은 옳은가? 이것이 ‘현상’과의 만남, ‘현상’ 속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일말의 도움이 되는가? 혹여 이 시각 자체가 범죄는 아닌가?
약물이 왜 우리 커뮤니티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오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것을 어떤 이유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우리의 친구들은 어떤 상황 속에 놓이게 되는지, 이 현상 속에서 모두가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 어떤 것을 이해하고 어떤 것을 함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도 미약합니다.
약물 사용은 생각보다 고차방정식입니다. 국가는 이 모든 현상을 ‘마약’이라는, 도대체가 전혀 하나의 상위개념이 되기에 부족한 단어로 뭉뚱그려놓고 악마화하고 있지만, 우선 ‘약물’이라는 단어 안에 포괄되는 약물의 성격과 영향이 제각각입니다. 경우의 수는 이미 여기에서부터 많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사용자가 이 약물과 만나는 계기도 다양합니다. 우리 커뮤니티가 성적 활력과 쾌락을 높은 수준으로 추구하고 향유하고 있는 특성, 모종의 감정적 원인에 의한 강력한 연결감의 추구, 개인의 성향 안에 내재한 특별한 호기심, 여러 심리적 문제의 해소, 관계 형성과 지속을 위한 도구 등등 어떤 이유인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를 것입니다. 이후로도 같은 양이지만 어떤 순도인지, 약물 사용을 어떤 사람과 하는지, 형사 처벌을 받게 되는지,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는지, 약물을 사용하면서 받는 혹은 충족하는 감정의 지점이 어떤지, 사용 후 마주하는 현실의 간극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이 모든 경우의 수가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결과는 매우 다양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이 이미 약물을 사용 중에 있고, 어떤 문제를 겪기도 혹은 겪지 않기도 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갈 곳이 그저 국가가 제공한 처벌과 금지만이 존재하는 장소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거나 현상 자체를 부정하거나 국가가 제공한 집단의식에만 기반해 재단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우리의 논의는 아직 너무 미약하고 이제 출발선에 나아가려고 합니다. 부디 우리가 연결된 존재임을, 그 연결 고리 여기저기에서 떠오르는 현상들을 놓치지 않기를, 우리가 부디 오래오래 함께 이 삶을 이어나가기를.
엄연히 존재하는 이 ‘현상’을 논의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가운데 우리는 연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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