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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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3]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에 들러붙은 장면들
언제나 이야기의 열쇠를 미리 손에 쥐는 게 좋았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을 알고 있을 때면 등장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지 보게 되었고, 슬픈 결말을 알고 있을 때면 미처 결실도 맺지 못했을, 등장인물의 삶의 비애와 기회를 엿보곤 했다. ‘시작부터 난해한 예술의 냄새를 풍기며 찝찝한 결말’에 치닫고 있을 때, 나의 몰이해가 감독 탓인지 내 탓인지 저울질하는 일도 독특한 즐거움이다. 이러한 악취미는 스스로의 삶이 실시간이기 때문에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진다는 불만으로부터 왔다. 나는 종종 세상에 최초인 것은 그다지 없다고 여기고, 새롭다는 말은 성의없는 감탄사로 느끼지만, 내 삶은 나에게 늘 새롭기만 하다. 그러나 영화는 타자의 삶에 올라타는… 어찌보면 ‘고상한’ 시간이라 여유롭게 반복되는 서사를 분석할 수 있었다. 이때 발견되는 영화의 매력이란 이야기의 도착점에 있지 않고, 정을 떼기 어려운 친구의 얼굴처럼 아름다운 지난 장면이 내게 지독하게 들러붙으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에서 개막작을 소개하며, 본 영화가 아시아 유교 사회에서 감지되는 순혈가족주의를 보여주는 동시에,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동성혼 제도에 대한 아시아 사회의 현안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이 영화는 단순히 영화적으로 훌륭한 것을 넘어서, 운동의 의미로도 매우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레이 영 감독의 <모두 다 잘될 거야>는 홍콩에서 40년 넘도록 함께 살아온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이다. 한 쪽 파트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녀의 직계가족과 남겨진 파트너가 갈등을 겪는다. 남겨진 파트너는 자신의 존엄성, 죽은 파트너와의 약속, 직계가족에게 상속될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주변의 레즈비언 친구들에 의해 다시 한 번 나아갈 힘을 얻는다. 나는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고 관람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슬퍼졌다.
노년의 성소수자들이 서로를 돌봄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적 안전망이 없다면 얼마나 취약해지는가. 항상 말해 온 문제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내가, 나의 애인이, 내 친구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이 매번 같은 강도의 절망감으로 다가온다. 영화가 타자의 삶에 올라탈 수 있는 기회라 여기던 나는,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올라타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꼴이 되고 말았다. 영화를 보다 눈물을 흘리며… ‘친구사이에서 찬란한 유언장 워크숍이 열리면 꼭 참여해야지’하는 결심과 ‘혼인평등소송에서 꼭 만족스러운 성취가 있게끔 도와야지’하는 다짐을 오가는 산만한 감상을 했다. <모두 다 잘될 거야>의 결말이 나를 일으켜세우진 않는다. 다만 중간 중간의 장면이 내게 열정을 불러왔다. 영화에서는 직계가족이야말로 레즈비언 파트너 둘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있고, 그들의 주장은 ‘질투’나 ‘생계’같은 솔직한 말이었다는 것. 또한 죽은 파트너의 진의를 의심하는 때에 ‘쓰다 만 유언장’을 보여주고, 둘 사이를 인정하고 북돋아주는 친구들의 역할이 언제나 든든해보였다는 사실 등… 몇몇 귀한 장면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성소수자커뮤니티의 목소리를 잘 담기 위해 ‘색동영화 시즌2 - 3인 3색’도 마련했는데, 이름대로 정말 다른 3가지의 단편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친구사이의 회원이기도 한 박재현 감독의 <미안해, 사랑해서>는 시장에서 자그마한 생선 가게를 운영 중인 재석의 이야기이다. 초반부터 언급되는 큰 사장님의 존재가 재석에게 그늘인지, 고민거리인지, 혹은 지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할 추억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영화는 전개된다. 영화의 장면전환은 감독 특유의 ‘느린 페이드 아웃-페이드 인‘을 반복하며 막막한 안개 속을 지나오는 듯 보인다. 삶의 막막함을 표상하기 보다는 따뜻한 안개에 가까운 효과였는데, 결말에 왔을 때 큰 사장님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상깊은 장면은 영화 중간쯤 등장하는 재석의 아이들이었다. 일종의 대안가족으로 예상되는 관계에서 ‘친절하려고 애쓰는 딸’과 ‘날이 선 아들’이 나타내는 가족의 친밀함은 무엇인지 묻게 하는 낯선 장면이 있다. 김상백 감독의 <일 나누기 이>는 게이바 바텐더와 사랑에 빠진 게이 이진의 이야기이다. 권태로운 연애를 이어가던 주인공 '이진'은 여사친에게 연애상담을 받으며 영화는 전개된다. 권태롭지만, 그것이 주는 안정감을 받아들인 여사친과 다르게 이진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내보였다가 스스로 억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망상이 드러나면서, 한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부정하고 미워하고자 애쓰면 어떤 부조화가 일어나는지 짧은 시간 안에 담아내고 있었다. 송한종 감독의 <사춘기>는 중년의 나이에 게이 커뮤니티에 나온 기춘의 이야기이다. 작중 기춘은 ‘밥언니’라 불리며 커뮤니티에 어울리기 위해서, 또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갑을 열어야하는 처지로 그려진다. 매력자본이 부족한 인물에게 게이 커뮤니티가 어떤 방식으로 가혹해지는지, 또 각자의 매력이 서로에게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중첩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얼핏 경험한 일들을 단편영화로 보게 되니, 감상자인 나로 하여금 저절로 상상력에 살이 더해질 수 있었다.

폐막작은 이송희일 감독의 <파랗고 찬란한>. 이 영화는 특별히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다. 실제 한반도 역사상 가장 큰 산불이 난 강원도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영화과의 선후배가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생기는 일들을 다룬다. 영화는 도입부터 아름답고 꿈결같은 장면들을 보여주며 느린 호흡으로 진행한다. 나는 감독이 작정하고 시각적 아름다움에 천착하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구나 생각했다. 디나이얼 게이 선배의 속도에 맞추어 다가가는 적극적인 후배 게이의 조용한 사랑이야기. 그러나 이것은 딱 영화의 중반부까지만 그러했다. 촬영하는 동네가 선배의 고향이고, 그들이 동네 사람들과 환경운동가의 인터뷰 촬영을 담는 의지를 드러낼 때부터는, 선배의 눈에 실향민의 슬픔이 겹쳐보인다. 아름다움에 감탄을 던질 수 밖에 없던 영상미와는 다르게 ‘긴급하고 시급한 시간’이 유추되는 저화질의 산불 영상, 흔들리는 초점, 찢어지는 듯한 글리치 사운드가 영화 중반을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다시금 조용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펼쳐짐에도 나는 지나간 장면들이 자꾸만 선배의 얼굴에 겹쳐보였다. 대도시에서 사랑하는 성소수자와 다르게, 작은 마을에서 사랑을, 삶을 이어간다는 건 어떤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익명성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기에 스스로 고립시키고, 사랑하는 사람한테서 도망쳤다는 자괴감과 절망 등이 그것이다. 결국 선배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서 과거의 자신을 붙들었던 시간과 마주하고 나서야, 후배와의 사랑을 시작한다. 멀리서만 지켜본 산은 새카만 숲이었지만 다가가 촬영을 시작했을 때는 푸른 잎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장면의 연속 안에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에서 영화를 보는내내 내게 여유는 생기지 않았다. 모든 영화 속 갈등이 실시간으로 내게 주어진 일 같았고, 타인의 삶에 올라타기보다 타자의 옆에 놓여지는 시간에 가까웠다. 등장인물에게 들러붙은 장면과 관객에게 들러붙은 경험들이 자꾸 포개어지며, 치열한 고민의 장을 생성하는 것이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가 바라던 일이었다고 예상한다. 감상을 위한 감상, 거리두기가 불가능해질 때 나는 비로소 퀴어영화가 제 역할을 해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퀴어영화들을 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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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상근활동가 / 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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