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11월 |
|---|
[소모임] 이달의 지보이스 #45
: 지보이스 자작곡 배경 및 후일담
- '네 생각', '독거미(獨居美)'

1. 지보이스 자작곡 배경 및 후일담 2 <네 생각>
최근 세상엔 2가지 유형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머릿속에 끊임없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정적으로 가득 메워진 사람’. 나의 경우 전자에 속하는 족속인데, 더 나아가 가끔씩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멜로디를 제멋대로 콧노래로 흥얼거리고는 한다. 그중 괜찮다 싶은 것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녹음을 하거나 악보에 적고, 노랫말을 붙이기도 했다. 덕분에 비축해 둔 소재가 다양하다. 가사가 붙지 않은 멜로디, 짤막하게만 존재하는 소절의 조각들, 구체적인 틀 없이 쭉 나열해 놓은 시어들. 아마도 고등학생 때부터? 천부적인 작곡의 재능 같은 자랑거리로써 치부하기에는, 막상 스케일이나 코드진행도 엉망이고…, 아무튼 애매한 부분이 많다.
올해는 그것들을 모아 <네 생각>이란 곡을 완성했다. 특성상 제각각 구간마다 ‘작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산발적인 편이다. 당시의 기분과 주변의 상황들, 혹은 번뜩 떠오르는 순간의 기억에 대한 내용들이 중구난방 뒤섞였다 보면 되겠다. 그럼에도 ‘짜깁기한 결과물치고는 그럴싸한 편이지 않나?’ 자신해본다. 별이 잔뜩 떠 있는 하늘에 대한 감상과 불면과 우울과 같은 병증에 시달리는 일상의 고충, 연이어 사무치는 단절과 고립의 공포가 밤의 심경이란 한 다발의 주제로 잘 묶였다.

▲ <네 생각> 가사
가사에서 보이다시피, 자칫 심히 침울하게 읽힐 수도 있는 곡이었다. 이를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극복하여, 본래 전하려고 했던 희망적이고도 따스한 의도를 품은 합창곡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값지다 못해 기적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지휘자님의 편곡, 단원들의 열의, 전구와 밤하늘 뒷배경 연출, 관객분들의 감상 등…. 아직도 많은 이들의 애정이 모여, 모두와 함께 완성했던 무대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혼자였다면 못했을 일을 해냈다. 우리가 같이.’
이상 2개의 곡을 내놓은 원작자의 간단한 소감을 끝으로, 올해의 신곡의 배경 및 후일담을 마친다.
2. <독거미(獨居美)> 작업 노트, 그 다음.
한편, 이 곡은 앞선 10월 호에 소개한 <독거미(獨居美)>의 탄생배경에 있기도 하다. <네 생각>을 무대에 올리고자, 가사를 다듬고 구조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이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작업 노트’에 적게 되었고, 엉겁결에 ‘호랑거미’와 얽힌 일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하나의 창작물이 또다른 창작물에 대한 영감과 계기를 주는 특별한 경험이었지 않았을까? 그런 맥락에서 이전의 이야기에서 이어지며, 두 곡 사이에 연관성을 나타내는 <독거미(獨居美)>의 작업 노트의 뒷부분을 추가로 공개해본다. 역시나 일부 발췌이며, 소설처럼 보이도록 각색한 내용이다.
|
• 싸게의 작업 노트 – <독거미(獨居美)> 中에서 (10월호와 이어집니다.)
그 아이가 떠난 자리에 한참을 멍하니 섰다. 가로등이 많지 않은 종묘의 돌담길은 요란하리만큼 을씨년스러웠다. 나름 ‘묘’라는 이름이 붙어서 그런지, 벽 너머로 늘어지는 그림자가 시커먼 산발을 늘어뜨린 환각을 보였고,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는 흐느끼는 환청으로 들렸다. 어딘가 태평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착각이겠지. 흉흉한 사위를 두르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 놓였다. 막 솟구치려 하던 열기가 바닥으로 폭삭 주저앉았다. 냉랭히 식은 목덜미가 저릿하고, 텅 빈 이마가 핑 돌았다. 어지럼을 무찌르려 담벼락을 향해 다가갔다. 양 손바닥을 붙이고 정수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번민의 굴레를 돌았다. 손을 잡아주어야 했을까? 밝은 길가로 이끌어야 했을까? 아니면, 잠자코 있어야만 했을까? 아무리 골머리를 앓아보아도, 나로서는 그 아이의 속을 알아볼 방도가 만무했다. 그렇게 세게 밀친 것도 아닌데, 너무 쉽게, 그리고 멀리 나가떨어졌다. 우리가 상상했던 결말이 이처럼 차가웠던가? 아마도 그랬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야.’ 내가 이으면, 그가 끊는다. 또다시 이으면, 끊는다. 그것도 완전히. 그대로 뒤를 돌아 터덜터덜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왔다. 밤하늘이 예쁘다.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여긴 별이 하나도 없네. 서울 하늘은 원래 그래. 그래도 좋다. 까맣기만 한 게 뭐가 좋다고. 그것도 밤하늘이잖아. 개소리.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밤이 끝나잖아. 집에 안 갈거야? 가기 싫어. 엄마 아빠랑 첫차 타기로 약속했다며. 이 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 안 피곤해? 응. 난 피곤해. 어디 앉을까? 아니. 계속 걸을까? 아니. 그러면? 모르겠어. 왜 몰라? 모르니까.
아까 전 문전박대 당한 술집의 앞을 다시 지나칠 때였다. 어떤 악바리가 쩌렁대게 고막을 긁었다. 낯익다. 그 아이의 목소리다. “나는 게이 새끼다!” 소스라치듯 귀를 벅벅 문지르며 일어났다. 꿈이었나. 잘 덮고 있던 이불이 침대 바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방금까지 옆에 그 아이가 누웠다 간 것처럼, 방안에 휘몰아치는 외풍에 온몸이 바싹 식었고, 손가락 끄트머리가 허여멀겋게 질렸다. 얼어 죽을 뻔한 나를 구해주려 했던 것인가? 아직 거기엔 올 때가 아니란 건가? 이럴 거면 이불은 왜 뺏어갔어? 몸서리를 떨어냈다. 비몽사몽. 아무래도 약기운이 덜 깼나 보다. 몸도 녹일 겸, 바람도 쐴 겸, 더욱이 현실 분간에 열을 올릴 겸, 담뱃갑을 쥐고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입에 물고서 아직 동이 채 트지 않은 하늘을 의아하다 바라보았다.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 아닌가. 멍하게 불을 붙이고 들이마신 공기가 유난히 매캐했다. 마치 폐 속에 아크릴솜뭉치를 쑤셔 박는 감촉. 기침이 나고, 목이 따끔거려 눈물이 찔끔 맺혔다. 날씨마저 건조하고 춥다. 겨울은 딱 질색인데, 가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는데….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혹독한 계절이 돌아오는구나. 그렇게 또 뿔이 솟는다. 나는 사랑을 해서는 안 돼? 아무것도 바라서는 안 돼? 하다못해 생각조차 하면 안 되는 거야? 언제나 내 마음과 반대로 흐르는 거야, 세상은? 주먹을 꽉 쥐어 몸 여기저기를 힘껏 때렸다. 아팠다. 당연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땅바닥이라도 북북 짓이기듯 발을 비벼 찼다. 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항상 이렇지? 원래 피던 담배가 단종되었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맛이 바뀌었고, 단골이었던 식당은 문을 닫게 되었으며, 이제 막 맘에 두기 시작한 남자들은 다른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다. 죽거나 사라지는 것도 있었다. 문득 시야 어귀에 초록색 계단 난간이 걸쳐졌다. 표면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아래로는 닭볏처럼 울퉁삐죽한 고드름도 엉겨 붙었다. 마침, 옥상에 올라가야 할 일이 떠올랐다. 어디에서 물이 새는가? 가는 길에 이르지만 X에게 아침 인사라도 할까? 난간 틈새로 조용히 말을 걸었다. 안녕. 눈알이 요동치듯 경련했다. 아마도 눈깔이 뒤집힌 모양이다. 새까만 시야 속에서 평정심을 되찾고자 발버둥 친다. 각종 미디어 매체에서 비추어졌던 수많은 등장인물의 혼절이 떠올랐다. 살면서 그래본 적이 전혀 없어서, 여태껏 이해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겠다. 지금 내 앞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사태가 펼쳐져 버렸고, 정신적 스트레스에 특히나 취약한 나의 신체는, 차라리 이것을 끊어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 한다는 것을. 순식간에 추락하는 시선을 간신히 가누었다. 곧장 균형감각이 돌아왔고, 똑바로 섰다. 황망히 무너져 내린 X의 집을, 직접 면전에 두었다. 그러니까, X가 없다. 집이 있던 자리인데, 집도 없다. 넝마가 된 실망이 제멋대로 뒤엉켜 바람에 너덜거릴 뿐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거미집에 코를 박아 훑었다. 한쪽에서, 이번에는 노란 띠가 듬성듬성 보이는 거무튀튀한 덩어리를 발견했다. 그래, X가 있다. 밤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실타래로 감긴 X. 추위에 못 견뎌 희멀건 실오라기 한가득 끌어다가 품에 안은 X. 그러다 뒤엉켜 매달려 버린 X. 얼어 죽은 X. 쯧, 혀를 찼다. 밤바람이 찼나 보구나. 그러니 바닥을 좀 따숩게 덥히지, 그랬누. 그래봤자 늦어버렸다. 방도가 없다. 흐느끼듯 매달린 어깨를 따라 쓰린 속을 들썩이는 무력함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대롱대롱 빙글빙글. 심지로 움켜 감싼 갈색 돌멩이를 바라본다. 그대로 둔다.
|

▲ <독거미(獨居美)> 가사
![]()
지보이스 단원 / 싸게
[활동보고 #2] 광장은 무력한가 광장은 무력한가? 1. 참담하다. 12월 들어 온종일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다. 제주항공(애경그룹) 7C2216편 여객기 폭발하며 17...
기간 : 12월
[활동보고 #3] 아름다우려고 작정한 모양 해명할 일이 많다. 해명은 억울한 사람 몫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저 들킨 속내를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사부...
기간 : 12월
[174호][커버스토리] 12.3 윤석열 내란 사태 관련 성명·논평 일람 (12.7 ~ 12.29.18:00)
[커버스토리] 12.3 윤석열 내란 사태 관련 성명·논평 일람 (12.7 ~ 12.29.18:00) 2024년 12·3 내란사태와 관련되어 국회와 정부, 시민사회단체들...
기간 : 12월
[174호][활동스케치 #1] 제5회 친구사이 에이즈 영화제 "레드+" 관객과의 대화 정리
[활동스케치 #1] 제5회 친구사이 에이즈 영화제 "레드+" 관객과의 대화 정리 지난 12월 4~6일 사이 제5회 친구사이 에이즈 영화제 "레드+"가 열렸습니다. 영화제 ...
기간 : 12월
[174호][활동스케치 #2] 친구사이 30주년 기념식 책읽당 낭독공연 대본
[활동스케치 #3] 친구사이 30주년 기념식 책읽당 낭독공연 대본 2024년 연말을 맞아, 지난 8월 30일 열린 친구사이 창립 30주년 기념식 때 낭독된 책읽당 당원들...
기간 : 12월
[174호][소모임] 제3회 문학상상상 당선작 : 혁이, "겨울 교실에서 배운 것"
[소모임] 제3회 문학상상상 당선작 : 혁이, "겨울 교실에서 배운 것" 당선 소감 올해 초 답답한 마음에 게이가 쓴 게이의 수필을 읽고 싶어서 온라인 서점을 애...
기간 : 12월
[기고] 친구사이 대표의 고별사 ▲ 2014.3.7. 10:06:33. 안녕하세요 친구사이 회원여러분. 2024 친구사이 대표 일지입니다. 2021년 처음으로 출마문을 쓰던게 엊...
기간 : 12월
[기고] 광장에 나선 무지개 순례자들에게 ▲ 2024. 12. 21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 휘날리는 무지개 ...
기간 : 12월
[174호][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9 : 동성애는 문명처럼 옮는다
[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9 : 동성애는 문명처럼 옮는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대가 잘 끊기던 동물이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의 진화사...
기간 : 12월
2024년 친구사이 11월 재정보고 *11월 수입 후원금 정기/후원회비: 6,363,088 일시후원: 421,000 사업 교육사업: 125,000 대화의만찬: 10,000 기타사업: 1,128,2...
기간 : 12월
2024년 친구사이 11월 후원보고 2024년 11월 정기후원: 604명 2024년 11월 신규가입: 5명 일시후원 최진호님, 김경보님, 고주영님, 스카이콕님 11월의 신규 정기...
기간 : 12월
[174호][성명] 윤석열 퇴진을 위한 게이 커뮤니티 공동의 요구 기자회견
윤석열 퇴진을 위한 게이 커뮤니티 공동의 요구 기자회견 ▣ 오늘 12월 26일 목요일, 게이 커뮤니티 개인 519명, 단체/모임/업소 76개가 공동으로 헌법재판소에 ...
기간 : 12월
[173호][이달의 사진] 단체의 결사와 총의를 눈으로 확인하는 날
2024년 11월 30일 오후 7시, 서울 낙원상가 5층 엔피오피아홀에서 2024년 친구사이 정기총회가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친구사이 회원들은 2024년 결산 및 감사...
기간 : 11월
길 위에서 만난 인권의 고민들 11월은 인천퀴퍼로 시작했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퀴어문화축제로 11월 2일(토) 인천 부평역 일대에서 제7회 인천퀴어문화축제 &ls...
기간 : 11월
[173호][커버스토리]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관련 성명·논평 일람 (12.3.22:25 ~ 12.6.16:30)
[커버스토리]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관련 성명·논평 일람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 윤석열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계엄을 기습 선포했습니다. 퀴어...
기간 : 11월
[173호][활동스케치 #1] 2024년 친구사이 정기총회, 핵심 쏙쏙 알려줄게!
[활동스케치 #1] 2024년 친구사이 정기총회, 핵심 쏙쏙 알려줄게! 2024년 친구사이 정기총회가 무사히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정기총회에서는 어떤 사항들이 이야...
기간 : 11월
[173호][활동스케치 #2] '김대리는 티가 나' 북토크 후기
[활동스케치 #2] "김대리는 티가 나" 북토크(11.16.) 후기 11월 16일 토요일, 친구사이 소식지팀은 아론 팀원의 칼럼집 "김대리는 티가 나"(친구사이, 2024)의 북...
기간 : 11월
[173호][활동스케치 #3]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에 들러붙은 장면들
[활동스케치 #3]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에 들러붙은 장면들 언제나 이야기의 열쇠를 미리 손에 쥐는 게 좋았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
기간 : 11월
[173호][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45 : 2024년 활동 마무리 “총회”
[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45 : 2024년 활동 마무리 “총회” ▲ 2024년 책읽당 총회 2023년 11월 총회를 통해 발족한 “빅터” 총재의 책읽...
기간 : 11월
[173호][소모임] 이달의 지보이스 #45 : 지보이스 자작곡 배경 및 후일담 - '네 생각', '독거미(獨居美)'
[소모임] 이달의 지보이스 #45 : 지보이스 자작곡 배경 및 후일담 - '네 생각', '독거미(獨居美)' 1. 지보이스 자작곡 배경 및 후일담 2 <네 생...
기간 :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