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단골집들 말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려다가 피플이라는 사이트에서 김중식의 시를 봤네. 하필 그것도 새 소설을 쓴 이인휘의 인터뷰 머리에서 보았네. 이인휘 인터뷰에 김중식 시라니, 옛 친구의 애인된 옛 애인을 만난 기분이랄까. 엎친데 덮친 격이랄까.
서른 세살에 안락사라니!
관계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겠으나 관계자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여기에 올려 놓지 뭐. 나를 포함해 머리 나쁜 년들 리마인드 차원에서 펌 해 왔수다. 거리를 걷다가 무심코 잊었던 애창곡을 듣듯, 황망하고 아리고 하더이다. 서글프지는 않더이다.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1993)에 실린 '너를 마지막으로 내 청춘은 끝이 났다'라는 시.
존재 이전이다
移轉도 맞고 以前은 더 맞는다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하여
안정된 직장 예비군에 편성되기 위하여
열 손가락의 지문 날인을 하면서
우리의 존재 그 자체가 거부하는 그 속으로
발버둥칠수록 옭아오는 그물 속으로
몸부림치면서 들어간다
편입당하려구 애쓰고 기쓰면서 들어간다
까짓, 매수당하는 척하는 거지, 하며
까짓, 감염당하는 체하는 거지, 하며
이왕 발목 잡힌 거 安樂死 당하려구
무기징역 당하려구
바퀴벌레 한 마리 또 한 마리 삼만삼천 마리 우글우글
거미줄 속으로, 노골적으로, 기어들어간다
대학교 도서관 뒤뜰 코스모스도
키가 다 컸다 싶어서 흔들리고 있다
成長을 멈추면 일체 변절이다 그치? 하면서.
추신. 재작년 어느날 경찰청 기자실에 하루 파견나갔다. 그 기자실에 김중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있어야 할 경향신문 부스가 비어 있었다. 콩당콩당,까지는 아니어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꼭 그의 얼굴을 꼭 보고 가고 싶었다. 얼마 뒤 어떤 아저씨가 들어와 경향신문 부스에 앉았다. 가난한 신문 기자 치고도 약간 추레한 행색이었다.
인사를 하고 싶기도 했지만, 어색한 인사를 건내기 위해 나를 설득할 명분이 없었다. 업계의 관례를 싫어하므로 "김중식 선배"라고 하기도 싫었고, 문학 소녀 티내면서 "김중식 시인 아니세요?"하기도 민망했다. 결국 제 자리에서 쭈볏쭈볏하다가 기자실을 나와 버렸다. 그렇게 내 청춘의 스타를(아니 우리 청춘의 빅스타를) 훔쳐 보는 일은 느닷없이 다가와서 허탈하게 쫑나 버렸다.
아직도 그의 새 시집이 나오면 살 수밖에 없겠지만,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 그가 안심되기도 한다. 그의 새로운 시가 개그맨이 된 전인권만큼 짜증스러우면 어떡하나, 괜한 불길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안락사도 하지 못한 바퀴벌레가 되었어도, 그 시절 김중식의 시는 여전히 아름답다. 수면제 대용으로 일독해봐야 겠다. 혹시 아는가. 그 시절 그 오빠가 꿈에라도 나타날지. ㅋㅋㅋ
김중식
낙타는 전생(煎生)부터 지 죽음을 알아차렸다는 듯
두 개의 무덤을 지고 다닌다
고통조차 육신의 일부라는 듯
육신의 정상(頂上)에
고통의 비계살을 지고 다닌다
전생(煎生)부터 세상을 알아차렸다는 듯
안 봐도 안다는 듯
긴 속눈썹을 달고 다니므로
오아시스에 몸을 담가 물이 넘쳐 흘러도
낙타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않는다
전생(煎生)부터 지 수고를 알아차렸다는 듯
고통받지 않기를 포기했다는 듯
가능한 한 가느다란 장딴지를 달고 다닌다
짐이 쌓여 고개가 숙여질수록 자기 자신과 마주치고
짐이 더욱 쌓여 고개가 푹 숙여질수록 가랑이 사이로 거꾸로 보이는 세상
오 그러다가 고꾸라진다
과적(過積)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
최후로 덧보태진, 그까짓, 비단 한 필 때문이라는 듯
고꾸라져도 되는 걸 낙타는
이 악물고 무너져버린다
죽어서도
관(棺) 속에 두 개의 무덤을 지고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