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 근대 민족주의는 어떻게 성을 통제해왔나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성적으로 순결하고 건전한 사람이란 누구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그런 기준을 갖게 됐으며,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조지 모스 지음,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소명출판 펴냄)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태도를 지칭하는 ‘고결함’이 근대 민족주의로 수렴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다시 말해, ‘고결함’은 근대 민족주의가 섹슈얼리티를 지배하기 위해 강제하는 태도다.
역사학자 조지 모스는 주로 독일과 영국의 근대역사를 통해 고결함과 민족주의의 결합을 분석한다. 봉건사회가 붕괴되면서 등장한 중간계급은 고결함으로 하층 계급과 귀족계급 모두에 맞서는 사회적 지위를 견지하려고 했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티즘의 복음주의와 경건주의를 기반으로 더욱 확고해졌으며, 문화적으로는 낭만주의를 토양으로 한다. 이 모든 성의 통제는 민족에 헌신하는 인간상을 통해 구현됐다. 여기서 남성다움에 대한 강조는 필수적이다. 부르주아는 중세 기사도나 그리스 예술에서 남성적인 민족 전형을 이끌어낸다. 또 의학은 성직자를 대신하여 정상 성의 수호자 역할을 하게 되고 성적 통제의 대리자로서 가족이 떠오른다.
이렇게 성의 통제를 통해 확립된 민족주의는 전쟁을 통해 다시 고양되고, 극단적인 형태인 인종주의와 파시즘으로 나아간다. 전쟁으로 인해 민족주의는 청년 예찬, 남성미나 동지애와 같은 남자다움의 전형을 강화한다. ‘부르헤’와 ‘브룩’이라는 독일과 영국의 젊은 작가는 전장을 헤매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떠올랐다. 남성적 집단에서 배제된 여성, 유대인, 슬라브족 등은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민족주의와 고결함 사이의 연합은 인종주의라는 정점으로 줄달음친다.
인종주의는 성적으로 ‘고결하지 않은’ 아웃사이더의 전형을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를 강화한다. 외모를 통한 시각적인 전형화는 인종주의의 핵심이다. 유대인, 동성애자, 정신이상자는 성도착자의 뒤틀리고 병약한 모습으로 거의 비슷하게 그려졌다. 의사들은 정신병이 동성애자들의 가족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설파했으며, 마찬가지로 유대인들 중에도 정신이상자의 비율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런 아웃사이더들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지닌 민족적 이상형과 대조되는 ‘반유형’으로 표상됐다. 이러한 아웃사이더의 죽음은 부르주아의 죽음과 달랐다. 영혼이 없는 자들은 외롭고 추하게 죽어야 한다는 인식은 곧바로 파시즘으로 이어진다.
파시즘은 평상시에도 전쟁과 같은 ‘남성결사’를 계속 이어가려 한다. 나치의 돌격대 같은 남성 공동체는 파시즘이 지키려는 고결함의 이상에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남성성에 대한 숭배와 남성 공동체 지향은 남성 동성애를 표면화할 위험이 있었다. 나치의 주요 전범인 힘러의 극단적인 동성애 혐오는 남성결사를 통해 ‘위대한 독일 민족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동성애의 혐의를 떨어버리려는 시도였다.
부르주아의 도덕으로 18세기에 발생한 고결함은 결국 만인의 도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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