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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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43
: 셀린 송, <Past Lives>(2023)

살다 보면 세상은 불공평함으로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만으로 나와는 천지차이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운이 좋아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를 실패를 거듭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타고난 재주가 많아 큰 노력 없이 하고싶은 일을 척척 해내고 삽니다. 또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죽고, 어떤 사람은 보통 사람들의 2배는 더 살다가 죽습니다. 어떤 사람의 죽음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어떤 사람의 죽음은 온 누리에 알려집니다. 하지만, 원래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걸 받아들이기에 사람은 너무 자기 중심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합니다.
“전생에 무슨 생을 살았길래”
현생에 있는 불공평이 이미 오래 전 존재했던 내가 살았던 어떤 삶의 대가라고 인정하면, 이 뒤틀림을 받아들이기 한층 쉬워집니다. 불운한 사람들은 전생에 지은 죄가 있어 그런 것이라고,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전생에 이룬 공덕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살아갑니다. 다음 생도 있을 테니 모두가 착하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제법 그럴듯하고, 편리한 개념입니다.
가끔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동성애자로 태어났을까? 그게 죄라고 착각하던 날들의 어린 생각이었지만, 제법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남자를 너무 괴롭혀서 남자를 사랑하도록 태어났나? 여자를 너무 괴롭혀서 여자를 사랑하지 않게 태어났나? 그럼 전생에 난 여자였나, 남자였나? 사실 결론은 언제나 “알아서 뭘 하나” 하고 끝나지만, 잠깐 동안이나마 뭔가 초현실적인 통찰을 해본 것 같기도 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 거 같기도 해서, 전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크게 쓸모없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전생 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연”입니다. 현생에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있던 어떤 일의 결과라고 합니다. 하물며,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는 것은 8천겁의 시간이 엮인 인연이라고 하는데, 대체 왜 이 웬수 같은 전 애인들은 그렇게 긴 시간을 공들여 나를 괴롭힌 것인가… 궁금해집니다. 전생에 저는 평행우주 하나라도 멸망시킨 걸까요? 그 우주에 살던 애들이 전 애인들인가요?
아무튼, “인연”이라는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쉽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 같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어차피 인연이면 만날 거라며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긴 시간을 공들여 쌓은 인연을 소중히 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개념을 믿고 인정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종종 인연임이 분명한 사람을 놓치고 후회합니다. 그건 진짜 인연이 아니었다고 얘기하지만, 놓쳤다는 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순간들을 수없이 지나 8천겁의 시간이 되면 비로서 결실을 이루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 노라는 아서를 만나 결혼합니다. 아서는 노라와 비슷한 직업을 가졌습니다. 공감대도 크고, 서로에게 일적으로 도움이 되는 관계입니다. 인종과 국적이 다르기는 하지만, 줄거리로 봐서는 크게 불만이 없는 사이입니다. 결혼 후에도 서로에게 충실하고 적당히 유머가 있는 생활을 몇 년이나 지속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완벽한 부부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둘이 “인연”이라고 하는 말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성과 노라의 이야기를 보면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해성과 나영(노라의 한국 이름)은 어린 시절을 단짝으로 보냈습니다. 첫사랑이지만, 잊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연한 기회로 서로를 찾아 만남을 이어가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나영은 타국의 다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해성도 어떤 여자를 만나 연애를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잊혀져야 하는 두 명은 결국 “인연”이 아니었던 걸까요? 이제 우리는 오래된 구전 민요를 하나 들어봅시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 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모르는 척 했더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시집간 날 첫날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
갑순이 마음은 갑돌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안 그런 척 했더래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장가간 날 첫날밤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고까짓 것 했더래요
세상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갑순이와 갑돌이에게는 팔천겁의 시간을 건너 결국 부부의 연을 맺은 서로의 상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갑순이 남편, 갑돌이 부인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인연”은 이렇게 부부의 연을 넘어서는 큰 의미로 남기도 합니다.
아서는 노라의 얘기를 듣고 본능적으로 느꼈을 겁니다. 글을 다루는 작가라면 이 서사에서 본인은 갑순이 남편 같은 역할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을 겁니다. - 갑돌이 갑순이를 아서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따지지는 마세요. 뭐 서양에도 비슷하게 질 앤 잭 같은 민요가 있을 겁니다. - 이 영화는 사실 아서가 아니었으면 뻔한 민요처럼 끝났을 겁니다. 갑순이 남편 역할을 맡은 아서는 노라와 해성이 결국은 해후하게 해주고,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무슨 부처님 코스프레인가 싶은데, 사실 노라가 만나지 말라고 만나지 않을 성격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아서는 불난집에 부채질을 하지 않고 조금만 타고 사그라들기 바라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조금 남은 불씨가 남은 장작을 활활 태우고 완전히 연소되어 사라지기 바랐을 겁니다. 해성과 노라가 제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저만 가졌던 게 아니었나 봅니다. 모임에서도 많은 분들이 아서에게 공감하고 분노하시더라구요.
영화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인데, 대본을 보니 바에서 노라가 어딘가로 사라지고 아서와 해성이 둘만 남겨졌을 때, 해성은 노라에게도 보이지 않던 눈물을 아서에게 보여줍니다. 아니 거기서 가장 울고싶은 사람은 아서가 아닌가요? 아서는 그런 해성을 다그치지도 않습니다. 어쩔 줄을 모르다가 그저 못 본 척 해줍니다. 갑순이를 만나러 이웃마을까지 먼길을 찾아온 갑돌이의 연정 가득한 눈물을 모른척 해주는 갑순이 남편이라니. 아마 아서와 해성도 전생에 보통 인연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 노라와 해성은 아마 다음생 즈음에는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다음 생 정도에는 해성과 아서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지 않을까요? 애꿎은 남자 출연진들을 커플링하는 극성팬들의 입장에 빙의하여, 소소하게 상상해봅니다. 그 생에서는 그 둘이 어려서부터 단짝으로 지내다가, 둘 중 하나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연락이 뜸해지는 걸로 합시다. 그러다 어느 날 어떤 조용한 나라의 천국 같은 해변에서 반쯤 벗고 있는 서로를 발견하는 거에요.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와,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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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당 당원 / 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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