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건강가정기본법’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모양입니다. 장현정 씨를 비롯, 여성학자 4 명이 이 법의 차별성을 주장하며 인권위에 진정을 내면서 다시 논란이 불궈졌습니다. 이미 이름도 해괴한 건강가정기본법은 지난해 7월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이 발의하고 보건복지부가 마련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터입니다.
뒤늦은 감이 있기도 하고, 동성애자 인권운동 진영에서 먼저 나서서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이참에 함께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충분히 유의미한 일일 듯 싶습니다.
건강가정기본법으로 보자면, 동성애, 장애인, 이혼, 독신의 상황에 놓인 소수자들은 대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인가 봅니다. 이들은 혈연, 혼인, 입양 등 건강가족의 필요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여의 존재들인지라 기본법이 보장하고 있는 여러가지 사회 혜택을 받을 주제가 못 되는 거지요. 한겨레 대담을 읽어보니, '건강가족시민연대' 대표 송길원 교수는 아예 이들을 가족이 아니라 '동아리'라고 부르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하시던데, 이 양반 대학교 동아리 생활을 너무 오래 하셔서 그게 무슨 뜻인지도 까먹은 모양이네요. 지금 동성애자들은 동아리 하나 만들자고 이렇게 혀 빠지게 인권운동을 하고 목청을 높이고 있나요? 장애-이혼-비혼 등의 사유로 독신이 되었거나 독신의 삶을 지향하는 분들은 대체 무슨 동아리에 들어가야 하나요? 빈곤한 상상력에 부박한 언어 사용, 참 촌스러운 양반들입니다.
다른 나라에선 시민결합이다, 동반자파트너쉽이다 하여 기존 가족 모델이 포괄하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위한 사회 복지 정책을 펴놓고 있는 마당에, 건강가족이란 다분히 생물학적 뉘앙스를 풍기는 후져빠진 개념으로 역사적 반동의 백댄스를 추다니요.
사실 혼인 혹은 입양을 통한 혈연관계만을 건강가족이라 한정하며 우대 혜택 운운하는 노무현 정부의 사회복지제도 감수성은 워낙 천박한 수준의 밑바닥을 드러내는지라 민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른 나라 돌아댕기면서 한국은행 잔고 많다고 자랑하지 말고 복지정책이나 똑바로 펴시길 바랍니다. 쪽팔리지도 않나요? 인구가 감소된다고 엄살을 피우며, 사회복지정책의 탈을 썼지만 정작 인구정책의 일환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 후져빠진 이데올로기는 달력에나 나올 법한 완벽하리만치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는 이성애적 가정 모델을 제외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주변화하고 차별하는 악법입니다. 예전 히틀러 시대 때도 전시 인구 증가를 위해 건강가족 어쩌고 하며 이 비스무레한 정책을 폈더랬지요.
이혼 증가를 우리사회 가족체계의 전반적 위기의 징후로 독해해내는 보수적 시각이 지금 이 법을 지렛대질한 추동력입니다. 이혼 가족을 건강가족의 일탈로 낙인화하고 우리 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자들의 '지극히 건강한' 형태의 가정을 병든 것처럼 계서화하는 건강가정기본법은 우리들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할 만한 악법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함께 이 법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현명하게 대처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겨레 대담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8&article_id=0000086606§ion_id=001&menu_id=001
‘건강가정기본법’ 논란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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